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아침놀』 - 혐오에는 근거가 없다
세상에 혐오와 증오가 넘쳐난다. 그 모든 '오'(惡)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가슴 구석이 갑갑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렇다. '세상'이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그 세상이 내 마음이다. 내가 나의 마음으로 경험하는 세상이 그렇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근거'들을 찾아 본다. 어째서 그렇게 싫고 미운 것이 넘쳐나는 것인지. 아무리 찾아도 '보편타당'과 '명석판명'한 이유들을 찾을 수가 없다. 혐오와 증오는 매번 옷을 바꿔입고 나타난다. 아니,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매번 다른 것(들)이 들어앉아 있다.
그러니까, 근거는 없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혐오에 딸린 '근거'들을 증거로 착각하며 살았다. 그러니까 증거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 혐오의 감정은 정당한 것이라 생각했다. '싫어하는 이유'들이 논리적 정합성에 비례해 더더욱 정당해지리라 믿은 셈이다. 논리적 정합성과 도덕적 완결성은 이런식으로 공모한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합리성과 도덕성이 결합된 '정의'는 그저 오래되어 낡은 어떤 사유의 부산물일 뿐이다. 이를테면 본능적인 나의 마음은 어떤 행동이 정의롭기 '때문에' 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짓을 하고 정의롭다고 해석할(믿을) 뿐이다. 합리성도, 도덕도 내버리고 나면 본능에 충실한 비非-인간이 남겠지. 기왕에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것이라면 '정의'보다는 이쪽에 걸어보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어쩌면 그 경지가 공空을 깨닫는 경지일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만 더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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