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본래가…… 진실 그 자체도 없다
'진실'은 허망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실'을 덮어두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건 처음부터 없다는 말이다. 아니면, 무수하게 많든 '진실들'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내 말이 진실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수사적인 의미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불편 중 대부분은 '집착' 때문에 생긴다. 거기에 '진실'이 관계되어 있다면, 패턴은 단 한가지밖에 없다. '내 말이 진실인데, 왜 그걸 알아주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내 말'은 '진실'의 옷을 입고 나타난 억견에 다름 아니다. 다만 나는 그걸 '진실'이라고 믿을 뿐이다. '내가 나를 속인다'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런 상태를 일컫는 말이리라.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것은 내가 나의 말로써 나를 칭칭이 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깨닫는 것과 아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은 깨달음이 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더 적게 아는 것이 더 많은 깨달음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내가 아는 것과 나의 진실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러니까 어떤 '능력'의 문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은 '번뇌 속에 있어도 그 마음이 오염되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그 구절에서 말하는 바가 바로 '능력'이 아닐까 싶다. 번뇌를 제거하고, 번뇌에 들지 않고 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하나의 조건으로 삼아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진실은 참으로 허망하다. 거짓과 마찬가지로. 허망하지 않은 것은 오직 내 몸으로 익혀가는 수행修行밖에 없다. 나중엔 그마저도 치워야 할 사다리가 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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