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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32

언젠가 먹고 말거야! - 제이와 포도 포도의 계절 제이랑 나랑 자주 다니는 길에 과일가게가 하나 있다. 사거리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려면 이 가게 앞을 지나야 한다. 가게 안에는 과일들이 박스로 쌓여 있다. 가게 바깥으로까지 수박, 참외, 복숭아, 토마토 등등이 쏟아져 나와 있다. 반짝이 달린 찢어진 티셔츠를 입고 이마에 빨간 스카프를 질끈 동여매고 소형 마이크를 입 앞에 단 아저씨가 땅바닥을 발로 쿵쿵 울리면서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몰라요! 꿀복숭아 다섯 개 삼천 원, 삼천 원!” 하면서 외친다. 어디? 정말?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개를 쭉 빼고 가게 앞으로 모여든다. 이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휠체어 지나가기가 힘이 든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녹색등에서 빨간불로 바뀌려고 하는데, 바뀌기 전에 빨리 횡단보도를 건너.. 2012. 8. 28.
오빠 때문에 되는 일이 없어! - 제이의 눈물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오늘은 활보하는 날이 아닌데 제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쩐 일일까? 갑자기 외출할 일이 생긴 걸까? 그게 아니고… 가방 정리 하다 보니 교통카드가 없어서… 하루 종일 찾아도 없는데 혹시 못 봤냐고 한다. 제이의 교통카드는 내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어제 활동 끝나고, 제이 집 앞에까지 데려다주고 엘리베이터 문 닫히기 전에 빨리 탄다고 허겁지겁 헤어지는 바람에 교통카드 돌려주는 걸 잊어버렸다. 어 미안, 내일 돌려줄게… 내가 워낙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 내 지갑을 제이 가방에 넣고 집에 오는 때도 있다. 활동을 같이 하다 보면 물건이 막 섞인다. 흐이그… 정신 차려야지… 남의 교통카드를 들고 오다니… 교통카드 찾았으니 다행이다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는데… 제이의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 2012. 8. 21.
나만 할 수 있는 일은? 제이의 즐거운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 올 여름 제이의 수입은 쏠쏠했다. 복지 일자리 외에 아르바이트를 조금 했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란, 박물관, 공연장, 은행, 체육관 등을 둘러보면서 그곳에 장애인 시설이 잘 되어 있나 잘 안 되어 있나를 조사하는 일이다. 원래 봄에 했던 아르바이트인데, 여름에 추가로 4건을 더 하게 되었다.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 다 못 한 것을 제이가 받아서 더 하게 된 것이다. 이때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 중에 제이가 가장 일을 빨리, 그리고 많이 했다. 제이는 이 일을 너무나 즐겁게 신나하면서 했다. 무엇보다 돈이 되는 일이고, 서울 시내 여러 시설들을 둘러보는 게 제이에게는 ‘일’이라기보다 ‘소풍’이었기 때문이다. 일부러라도 놀러가고 싶은 미술관 박물관 같은 곳에 가서, 장애인이라면 당연히 느끼는 문.. 2012. 8. 14.
휠체어 탄 공주, 이태원에서 맨탈해방되다 내 친구 제이(J), 복지카드에는 ‘1급 중증 지체(뇌병변) 장애인’ 이라고 되어 있다. 나는 약 일 년째 이 친구의 활동 보조 일을 하고 있다. 제이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은 가족들이 도와주고 있고, 나는 주로 외출 보조-복지 일자리 근무하러 갈 때, 친구 만나러 갈 때, 교회 갈 때, 물건 사러 갈 때 등등… 동행한다. 서른 살 꽃다운 아가씨 제이는 장애를 통해, 장애와 함께, 세상 어딘가 있을 자신의 운명적 짝을, 새로운 삶의 출구를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드레스의 꿈 정경미(감이당 대중지성) 그동안 제이의 외출은 행선지가 분명했다. 어디에 뭘 하러 가는지가 뚜렷했다. 그런데 여름이 되면서 공부 모임이 방학을 하는 바람에 제이는 갑자기 생긴 ‘자유 시간’을 어떻게.. 2012.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