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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리포트

[쿠바이야기] (신경 이야기 2탄이 아닌) 바라데로 이야기

by 북드라망 2020. 7. 7.

(신경 이야기 2탄이 아닌)

 바라데로 이야기




‘신경 이야기 2탄’(1탄 보러가기)을 쓸까 잠시 망설이다가, 이야기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지금은 대망의 기말고사 기간이다. D-2다. 내 머릿속은 현재 별별 잡다한 지식들이 뒤죽박죽 섞인 채 불안하게 진동하고 있다. 외워도 외워도 끝이 없고, 봐도 봐도 모르겠다. 태아 시절에 뇌하수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내가 알게 뭐냐. (과연 의사들은 학생 시절에 시험 보았던 내용을 아직도 계속 기억하고 있을까?) 하지만 재시험을 보는 짓만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기에, 나는 다시 초점 잃은 눈으로 책을 편다. 시험을 본 후 화장실에서 변기 물 내리는 것과 동시에 이 모든 지식들을 내 머릿속에서 방류할 예정이다.


여하튼 이런 상태에서는 ‘신경’에 대한 사랑이 1도 생겨나지 않는다. 사랑 없이 글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억지로 밀어붙였다가는 내 신경만 더 날카로워지고, 독자분들의 신경을 긁을 게 뻔하다. (신경, 신경, 신경~) 그래서 오늘은 과부화된 내 머리도 식힐 겸 그 사이에 벌어진 작은 사건에 대해서 기록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바라데로 이야기다.



바라데로에 가게 된 이유

   

바라데로는 아바나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바닷가이다. 아바나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마딴사(Matanza) 지방에서 관광객 유치로 가장 유명한 해변이다. 사실 나는 바라데로를 두 번이나 가봤다. 갈 때마다 운이 좋지 않아서 그토록 아름답다는 해변에 비가 오는 모습만 봐야 했지만, 그래도 이곳에 반드시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관광객이 워낙 많은 데다가, 동네 전체가 상업화된 분위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쿠바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바라데로보다는 다른 곳을 가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랬던 내가, 이 주 전에 바라데로를 당일치기로 갔다왔다. 다른 게 아니라 친구들 때문이었다. 학교에서 알게 된 쿠바 친구 한 명이, 어머니를 모시고 바라데로를 갔다올 예정인데 같이들 가지 않겠느냐고 우리를 꼬셨던 것이다. 당일치기라는 말을 듣자 나는 이 여행이 절대 순탄치 않으리라는 불안한 예감이 확 들었다. 쿠바는 다른 나라들처럼 교통 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150km 라는 여행 거리는 그 사이에 정말, 정말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만약 문제 없이 여행하려면 2주 전에 2시간 씩 줄을 서서 사람들과 싸우며 버스 표를 ‘쟁취하거나’, 눈 질끈 감고 ‘나는 순진한 관광객’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시세의 5배나 되는 미친 가격을 주고 사설 택시를 찾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쿠바 친구들에게는 두 방법 다 불가능하다. 후자는 돈이 없어서 그렇고, 전자는 준비성이 부족해서 그렇다.


즉흥성 빼면 시체인 쿠바인들이 여행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도시의 끝자락까지 이동한다. 그리고 고속도로 진입로에 서서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나 택시가 나타날 때까지 손을 흔들며 기다린다. 만약 그런 교통편이 끝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목적지 근처까지만이라도 가는 교통편을 아쉬운 대로 잡아탄 후, 중간에 내려서 다시 손을 흔들며 다음 교통편을 기다린다. 그렇게 갈아타고, 갈아타고, 또 갈아타는 거다. 언제까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믿기 힘들겠지만, 이것이 쿠바의 여행 스타일이다. 쿠바에서 ‘쿠바인들처럼’ 여행한다는 것은 고생을 사서 한다는 뜻이다.


쿠바에 발 붙인 지 거진 2년 째인 나는 이 모든 디테일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소식에 귀가 솔깃해졌다. 학급 친구들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매일 공부만 하느라 쿠바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어울리려고 해도 코드가 맞지 않았다. 만으로 19살에 막 진입한 이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놀고 싶다’는 마음만 들면 생각의 방향이 술과 클럽으로 향했던 것이다. 20대 후반이 되어서 일부러 체력을 고갈시키는 짓은 사양하고 싶었기에, 나는 공부와 일을 핑계로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그런데 바닷가라니, 이 얼마나 건전한가? 이렇게 학교 밖에서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기말 고사 전에 긴장도 풀 겸, 한 번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멤버가 정해졌다. 총 7명이었다. 바라데로 여행을 주도한 친구인 아드리안, 아드리안의 어머니, 아드리안의 성당 친구 두 명, 학교 친구 란플리, 나, 그리고 내가 같이 가자고 꼬신 또 다른 외국인 친구 제프리였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이 하루 만에 정해진 일정이었다. 과연 이 짧은 여행은 어떻게 펼쳐지게 될까? 고작 당일치기인데 무슨 일이 있겠느냐고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러나 은근슬쩍 고개를 드는 불안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쿠바인들에게 ‘바라데로’란

   

여행 당일, 나와 제프리는 따로 출발해서 바라데로에 쿠바 친구들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도착했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일단 우리 집 근처에서 아바나 서쪽 끝까지 한 번에 가는 메트로택시를 잡아 탔다. 그곳 아바나 끝자락에서는 마탄사 행  버스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텅 빈 버스가 이미 대기 중이었다. 심지어 그 버스는 마탄사를 거쳐서 바라데로까지 가는 직행 버스였다! 나와 제프리는 이 놀라운 행운에 어안이 벙벙했다. 역시 쿠바에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여행 시간은 총 4시간이었지만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는 내내 편안한 좌석 버스와 시원한 에어컨을 즐길 수 있었으므로.


마침내 도착한 바라데로는 정말, 정말 아름다웠다. 작년 12월과 4월에 방문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쿠바의 해변은 햇살이 가장 뜨거운 시기에 가장 빛난다더니, 맞는 말이었다. 모래는 고왔고 물살은 잔잔했으며 수심은 얕았다. 해변을 벗어나 바닷속으로 한참을 걸어가도 물의 깊이는 내 허벅지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덕분에 수영을 못하는 나도 간만에 물 속에서 신나게 놀았다. 이 모든 풍경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앞으로 여름마다 바라데로에 며칠 씩 휴가를 와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한 40분을 놀았을까. 친구들은 이제 그만 가자고 나와 제프리를 재촉했다. 아니, 어딜 간단 말인가? 우리가 한 시간 늦게 온 건 사실이지만, 이들도 해변에 온 지 1시간 반 밖에 되지 않았다. 늦은 오후까지 해변에서 놀 예정이 아니었나? 우리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이들을 따라나섰다. 친구들이 향한 곳은 어디었을까? 다름 아닌, 볼링장이었다. 세상에… 4시간 차를 타고 겨우 도착한 바닷가에서 지금 볼링을 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러나 볼링장에 도착한 후에야, 나는 왜 친구들이 굳이 볼링을 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볼링장은 바라데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쇼핑몰에 있었다. 말이 ‘쇼핑몰’이지, 사실은 다섯 종류의 가게(옷, 장난감, 가전제품, 부엌 용품, 식료품)가 디귿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는 작은 상가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락 시설로서 볼링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친구들은 두리번거리며 가방을 체크인하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볼링장에 들어섰다. 아하. 그제야 감이 왔다. 대단한 쇼핑몰은 아니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확실히 쿠바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그러니까 이런 곳에 오는 것 자체가 쿠바 친구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인 것이다.


 



그래, 어차피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떠난 여행이었다. 호불호를 따질 게 뭐가 있나? 이왕 온 거 신나게 볼을 굴려주리라. 우리는 맥주를 시키고 팀을 나눠서 볼링을 쳤다. 속도에 집착하는 남자 팀의 볼은 이리저리 튀어다녔고, 여자 팀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점수를 내었다. 운동부족인 나는 속도보다는 방향성에 집중하며 점수를 내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 남녀 혼합 팀은 제프리가 너무 못 쳐서 결과적으로는 꽝이었다.) 청년들이 부산스럽게 볼링을 치는 동안, 아드리안의 어머니는 뒤에서 우아하게 맥주를 마시며 추임새를 넣어주셨다.


그렇게 볼링 타임이 끝나고, 친구들은 만족스럽게 ‘쇼핑몰’을 떠났다. 귀가길에 오르기까지 한 3시간 정도가 남았다. 나는 은근슬쩍 다시 해변으로 가는 길을 기대했다. 아직 햇살은 쨍쨍했고, 저 멀리 보이는 바다는 푸르렀다! 그런데 친구들의 발걸음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향했다. 바다는 점점 멀어졌고, 눈 앞에는 마을이 나타났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또 무슨 예상치 못한 계획을 세운 걸까, 속으로만 궁금해 하며 이들을 따라갔다. 그러나 정말로 다음 장소에 도착하자 입이 떡 벌어졌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오락실’이었다. 500원 짜리 동전을 넣고 인형뽑기를 하거나 모조 카 레이싱을 벌이는, 나 어린 시절 학교 앞에 있었던 그 오락실 말이다.


허, 세상에. 내 입에서는 아까와 똑같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카 레이싱’을 하려고 우리는 4시간 씩이나 차를 타고 쿠바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해변가에 왔단 말인가? 그렇지만 이번에도 나는 나의 솔직한 반응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없었다. 친구들이 너무 신나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3D 영상 체험실을 격하게 반겼다. 그리고 나에게는 카메라맨 역할을 시켰다. 체험실 바깥에는 스크린 티비가 있었는데, 3D 영상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었다. 덕분에 나는 이들이 3D 안경을 쓰고 의자에 앉아서 가상의 ‘용가리’를 피해 날아다니는 모습을 5분 동안이나 찍고 있어야 했다. 그 후에도 이들은 여러 게임기를 구경하러 돌아다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버스 시간이 가까워졌다. 결국 바다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나는 아쉬운 마음을 카 레이싱 게임으로 달랬다. 벚꽃이 흩날리는 ‘교토’의 길거리를 ‘토요타’ 자동차를 타고 미친듯이 질주했다. (벚꽃을 못 보고 산 지 벌써 몇 년 째더라?) 나의 자동차는 길 가장자리에 끊임없이 부딪혔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목숨이 여러 개 인지라 죽지는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프리가 왜 이렇게 불안하게 주행하느냐고 묻자, 나는 브레이크를 한 번도 안 밟고 게임을 하는 중이라서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내가 운전면허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하며 목숨이 아까우니 앞으로 운전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친구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번의 바라데로 일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바닷가는 아바나에서도 갈 수 있지만, ‘쇼핑몰’이나 ‘오락실’은 바라데로까지 와야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바라데로는 쿠바에서도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그리고 현재 쿠바의 수입 1위는 관광업이다.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 돈이 몰리니, 쿠바 정부 역시 관광지 중심으로 투자를 하고 물자를 푼다. 그 증거로 바라데로의 가게들은 가판대마다 물건이 꽉꽉 차 있다. 가게, 쇼핑몰, 공중화장실 모두 깨끗하다. 이 모든 것들이 아바나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풍경이다. 친구들이 바라데로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해변가가 아니라 바로 이런 생활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오락실에서 나오면서 한 친구는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바라데로는 정말 쿠바가 아니네.”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해변에 대한 나의 집착이 전혀 쿠바스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이국적인 풍경을 탐하는 이방인의 욕망에 더 가까웠다. 나로서는 어설퍼 보이는 바라데로의 쇼핑몰과 오락실이, 쿠바 친구들에게는 오히려 해변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쿠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서비스, 여름 휴가의 진정한 의미, 더 많은 가족들을 데려올 수 없는 아쉬움, 기타 등등. 여행의 끝자락에야 나는 겨우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데로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 나는 쿠바에 살면서도 여전히 쿠바인들의 삶의 주변부를 맴돌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한 발씩 느리게 깨달아 간다는 게 더 중요한 거겠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이렇게 깨달을 기회조차 없을 게 뻔하다. 그렇게 여러 감정과 생각이 교차하는 와중에 짧았던 바라데로 여행이 끝나가는 듯했다.

 


하이라이트, 귀가길


집에는 조용히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쿠바에서 쿠바인들과 여행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들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간과했던 사실은 쿠바인들이 ‘외국인’과 관련된 것에는 외국인 당사자보다도 더 무지하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쿠바 정부가 곧잘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다른 시스템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시스템이 우리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친구들 때문에 여행을 떠났다가, 친구들과 똑 떨어져서 돌아왔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오후 5시, 우리는 버스 터미널에 가서 대기자 명단표에 이름을 올리고 버스를 무작정 기다렸다. 예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6시에 텅 빈 버스가 도착할 텐데, 15번째로 이름을 올린 우리들까지 태우고 갈 수 있을 거라고 터미널 직원은 말해주었다. 이 말에 우리는 모두 안심하고 터미널 의자에 늘어졌다. 나의 유일한 불안은 제프리였다. 이 버스 터미널은 쿠바인 전용이다. 원칙적으로 외국인은 사용할 수 없다. 나는 학생증이 있기 때문에 현지 쿠바인들과 동일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제프리는 현재 관광객인 상태였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날 안심시켰다. 아직 학생증이 나오지 않은 의대생이라고 거짓말을 하면 괜찮을 거라고. 우리 모두 의대생이니, 터미널 직원도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데 사건은 엉뚱하게 터졌다. 6시 정각, 탑승객의 신분증을 하나씩 검사하던 터미널 직원은 나와 제프리의 얼굴을 보자마자 ‘노’를 외쳤다. 이유인즉, 외국인은 절대로 이 버스를 못 탄다는 것이다. 그 외국인이 관광객이든 학생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제프리는 물론이고 내 학생증마저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쿠바 친구들은 거세게 항의를 하고, 종국에는 5달러 지폐를 은밀히 건네며 ‘딜’을 시도했지만, 직원은 고집불통이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서 어린 아들을 데리고 서 있었던 쿠바 아주머니 한 분도 거절당했다. 남편이 미국인인 탓에 아들에게는 쿠바 시민권이 없었던 것이다. 아들을 안고 타겠다고 사정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래도 외국인에게 자격지심이 있는 쿠바인인 듯했다.


화가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쿠바 같은 관료주의 사회에서 윗선에 항의한다고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겠는가? 나와 제프리만 따로 돌아가는 수밖에. 가뜩이나 교통편이 부족한 판국에, 우리 때문에 쿠바 친구들까지 버스를 안 타는 것도 못할 짓이다. 우리는 외국인 전용 버스를 타고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이들을 배웅했다. 이들은 미안한 얼굴을 하고 터미널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 후, 우리는 옴니부스 (쿠바인용) 터미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비아술 (외국인용) 터미널에 가서 표를 문의했다. 그러자 직원은 막차가 30분 전에 떠났다고 대답했다. 오…. 디오스 미오(Díos mio)…… 우리는 씁쓸한 마음을 안고 터미널을 나섰다. 이제 아바나에 돌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마딴사로 가는 까미온(Camión : 트럭)을 잡아탄 후, 마딴사에서 아바나로 가는 버스로 (그런 버스가 있다면 말이다) 갈아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은 없었다. 세상은 정말 요지경, 한 치 앞도 예측이 안 된다. 바라데로의 편의시설을 일상적으로 즐기지 못하는 쿠바인들의 사정을 동정한 지 채 1시간도 안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동정받아 마땅한 자들이 되고 말았다!


까미온 터미널은 우리에게 더 슬픈 소식을 들려주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이제는 까미온조차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처량하게 비를 맞으며 길가에서 택시를 불렀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한 봉고차 택시 기사가 여러 사람들이 빗속에서 ‘마딴사’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우리들을 모두 태워주었다. 지면을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택시를 타자마자 비가 정말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마딴사의 야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꼼짝없이 비를 맞으며 시간표도 없는 버스를 기다려야 헀다. 버스 정류장에 지붕은 없었다. 나무 한 그루만 있었을 뿐이었다. 감기 걸리겠다 싶어서 결국 우리는 길 건너에 있는 간이 가판대에서 사람들과 함께 비를 피했다. 그러다가 버스라도 한 대 지나가면 비를 뚫고 다시 길을 건너서 미친듯이 팔을 휘저었다. 야박한 버스들은 서는 법을 몰랐다. 얄궂은 비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고, 해는 지고,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서는 천둥 번개보다 더 거센 절망의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간이 가판대에서 몸을 숨기기를 포기했다. 거센 빗줄기도 개의치 않고 쫄딱 젖어가며, 다시 길을 건너 버스 정류장에 섰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오지 않는 버스를 노려보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법처럼 텅 빈 버스가 도착했다. 무섭게 달려오는 것을 보고 이번에도 그냥 우리를 지나치겠거니, 했는데 내 코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섰다. 그 순간 어디서 다 튀어나왔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내 몸을 밀치고 우악스럽게 버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개구리처럼 버스 문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 역시 몸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용을 썼다. (제프리는 나보다 훨씬 뒤로 밀렸다. 나중에 그가 말하길, 앞으로 이렇게 5년만 더 살면 나도 완벽한 ‘쿠바나’가 될 것 같다고 한다.) 다행히 나와 제프리는 좌석을 차지할 수 있었다. 푹 젖은 몸으로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맞아가며, 어둠 속에서 들판에 꽂히는 번개의 자태를 감상하며, 그렇게 우리는 살아서 아바나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시계는 벌써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쿠바. 이곳은 매번 ‘길을 떠난다’는 말의 참 의미를 일깨워주는 소중한 곳이다. 길을 떠날 때마다 고생은 직싸게 하되, 늘 뭔가를 배우지 않는가.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가슴 깊숙이 교훈을 새기고 왔다. 내가 다시는 바라데로를 가나 봐라!


글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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