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귀환 24시간
귀환
8월 29일 새벽. 비행기에서 내려서 숨을 들이쉬니, 내가 쿠바에 정말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내 몸이 기억하는 쿠바의 첫 번째 흔적은 공기의 냄새다. 쿠바를 떠나면 잊어버리고 쿠바에 살면 익숙해지고 마는 이 섬나라의 짙은 체취는, ‘귀환자’가 되는 순간 콧속을 사방에서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온다. 덩달아 내가 얼마나 동떨어진 세상의 구석으로 되돌아왔는지도 실감난다. 끈적거리는 공기를 가르며 공항 택시를 타고 아바나 시가지를 달리는데, 작년 이 즈음에 했던 개고생이 영화의 장면처럼 머릿속을 휙휙 지나갔다. (작년 ‘아디오스, 엘람’ 편을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르다. 이제는 쿠바의 교육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았고, 어엿한 아바나 의과대학생 2학년이 되었고, 일 년 내내 세팅해놓은 생활공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나는 정말로 공부만 하면 된다.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뇌이면서 계속 택시를 탔다. 그리고 한 달 반 동안 비워두었던 플라야의 집에 도착했다. 1
그리고 내 예상은, 이 역시 예상했지만, 이번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쿠바살이가 원래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하하! 한 달이 지나는 사이, 불평을 늘어놓자면 끝도 없지만 뒤돌아서면 다 잊혀지고 말 사소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나를 찾아왔다. 이것이 쿠바가 우리 귀환자들을 반겨주는 방식인 걸까…. (Cuba is welcoming you!) 불행인지 다행인지, 쿠바식 환영은 내가 도착한 후 24시간 동안 집중되었다.
1시간
집에 도착했다. 택시기사에게 부탁해서 무거운 짐을 이층으로 다 올렸다. 도와달라는 말에 자기는 힘 센 남자라 문제없다고 실없는 농담을 하던 택시기사는, 캐리어를 딱 두 개 올려놓더니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웠다. 그리고 중국 여자가 뭘 그리 바리바리 싸들고 왔느냐고 투덜거리면서 사라졌다. 이 많은 짐들을 다 풀 생각을 하니 골머리가 아팠지만, 일단 오늘은 패스하기로 했다. 이미 새벽 두 시 반이었다.
집은 그간 사람이 없었던 티가 났다. 바닥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부엌에는 거미들이 정성껏 집을 짓고 있었다. 공기는 텁텁했다. 나는 환기를 위해서 창문부터 모두 열었다. 오늘 밤 모기에 뜯기면서 자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물티슈를 꺼내서 내가 잠잘 방바닥만 대충 닦았다. 시커멓게 묻어나오는 것이, 며칠 청소를 해야 할 판이었다. 화장실 바닥에서 눅눅하게 찌들어가고 있는 발수건은 테라스에 걸어놓고, 여권과 현금처럼 중요한 것들은 따로 챙겨놓고, 상할 위험이 있는 밑반찬을 꺼내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 후에는 심카드를 바꿔 끼고 데이터를 구매해서 가족들과 창희쌤께 생존신고를 마쳤다. ‘저 무사히 귀환했어요.’ 자, 세 시 반이다. 잘 시간이 훌쩍 넘었다.
이불을 깔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20시간의 여행 동안 더러워진 옷은 훌훌 벗어버렸다. 새 수건을 꺼내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수도꼭지를 열었다. 그런데 들려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수도꼭지를 잠궜다 다시 열어도 마찬가지였다. 번뜩, 깨달음이 왔다. 물이 없구나. 오호라, 그렇구나…! 쿠바를 떠나기 전에 분명 탱크를 채워놓고 갔는데, 물이 없다는 게 이상했다. 그렇지만 ‘물이 없다’는 상황이 쿠바에서는 딱히 이상할 게 아닌지라, 집주인이 나 없을 때 집을 들리면서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문제는 이 동네에 수돗물이 이틀에 한 번만 들어온다는 거다. 만약 운이 좋아서 오늘이 그 날이라면 날이 밝자마자 모터를 틀어서 물탱크를 채우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24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샤워를 미룬 채 말이다.
어쩌겠는가? 쿠바의 삶의 절반은 임기응변이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황에 스트레스 받기에는 너무 졸렸다.) 비행기에서 가져온 식수로 양치질을 했고, 물티슈 몇 장을 더 뽑아서 발바닥과 얼굴을 닦았다. 손세정제로 손을 소독했다. 떡 진 머리는 무시했다. 그리고 자리에 누웠다. 몸이 바닥으로 곧바로 푹 꺼지는 것이, 지구의 맨틀까지 가라앉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잠 드는 와중에도 나는 쿠바의 환영식이 여기서 그치기를 간절히 바랐다. 물 없음, 이것이 쿠바가 나를 반겨주는 첫 번째 방식이었다.
4시간
시차 때문에 눈이 일찍 떠졌다. 아침 7시가 아직 못 되었다. 눈곱을 대충 떼고 물티슈로 다시 얼굴을 닦았다. 테라스에 나가서 동네를 둘러보는데, 어느 집에서도 모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음, 운이 안 좋다. 오늘은 물 들어오는 날이 아니구나. 물을 기다리는 시간이 17시간 더 연장되었다. 밖에 나가면 우선 식수부터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브리타 정수기를 가져왔는데, 수돗물이 없으니 아예 정수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의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등록금을 납부하는 사무실인 SMC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사무실 업무는 8시 정각에 시작하지만, 학기 초에는 유학생들이 워낙 많이 몰리기 때문에 일찌감치 가 있는 게 좋았다. 등록금은 작년에 한 번 내봐서 절차가 어떤지 알고 있었다. 처음 방문할 때는 직원이 보는 앞에서 서류를 두 부 작성하고, 두 번째 방문할 때는 작성한 서류와 함께 현찰을 지불하면 된다. 오늘은 서류만 떼 갈 생각이었다.
7시 반에 도착한 SMC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역시, 예상한 바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아예 들여보내 주지도 않을 거라는 건 내 예상 밖이었다. 당황한 나는 마지막 사람 뒤에서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답해주었다. 절차가 바뀌어서 이제는 하루에 학생 40명만 받아준다는 것이다. 대신 서류 작성과 현금 지불을 당일 날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당연히 오늘 업무를 볼 40명의 리스트는 완성되었고, 업무를 화, 수, 목 일주일에 3일만 보기 때문에 내일도 올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다음 주 화요일에 올 40명 중 한 명으로 미리 예약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예약 제도는 없고 그냥 일찍 와서 이름을 적으란다. 7시 반은 너무 늦고 한 6시 쯤 오란다.
어이가 없었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등록금을 선착순으로 내는가? 학교에서는 등록금을 내라고 쪼아대고, 사무실에서는 하루에 40명 이상은 받아줄 수 없다고 깐깐하게 군다. 돈을 내는 건 우리 학생인데 왜 이렇게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납부 방식이라도 알아낸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우선은 후퇴했다. 그리고 한국 동생이랑 점심이나 먹을까 싶어서 전화를 했다. 이래저래 안부를 주고받다가, 지금 SMC에 와 있다는 이야기를 하자 동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도 이틀 전에 돈을 다 냈는데, 새벽 4시 반에 와서 이름을 적었으나 앞에서 열 번째 순서였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니, 아침 7시에 문을 열고 명단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을 한 후, 8시에 실제 업무를 시작했다. 열 번째였던 이 친구가 마침내 돈을 다 지불했을 때는 오전 11시 반이었다. (참고로 SMC는 낮 12시 이후로는 업무를 보지 않는다.) 나머지 30명의 학생들이 그날 어떻게 돈을 냈는지, 과연 낼 수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하여, 동생은 내게 반드시 새벽 4시 즈음에는 도착하라고 충고해주었다. 말이 40명이지, 실제로는 10명 안에 들어야 하는 고난이도 경쟁이었던 것이다.
하하, 웃음만 나왔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말을 이런 때 쓰는 것이라는 걸 이때야 알았다. 새벽 4시라는 기가 막힌 스케줄은 둘째 치고, 도대체 SMC까지 어떻게 도착할 수 있단 말인가? 택시도 버스도 없는 그 시간대에 말이다. 결국 나는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쿠바는 나를 이렇게 또 반겨주었다. 새벽 4시에 천 만 원의 등록금을 ‘자전거 배송’하는 기상천외한 납부 방식으로!
8시간
SMC를 나온 나는 우선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가장 큰 문제였던 등록금 납부는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는 건강 보험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모든 유학생들은 의무적으로 ASISTUR라는 국가 건강 보험을 들어야만 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비싸고, 나이가 많을수록 비싸진다. 만 25살인 나는 올해 $540을 지불해야 한다. 만 30살을 찍는 순간 금액은 $700로 치솟을 것이다.
ASISTUR 사무실은 관광지로 유명한 아바나 비에하에 있었다. 상당한 거리였지만, 일찍 일어난 탓에 시간은 여전히 9시밖에 되지 않았다. 일정을 소화하는 데 무리는 없을 듯싶었다. 마음을 먹자마자 나는 아바나 비에하에 향했다.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하고, 서류 처리에 필요한 우표를 구매하고, ASISTUR 사무실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반. 나쁘지 않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 시작이니까 십중팔구 그 전에 끝낼 수 있으리라. 서류에 사인하고 돈만 내면 끝 아닌가?
나의 예상은 다시 어긋났다. 사무실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쿠바인들의 느긋함 앞에서는 ‘사인+지불’이라는 간단한 행정도 네버엔딩 절차가 된다는 것이다. 선풍기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응접실에서 우리는 순서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목이 말랐던 나는 중간에 나가서 시세보다 세 배나 더 비싼 생수를 사왔다. (관광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 물을 다 마셔갈 때까지도 내 차례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시계는 12시 정각을 쳤다. 최악이다. 이제부터 점심시간이다. 직원들이 도시락통을 들고 꺄르르꺄르르 수다를 떨면서 저 멀리 떠나가는 게 보였다. 학생들 중 몇 명 또한 기다림에 지쳐 떠났지만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오기 때문이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보험 처리를 끝낼 생각이었다. 킨들을 꺼내 들어서 전자책을 읽기 시작했다.
올리버 색스의 신경 설명에 막 빠져 들어갈 무렵, 드디어 직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서류에 사인하고, 우표를 제출하고, 지폐를 확인하고, 끝이다. 직원은 나에게 영수증을 건냈다. 정말로 끝난 것이다. 건강 보험 구매하려다가 스트레스 때문에 내 건강을 해치게 생겼다. 이런 간단한 절차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인지 끝내 이해할 수 없었지만, 쿠바의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이 또한 이해할 수 없어도 수용하는 수밖에 없는 부류의 일이다.
사무실을 나오자, 아바나 비에하의 거리가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눈앞에 아름답게 펼쳐졌다. 손목시계를 봤다. 1시 반이다. 뜨겁게 달아오른 8월 말의 오후다. 모두들 한 번 쯤은 휴가를 즐기고 싶어 하는 세계적인 관광지 한복판에 있는데도, 나는 슬펐다. 그저 씻고 싶을 뿐이었다.
14시간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플라야의 집으로 돌아왔다. 태양이 작열하는 8월의 쿠바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온 몸이 땀이 절어 있었다. 목욕탕 온탕에 앉아 있지 않는데도 저절로 떼가 불어나는 기분이었다. 이 떼의 일부는 어제의 오랜 비행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온 세상을 참을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반드시 샤워를 해야만 했다. 반드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빨래를 맡기기로 하면서 안면을 트게 된 이웃집 문을 두드렸다. 사정을 설명하자, 아주머니는 안쓰러워하면서 5L 물통 두 개를 채워서 내게 건네주셨다. 10L라고 말하면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양동이 한 개 반 밖에 되지 않는 양이다. 평소 같았다면 샤워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감사해하며 받았다. 아주머니도 귀한 물을 나눠주신 것이다. 쿠바에서는 다들 웬만하면 물 문제를 겪지 않고 살기가 어렵다. 상수도가 상시적으로 가동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또 물을 저장할 물탱크의 크기가 다들 제각각이기 때문에, 모두들 물을 아껴 쓰는 게 몸에 습관으로 배어 있다. (작은 물탱크를 가지고 전전긍긍하며 사는 심정이 어떤지, 나는 이미 작년에 물난리를 겪었던 집에서 살면서 충분히 체험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물을 양동이에 부었다. 그리고 빨래할 때나 쓰는 넓적한 바가지 위에 쪼그려 앉아서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일부러 바가지 위에서 씻은 이유는 비눗물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비눗물로 몸을 다시 씻을 수는 없지만, 변기에 부으면 용변을 볼 수 있는 귀한 물이 된다. 이렇게 생존 스킬을 하나씩 터득해가는 거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다시 사람의 꼴을 할 수 있었다.
23시간
집에서 짐을 풀면서, 나는 자정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면 물이 들어온다. 모터를 틀고, 탱크 물을 채우고, 안심하고 자면 된다. 부엌을 치우면서도, 방을 치우면서도, 나는 계속 시계만 보았다. 사람처럼 살게 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시계가 자정을 가리켰을 때, 나는 마법이 풀린 신데렐라처럼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날쌔게 일층으로 달려가 모터를 틀었다. 우우웅~ 시끄러운 소리가 아름다운 화음처럼 들렸다. 파이프에 손을 살짝 대자 물 흐르는 진동이 느껴졌다. 심신까지 상쾌하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10분 후, 내 귀에 이상한 소리가 감지되었다. 비가 쏟아지는 소리였다. 너무 가까이서 들렸다. 테라스로 허둥지둥 나와 보니, 우리집 지붕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웃들 중 몇 명은 깜짝 놀라서 집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나는 서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물탱크에 연결된 파이프의 나사가 헐거워져서 그곳으로 물이 다 새고 있었다. 아……. 바로 이 때문에 물이 없었던 거였다. 내가 방학 전에 미리 채워놓고 간 물도, 헐거워진 이 틈새로 다 샜던 거였다. 나는 어떻게든 파이프를 다시 연결해보려고 이리저리 흔들어 봤지만,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내 마법의 개손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파이프는 헐거워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제 자리를 이탈해서 이웃집 마당 쪽으로 휘어져버렸다! 이제 물은 아무런 제약 없이 콸콸콸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는 폭포가 되고 말았다.
나는 기겁해서는 일층으로 후다닥 달려가 우선 모터를 껐다. 그리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와서, 탱크 쪽에 연결되어 있는 나머지 반쪽 파이프를 들고 쩔쩔맸다. 각도를 조절해서 이웃집 마당에 떨어지는 물의 속도를 낮춰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파이프는 T자 형태인지라, 안타깝게도 물은 양쪽으로 흘러나왔다. 오른쪽으로 기울이든 왼쪽으로 기울이든 매한가지였다. 그럼에도 내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정신줄을 붙잡기라도 하는 양 파이프를 꼭 붙들고 서 있었다. 탱크에서 물이 모두 흘러나올 때까지, 다시 탱크가 공허하게 텅 빌 때까지. 영원히 지날 것 같지 않던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는 여전히 물이 한 방울도 없고, 이웃들은 모두들 잠에서 깨어났고, 나의 집주인은 멕시코로 출타 중이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12시 반이다. 쿠바 땅을 밟은 지 아직 24시간이 되지 않았다. 단 24시간도…….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쿠바의 끈적거리는 공기가 양쪽 폐를 가득 채웠다. 6주 동안 쿠바 밖에 머물렀었던 시간이 하룻밤의 꿈처럼 느껴지고, 사실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구석진 이 섬나라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마침내 나의 멘탈은 가출을 선언했다. 이성의 스위치가 꺼졌다. 그리고 신체의 모든 세포가 동시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다음 날, 내 연락을 받은 집주인은 급하게 친구를 시켜 수리공을 보내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부서진 내 멘탈이 복구되는 건 아니었다. 이날 멘탈이 털린 경험은 결과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긴 했다. 2학년이 시작되자마자 (오리엔테이션 따위는 없다. 수업은 첫날부터 하는 거다.) 교수님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양의 진도를 빼면서 학생들의 멘탈을 꽝꽝 부수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 동맥 해부학을 삼 일만에 소화해야 했을 때는 의학 공부 시작하고서 가장 우울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물탱크 덕분에 한 번 박살난 나의 정신상태는 나름 유연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데굴데굴 굴려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물은 나오기 때문이다. 물탱크가 온전한 한 인간다운 삶은 보장된다.
글_김해완
- 2019년에 작성된 글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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