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는 건 좋은 것이다―돌발진 이야기
아, 원래 이번 주 ‘아기가 왔다’는 지난주 다이어트에 대해 쓴 아빠의 글을 이어 받아 출산 후 1년을 맞는 엄마의 몸 상태에 대해 쓰자, 고 마음먹었더랬다. 마침 아기 돌잔치를 할 무렵이 되면서부터 엄마의 몸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져서 마치 갓 출산한 후처럼 골반도 아프고, 머리카락이 엄청 빠지고,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리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출산할 때 이야기와 함께 요래조래 써볼까, 라고 머릿속으로 대략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사라고, 엄마의 몸 상태 따위는 전혀 느낄 새도 없는 (우리 집) 초유의 사태를, 지난 연휴를 앞둔 금요일에 맞이했다.
'효과가 없다고 하는' 해열패치를 붙이고 있는 딸
전조는 목요일 예방접종을 하러 갔을 때부터 있었다. 접종 전 체온 체크 때 미열이 나와서 결국 접종을 못한 것이다. 의사샘께서는 37.5℃부터는 접종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딸의 체온은 딱 37.5℃. 회사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가며 시간을 빼서 왔는데, 접종을 못한다니 약간 맥 빠졌다. 이때만 해도 미열이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아기들은 체온 조절이 원활하지 못해서 조금만 옷을 두껍게 입혀도 체온이 금방 오르고, 졸려도 오르고, 땡깡부려도 오르고 하기 때문이다. 마침 딸이 낮잠 잘 시간이랑 비슷해서 그 때문에 있는 미열일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기에게 나는 ‘열’은 늘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한편으로 신경이 안 쓰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별일없을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에 더 별일 아닌 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신경은 쓰여서 계속 체온을 체크했는데, 금요일 아침부터 딸의 체온이 높았다.
생후 1개월 때부터 본격 예방접종 스케줄이 시작되면서 접종 후 열이 나는지 알기 위해 평소 체온을 우리는 때때로 체크해 두었다. 아기들은 기초체온이 높아서 미열과 평상체온이 잘 구분이 가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딸의 경우 평상시 체온이 37℃에서 37.2℃ 사이에 있고, 잠을 잘 때는 보통 36.8℃로 떨어진다.
그런데 지난 금요일 아침 막 잠자리에서 일어난 딸의 체온이 37.5℃를 찍었고, 불안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결국 점심시간이 채 되지 않아 집에서 온 연락. “체온이 38℃를 넘었어.”(귀 체온으로 쟀을 때 보통 38℃ 미만이면 미열이라고 하고, 38℃ 이상이면 발열, 39℃ 이상이면 고열.) 순간 태연하려고 했지만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본격 열이 시작되었기 때문이고, 계속 오를 거라 예상되었기 때문이고, 딸 생애 첫 열이었기 때문이다(그간은 미열 정도만 있었다).
돌을 전후한 무렵에 나타난다는, 정확하게는 생후 6개월 이상 24개월 미만 아기들에게 흔히 나타난다는 ‘돌발진’(돌에 나타나는 발진이 아니라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발진이라는 뜻)이었다. 코감기에 한 번 걸린 것 빼고는 특별히 (피부를 제외하고는) 아픈 적이 없었던 아기라서 돌치레도 없이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삐뽀삐뽀 119 소아과'를 짚고 일어서리라!
금요일 오전부터 시작된 열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해열제를 먹이면 잠시 떨어졌지만, 약효가 끝날 무렵부터 또 열이 오르고, 오르고 했다. 아기가 처지지 않고 잘 먹고 잘 놀면 큰 문제없이 지나간다고 알고는 있었지만, 의사샘이 혹시 아기가 늘어지거나 열이 4일 이상 나면 큰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것도 있었고, 조카가 돌발진 때 열성경련을 한 얘기를 들은 게 있어서 겉으로야 평상시처럼 아기와 놀아주고 있었지만 애 아빠도 나도 마음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밤에 열이 더 오르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고 계속 체온을 체크하며 아기 상태를 살피고, 적절한 양의 해열제를 적절한 시간대에 먹이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시간이 가면 나아진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이럴 때는 왜 이렇게 일분 일초가 느리게 가는 것 같은지, 아기의 열이 영원히 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대략 언제 열이 그칠 거라는 건 알았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 그 시간대 이상으로 열이 나면 위급한 상황이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암담하게만 느껴졌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고 정말 교과서처럼 딱 만 3일이 지나면서 열이 떨어지는 것이 보이자 그때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도 풀어졌다. 희망이란 끝이 언제인지를 아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새삼 느꼈다.
곰샘께서 종종 말씀해 주셨던 <홍루몽> 속 경구가 생각났다. “좋은 것은 끝나기 마련이고 끝이 있어야 좋은 것이다.” 이번 일로 사무치게 와 닿은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본다. “나쁜 것도 끝나기 마련이고, 끝이 있는 건 다 좋은 것이다.” 비록 그 순간에는 그 ‘나쁜 것’이 영원할 것 같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끝이 없는 일은 없다. 일이나 사건만이 아니라 어떤 생명도, 어떤 사물도, 어떤 별도 ‘끝’이 있다. 다행이다. 끝이 있어서 ‘희망’이 보였고, 끝이 있어서 ‘기쁨’도 있었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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