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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문장보감 : 글쓰기의 진수!

가야 할 곳으로 가고 멈춰야 할 곳에 멈춘다

by 북드라망 2017. 4. 4.

가야 할 곳으로 가고 멈춰야 할 곳에 멈춘다



소동파는 누구인가? 그는 중국 최고의 천재문인이자 중국사상 최초 대유령을 넘어 땅 끝으로 유배된 관료였다. 그는 그 땅 끝에서의 거주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끝내 바다 건너 해남도로 쫓겨 가 주린 배를 햇빛으로 달래야 했다. 동파(東坡)는 그가 첫 유배지에서 일구던 작은 농토에 붙인 이름이다. 이후 소식은 자신을 동파거사라 즐겨 불렀다. 

 


이러한 ‘천재문인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흔히 비극적 색채를 띠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라. 소동파의 일생을 다룬 평전은 “쾌활한 천재”(임어당), “팔방미인 소동파”(류종목) 등의 밝고 긍정적인 뉘앙스의 제목을 달고 있다. 소동파의 일생은 “부귀로도 음란하게 할 수 없고, 빈천함으로도 변하게 못한” 위대한 긍정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소동파는 무척 많은 문장과  숱한 일화를 남겼다. 이제 최고의 문장가 소동파가 전수해주는 위대한 긍정의 기운을 전수받으러 가보자! 



소동파의 광달한 자유

 

소동파의 문장을 두고 명나라의 문인이자 당송팔대가문초의 평자인 모곤은 “광달(曠達)”이라 표현했다. 거칠 데 없이 자유로운 동파의 기질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이런 기질은 문장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소동파는 운문과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쓰고, 여성적이고 서정적이었던 송사에 호방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으며, 사상적으로도 유불도를 종횡으로 넘나들었다. 

 

동파 또한 자신의 문장의 특징을 거칠 데 없는 자유로움이라고 보았다. 단, 이 자유로움은 제멋대로 구는 자유가 아니다. 생명의 흐름, 자연의 이치와 하나가 될 때에야 얻을 수 있는 자유이다. 달라지는 환경에 매순간 새롭게 반응하지 않으면 생명이 아니듯, 동파에게 글쓰기는 매순간 해야 할 말을 가장 부합하는 형식으로 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소동파가 자신의 문장을 스스로 평한 문장으로 자평문(自評文), 혹은 문설(文說)이라고 불리우는 유명한 문장론이다.


나의 글은, 만 섬이나 되는 많은 샘물이 땅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마구 솟아 나와 평지에는 막힘없이 콸콸 흘러서 하루에 천 리를 가는 것도 어렵지 않고, 굽이진 바위를 만나면 그 모양대로 구부러져 형체를 이루지만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알 수 있는 것은 항상 가야만 할 곳으로 가고 항상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단지 이러할 뿐이다. 그 밖의 것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다. (<문설文說>, 류종목 번역, 소동파산문선, 132쪽,지만지)


문장에 있어서 ‘가야만 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멈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소동파의 글을 읽으면 문장의 기세가 변화무쌍함을 느끼게 된다. ‘뻔한 전개’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변화를 도모한 구석도 없다. 작위적인 기색이 없이 문리(文理)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드러날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해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 지 알 수 없다. 단지 이러할 뿐이다.’라는 말 또한 자연의 순리 외에는 어떤 구속에도 매이지 않으려는 동파의 광달한 자유에 대한 진술일 것이다. 


 



이 ‘자연스러움’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절망스럽게도 모곤은 소동파의 문장을 두고 ‘하늘이 신선과 같은 뛰어난 재주를 마음껏 부여하여 세상에서 묻고 배워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겼다’ 한다. 하지만 소동파의 이야기는 좀 희망적이다. ‘글을 잘 지을 줄 알아서 훌륭하게 된 것이 아니라 글을 짓지 않을 수 없게 된 다음에 지어서 훌륭하게 된 것’이라고 말이다. 이 말에 따르자면, 좋은 문장을 짓은 법은 따로 없다. 하고 싶은 말이 ‘마구 솟아’나는 경지에 이르면 그 말은 자연스러움을 얻을 것이다. 


한편, ‘가야만 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멈춘다’는 말은 형세에 따라 유동하는 물처럼 매 번의 사건에 따라 새롭게 의미를 생성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고문운동의 정신이기도 하다. 수식에 치우친 글이 아닌, 세상을 움직이는 글쓰기. 그런 글을 쓰려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 남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을 통해 보고, 남의 말이 아닌 자신의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 진실함은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정답도 있을 수 없다. 동파가 동시대의 거인 왕안석을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장의 쇠퇴함이 요즘과 같은 적은 있지 않았습니다. 그 근원은 실로 왕안석에게서 나왔으니, 왕안석의 글이 반드시 좋지 않은 것은 아니나 병통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자기와 같아지기를 좋아하는 데에 있습니다. 공자께서도 제자들을 똑같게 하지 못해서 안연의 어짊과 자로의 용맹을 서로 바꾸지 못하셨는데, 왕안석은 자기의 학문을 가지고 천하 사람을 똑같이 하고자 합니다. 비옥한 땅이 사물을 내는 것은 똑같으나 내는 사물은 똑같지 않으며, 오직 거칠고 척박하고 또 소금기 있는 바닷가의 땅은 멀리서 바라봄에 모두 누런 억새와 흰 갈대뿐이니, 이것이 바로 왕안석이 원하는 똑같음입니다.“ (『답장문잠서』, 소식2권, 258쪽) 

왕안석은 제도를 바로 세우고, 기본 소양을 갖춘 인재를 기른다면 이상이 실현되리라 믿었다. 안석이 쓴 <삼경신의>는 곧 모든 과거응시생의 필독서가 되었고 이들이 써낸 과문들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반면 소동파는 “만권의 서적을 읽었지만 그 안에 률(律)은 한 권도 없다”고 했으며, “글을 지으려면 먼저 의(意)가 있어야 하니 경전과 사서가 모두 나를 위해 사용된다”고 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미 정해진 형질은 없다’ 고 보는 동파에게 저마다 몸으로 마음으로 체득하여 나온 문장은 각자의 몸과 마음에 따라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양성은 풍요로움과 직결된다! 동파는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억새와 갈대만 가득한 황량한 바닷가로 형상화하여 또렷하게 전달하고 있다. 



상소문도 재밌다

  

소동파의 광달한 자유는 이런 간결하고도 명확한 비유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문장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경직되기 쉬운 책문이나 상소문조차 소동파가 쓰면 재밌다. 물론 재밌다는 말은 동파의 문장을 표현하기에 매우 부족한 말이다. 소동파는 신법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다. 신법파의 득세 이후 과거의 명재상들은 모두 물러났고, 왕안석과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차례차례 숙청되던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동파는 정말 목숨을 걸고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신종에게 누차 올린 이 상소문들은 그의 어떤 문학작품 못지않게 흥미롭다. 함께 읽어보자. 

 

“국운의 길고 짧음은 사람이 장수하고 요절함과 같으니, 사람이 장수하고 요절함은 원기에 달려있고, 국운이 길고 짧음은 풍속에 달려있습니다. (......) 양생을 잘하지 못하는 자들은 절제하고 삼가는 효험을 하찮게 여기고 상품의 약을 싫어하고 하품의 약(독하여 장복할 수 없는 약)을 써서 진기를 해치고 강한 양기를 도우니, 근본이 이미 위태로워서 언제 쓰러질지 모릅니다. 천하의 형세는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폐하께서 풍속을 사랑하고 아끼셔서 원기를 보호하듯이 하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 상신종황제서>,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전통문화연구회, 174쪽)


동파는 신법의 위험성을 설파하기 위해 양생법을 들고 온다. 양생적 관점에서 신법은 ‘독한 약’과 같다.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못할뿐더러 소중한 원기를 해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를 드니 신법을 잘 모르는 우리조차 신법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쏙쏙 알아 듣게 된다. 동파의 특기인 적확하고도 생생한 비유가 가진 힘이다. 이 비유가 빛나는 것은 분명한 논리, 역사와 현장에서 얻은 구체적인 예증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의 도입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문장은 찬란하고 의론이 벌떼처럼 쏟아지는”(구양수) 동파의 글 전문을 다 살피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동파는 사람은 원기가 근본이듯, 국운은 풍속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여기서 풍속이란, 법과 제도만으로는 확립할 수 없는, 백성들의 삶 전반에 배어있는 종합적 가치이자 생활양식이겠다. 단 시간내에 체질을 바꿀 수 없듯, 풍속 또한 신법을 시행한다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법제를 바꿔 국가를 변화시키겠다는 신법파의 야심찬 주장에 동파가 반기를 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파는 신법을 채찍질에도 비유했다. 그것도 그냥 채찍질이 아니라 “가벼운 수레를 타고 준마를 몰아 위험을 무릅쓰고 밤길을 가는데 게다가 마부가 또 뒤에서 채찍질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치적으로는 ‘빨리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잠깐 숨을 고르고 주변을 돌아보자. 밤에는 도로에 돌이 놓였는지 물웅덩이가 고였는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수레도 가볍다. 여차하면 뒤집어지기 쉬운 것이다. “신은 원컨대 폐하께서 고삐를 풀고 말에게 꼴을 먹이시고 동방이 밝아오기를 기다려 구궤의 길로 천천히 가시기를 바라오니, 이렇게 해도 그리 늦니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동파의 주장이었다. 

 

 



아래의 글은 소동파가 32세에 쓴 「의진사대어시책문」이다. 이게 좀 재밌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과거 응시문을 흉내 내어 지은 문장이라는 뜻이다. 동파가 이런 엉뚱한 글을 지은 까닭도 신법과 관계가 있다. 취지가 어쨌든 법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급격한 개혁이란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을 야기하게 된다. 강경일변도였던 신법파는 불행히도 성과를 강조하고 부작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급기야는 대간제도까지 없앴다. 위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자, 인재를 등용하는 과거에서 역시 이상 징후가 감지되었다. 소식이 지공거 하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신법에 적극 찬동한 답안을 써낸 응시자가 소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등으로 채택된 것이다. 소식은 “과거의 문장은 풍속이 관계되는 바”인데 “아첨으로 급제”하였다는 사실에 “분하고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의진사대어시책문>을 지어 올린 것이다.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성미가 여지없이 발휘된 문장이었다.


“신은 모르겠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부(富)라는 것이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것입니까? ..... 지금 정사를 행함에 있어 이치를 따르기를 힘쓰지 않고, 군주의 권세와 상벌의 위엄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협하여 이루려고 하십니다. 도끼를 가지고 장작을 패면 반드시 팰 수 있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뭇결을 따르지 않으면 도끼는 망가질 수 있어도 장작은 팰 수가 없습니다. ..... 지금 폐하께서 농민으로 하여금 이식(利息)을 내어 상인과 이익을 다투시니, 이것이 이치이겠습니까? ...... 폐하께서 진실로 백성을 위하는 데 성실하시면 비록 남들이 비방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요, 만일 이익을 내는 데 성실하시면 비록 스스로 해명하시더라도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 지금 청묘법에 2할의 이식(利息)을 받도록 되어 있는데, 빚을 놓아 이익을 취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되겠습니까?”( <의진사대어시책일도>,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대지주 대신 국가가 고리대금을 받는 꼴이 된 청묘법의 폐해를 적시하면서 황제에게 ‘이익을 내는데 성실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이 패기! 게다가 ‘도끼를 가지고 장작을 패듯 하다가는 도끼가 망가진다’는 한 마디 비유로 황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이런 문장이었기에 신종이 소동파의 글을 읽을 때면 밥 먹는 일조차 잊었던 것이다. 소동파가 이렇게 신법을 반대해도 신종은 늘 그를 가까이 두고자 했다. 좋지 않은 일이었다. 황제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쓰는 이 사람을 신법파가 두고 볼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어디 간들 즐겁지 않겠는가 

 

온통 갈대밭인 정계에서 소동파는 너무 튀는 인물이었다. 신법파는 <오대시안>이라는 희대의 필화사건을 기획, 소식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황제의 특명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소식은 궁벽한 오지 황주에 유배 안치되었다. 직접 밭을 갈아 일구지 않고는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황주에서 소식은 언덕받이의 작고 황량한 땅을 얻어 일구고 그곳을 동파라 이름 짓는다. 그런데 자신의 앞날을 짐작이라도 했던 것일까? 앞날이 창창했던 20대의 젊은 소동파는 <초연대기>에서 이렇게 읊은 바 있다.  


모든 물건이 다 볼 만한 것이 있다. 진실로 볼 만한 것이 있으면 모두 다 즐거워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이니, 반드시 괴이하고 장엄하고 화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술지게미를 마시고 탁주를 마셔도 취할 수 있고, 과실과 채소와 풀과 나무를 먹어도 배부를 수 있으니, 이것을 미루어 유추해본다면 내 어디 간들 즐겁지 않겠는가?”(소식5-108쪽,<초연대기>)

 

이제 소식은 정말 ‘술지게미와 채소’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 과연 큰소리친 대로 ‘어디 간들 즐겁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랬다. 소식은 모든 물건에서 ‘진실로 볼 만한 것’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이 시절 소식의 처지는 매우 궁핍했던 것이 분명하다. 갈 곳에 가고 멈출 곳에 멈추는 물처럼 소식은 새로운 이 환경에 적응하여 이곳에서만 쓸 수 있는 문장들을 써내려갔다. 우선 친구에게 보낸 답서 한 토막을 읽어 보자.

  

“내가 처음 황주에 이르렀을 때에 녹봉이 이미 끊겼고 식구가 적지 않으니(......) 매달 초하루에 곧 4천 5백 전을 취하여 이를 30개의 덩이로 나누어 들보 위에 걸어놓았다가, 매일 새벽에 그림을 거는 장대를 사용해서 이 가운데 한 덩이를 들어 내리고 곧바로 장대를 감춰버렸으며, 이어서 큰 대통에다가 쓰고 남은 돈을 따로 저장하여 빈객에 대한 비용을 대비하였으니, 이것은 가운로의 방법이라오.”(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권 10 <답진태허서>, 267쪽)

 

마치 눈 앞에서 동파가 돈을 봉지 봉지 나눠 담는 걸 보고 있는 듯하다. 그 봉지를 저 위의 대들보에 조롱조롱 걸어놓고 장대는 바로 감춘다. 이런 식으로 해서 손님을 대접할 비용까지 마련할 수 있다. 이렇게 꼼꼼할 수가! 이 방법은 시를 잘 쓰지만 퍽 가난했던 친구 가운로에게 전수받은 것이다. 이제 소식도 가난해졌으니 친구의 비법을 써먹을 때가 되었다. 이 글은 자신을 염려하여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온 태허 진관에게 보내는 답서이다. 동파는 이 글을 받은 친구가 “밥알을 뿜으며” 웃으리라 기대했다. 이 문장으로 인해 어디 태허만 웃었겠는가. 동파 역시 이 문장을 쓰며 미소를 지었으리라. 

 


문장은 바로 그 사람이다. 소동파의 삶 또한 항상 가야만 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을 수 없는 곳에서 멈추는 삶이라 할 만하다. 한림학사 같은 중앙의 요직에서나 땅 끝의 유배지에서나, 소동파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중국 전역을 떠돌았다. 그의 죽음도 해배되어 경사로 올라오던 도중에 일어났으니 가히 길 위의 생을 살았다 할 수 있다. 유머는 이 길을 지치지 않고 계속 가는 동력이 되어준다. 웃음은 신체와 정신을 부드럽게 만들고 어디서나 사람을 사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동파는 어디에서도 나그네로 겉돌지 않았다. 어디서나 벗과 이웃을 사귀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현안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홍수의 위기에서 성을 지키고, 짠 물을 먹는 사람들에게 식수를 공급할 수로를 건설하고, 뻘에 뒤덮인 호수를 정비하고, 기금을 만들어 가난 때문에 아이를 죽이는 악습을 철폐했다. 지방관이었을 때나 유배된 처지에서나 동파의 이런 모습은 한결같았다. 그런 한편으론 주역과 논어, 서경에서 약, 술, 음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탐구하여 글로 남겼다. 이러한 현장 적응력이야말로 ‘바위를 만나면 그 모양대로 굽이치는 물’ 자체이다. 이렇듯 삶의 모든 국면을 100% 살려내는 동파이니 과연 어디 간들 즐겁지 않겠는가.



자유인 소동파의 천고의 절창

 

동파의 숱한 명문장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역시 천고의 절창이라 불리우는 <적벽부>이다.앞서 맛본 동파의 문장이 문장가, 정치가, 생활자로서의 글이었다고 본다면, 이제 살펴볼 <적벽부>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이 <적벽부>를 자유인 동파의 문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설명은 뒤로 하고  일단 적벽부의 내용을 보면 이러하다. 뱃놀이가 무르익자 한 손님이 동파의 노래에 맞추어 퉁소를 분다. 절절한 피리가락을 듣고 동파가 묻는다. “손님의 피리소리가 왜 이리도 구슬프오?” 손님은 ‘한때 이 적벽을 누비던 조조 같은 시대의 영웅도 간 데가 없으니 우리 같은 사람이야 어떻겠느냐’며 이렇게 말한다. “하루살이 인생을 천지간에 맡기고 사는 우리는 드넓은 바다에 떨어진 좁쌀만큼 작지요. 우리네 인생이 한순간인 것이 슬프고 이 장강(長江)이 끝없이 흐르는 것이 부럽군요.” 이에 동파가 답하길, 


“손님도 저 물과 달을 아시오? 물이 이처럼 밤낮없이 흐르지만 한 번도 가 버린 적이 없고, 달이 저처럼 찼다가 기울지만 끝내 없어지거나 자라지 않았다오. 변한다는 관점에서 볼라치면 천지는 한순간도 변하지 않을 수 없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볼라치면 만물과 내가 모두 끝이 없다오. 그렇거늘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


서두에서 우리는 동파에게서 비극의 자취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는 이 손님처럼 인생의 무상함을 느낄 때마다 무력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생과 사는 유정한 존재가 타고난 운명이 아닌가. 동파는 이런 무력감을 ‘하루살이’와 ‘좁쌀’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단어로 포착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묻는다. 저 ‘물과 달’을 아느냐고. 누구나 안다고 여기는 물과 달. 이 역시 너무나 일상적인 소재이다. 저 물과 달은 영원하며 광대한 자연 아닌가. 우리의 인식은 보통 여기에 머문다. 그리하여 우리는 영원한 자연과 하루살이 같이 초라한 자신을 대비한다. 동파가 묻는 것은 이것이다. 정말 그러하냐고? 

 

그리고 나서 동파는 우리의 닫힌 인식의 지평을 그지없이 담담하게 열어젖히는 것이다. 물은 흐른다. 달도 늘 변화한다. 변화한다는 점에서 볼 때 천지와 인간은 똑같다. 자연이 영원하다면 그 영원성은 흐르는 물은 계속 흐르고 변하는 달은 변한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인간도 나고 죽지만 계속 생사를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영원하다. 한마디로 천지자연과 인간은 하나인 것이다. 이 한 문장으로 동파는 인간이라는 왜소한 존재를 천지의 사이즈로 단번에 확장시켰다.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천 년 전 소동파가 문장으로 이루어낸 광달한 자유이다.


글_김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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