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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발굴, <한서>라는 역사책

[발굴!한서라는역사책] 선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황제에 오르다

by 북드라망 2021. 5. 13.

선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황제에 오르다

 


현대인은 자기 현존에 대한 불행을 상처에서 찾는 것에 익숙하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지 못한 애정결핍을 시작으로, 이별에, 재수에, 취업실패까지, 이 상처로 아프고, 저 상처로 아프다. 정말 삶의 불행이 상처에 기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런 상처는 어떨까? 천애고아에, 한때는 고귀한 황족이었으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적의 자손이 되어 밑바닥으로 떨어진 삶. 오늘날 현대인의 상처와 견주어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불행한 삶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 상처의 주인공은 훗날 유하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올라, 위대한 군주에게만 붙는 시호 선(宣)을 부여받은, 선제 유병이다. 이것이 과연 삶의 조건만으로 설명이 가능한 일일까?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을 다 갖춰야 불행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모든 좋은 조건을 다 갖추고도 폐위가 된 유하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황위에 올라 성군이 된 유병이를 보면, 행과 불행이 결코 주어진 조건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주어진 삶의 조건이 아니라 그 조건과 내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 가다. 과연 유병이는 자신의 운명과 어떻게 관계 맺었기에 평민에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일까?

병길, 유병이의 목숨을 살리다


유병이(황증손)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에 놓인 운명이었다. 왜일까? 시간은 무제 치세, ‘무고의 화’가 한창 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병이는 대외적으론 무제의 증손자이자, 여태자 유거의 손자, 그리고 여태자의 장남인 유진을 아버지로 둔 명실상부 무제의 적장자 라인이다. 별탈이 없었으면 풍요로운 어린 시절은 물론 차기 황권까지도 노려볼만한 위치였다. 허나 주지하듯 여태자는 ‘무고의 화’에 연루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가문은 멸족 되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이들이 약 2~300여명. 이 해에 태어난 유병이 역시 죽음을 피해갈 순 없을 듯 보였다. 그러나 유병이는 이 화마에서 홀로 살아남는다.

강보에 쌓인 아기 유병이가, 무고와 관련된 자들을 조사하던 치옥사자 병길을 만난 건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아기의 힘이었을까? 병길은 울고 있는 유병이에게 차마 법을 적용할 수 없었다. 연민의 마음이 생겼던 까닭이리라.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여 병길은 유병이를 몰래 감옥에서 키우기로 결심한다. 후덕한 여자 죄수를 골라, 그녀들의 형구를 풀어주어 젖을 물리고, 자신의 사비로 옷과 음식을 마련, 증손이 깨끗한 곳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병이에게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

 

무고 사건은 몇 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후원 2년에 이르러 무제는 노환으로 장양궁과 오작궁에 머물렀는데 망기자(望氣者)가 장안의 옥중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고 보고하자, 무제는 사자를 보내 중도관을 나눠서 감옥에 있는 자의 죄의 경중을 막론하고 모두 죽이라고 하였다.

(「선제기」,『한서』1권, 명문당, 419쪽)

 

상상하면 무척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다. 기(氣)를 보고 동정을 살피는 관리 망기자는, 옥중에 천자의 기운을 감지한 후 무제에게 보고한다. 보고를 받은 무제는 그야말로 대노한다. 천자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천자의 기운이라니! 게다가 그 기운의 출처가 감옥이라니! 무고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반란의 기운이 생기는 것에 불안함을 느낀 무제는, 내자령 곽양에게 죄의 경중을 가리지 말고 모두 죽이라 명한다. 곽양은 군대를 이끌고 한달음에 출군하여, 장안의 감옥에 당도한다. 옥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그 때, 병길은 단신으로 곽양과 그의 군대를 막아선다.

 

“황증손이 계시다. 무고한 다른 사람이 죽는 것도 불가한데 하물며 친 증손을 죽일 수 있는가!” 서로 맞서며 날이 밝을 때까지 들어가지 못하자, 곽양이 돌아가 보고하며 병길을 고발하였다. 무제 또한 뉘우치며 말했다. “하늘이 시킨 일이로다.” 그리고서는 천하에 사면령을 내렸다. 군 관사의 옥에 갇혀 있던 자들만 병길 때문에 살 수 있었으니 그 은혜는 사해에 두루 미친 셈이었다. 황증손이 병이 들어 거의 살지 못할 것 같았던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병길은 자주 유모에게 의약을 보내주고 잘 돌보라고 타이르면서 특별히 은혜를 베풀며 사재로 의식을 공급해주었다.

(「병길전」,『한서』6권, 명문당, 455쪽)


관료제가 공고했던 한무제 시절, 일개 치옥사자가 황제 직속 내자령과 그의 군대를 막아서는 일은 감히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병길은 대의를 위해 그 모든 직급을 무시하고, 치옥사자의 원칙으로 곽양의 군대에 맞서 옥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율령에 이르길, 아무리 죄인이라 하더라도 나라에서 정한 그 이상의 법 적용은 불가했기 때문이다. 병길이 보기에 이는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게다가 황증손은 죄가 없었다. 아기여서도 죄가 없지만, 앞서 무제가 차천추의 상소로 여태자의 무죄를 선고한 후였기 때문에, 연좌될 죄 역시 없었던 것이다. 결국 병길이 끝까지 옥문을 열어주지 않은 덕분에, 유병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유병이와 같은 곳에 갇혀 있던 죄인들을 살리고, 하나 남은 증손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뻔했던 무제마저 살렸다.

 


주지하듯 생명을 살리기 위한 마음씨는, 시대를 넘어서 감동을 준다. 『한서』 역시, 이런 병길의 행위를 ‘사해에 두루 미친 은혜’라며 극찬했다. 그런데 『한서』에서 반고가 짚어낸 병길의 위대함은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병길은 사람이 침착 온후하여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황증손이 즉위한 이후로 병길은 지난 은덕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았기에 조정에서도 그의 공덕을 알지 못했다.’

(같은 책, 459)

 

반고가 주목한 병길의 위대함,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생불념은(一生不念恩)’에 있었다. 우리는 흔히 조금의 선행도 미담으로 회자되길 원하고, 그것을 어떤 형태로든 인정받고 싶어 한다. 대체로 사람들의 마음자리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병길은 ‘일생불념은’, 즉 남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도 일생동안 자신의 공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왜일까? 무언가를 자랑하는 것은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기대하는 바가 없으면 자랑할 필요가 없다. 병길 역시 마찬가지다. 병길은 황증손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다. 울고 있는 황증손을 보고 그저 연민을 느껴 도와주었을 뿐, 처음부터 황증손에게 그 어떤 계산과 기대도 없었던 것이다. 사심 없는 용기, 생색 없는 마음. 병길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유병이를 살릴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 마음이었다.

 

부모역할을 자처한 장하!


혹리 장탕의 아들이자, 무제가 총애했던 신하 장안세의 형인 장하는, 젊은 날 여태자를 섬겼다. 그러나 인생사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더니, 여태자가 ‘무고의 화’에 얽히면서 태자를 섬겼던 모든 이들이 사형에 처해지고, 장하 역시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그때, 장하는 천운으로 살아남는다. 당시 무제에게 신임 받고 있던 동생 장안세가, 형 장하를 위해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상소를 올렸기 때문이다. 해서 장하는 사형 대신 부형(궁형)을 받아, 극적으로 죽음만은 면한다.

형 집행 후, 장하는 액정(후궁의 거처)을 관리하는 액정령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뒤, 인연이었는지 운명처럼 유병이가 장하 앞에 놓인다. 병길의 도움으로 사면 받은 유병이가, 옥이 아닌 액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황제가 윤허했기 때문이었다. 장하는 평소 여태자가 무고하게 죽은 것을 가슴 아파하였던 바, 옛 은정을 생각하여 홀로 남겨진 유병이를 물심양면으로 보살피며, 부모 역할을 자처했다. 장하 자신의 사비로 먹여주고, 입혀줌은 물론, 유년기의 유병이를 평생 공부시키며, 그의 역량을 키워주었다. 그런 유병이 역시 장하의 뜻을 알았는지, 학문에 정진하며 엇나감이 없었다.

흔히 공부는 시키면 누구나 할 것 같지만, 사실 공부는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보자. 창읍왕 유하만 하더라도 공수, 왕길, 왕식과 같은 역대급 브레인들이 ‘스카이 캐슬’을 이루어 공부를 시키고자 했건만 죽어라 도망만 다니지 않았던가. 그러나 유병이는 공부를 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미래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좌천된 황손으로서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공부임을 알았던 것이다. 하여 유병이는 열심히 시를 외우고 시경을 읽고 효경을 암송했다. 그렇다고 유병이가 공부에만 능한 샌님은 아니었다. 말타기와 활쏘기에도 능했고, 평민에서 성장하였기에 현실감각도 뛰어났으며, 결정적으로 겸손했다.

정말 큰 인물이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듯한 유병이. 장하는 유병이를 자신의 손주 사위로 삼고 싶어 했다. 그가 황손이어서가 아니라, 가르쳐보고 겪어보니 괜찮은 청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하는 그런 자신의 뜻을 동생 장안세에게 전한다. 그러나 안세는 극력 반대한다. 왜일까?

 


장안세, 억누르고 반대하여 유병이를 살리다


유병이는 상서로운 기운을 몰고 다니는 아이였다. 일례로 옥안에 갇혔을 때, 천자의 기운이 감옥을 뒤덮은 사건이나, ‘온몸과 발에도 털이 많았고 누워있을 때는 몸에서 빛이 났다. 증손이 떡을 사면 떡장수는 그날따라 많이 팔렸는데 황증손도 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다.’(「선제기」,『한서』1권, 명문당, 421쪽) 라는 일화. 이 밖에도 유병이가 아직 어릴 때, 민가에서, 큰 돌이 저절로 일어서고, 그 돌 주위로 흰 새 수천마리가 주변에 모여들었으며, 창읍의 말라죽은 사목이 다시 살아나는가 하면, 상림원의 큰 버드나무가 잘려 쓰러져있었는데 저절로 일어나 살아났고 벌레가 파먹은 나뭇잎에는 공손병이립(公孫病已立-공손병위가 즉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는 일화. 유병이는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신기한 일들을 보게 되면 주변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유병이를 가르쳤던 장하는 자주 들뜬 마음으로 이런 유병이와 얽힌 여러 상서로운 일화와 자질들을 안세에게 전했는데, 안세는 그때마다 ‘어린황제(소제)가 재위해 있으니, 증손이야기를 절대로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형의 들뜬 마음을 눌렀다. 일례로 당시 혜홍이란 자는 춘추의 뜻을 근거로 ‘지금 큰 돌이 저절로 일어서고, 쓰러졌던 버드나무가 다시 일어선 것은 필시 인력이 아니니 이는 필부에서 천자가 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혜양하후경익이전」,『한서』6권, 명문당, 478쪽) 는 해석을 했다가 대장군 곽광이 처형한 바 있었으니, 장안세의 근신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형 장하와 가문을 살리고, 그리고 유병이를 살리는 길은 오직 하나였다. 유병이가 주목받는 인물로 성장하지 않는 것! 이런 안세의 판단은 매우 적확해서, 훗날 유병이는 선제로 즉위했을 때, 장안세에게 ‘액정령(장하)이 살아 있을 때, 내 이야기를 하면 장군이 못하게 한 것은 옳은 일이었소.’라며 감사를 표한바 있다.

 

장안세가 유병이와의 결혼을 반대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당시 장안세는 곽광과 함께 소재를 근거리에서 보필하는 위치였다. 그런 안세의 집안에서 혼례가 있다고 생각해보라! 결혼 상대자가 누구인지, 어떤 권력자의 자제인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소문이 얼마나 빠르겠는가! 게다가 소문이 나면 권신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이간질이 생기겠는가! 안세는 자신의 집안과 유병이가 엮인다면 서로에게 좋지 않을 것을 예상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결국 장하는 유병이와의 혼사를 단념한다.

그렇다고 장하가 유병이의 혼례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유병이를 결혼시키려 혼처자리를 계속해서 알아봤다. 때마침 장하는 같이 액정에서 근무하는 허광한에게 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허광한에게 유병이를 사위 삼도록 제안한다. 허광한은 장하의 술 한 잔에 흔쾌히 수락! 그날로 유병이는 허광한의 딸 허평군과 결혼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왜 장하는 허광한이란 인물에게 중매를 놓은 것일까?

허광한은 참 운이 없던 인물이었다. 얼마나 운이 없었느냐하면 낭관으로, 무제를 따라 감천궁에 갔을 때 다른 낭관의 말안장을 자신의 말안장에 얹었다가 발각되었는데, 이 사소한 실수로 궁형을 받는다. 헐! 게다가 얼마 뒤, 바야흐로 상관걸 모반사건 때, 허광한은 상관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가 별 소득 없이 나온 일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터졌다. 함께 들어갔던 관리 중 한명이, 상관걸의 사무실에서 증거를 찾아 나온 것이 아닌가! 헐! 운수가 사나우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허광한이 딱 그러했다. 이 일로 허광한은 업무부실이라는 죄명으로 궁중의 땔나무를 하는 노역을 하게 되고, 뒤에 액정에 보내졌다가 나중에서 폭실(직물 염색하는 곳)의 색부(하급관리, 잡부)가 되었다. 좌천에 좌천! 형벌에 형벌! 이런 사람이 바로 선제의 장인인 것이다.

장하가 허광한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과 유병이를 연결해준 이유는 동생 장안세의 조언을 따랐기 때문이다. 어린 소제가 황제로 있는 한, 소제보다 더 똑똑한 무제의 후손이 살아있다는 소문이 돌면, 곽광이 유병이를 가만둘 리 있겠는가! 해서 장하는 유병이를 살리기 위해, 유병이를 드러나지 않게 하는 혼처 자리를 알아본 것이다. 장하가 보기에 허광한은 그런 의미에서 적임자였다. 권력의 변두리에 위치한 인물이자, 중앙권력에 별 위협이 되지 않는 인물. 허광한과 사돈을 맺은 덕에 권력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난 유병이는, 그 덕에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으니, 어떤 때에는 별 볼일 없는 조건이, 어떤 때에는 천운의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 일 것이다.

 

 

 

인연과 더불어 만들어진 천운


항상 기회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출현한다. 유병이가 허평군과 혼인을 한 후, 훗날 원제가 되는 유석을 출산했을 무렵, 창읍왕 유하는 황위에 오른 지 27일 만에 음란으로 폐위되었다. 조정은 곽광을 중심으로 다시 황제를 찾아 나섰다. 과연 누가 소제의 뒤를 이어야할 것인가? 곽광은 두 번의 실수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지독하고 엄격하게 인사검증을 진행했다. 그러나 회의를 거듭해도 황제를 정할 수 없었다. 이에 병길은 곽광에게 글을 올려 유병이를 추천한다.

 

삼가 많은 사람의 의견을 따르고 말의 사실을 살펴보더라도 제후 종실로 그 반열에 있는 분이 궁궐 밖 민간에 있다는 말은 못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조에 의거 무제의 증손으로 이름은 유병이인데 궁중 비빈의 거처에 살다가 궁 밖 민간에 사시며 제가 전에 군의 관사에 있을 때 돌보았는데 지금 나이 18,9세가 되었으며 경학에 밝고 준수한 체구에 행실이 안온하고 지조가 있고 온화한 분입니다. 바라옵건데, 장군께서는 상세히 의논하시고 점괘도 참고하시되 만약 그 분을 기리고 널리 드러내겠다면 우선 모셔다가 입시하게 한 다음에 천하에 알리고 큰 방책을 결정하신다면 백성에게 큰 복이 될 것입니다!

(「병길전」, 『한서』6권, 명문당, 457쪽)

 

훌륭한 군주의 자질은 무엇일까? 군주의 덕목은 시대와 함께 간다. 진나라 말기처럼, 왕조를 무너뜨리고 일어설 때는 용맹하면서도 신하들을 포용할 수 있는 한고조 리더십이 필요하고, 막 전란이 끝나 백성들의 살림이 회복되어야 할 시기에는, 문제와 경제처럼 무위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병길이 보기에 지금은 한나라의 가을이었다. 가을은 봄과 여름의 발산하는 기운을 멈추고, 기운을 내부로 수렴하는 계절로, 욕망을 드러내기 보다는, 오히려 내실을 채우고 겸손과 공검해야하는 계절이다. 지금의 한나라에는 바로 이런 군주가 필요했다. 겸손하고 안온하여, 공검할 수 있는 군주가 말이다. 병길이 보기에 그런 인물은 현재 한나라에 한명 밖에 없었다. 그가 바로 유병이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듯 그는 곽광에 의해 한나라 10대 황제로 추대된다.

유병이의 유년시절부터 황제가 되기까지의 삶을 보면 ‘천운’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죽을 자리에서 목숨을 건지고, 낮은 곳에서 일어나 황제가 된 유병이의 삶은 그야말로 천운 아닌가. 우연히 나타나 목숨을 구해준 사람, 우연히 나타나 공부를 시켜준 사람, 우연히 나타나 자신의 딸을 내어준 사람, 우연히 나타나 자신을 감춰준 사람, 우연히 나타나 자신을 황제로 추천해 준 사람 등.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등장해, 사심 하나 없이 도움을 준 알 수 없는 인연들. 이러한 인연들을 천운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천운이란 곧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천운이 사람이라면, 폐황제 유하의 삶은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주지하듯 유하는 천운이란 천운은 다 가진 자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유하에겐 그 인연들이 천운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왜일까?

오는 인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한 건, 천운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에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하는 그 인연을 자신의 천운으로 만들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 오직 자기 쾌락만 있었을 뿐! 그러나 유병이는 달랐다. 유병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 유리하든 불리하든, 그런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인연들을 믿으며, 그들과 진솔한 관계를 평담하게 이어갔다. 아무런 사심 없이 관계를 이어갔던 바로 이 힘이, 병길로 하여금 유병이를 추천하게 하고, 결국 황제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인연과 더불어 관계 속에서 노력해야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천운이다.

 

글_강보순(감이당, 화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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