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카 하우스, 첫 출발
이민의 도시, 뉴욕. 파도처럼 꾸역꾸역 밀려오는 이민의 풍경은 흔히 ‘뉴욕의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되어 뉴욕이라는 도시를 아름답게 모자이크하는 데 이용되곤 한다. 그러나 다양성이라는 단어는 이 사람들이 이 바닥에서 어떻게 섞여 살아가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그렇다, 사실 이주는 뉴욕에 와도 끝나지 않는다. 근 일 년간 내가 발로 뛰면서 보러 다닌 집만 30여 개, 이사 횟수는 3번, 내 짐은 처음보다 3배 이상 늘었다. 내 친구들 중에서 내가 유별나게 이사를 자주 했던 편도 아니었다. 여기 오래 머물다보면 다들 저절로 이사의 달인이 된다. 뉴욕은 이사의 도시이기도 한 것이다.
"이주는 뉴욕에 와서도 끝나지 않는다"
이사 전쟁
이 높은 이사 빈도는 뉴욕의 열악한 주거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모두가 알다시피 뉴욕 세상에서 집값이 가장 비정상적으로 비싼 동네다. 집값이 매년 오르면 세입자들도 매년 새 장소로 밀려나게 된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집값을 올려도 새 이주민들이 꾸역꾸역 밀려온다는 것이다. 이렇게나 집 회전이 빠른데 실제로 비어있는 집의 비율이 7% 밖에 되지 않는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없이 움직이는지 알 만하지 않는가.
저번 달, 새 집을 구하는 과정은 이 전쟁터를 온 몸으로 실감하는 계기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철없던 시절에는 왜 도시 생활이 팍팍하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뉴욕에 와서야 서울에서 이십 년을 버텨낸 부모님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 중이다. 하지만 이번 이사는 어떻게든 잘 해내야 했다. 중대한 미션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뉴욕과 감강찬(감이당+남산강학원)공동체를 연결시켜줄 MVQ의 첫 번째 뉴욕 본부인 ‘이타카 하우스’를 차릴 때가 드디어 온 것이다.
2008년 경제 위기가 있고 난 후, 미국 땅 값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2008년 뉴욕의 맨해튼 집값은 폭포 같은 속도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도 벌써 7년 전 이야기다. 처음에는 $1,500(약 170만원) 선에서 방 두 개 짜리에 거실이 있는 집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물건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나는 점점 맨해튼에서 밀려나 집을 찾게 되었는데, 결국 7호선 종점역인 플러싱에까지 도달했다. 플러싱은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뉴욕 최대의 아시아 타운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왔는데 굳이 익숙한 곳에서 또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그 동안은 이 장소를 피해왔었다. 그런데 나는 큰 맘 먹고 찾아간 플러싱에서도 배반당했다. 퀸즈 중심가와 가격이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역시 행운아였다. 알래스카에서 오로라의 정기를 받아온 덕분인지, 갑자기 적절한 가격의 집이 일주일 만에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다. 집의 구조도 마음에 들었다. 집 자체는 낡았지만 깨끗이 정비되어 있었고, 방 크기는 작지도 크지도 않았다. 햇볕도 잘 들었다. 그렇게 나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까지 얻어 사기 당하는 일 없이 ‘이타카 하우스’ 계약을 무사히 마쳤다. 미국에서 스스로 집 계약까지 하다니, 일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첫 번째 손님들
이타카 하우스의 집 구조는 특이하면서도 간단하다. 현관문을 열면 부엌이 가장 먼저 나온다. 부엌은 크기가 꽤 작은데, 가정집이 아닌 이타카 하우스에는 딱 알맞은 배치다. 부엌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큰 방이 나온다. 이 방에는 뒤뜰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지만, 방주인의 담력이 약한 탓에 (밤에 흠칫 하고 깨서 문을 보면 정말 무섭다) 커튼과 책장으로 문을 가려놓았다. 왼쪽으로 꺾으면 오각형 모양인 거실이 나오고, 이 거실에 정말 작은 방 하나가 딸려 있다.
작은 방은 감이당에서 온 현진 오빠가 쓰고 있고, 큰 방은 나와 남산 강학원에서 온 민경이가 나눠 쓰고 있다. 거실에는 큰 교자상을 두고 식탁 겸 세미나용으로서 용이하게 쓰고 있다. 사람이 많아져서 공간이 더 필요할 때는 이 교자상을 그냥 접어버리면 된다. 이 두 사람이 5월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그 다음 번 팀이 오더라도 이 배치는 그대로 갈 것이다.
현진 오빠와 민경이는 이타카 하우스의 기틀을 닦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에서 각각 파견되었다. 사실 일꾼으로 왔다는 것은 반쯤 핑계이고, 새 공간이 생긴 마당에 새 친구들도 사귀고 뉴욕도 돌아볼 겸사해서 온 것이다. 여하튼, 이들이 와서 나는 덕 본 것밖에 없다. 나와 다르게 요리를 좋아하는 민경이는 이 좁은 부엌에서도 어떻게든 삼시세끼를 해서 나와 현진 오빠를 거두어 먹이고 있다. 현진 오빠는 청소와 설거지, 또 공구가 필요한 일거리가 생길 때마다 활약하고 있다. 이 둘은 내가 연구실에 있을 때 주로 야식과 산책을 함께 했던 막역한 사이다.
무엇보다,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집에 나말고도 다른 사람이 산다는 사실 자체였다. 처음 이사를 오고 일주일을 나 혼자서 살았는데, 그때는 이 집에 도저히 정이 가지 않았다. 사는 사람은 나 혼자인데 그에 비해 집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내 행동 반경이 방 하나로 충분히 감당된다면 그 나머지 공간은 죽는 것이나 다름 없이 느껴졌다. 나는 30평 아파트에 혼자 사는 부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적막과 공허한 공기를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가구를 많이 사들이는 것도 사실 사람이 채워야 할 여백을 어떻게든 메우기 위한 일환이 아닐까? 공간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활동으로 채워져야 한다. 그렇게 우리 셋은 밤낮으로 즐거운 수다를 떨고 있다(^^).
이 의남매는 매일 맨해튼과 퀸즈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고 있다. 퀸즈의 구석구석에 분포한 싼 마트들을 찾아내서 장을 보는 데 더 열을 올리는 것 같지만(ㅎㅎ). 여하튼 뉴욕에 있는 동안 많이 보고, 듣고, 놀다가기를 바란다.
첫 번째 파티와
마지막 인사
현진 오빠와 민경이가 오고 이 주가 지났을 즈음, 이타카 하우스에서 내 친구들을 초대해 첫 파티를 열었다. 파티는 여느 때처럼 아주 흥미진진했다. 친구들은 집이 지하철에서 너무 멀다고 (충무로 역에서 깨봉빌딩까지 올라가는 딱 그 정도의 거리다) 불평했지만, 일단 도착하자 다들 열심히 먹고 또 놀았다. 파티라는 게 별 게 없다. 미국 드라마에서 으레 볼 수 있는 화려한 조명이나 빵빵한 음악도 없다. 수다를 끝없이 떨고, 춤을 추고 싶으면 엉성하게 춤을 추고, 때로는 살짝 취한 상태에서 외국어 교실(?)을 열어 서로 자기 나라 말을 가르치기도 한다. 뭘 해도 재미있는 까닭은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파티의 핵심은 사람인 것이다. 아직 일본어가 영어보다 더 편한 민경이와 한국어 외에는 다 어색한 현진 오빠도 파티를 즐겼다고 했다. 영어를 채 몇 마디도 모르면서 친구를 사귀고 있는 현진 오빠의 능력은 정말 대단했다!
이 날은 현진 오빠와 민경이에게 내 뉴욕 친구들을 소개해주기 위한 파티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와 가장 친했던 일본 친구 댄의 환송 파티이기도 했다. 뉴욕에서 내가 가장 깊이 교류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친구인지라, 감성적으로 굴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만남과 이별은 교차한다. 인연은 끝난 만큼 또 다시 생긴다. 그렇기에 삶은 계속되고, 나 역시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긍정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환송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한다. 우리가 뉴욕에서 만나 서로를 변화시켰던 시절인연은 지금 여기에서 끝이 난다. 그렇지만 이제 댄은 뉴욕에 다시 놀러와도 머무를 수 있는 이타카 하우스를 알게 되었고, 나는 일본에 가도 등을 눕힐 공간은 얻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과 마지막을 가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어디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시 만날 수 있다. 이타카 하우스의 첫 출발도 이렇게 가벼웠으면 좋겠다. 뭔가 대단한 목표를 위한 시작이 아니라, 모두가 매일 같이 왔다가 떠나는 이 이사의 도시 뉴욕에서 인연들이 교차할 수 있는 작은 로터리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출발은 아직까지 순조롭다.
글/사진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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