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만적 위장술과 정공법
-습사와 평위산-
손자는 “전쟁은 일종의 속임수”라고 했다. 상대의 허를 찌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적을 속여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공격해야 한다. 이 병법은 자기를 다스리는 전략으로도 유용하다. 기존의 자아는 새로운 주체의 형성을 방해하고 기득권을 행사한다. 이때는 기존의 자아가 습관이라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허를 찌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때론 스스로를 속여 내 안의 낡은 권력이 주체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장치를 둬야 할 때가 있다. 도제 식 교육이나 승가 공동체가 그런 장치 중 하나다. 공부를 하거나 도를 깨치기 위해서 스승 밑으로 들어가 온갖 고초를 겪으며 수련 혹은 수행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습성화된 기존의 자아 권력이 강한 제제를 당한다. 공부와 도의 깨침이라는 근사한 목표로 자기를 설득하는 것은 일종의 속임수다. 그 과정이 험난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겪고 있진 않다. 과정을 거치고 난 후의 효과에 대한 기대감이 아직 겪지 않은 고행의 과정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를 고행의 장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속임수는 간접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자아가 기존의 자아를 전복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기존의 자아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하는 속임수도 있다. 이를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자기를 기만하는 일은 새로운 상황에서 잘 발생한다. 익숙지 않은 상항에서는 누구나 머뭇거리거나 더듬거리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자아를 받아들이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미숙함 대한 자존심이나 두려움 강렬하게 일어나면 기존의 자아가 이를 저항하려 한다. 그래서 마치 익숙한 상황처럼 자신을 속이거나 다른 명분을 일으켜 그 상황을 피하게 된다. 이렇게 자기를 기만함으로써 기존의 자아는 새로운 자아가 들어설 자리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며 습속을 유지하는 것이다. 새로운 자아를 아군, 기존의 자아를 적이라고 가정했을 때, 앞 문단의 속임수는 아군이 적군을 속이는 기술이고, 후자는 적이 아군을 속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자기를 속이는 일이지만 속임수의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는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나를 이기고 '새로운 나'가 될 것인가, '기존의 나'를 지킬 것인가!
루쉰의 소설 <아Q정전>의 주인공인 ‘아큐’는 자기기만의 달인이다. 그는 이름도 성도 없이 그냥 ‘아큐’ 라고 불리는 허드레 일꾼이다. 아큐는 사람들의 조롱과 무시를 자기기만적인 ‘정신승리법’으로 이겨낸다. 건달에게 맞았을 때 “아들놈한테 얻어맞은 걸로 치지 뭐. 요즘 세상은 돼먹지지가 않았어”(루쉰, 「아Q정전」, 『루쉰 전집 제2권』, 그린비, 113)라면서 흡족해한다. 자기보다 못난 놈이라고 여겼던 털복숭이한테 당했을 때와 첸 나리의 큰 아들에게 조롱을 받았을 때는 너무 분이 나서 정신승리법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망각’이라는 보물이 효력을 발생하기 시작했”으므로 기분이 곧 좋아졌다. 뿐만 아니라 아큐는 젊은 비구니에게 침을 뱉고 머리통을 쓰담으면서 자기가 당한 굴욕을 비구니에게 되갚았기 때문에 한결 몸이 가벼워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다. 또한 그의 정신승리법은 자신을 공격하는 과잉된 위악으로도 표현된다.
“그는 이내 패배를 승리로 전환시켰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두세 번 자기 뺨을 힘껏 때렸다. 제법 얼얼하니 통증이 왔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자기가 때리고 다른 자기가 맞은 듯했다.”
같은 책, 115쪽
루쉰은 아큐를 통해 중국인의 노예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려했다. 노예는 능동적으로 살지 않는다. 철저하게 주인의 의도에 의해 반작용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패배를 통해 자신의 습속을 성찰하고 다시 삶으로 반영하는, 즉 능동적인 주체화를 이룰 수 없다. -여기서의 노예란 계급적 신분이아니라 가치적인 의미다. 니체는 오히려 역사적으로 지배자들이 대부분 노예적인 인간이었다고 보았다.- 이처럼 ‘자기기만’은 능동적인 주체화 과정을 막고 다시 노예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과도한 긍정이나 위악은 잠시 눈을 가리고 평안을 되찾아 준다. 그래서 스트레스의 폭탄을 피하기 위해 가끔 정신승리법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처절하게 무너짐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못하면 다시 똑같은 번뇌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만신창이가 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선 노예의 굴레를 벗어던져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정공법이다. 정공법은 물러나거나 피하지 않고 대적하는 것이다. “전쟁을 잘 하는 장수는 적을 끌고 다니지, 적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 50쪽) 적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정면대결을 피하지 않는 것, 이것은 전투의 기본자세다. 기습법은 정공법의 대열이 갖춰진 후에 쓰는 것이 원칙이다. 손자병법에서는 “정공법으로 대적하고, 기습법으로 승리한다”(같은 책, 45쪽)고 했다. 전세가 약할 때는 기습법이 주효하겠지만 언제까지 기습법만 사용할 수는 없다. 전력을 가다듬고 정공법의 대열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승부하는 정공법!
방제학의 전략은 대체로 정공법에 속한다. 이에 비해 하나의 약물을 사용하는 단방이 기습법이라 할 수 있다. 병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단 하나의 약으로 강하게 공격한다. 운이 좋으면 단번에 병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병이 전변되거나 이 공격으로 인해 다른 부작용들이 나타났을 때는 손을 쓸 방법이 없다. 방제학의 기본방들은 이러한 기본적인 변화들에 대응한다.
평위산(平胃散)으로 예를 들어보자. 평위산은 한방소화제로 불린다. 소화를 방해하는 요소 중 가장 직접적인 것은 습사(濕邪), 즉 습한 기운이다. 습사가 비위에 정체되면 소화불량, 위장염등 만성적인 위장장애가 일어난다. 평위산은 비위의 습사를 제거해서 소화기능을 회복시키는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물이 ‘창출’이다. 창출은 습을 말리고 비를 건강하게 만들어 소화력을 증강시킨다. 그래서 소화가 안 될 때 창출을 단방으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창출을 써서 습사를 제거해서 소화가 잘 일어난다 해도 배가 그득한 느낌을 남아 있을 수 있다. 습사가 머물던 자리에서 기의 잔향 같은 것이 맴돌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은 후박이 해결해 준다. 후박은 군약인 창출을 돕는 평위산의 신약(臣藥)으로, 습을 빼 주는 역할은 창출보다 약하나 기를 돌리는 능력이 있어서 배가 그득한 느낌을 없애준다. 진피는 창출을 도와 습을 말리고 후박을 도와 기를 돌린다. 생강은 습사로 인한 구토를 억제해주고, 자감초는 비위를 튼튼하게 해 주는 동시에 약물들이 서로 조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평위산을 구성하는 모든 약들이 비위에 작용하지만 그들의 역할이 조금씩 달라서 비위의 습사를 공격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예상된 변화들까지 평위산의 그물에 걸리게 된다. 그래야 치고 빠지는 게릴라 전법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대열이 정비된 정공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대열이 갖추어진 후에 기습법을 응용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가감법이 기습법에 비유될 수 있을 것 같다. 평위산의 많은 변방들이 그런 응용법에 속한다. 습사로 인해 설사가 초래된다면 평위산에 복령, 정향, 백출을 더한다. 이 방제를 조위산이라 한다. 만일 습사로 인해 부종이 생긴다면 평위산에다 오령산을 더한다. 이 방제는 위령탕이라고 부른다. 식체가 심할 땐 신곡, 맥아를 더 넣거나, 배가 차가울 때는 건강, 계지를 더하는 것도 비슷한 응용법이다. 물론 이런 기습법을 응용할 수 있는 것은 평위산이라는 정공법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아 권력이 강해 습속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울 때 쓰는 속임수는 기습법이라 할 수 있고, 자기기만적인 정신승리법의 유혹을 뿌리치고 기존의 자아와 정면대결 하는 것을 정공법으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할 것처럼 기습법은 정공법의 기초 위에서 응용될 때 그 효과가 크다. 따라서 전력이 약할 때, 즉 의지가 약하거나 자기 통제가 어려울 때 자기를 속여 스스로를 어떤 수행의 장에 밀어 넣는다 할지라도 거기서 결국 스스로와 맞닥뜨려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때 불현 듯 등장하는 자기기만적인 정신승리법은 적군(기존의 자아)의 전술이므로 기습법도 정공법도 아니다. 기만적인 자기 위장술의 유혹을 뿌리치고 너덜너덜해진 자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각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자아는 스스로를 규약 했던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주체화의 과정에 진입하게 된다.
글_도담(안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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