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동체가양생이다] 포세이돈 신전에서 맹자를 낭송하다

포세이돈 신전에서 맹자를 낭송하다

 

 
원문에 꽂히다
 
문탁의 초창기 홈피에는 공동체를 소개하는 문구로 용맹정진(勇猛精進),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마련(事上磨鍊) 등의 성어들이 즐비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 성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면 된다고 외치는 ‘무대뽀의 정신’이 저절로 느껴졌다. 앎과 행함의 일치라는 비전은 강렬했고, 내가 그동안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나중에 저 성어들이 중국 명나라 사상가 왕양명의 사유라는 것을 알았고, 그 뜻도 나의 독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고 혼자서 멋쩍어 했었다.
 


공동체에 와서 내가 처음 접한 고전은 『논어』 였다. 읽자마자 꽂힌 성어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었다. 어떤 일에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공자님이 스스로를 자처하는 말이기도 한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는다니 기가 찼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까먹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그 놀라움 때문에 몇 번이나 써 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점점 『논어』 읽기는 나의 행동을 가늠하는 준칙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자님의 말씀에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형제와는 우애가 있는 사람이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내가 인정머리 없는 딸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고, 명절에 형제들과 만나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그러니 문장들이 나의 양심을 콕콕 찔렀고, 다른 일상에서도 그 준칙들로 인한 불편함이 갈등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사기열전 낭송집을 발간하다
 
이문서당에서 『사기열전』을 읽게 되었을 때는 내심 기대를 했다. 열전에서 만나는 그 많은 인물들의 삶이 공자님의 말씀처럼 불편하겠어? 확실히 그렇지는 않았다. 자신을 알아주었던 주군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객의 숭고미나 찌질과 위엄을 남나드는 유방의 인간미는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시 열전의 인물들로 글쓰기를 했는데 쓸 문장이 없었다. 멋있기는 한데 왜 멋있는지 쓸 수 있는 단어가 너무 빈약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양고전으로 낭송시리즈를 발간하는 팀에 『사기열전』을 풀어쓰는 저자로 합류하게 되었다.
 
칠십 편의 열전 중에서 낭송하기에 좋은 내용을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사건을 잘 전달하면서도 말로 하는 맛을 살리는 문장으로 다듬느라 아는 단어를 총동원했다. 원문에 입각해서 단어를 고르다보니 새롭게 써야 하는 글쓰기보다는 좀 수월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스토리들을 축약하다보니 맥락을 놓치기 일쑤였다. 실제로 낭송집이 발간되고 내용이 잘 안 읽힌다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많이 부끄러웠다.
 
낭송집이 시리즈로 속속 출간되면서 낭송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낭송 페스티벌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하던 세미나에서는 『낭송장자』의 문장을 암송하기로 했다. 일단 문장을 외우기부터 시작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문장을 급하게 읽어치우는 습이 또 발동을 했기 때문이다. 속도를 늦추고 꼭꼭 씹어가며 외우는 시간을 늘렸다. 그렇게 어찌어찌 다 외웠는데 정작 낭송을 하는 무대에 나서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났다.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낭송하던 흐름이 내 차례에 이르러 뚝 끊기고 말았다.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다고는 했지만, 내가 그마저도 다 망친 것 같아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미친 암송단을 만들다
 
낭송 시리즈를 펴내는데 참여하기 전에도 공동체에서 낭송을 하기는 했다. 어린이 서당에서 『논어』 원문을 암송하는 공부법을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그날 배운 원문을 암송하는 미션을 수행했고, 연말 인문학축제에서 원문 낭송공연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외우느냐는 거부감이 없었다. 원문 한자의 음을 배운 다음, 음대로 소리 내어 반복해 읽다보면 어느 순간 입에 붙으면서 저절로 외워졌다. 조를 짜서 외워보라는 미션에서 원문에 리듬까지 붙여가며 읽는 아이들을 보면 마치 놀이 같기도 했다. 그렇게 공간에 원문 읽는 소리가 가득차면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몸에도 그 리듬이 전해졌다. 동시에 새삼 원문의 뜻을 곱씹게 되곤 했다.
 


결국 아이들에게만 암송을 시킬게 아니라 내가 직접 암송을 해봐야겠다고 발심을 하게 되었다. 함께 암송할 친구들도 모았다. 매일 일정 분량의 원문을 암송하고 녹음한 파일을 카톡으로 공유하는 방식이었고 ‘미친(美親)암송단’ 이라고 이름도 정했다. 매일 암송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원문과 좀 더 친숙해지자는 의미였다. 나는 주로 저녁에 잠자기 전에 암송을 했는데, 예상치 못한 저녁 약속이라도 잡히면 암송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하루는 약속장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외우고 도착해서 역 화장실에서 녹음을 한 적도 있다. 다른 친구들도 여러 변수에도 각자의 형편에 따라 암송을 하고 녹음파일을 올렸다.
 
 『논어』를 암송하던 때에는 문장을 암송하면서 자신에게 꽂힌 내용을 글로 써와서 서로 피드백을 했다. 분명 같은 문장을 읽었음에도 새겨지는 내용은 다 달랐다. 그래서 원문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어떻게 읽히는가에 집중했다는 등의 의견으로 나뉘기도 했다.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하고 썰렁해진 채 피드백을 끝내는 때도 있었다. 그렇게 쓴 글은 공동체의 홈페이지에 ‘왈가왈부 논어’로 연재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왈가왈부하는 댓글을 기대했지만, 댓글은 고사하고 조회수까지 나날이 줄어들자 우리는 많이 의기소침해졌었다. 그래도 끝까지 『논어』 전문을 암송한 후, 우리는 한 권 전체를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 만나서 스무 편의 원문을 다 읽고 나니 저녁을 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 목은 아프고 배도 고팠지만,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에 온 몸이 뻐근해오던 기분 좋은 감각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암송, 몸에 새기는 공부
 
암송하려면 일단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자면 매일 매일 하는 암송도 거를 수 없다. 미친 암송단에서 『맹자』를 암송하던 해에 친구들과 열흘이 넘는 일정으로 그리스 여행을 가게 되었다. 처음 가는 유럽 여행이라 들뜨기도 했지만 낯설어 긴장도 되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긴장도 풀 겸 묵었던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그리고 원문 암송도 거르지 않았다. 여행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에 들어오면 짬을 내어 원문을 암송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징하다고 놀렸다. 그리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수니온곶 포세이돈 신전에 올랐다. 탁 트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니온곶 석양이 장관이라는 정보를 접한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신전 주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암송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며 가방에서 원문을 꺼내 암송을 시작했다. 포세이돈 신전 기둥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에 내가 원문을 읽는 소리도 실려 가지 않았을까. 그 때 여행을 같이 간 친구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그 때 그리스 신전 앞에 앉아 『맹자』를 암송하던 나의 모습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암송을 하려면 소리를 내서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눈으로만 읽어서는 외워지지 않는다. 반복해서 소리를 내면서 읽다보면 생각에도 공명이 일어난다. 그러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재고되는 질문이 생기고 관점이 이동하기도 한다. 내가 읽는 소리가 귀를 통해 뇌에 전달되어 나의 앎을 재구성하는 생생한 감각, 그 생생함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런 기쁨을 경험하고 나면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일이 공부의 과정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반복은 몸 어디엔가 새겨진다. 그러다 어느 날 어느 때 그 문장들이 술술 흘러나와 곤란에 처한 상황을 전환시키기도 했다.
 
지난 여름 인문약방에서 기획한 걷기 캠프 루트를 사전 답사하기 위해서 운탄고도를 걸었다. 길은 평탄한 편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 신호가 왔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무릎에 점점 통증이 느껴진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 때 한 친구가 날더러 『논어』 원문이라도 낭송해보라고 부추겼다.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상황이라 뭐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논어』 첫 편인 ‘학이편’을 낭송했다. 우선 원문을 낭송해주고 연이어 차근차근 뜻을 설명해주었다. 친구들은 나의 낭송을 들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발가락이 쓰라린 감각이 안 느껴진다고 신기해했다. 읽고 또 읽어 입에 붙고 몸에 새겨진 문장으로, 예고 없이 닥친 곤란을 감당할 수도 있었던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삶의 어떤 순간에 빛을 발해 우리가 가는 길을 밝혀주는 공부, 암송은 그 빛을 몸에 새기는 공부다.
 

글_기린(에코n양생실험실 인문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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