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丁火: 증삼-불꽃, 나는 태운다!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學而 4)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나의 몸을 살피노니, 남을 위하여 일을 도모해 줌에 충성스럽지 않은가. 붕우와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지 않은가. 전수받은 것을 복습하지 않은가.”
공자 제자들 가운데 내면적 탐구에 열을 올렸던 인물은 단연 증삼이다. 증삼은 정치적인 문제나 세상 돌아가는 일보다 내면 수양에 집중한다. 관직에 나가거나 어딘가 앞장서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건 증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 그런 탓인지 몰라도 공자 사후에 증삼은 묵묵히 제자들을 기르는 일에 몰두한다. 공자의 뜻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와 맹자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증삼의 이런 힘 때문이다. 조용히 내면을 탐구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고 선생의 뜻을 받아서 후세를 환하게 밝히는 불씨 같은 역할을 자처했던 증삼.
증삼의 이 삶은 정화를 연상시킨다.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약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불같은 자존심과 집념으로 똘똘 뭉친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 자신의 몸을 태워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나 등대처럼 헌신적이고 봉사적인 태도. 따듯한 난로처럼 인정을 베풀고 대인관계에서 예의바르게 행동해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모습까지. 그러나 이런 성향이 짙어지면 염세적이 되고 종교나 철학 등 고차원적인 정신세계에 너무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는 게 정화다. 어떤 경우엔 남의 고민까지 사서 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다.
증삼은 병에 걸리자 제자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한다. “이불을 헤쳐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전전긍긍하고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야 나는 이 몸을 훼손할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노라. 애들아![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泰伯 3)] 부모가 주신 몸을 훼손하지 않고 가게 되어서 기쁘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아직 한참이나 살아야 하는 제자들이 전전긍긍할 것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누가 고민해달라고 했나^^ 이것만이 아니다. 정화는 상대가 불성실하게 느껴지고 부정해 보이면 자기와의 이해에 관계없이 상대를 혐오한다.『오자병법』의 저자인 오기가 증삼 밑에서 공부할 때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도 공부를 멈출 의사를 보이지 않자 곧바로 내쫓아 버린다. 공부하겠다는 놈을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孝를 행하지 않는다고 내쫓아 버린 것. 헉!
정화는 불이다. 병화처럼 화끈한 불은 아니지만 그 안에 병화만큼이나 강력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불이다. 그러나 정화는 늘 홀로 타는 촛불이나 등대처럼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고독감을 느낀다. 또 외부적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신경질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어둠을 밝히는 삶이지만 그 불 한 가운데는 공허하기 일쑤인 것. 흥미롭게도 이런 정화의 삶을 살아간 증삼은 그 돌파구 같은 말을 남긴다. “군자는 학문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仁을 돕는다.[曾子曰, “君子以文會友, 以友輔仁.”(顔淵 24)]” 병화에 비해 작은 불이지만 그 불들과 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 정화는 이렇게 할 때 병화만큼이나 강력하고 만물을 길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증삼처럼 조용하고 묵묵히 자신을 태워가며 주변에 그 온기와 빛을 전하는!
_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죽고 되살아났던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어쩐지 정화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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