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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발굴, <한서>라는 역사책

[발굴!한서라는 역사책] 기원전 81년의 시국 대토론회, ‘소금·철 논쟁’

by 북드라망 2021. 4. 8.

기원전 81년의 시국 대토론회, ‘소금·철 논쟁’

 

 

수구세력과 신진세력의 대격돌

 

기원전 81년! 대신들과 60여 명의 신진 관리들이 장안의 궁궐로 호출되었다. 어린 소제가 등극한 지 6년, 조정에서는 각 제후국에 조서를 내려 덕행이 뛰어난 선비[賢良]들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文學]들을 천거케 했다. 말하자면 각 지역의 숨은 인재들을 추천받은 것이다. 추천받은 인재 중 60여 명을 선발하여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이들 신진 관리들과 대신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시국 대토론회를 벌였다. 주제는 백성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와 그 해결 방안이었다.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시국 대토론회! 분명 전무후무한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염철(鹽鐵) 논쟁’ 즉 ‘소금과 철의 전매에 관한 논쟁’이다. 그러니까 소금과 철을 국가가 전매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의 여부를 따지는 논쟁! 곽광과 두연년 그리고 각 지역에서 추천받아 기용된 선비 60여 명은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가 백성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주범이라 판단했다. 이들의 반대편에 선 승상 차천추와 승상부의 보좌들, 어사대부 상홍양과 어사부의 어사들은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만이 국가와 백성을 살리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무제 때 부국강병을 꾀하며 흉노 원정에 주력했던 한나라 조정은 자금이 많이 필요했다. 변방의 성채를 수리하고 봉화대를 설치하며 군대를 주둔시켜 방비하는데 드는 비용이 어마어마하여 한정된 국고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국방비를 조달하기 위해 한나라 조정은 세금을 늘리고, 국가 주도로 장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제는 상홍양 등이 고안한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를 시행했고, 균수법과 평준법을 시행했다. 전매법은 종전에 소금과 철과 술을 생산하던 민간인들을 관리로 기용하고 국가가 그 생산과 판매를 독점하여 국고를 채우는 방법이다. 균수법은 국가가 일종의 무역 중개를 하는 것으로 각 지방의 특산물을 세금으로 거두어 다른 지역에 수송하여 균일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다. 평준법은 물건을 저렴할 때 사들였다가 가격이 오르면 되팔아 그 차액을 국고로 충당하는 방법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형수에게 돈을 받고 처형을 면죄해 주는 속전법 등 국가 재정을 늘리기 위한 온갖 방법이 고안되었다. 이렇게 했음에도 무제 말년 국가 재정은 바닥났고 호구는 반으로 줄었다.

무제의 뒤를 이은 소제, 그리고 소제를 대신해 국정을 다스렸던 곽광은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온갖 세금 갹출과 국가 독점 산업에 열을 올려도 국가 재정은 나아지지 않고 백성은 고통스럽고. 곽광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무제 때의 정책을 개혁하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백성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이전 시대의 적폐 청산은 필수라는 것!

그러나 소제를 함께 보좌하는 집권 세력 차천추, 상관걸, 상홍양 등의 의견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개혁을 감행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술, 소금, 철의 국가 전매는 어사대부 상홍양이 자랑하는 정책이었고, 상관걸 등의 집권 세력이 동조하는 바였기에 함부로 폐지를 거론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대장군 곽광은 온건 중도파인 승상 차천추를 내세워 현 시국에 대한 대대적인 토론회를 통해 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점검하는 방법을 택한다. 곽광에게 시급한 일은 현 시국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고, 정치의 근원을 되돌아보는 것이었다. 곽광을 주축으로 한 개혁파들과 상홍양을 중심으로 한 수구파들은 첨예하게 대립하며 각자의 입장을 개진했다. 이른바, 의기가 하늘을 찌르는 신진 관리들과 노회한 수구 대신들의 대격돌, 무엇이 문제였는가?

 

부국강병이 살길?

 

요즈음은 새삼 이런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나라가 부유하면 국민은 다 잘살고 정말 행복한가? 군대가 강성하면 국민은 정말 안전한가? 이 문제를 개인으로 가져와도 마찬가지 의문이 든다. 돈이 많으면 행복한가? 힘이 세면 무조건 나를 지킬 수 있는 건가? 물론 국제 질서, 지정학적 위치 등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런 단순한 질문이 어이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부국강병과 성장만이 최선인 것처럼 여기는 우리의 변치 않는 믿음에 반발심이 생기는 건, 어느 만큼이 부국강병인지, 어느 만큼이 성장인지 그 끝을 알 수 없어서다. 어느 만큼 있어야 부자인지, 어느 만큼 무장해야 힘이 센 건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천추, 상홍양 등의 수구 집권세력이 부국강병을 주장하며 앞세운 바는 흉노들의 침략이다. 무제 때와 마찬가지로 흉노들은 여전히 교활하고 엉큼하고 약삭빨라 변방에 제멋대로 들어와 침략을 하기 때문에 군대를 철수할 수 없고, 북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논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군비가 확보되어야 하므로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와 균수법 등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부국강병의 논리는 늘 전쟁과 연결된다. 흉노로부터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기르는 것이고, 나라의 재정을 넉넉하게 하는 것이라는 논리. 수구세력들은 백성들이 과도한 세금과 전쟁으로 인해 받는 고통보다 흉노의 침략으로 받는 고통이 더 크다고 여겼다. 이들에겐 이익 논리밖에 없었다. 흉노를 정벌하여 영토를 확장하면 한나라가 안정되며, 그와 함께 변방 근처의 여러 나라들과 교역함으로써 한나라는 부유하게 된다는 것.

 


이미 무제 말년 흉노 정벌을 통해 영토 확장을 하면 할수록 세금과 부역으로 백성들의 삶 또한 피폐해지는 것이 명약관화했음에도 수구세력들은 멈추지 않았다. 이들은 흉노를 핑계 삼았지만 사실 전매와 교역을 통해 얻는 막대한 수익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흉노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대를 키우고 국방비를 필요로 했다면, 종국에는 막대한 이익을 보장받기 위해 흉노를 적군이자 약탈자로 이용하는 격이었다. 국가의 이익과 관리들의 영달을 위해 오히려 전쟁을 부추기고 상시화하는 것 같았다.

 

여 땅이나 한 땅의 금이나 섬세한 마포의 공물은 오랑캐와 강족과 교역하여 그들의 보물을 취하기 위한 것이다. 대저 중국의 명주 1단이면 흉노에 쌓여 있는 금으로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적국인 흉노의 재물을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균수법으로 모은 재물이 이웃 나라들의 재물로 바뀌어 노새와 당나귀와 낙타에 실려 꼬리를 물고 창고로 들어오고, 뛰어난 야생마와 절따말들이 모두 우리의 가축이 되는 것이다. 담비가죽, 여우가죽, 무늬있는 털방석과 문채·문양 있는 모직물이 나라의 창고에 가득하고 벽옥과 산호와 유리도 모두 국가의 보배가 되는 것이다.


균수법으로 외국의 물자가 국내로 들어오고 이익은 밖으로 새나가지 않았다. 천하 각지의 묘한 물건들이 국내로 들어오면 나라의 문물이 풍요로워지고, 이익이 나라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되면 백성들의 사용은 넉넉해지는 것이다.


(환관 지음, 임덕화 편역, 『소금, 쇠, 술』, 자유문고, 28쪽)

 

수구세력들은 강해지고 부유해지는 일밖에 몰랐다. “부유한 것은 숫자를 잘 헤아리는 술수에 있는 것이지 자신을 수고롭게 하는 데 있지 않고, 이익은 형세를 만들고 따르는 데 있지 힘써 땅을 경작하는 데 있지 않은 것이다.”(환관 지음, 임덕화 편역, 32쪽) 특정 개인이 이익을 독점함으로써 포악스럽고 탐욕스러워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국가 주도로 시장경제를 드라이브했지만, 이들이 중시하는 것은 이득이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사치와 소비를 조장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수구세력이 전매의 필요성과 정당함을 강하게 주장했음에도 신진세력들은 믿지 않았다. 수구세력들은 손쉬운 수익 창출과 귀한 소비재의 개발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백성을 안정시키겠다는 애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국가와 결탁한 사람들만이 이 이윤 배분의 잔치에 초대된다는 것! 이 불 보듯 뻔한 진실에 신진세력은 동조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익이 아니야!


수구세력에 대결하는 신진세력들의 입장은 간결했다. 전쟁을 멈추고, 국가 재정 확보에만 올인하는 독점 정책을 폐지하는 것! “자주 전쟁을 하게 되면 백성들은 피로해지고 오래도록 병사를 사용하면 병사들은 피폐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백성들이 고통스럽게 여기는 바이며, 융통성 없는 선비들의 걱정이기도 한 것입니다.”(환관 지음, 임덕화 편역, 57쪽) 전쟁을 통한 영토의 확장과 국부의 축적은 황실에는 사치를 조장하면서, 대다수 백성들에겐 궁핍과 고통만을 안겨준다.

 

백성들이 미식을 좋아하여, 새끼를 밴 짐승이나 알을 품은 짐승들을 죽여 만드는 음식을 좋아한다면 물고기나 짐승의 고기도 부족해집니다.
모직물과 담요와 귤과 유자가 없어지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좁은 집에서나마 거친 겨와 술지게미마저 없을까봐 걱정하는 것입니다.


(환관 지음, 임덕화 편역, 9쪽)

 

신진세력이 보기에 이익은 억지로 고르게 한다고 고르게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나서서 특정 개인의 부를 억제하고 부족한 곳에 부를 배분한다고 빈부격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해에 오얏이나 매실의 열매가 많으면 다음 해에는 반드시 수확이 적어지고, 햇곡식이 익으면 지난해에 비축한 곡식을 먼저 줄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무엇으로도 가득차게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겠습니까?”(환관 지음, 임덕화 편역, 60쪽) 넘칠 때도 있고 모자랄 때도 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강제로 모두에게 이익을 배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 이익을 강조하는 건 욕망만을 부추겨 존재를 이롭게 하기는커녕 종국에는 생명을 해친다.

 

“이로운 것을 쌓아도 원망이 쌓이게 되고, 땅이 서하까지 넓어도 재앙에 얽히게 된다면 땅이 넓은 것이 백성들을 고통스럽지 않게 하는 데 어떤 상관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환관 지음, 임덕화 편역, 61쪽)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옛날에 벼슬하는 자는 농사를 짓지 않았고, 밤에 야간경비를 하는 자들조차 모두가 떳떳한 녹봉이 있어서 이익을 위해 두 가지 일을 겸해 사사로이 재물을 증가시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환관 지음, 임덕화 편역, 42쪽) 이러면 어리석은 자나 지혜 있는 자나 공로가 동일하게 되고 형편이 서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혈기방장하고 의협심 넘치는 신진관리들은 균등한 분배의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이득의 배분이 똑같다는 건, 환상이거나 기만이다. 누구는 좀 더 많이 누구는 좀 더 적게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혼자 재물을 다 가져서는 안 되는 법, ‘저 버려진 볏단. 저 버려진 이삭. 저 불쌍한 과부의 몫이로다’라는 『시경』 소아 대전편의 뜻을 새기고 실천할 뿐이다. 개인도 재물을 독점할 수 없는데, 국가가 나서서 부를 독점하며 이익을 챙겨서야 되겠는가? 이렇게 신진세력은 수구세력의 맹렬한 이익추구의 욕망을 문제 삼았다. 국가도 개인도 이익의 독점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이익이 눈앞에 보인다고 싹쓸이하지만 않는다면, 너도 살고 나도 산다. 똑같이 배분해서 다 같이 풍요와 사치를 똑같이 누리는 게 잘사는 건, 결코 아니다.

“자신들이 노력하여 만들면 저들에게 빼앗기니 그들의 사치스러운 것만 부러워하고 서로 본받으며 위로 올라 그들처럼 살려는 노력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환관 지음, 임덕화 편역, 77쪽)

 

서로 경쟁하고 다투며, 갑질과 을질을 번갈아 하고, 금수저는 안 내려가려고 안간힘 쓰고 흙수저는 어떻게든 금수저가 되려고 발버둥 친다. 수구세력이 지향하는 이득추구와 강성불패의 신화는 시기와 증오를 키울 뿐이다. 신진세력들이 의견을 개진하면 할수록 수구세력들의 얼굴은 붉어지고 말문은 막힌다. 수구세력들이 신진세력에게 말만 앞서고 실행력은 떨어진다고 발끈했지만, 수구세력에겐 경제 논리밖에 없었다.

 


재화가 부족해도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펼치는 사회, 소박하게 살아도 박탈감에 시달리지 않는 사회, 신진세력이 바란 것은 이뿐이었다. 아니 이렇게 심오했다. 그리고 시국대토론회의 승리는 신진세력에게 돌아갔다. 소제는 소금과 철과 술의 전매를 폐지하자는 신진세력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술의 전매는 폐지되었다. 아쉽지만 소금과 철의 전매는 폐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제 때, 환관이라는 관리가 이 ‘시국대토론회’를 기록함으로써 수구파와 개혁파의 한판 설전을 통해 또 다른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염철론』! 정치담론이 생성, 전파되는 현장에 관한 기록. 이 책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정치 양식을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글_길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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