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만병통치약, 진통제
첫 직장인 종합병원에 다닐 때 동기 중 한 명이 웬만하면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해서 속으로 비난한 적이 있다. ‘아니 약학을 공부한 사람이 자신이 공부한 학문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왜 아픈데 참지?’ 난 이해할 수 없었고 되려 그녀가 무식? 해 보였다. 생리통이나 두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그녀는 진통제를 먹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봤다. 그녀의 대답은 “약은 독이다”라는 원론적인 얘기였다. ‘참내! 그렇지 원래 약은 독이 될 수 있으니 잘 쓰여야 하는 거고 그래서 약학이 있는 거야!!!’ 속으로 외쳤다.
그러던 내가 최근 1~2년 동안 소염진통제를 한 알도 삼키지 않았다. 소염진통제는 감기 초기, 인후염, 염좌나 근육염 등 각종 염증과 두통, 치통, 생리통 등 각종 통증에 효과가 있고 활용도가 높아 약국에서 많이 팔리는 약이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쉽게 또 자주 먹었던 약인데도 이런 결정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약 2년 전 독감 후 기관지염이 심하게 와서 병원들을 전전하다 너무 약을 많이 복용하게 되었다. 그 해 여름부터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더니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고 그 양상도 대단했다. 엄청나게 가려웠고 긁으면 어마어마한 크기로 합해졌다.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두드러기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한방과 양방을 함께 공부한 나로서는 간에 무리가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양의 약을 먹어서 몸에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단식을 했고 혈을 보충해주는 사물탕과 간에 영양을 주는 실리마린 제제를 복용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약들은 간에서 대사를 받기 때문에 다른 약들은 모두 끊었다.
더 들여다 보니 내가 간과한 게 또 있었다. 바로 소염진통제의 부작용이다. 늘 인지하고 있던 부작용 이외에 문제시되는 부작용이 더 있었다. 다른 약들에 비해 소염진통제에 관대했던 나의 태도엔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일상을 양보하기 싫어서 작은 ‘아픔’도 수용하지 못하고, 사소한 부작용을 무시하며 약을 먹었던 내가 보였다.
통증과 진통의 메커니즘
통증은 왜 생길까? 가령 칼에 손이 베이면 피가 난다. 지혈도 해야 하고 또 상처를 통해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몸에 일어난 위험한 사태를 뇌에 전달하기 위해 우리 몸이 사용하는 방식은 통증이라는 확실하고 강한 감각이다. 상처 부위에서 프로스타글란딘, 브래디키닌, 히스타민, 세로토닌 등의 화학 물질 들이 나와서 통각 섬유를 활성화시키고 신경 말단에서 뇌까지 통증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이 물질들은 통증뿐만 아니라 발열이나 가려움 또는 염증을 일으킨다.
우리가 흔히 복용하고 있는 진통제는 통증, 염증 그리고 발열에 주로 관여하고 있는 프로스타글란딘의 합성을 억제하여 진통, 소염, 해열 작용을 나타낸다. 타이레놀로 대표되는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약은 소염작용은 미미해서 해열진통제라고 부른다. 부루펜이나 아스피린으로 대표되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엔세이즈, NSAIDs)1는 진통, 소염, 해열 작용이 모두 있어서 일반적으로 소염진통제로 부른다.
해열진통제나 소염진통제로 듣지 않는 통증, 특히 암에 의한 통증엔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한다. 마약성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의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작용하여 통증을 줄인다. 그래서 마약성 진통제를 오피오이드계 진통제라고도 한다. 대표적인 약물은 아편이고, 아편 추출물로는 모르핀이 유명하다. 추출물 이외에도 반합성 오피오이드 약물과 합성 오피오이드 약물이 개발되어 있다. 이러한 마약성 진통제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기 때문에 비마약성 진통제보다 효과가 크다. 모르핀의 진통 효과가 아스피린의 300배 이상이다. 이 외에도 여러 신경전달물질과 관계된 약들이 통증에 다양하게 쓰인다.
늘 작용 중인 부작용
마약성 진통제는 중독, 변비, 호흡곤란, 구토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의사 처방 없이 사용할 수 없기도 하고 정부에서도 관리하고 있어서 주의만 기울인다면 큰 걱정은 없다. 문제는 해열진통제와 소염진통제이다. 이 약들은 사람들이 언제든 손쉽게 복용할 수 있고, 의사와 약사가 많이 처방하고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작용이 간과되기 쉽고 사람에 따라서는 일반적인 치료 용량에서도 몸에 주는 악영향이 클 수 있다.
타이레놀의 가장 큰 부작용은 간독성이다. 타이레놀은 두 번에 거쳐 간에서 대사가 되어야 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 과량 복용시 1차 대사산물2을 처리할 항산화물질(글루타치온)이 부족하게 되어 간세포를 파괴한다. 타이레놀 이알(ER)은 8시간 동안 일정한 양의 약물이 방출되어 흡수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따라서 8시간이 지나기 전에 복용하면 약 용량이 중복되어서, 또 약을 쪼개서 복용하면 일시에 고용량이 흡수되어서 간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얼마 전 유럽에서는 이 제제를 판매중지했다.
한 번은 근처 이비인후과 의사가 이 약을 2알씩 하루 3번으로 처방을 했고 나는 꼭 8시간마다 먹어야 한다고 복약지도를 했다. 그런데 그 의사에게서 전화가 와서 환자 편의를 위해 복용법을 매 식후 30분으로 지도해달라는 것이었다. 어이상실의 상황. 편의를 봐줄 게 따로 있지. 내가 그 전화를 받았다면 아마도 큰 소리로 싸웠을지도 모른다. 일정한 효능을 위한 제형의 개선이지만 전체 판매량을 늘리려는 목적도 다분한 제약회사의 제제 설계도 문제고,3 약의 메커니즘이나 체내 동태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의사도 문제다. 과량 복용의 위험과 함께 부작용의 위험도 크지만 타이레놀 이알은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판매 중이다.
한편 소염진통제는 내장 점막을 형성하는 프로스타글란딘의 합성까지 억제하기 때문에 위장 장애나 장누수 증후군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이 약들을 장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만성통증 환자나 관절염 환자의 경우는 거의 이 부작용을 막을 수 없어서 장점막을 재생하는 위장약이 함께 처방되는 경우가 많다. 이 부작용이 없는 소염진통제가 개발되었지만 심혈관계 부작용으로 처음 개발되었던 약은 리콜이 되었다. 한 가지 부작용은 줄였지만 다른 심각한 부작용을 얻은 이 계열의 약은 상업적으로 가치가 있을까? 가치는 만들면 된다. 위장 장애가 없다는 선전과 함께 좀 더 개선된 같은 계열의 약은 높은 빈도로 처방되고 있다.
해열진통제 및 소염진통제의 공통적인 부작용이 있는데 바로 혈소판 감소, 용혈성 빈혈 등 혈액에 대한 것이다. 적혈구가 파괴되면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고 세포의 생성이나 세포의 대사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는 지혈이 안 될 수 있어서 수술 전에는 약을 일정기간 끊어야 한다. 한방의 원리로 보면, 이러한 부작용은 혈을 묽게 만들어 열을 만들고 혈을 저장하는 간의 열을 올린다. 게다가 이 약들을 대사 하느라 간에 안 좋은 영향이 추가된다. 서두에 말한 내 몸에 나타난 부작용이 바로 간열로 인한 두드러기였다. 이러한 혈에 대한 부작용이 가장 나쁘게 나타나는 경우가 혈구에 문제가 생기는 백혈병이다.
만병통치약이 되어가는 진통제
이런 부작용들에도 불구하고 진통제의 개발과 사용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성분의 신약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의 자구책은 기존 약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흡수율이 개선된 제품에서부터 다른 약물과 혼합한 제품에 이르기까지 신제품 출시에 열을 올린다.
특히 ‘트라마돌’이라는 진통제는 마치 오래된 노래의 차트 역주행처럼 최근 사용량이 급격히 늘었다. 트라마돌은 합성 오피오이드 약물로 마약성 진통제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비마약성 진통제로 분류되고 있다. 아주 심한 통증에 사용하게 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손목이 아프다며 병원에 간 친구가 받아온 처방전에는 트라마돌 제제와 소염진통제가 버젓이 함께 적혀 있었다. 친구의 증상은 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처방 일수는 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약성 진통제가 처방된 것이다. 내가 약사 면허를 받은 1995년만 해도 이 성분의 제품은 내 기억으로 한두 개였다. 2020년 현재 허가가 된 제품의 수가 단일 성분으로 62개, 복합제제로는 297개에 달한다.
트라마돌과 다른 진통제를 병용하면 그 효과는 그야말로 신통방통한 수준일 것이다. 게다가 트라마돌은 항우울 효과까지 있으니 환자들의 기분마저 좋게 만든다. 그럼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이 약이 가져온 중독은 어쩔 것인가? 이 약을 끊게 되었을 때 금단증상은? 오히려 기분이 전보다 훨씬 다운되고 통증은 더해질 것이다. 트라마돌 성분의 특정 상품의 약만 듣는다는 환자가 그 약 이름을 의사에게 가져가서 약통째로 처방받는 경우를 봤다. 이 환자는 이미 이 약에 중독되었다. 이 약 없이 살기 힘들 것이다.
<2014-2019 부작용 보고: 단일제제로 총 4만4140건, 복합제제로 총 3만573건>
진통제는 의사나 약사를 만능으로 만들어 주는 약일지도 모르겠다. 이 약들의 효과에서 그들의 권위가 나온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어딘가에 통증이 있으면 우리는 병원이나 약국에 간다. 하지만 통증은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한 여러 작용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추운 곳에 있을 땐 체온 유지를 위해 교감신경이 흥분되어 혈관이 수축하고 땀구멍이 조여진다. 다시 따뜻한 곳으로 오면 부교감신경이 흥분하여 혈관이 느슨해지고 땀구멍도 열린다. 이때 세포막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이 만들어져 열이 오르거나 통증이 유발될 수 있다. 대신 넓어진 혈관을 통해 혈류량이 증가하면서 몸 구석구석에 있는 세포들에게 산소와 영양 공급이 다시 되고 피부를 통한 열 배출도 원활해진다. 이때 해열진통제나 소염진통제를 복용하면 다시 혈관이 수축되고 자연스러운 열 배출이 안되면서 세포들이 손상될 수 있다.
어느 사이 우리는 열이 조금만 나도, 통증이 조금만 있어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몸이 항상성을 찾아갈 때 나타나는 반응일 때도 이를 몸의 이상으로 여기게 된 것은 현대 의학이 만들어낸 표상이기도 하다. 감기나 이비인후과 질환, 정형외과나 치과 질환 등의 처방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소염진통제나 해열진통제가 빠지지 않는다. 약사들도 통증이나 초기 감기에 소염진통제를 많이 사용한다.
‘통증’ 또는 ‘아픔’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참지 않는 것이다. 몸은 이 ‘통증’을 자연스러운 현상 가운데 하나로 포함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태도가 진통제를 만병통치약으로 만들었고, 처방권과 판매권을 가지고 있는 의사와 약사들을 능력자로 만들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 스스로는 무능력자가 되어 간다.
느리지만 덜어내는 치료
최근 코로나 사태 하에서 생활 방역의 첫 번째 지침이 ‘아프면 3~4일 집에서 쉰다’이다. 난 무엇보다 이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이 말은 우리가 아파도 출근하고 학교를 가는 등 일상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음을 역으로 알려준다. 빡빡하게 돌아가는 고용구조나 숨 쉴 틈 없는 학사 일정과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개인적인 일상이라고 뭐가 다르겠는가. 아플 틈이 없다. 틈 없는 삶에 통증은 생각할 여지없이 방해꾼이다. 사람들은 병원에서도 약국에서도 독한 약을 지어달라고 요청한다. 빨리 안 나으면 실력 없는 의사, 약사가 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나 약사는 부작용에 대한 고려보다는 효과가 빨리 날 수 있게 약을 주려고 한다. 세상과 삶과 의료의 속도는 함께 간다. 과속에는 사고의 위험도 커지기 마련이다.
내가 지난 2년간 진통제 한 알 먹지 않으면서 몸을 관찰한 결과, 느리지만 좀 쉬고 과식하지 않으면서 에너지를 보존해 주면 감기나 두통 등은 곧잘 나았다. 증상이 지속될 땐 한방 제제를 복용했다. 너무 피곤하면 쌍화탕을 먹어서 기와 혈을 보충해 주었고, 감기엔 갈근탕이나 패독산을 먹었다. 나의 경우 천식이라는 기저 질환 때문에 가벼운 감기에도 기관지염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아서 기침에 관련된 한방 제제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시간은 꼭 필요했다.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에 걸쳐 증상이 지속되었다. 증상이 지속될 때는 생활 속에서 조절할 건 조절했고 포기할 건 깨끗이 포기했다. 글 첫머리에서 언급한 동료처럼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다. 필요하다면 약은 먹어야겠지만, 무엇보다 생활과 몸을 두루 살피며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이런 말을 모두에게 똑같이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한 택배기사가 등 쪽 근육이 아프다고 약국에 왔다. 그는 진통제를 먹을 때만 괜찮고 약을 끊으면 통증이 또 생긴다고 했다. 계속 무리하게 근육을 쓰고 있는 상황의 개선 없이는 통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생업을 포기하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난 진통제 복용보다는 진통제가 함유된 파스 위주로 사용하라고 할 수밖엔 없었다.
약국에서는 늘 이런 딜레마가 따라다닌다. 내 몸에 대한 접근과 환자들의 몸에 대한 접근이 늘 똑같을 수만은 없는 이 이중생활에 괴로울 때가 많다. 이 약만 주면 기다리지 못하고 효과 없다는 볼멘소리가 날 것 같은데 어쩌지? 소염진통제를 같이 주면 드라마틱하게 효과가 날 텐데 같이 줄까? 몇 초 안 되는 순간에 내 손이 약 진열대 사이를 방황한다. 그렇다고 한쪽 눈을 마냥 감고 있을 수만도 없다. 최근에 난 작은 결심을 했다. “효과는 좀 더디더라도 이 약만 드셔 보실래요?” “너무 많이 아파하시니까 진통제를 같이 드리는 데, 좀 나아지면 진통제는 끊으세요.”라고 말해 보고 있다.
글_둥글레(문탁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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