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1199 '나'를 찾아 떠나는 길,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소세키를 넘어선 소세키 소세키는 만년에 이르도록 ‘자기본위’라는 네 글자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그 점에서 그는 자기본위의 사상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세키가 몇 군데 강연에서만 드물게 자기본위를 다루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전모를 파악하기란 그리 쉽진 않다. 그래서 자기본위를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는 식의 교장선생님 훈시처럼 이해하거나, 근대 일본을 구성한 강력한 국가 이데올로기로 분석하고 그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세키의 자기본위’안에 숨겨져 있는 어떤 힘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더군다나 그의 ‘어두운’ 후기 작품들과 연결하지 못하고, 초기 몇 작품만을 근거로 자기본위가 해석되는 것이 아쉽기만 하였다. 그래서 나는 소세키의 주요 작품들에서 자기본위의 사유들을 찾아내.. 2012. 7. 30. 그리스철학에 '사랑'을 묻다 자기배려와 사랑 토요일이면 둘째 아이 손을 잡고 조그만 산에 가는 것이 언제나 내게 큰 낙이다. 특히 산길이 도서관 뒷마당과 연결되어 있어서, 도서관 가는 산책 코스로도 일품이다. 물론 도서관에 갈 거라면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그러면 산책하는 기분도 안 들고, 무엇보다 아들 녀석과의 정다움을 버스 유리창 풍경에 빼앗기는 것 같아, 되도록 이 길을 택하게 된다. 비탈길에선 내가 뒤에서 잡아주고, 바위가 나오면 내가 안아서 넘어간다. 평평한 길이 나오면 손을 잡고, 도란도란 그간 못 다한 얘기도 나눌 수 있다. 이러다 보면 가슴에 애틋함은 한껏 커져서, 아이에게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곤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가지고 있는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뭔가 나눠주고 싶다니. 그래서 아내는 공.. 2012. 7. 23. 괜찮은 척, 하기싫은 척은 그만! 지금 시작하라! Step By Step 「1440년 - 매끄러운 공간과 홈이 패인 공간」은 열네 번째 고원으로, 『천 개의 고원』의 결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드라마틱하게(?!) 전개해왔던 여태까지의 방식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몇 가지 모델들을 골라 ‘매끄러운 공간’과 ‘홈 패인 공간’이라는 개념쌍을 설명한다. 낯선 개념이지만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어 온 논의구도 그대로니까 말이다. 유목민이 달려가는 사막의 매끄러운 공간, 구획되고 경계 지어진 홈 패인 공간, 그리고 이 두 종류의 공간이 언제나 중첩되고 혼합되면서 펼쳐지는 우리들의 현실. 고원과 고원을 연결하는 이 매력적인 개념들은 추상과 현실 사이에 걸쳐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 개념들과 함께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서 .. 2012. 7. 17. 돈키호테 뺨치는 이 도련님이 사는 법 능동성, 망각과 기억의 드라마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에는 소세키 특유의 유쾌함이 넘쳐난다. 주인공은 어수룩해서 머리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고 인정하지만, 어떤 일에든 끈질기고 정직하고 용감하다. 또 거센바람과 연대해 빨간셔츠의 무리들과 대결하고, 이 때문에 표표히 학교를 떠나는 장면에선 서부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찡하기까지 하다. 도련님을 통해 젊은 시절 꿈꾸던 순수함을 다시 보는 느낌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보면 그가 만화 주인공처럼 보여서,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그를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더욱이 그런 주인공을 ‘자기본위’의 표상으로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혹시 ‘자기본위’를 상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으로 오해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마저 드는 것이다. 그래.. 2012. 7. 16. 이전 1 ··· 286 287 288 289 290 291 292 ··· 30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