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불안을 날려버리는 힘, 협계(俠谿)
“어디선가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어!” 무슨 미친 소리냐고? 공포영화에나 나오는 대사 아니냐고? 아니다. 현대인들이 처한 현실 그대로다. 보시라.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이슈가 될 법한 일이 생기면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스마트족, 온갖 야동들의 원초적 욕망(?)에 해당하는 관음증. 우리는 매일 누군가를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또 우리를 들여다본다. All around the world is open!(용서하시길... 요즘 아침마다 콩글리시를 배우는 중이라 써먹어 봤음... 문법에 맞는지는 알 수 없음.) 그 현실이 곧 언어화되어 표현된 것일 뿐 저 말은 허구도 거짓도 아니다. 지금 세상이 그렇다. 특별한 사건조차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그 안에 담긴 내 모습이 정보의 형태로 온 천하를 떠돈다. 누가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대가 우리 일상의 모습을 그렇게 바꾸어놓은 것뿐이다.
헌데, 이 일상은 곧 몸의 변화를 가져왔다. 모두가 모두의 시선에 노출되는 상황. S라인과 동안열풍, 온갖 성형수술들. 이것이 서로 다른 맥락일까. 아마도 이 모든 건 누군가로부터 늘 시선을 받는다는 사실이 만들어낸 반작용일 것이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나를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과 우리가 우리 몸을 절차탁마하게 되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현상이라는 뜻이다. 음이 생기자 동시에 양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밖으로, 겉으로 아니 벗고 또 벗고, 고치고 또 고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거다.
어디선가 날 지켜보고 있어!
시선과 몸. 몸의 차원에서 보자면 이러한 상황은 겉으로 발산하는 기운, 즉 양기(陽氣)가 치성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반대로 속은 텅 비게 된다. 밖을 향해 기운을 쓰다 보니 안으로부터 차곡차곡 쌓여야 하는 음기(陰氣)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다. 겉으론 너무나 열정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엔 불안과 공포의 늪이 펼쳐져 있는 것. 이것 또한 우리 시대의 음양,우리 시대의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잘 모른다. 이런 원리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다는 걸. 한 가지 일화를 들여다보자.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나이는 15세. 어느 날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병에 걸렸는데 언제부턴가는 누가 자기를 잡으러 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어쩔 줄 몰라 엄마의 품으로 파고들고 수많은 계집종들을 불러 밖을 지키게 해도 두려운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밤을 꼬박 새는 것은 일쑤. 좀 사는 집안이었는지 곳곳에서 명의들이 당도했다. 의사들은 하나 같이 심(心)에 병이 들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들이 처방한 약들 또한 심신(心神)을 안정시키는 약들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꽝. 결국 병을 고치지 못하고 있던 찰라, 왕석산이라는 의사가 도착했다. 왕석산은 곧 진단을 내렸다. “이것은 담병(膽病)에 걸린 것이다.” 그리고는 온담탕(溫膽湯)이라는 약을 몇 첩 다려먹이자 여자아이의 병은 금방 나았다.
이게 앞의 이야기들과 어떻게 연결되느냐고? 워워~.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불안과 공포에 잠식당한 여자아이와 그녀를 담병(膽病)으로 진단한 의사. 또 그가 병을 고치기 위해서 담을 따듯하게 하는 탕약(溫膽湯)을 쓴 이유.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 것인지. 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집착의 병, 정충
여자아이가 앓고 있는 병은 정충(怔忡)이다. 한자만 봐도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이 병은 마음(忄)과 관련된 병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정충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충(怔忡)이란 가슴속이 두근거리면서 불안해하는 것인데, 누가 잡으러 오는 것같이 두려워하는 것이 이것이다. 정충은 흔히 부귀에 매달리고 빈천한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생기는 것이다.” 마음에 바라는 바가 있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병, 정충. 사실 여자아이에게 어떤 소원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마음속 깊이 집착한 바가 있었다는 것이며 그것이 정충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정화스님에 따르면 못 오를 나무에 대한 집착을 빨리 내려놓는 것이 하심(下心)이라고 한다. 낮은 마음 혹은 집착을 내려놓는 것. 정충은 이 마음의 벡터와는 정반대에서 작동하는 마음이다.
의역학적으로 말하자면 하심은 마음이 요동치지 않도록 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데 정충은 고요해야할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다. 심(心)은 오행상 불(火)이다. 이 기운으로 몸의 생명력이 만들어진다. 보일러처럼 몸을 따듯하게 하고 온몸에 영양이 공급된다. 우리 몸이 항상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것도 심의 쉬지 않는 운동 때문이다. 하여 심(心)을 몸의 군주라고 부른다. 헌데, 이런 심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면? 그야말로 몸의 재앙에 가깝다. 생각해보라. 심이 일정하게 뛰지 않고 빠르게 뛰었다가 느리게 뛰었다 변덕을 부린다고. 운동을 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생각만 해도 곤란하겠다는 느낌이 온다.
하심을 잃은 우리! 왠지 두근거리지 앟나요?
그래서 하심이란 심이 요동치지 않으면서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이 상태를 유지할 때야 비로소 뭐든지 오래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고 몸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일이야말로 신나고 오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런 일에 더 집착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금방 몸을 지치게 만든다. 몸의 생리적 리듬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무슨 일을 하든 마음(心)이 편안해질 때 비로소 그 일을 오래할 수 있다. 공부에 하심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밥처럼 무미하고 담미(淡味)해서 자극적이지 않은 것일수록 오래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다 같은 이치다.
그런데 어딘가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마음은 쉽게 요동을 친다. 연애를 생각해보라. 어떤 사람을 좋아하다보면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마음이 순식간에 뒤집히기도 하고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살 수 있을까. 절대 못 산다. 당연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져야 한다. 아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사람들은 그걸 권태라고 부르지만 의역학적으로 보자면 그건 생명의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어떻게 마음이 매번 그토록 요동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럼 대번에 정(精)이 고갈되어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상태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보고 평이한 일상이 영위되는 상태를 권태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평이한 일상의 리듬이 연애의 대부분이고 불꽃같은 것 순간이다. 그 순간에 집착하려는 마음만을 계속해서 쫓아갈 때 찾아오는 것이 정충이라는 병인 셈이다. 재밌게도 그 증상은 내가 무언가를 잡으러 열심히 뛰어가는 것과는 정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잡으러 오는 공포감으로 되돌아온다. 맞다. 나의 행동이 뒤집혀서 나를 덮치는 현상. 그게 병의 순리다.
하심을 잃은 심장! 경계-정충-건망의 트라이앵글!
정충은 경계(驚悸)와 건망(健忘) 사이에 있는 병이다. “경(驚)이란 심(心)이 갑자기 놀라서 안정되지 않는 것이고, 계(悸)란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려워 놀라는 것이다.”(『동의보감』) 즉 경계란 깜짝깜짝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를 보이는 병이다. 반면 건망은 우리에게 참 친숙하다. 많이 들어왔던 것이니까. “건망증이란 일을 하는데 시작은 해놓고 끝을 맺지 못하여, 말을 할 때도 처음과 마지막을 알지 못하는데, 이것은 병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날 때부터 어리석고 둔하여 사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동의보감』) 잘 잊어버리는 것이 병이지 원래 그런 사람이 있는 게 아니란다. 주목해야할 것은 이들의 관계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경계가 오래되면 정충이 되고 정충이 오래되면 건망이 된단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오래되면 누가 날 잡으러 오는 것 같은 공포와 불안에 잠식되고 급기야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감을 잡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 그리곤 자기도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며 돌아다니는 병으로 발전하는 것. 이게 이 병들이 그리는 궤적이다.
이 정신병 종합세트(?)의 시작은 심(心)과 담(膽)에서 비롯된다. “경계(驚悸)는 크게 놀란 일이 있어서 생기는 것인데, 이것은 심경담섭(心驚膽懾)이라고 한다.”(『동의보감』) 정충과 건망이 되어 급기야는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버리는 상태로 진행되는 병의 초기단계, 곧 경계는 심(心)이 요동치고 담(膽)이 겁에 질릴 때 생긴다는 뜻이다. 심(心)이 요동쳐서 생긴다는 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데 담(膽)은 어째서 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일까. 바로 여기에 왕석산이 여자아이를 담병(膽病)으로 진단한 이유가 있다.
담, 호랑이 그리고 봄
지난 시간부터 <혈자리서당>에서 줄곧 떠들어댄 이야기들을 좀 상기해보자. 담대함=결단력. 도식적으로 표현하자면 핵심은 이거다. 담이 커야 결단을 잘 한다는 것. 담대해져야 결단력이 생긴다는 것. 이 이야기를 또 하면 짜증이 날 게 분명하니 옆으로 치워두고 담이 어떻게 용맹함을 상징하는 장부가 되었는지를 좀 살펴보자.(담과 결단력의 관계는 '담대한 힘, 입읍이 나가신다'를 참고하세요.)
금원대의 이동원은 일찍이 담(膽)은 소양춘생(少陽春生)의 기(氣)에 속한다고 하였다. 춘기(春氣)가 승발(升發)하면 만물이 생기가 피어나고, 담기(膽氣)가 충만하면 나머지 장부 또한 이를 따르게 되니, 11장(臟)이 담(膽)의 결단을 따른다고 하는 것이다.
─ 신천호, 『문답식 한의학개론』, 성보사, p.116
말이 좀 어렵지만 원리는 간단하다. 담(膽)은 봄의 파릇파릇한 기운들이 언 땅을 뚫고 나올 때의 기운을 담고 있다. 땅속에 묻혀 있는 씨앗에서 싹이 나고 싹이 땅을 뚫고 나올 때는 여기저길 들쑤시지 않는다. 오로지 한 곳에 힘을 집중시켜서 한방에 거기를 뚫고 나온다. 그게 담이 결단하는 모습이자 담의 기운이라는 것이다. 담이 이 길을 내야 씨앗으로부터 싹이 올라오고 열매를 맺고 생로병사가 펼쳐진다. 하여 몸속에 있는 12장부 가운데 담을 뺀 11개의 장부가 모두 담(膽)의 결단을 따른다고 한 것이다.
절기상으로 보자면 담(膽)의 기운은 인월(寅月)의 기운이다. 인월은 호랑이의 기운을 가진 달이다. “인(寅)은 12지신(地神)으로 보자면 호랑이에 해당한다. 니체가 봄바람을 황소에 비유한 것과 마찬가지로, 겨울에서 봄이 튀어나오려면 호랑이처럼 거침없는 기운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중략)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굶주린 호랑이처럼 봄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어린애를 연상시키는 여린 새싹도 실은 엄청난 힘으로 과거를 박차고 나온 용감한 황소며 호랑이다.”(『절기서당』, p.18~19)
인월의 황소와 호랑이. 그것이 몸속에 있는 담(膽)의 형상이다. 이런 담의 기운이 제대로 발휘되면 이렇게 된다. “큰 바람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바람에 상하지 않고,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추위와 더위의 침습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기(氣)가 담(膽)에 의하여 충만하여야만 사기(邪氣)가 침입을 할 수 없다.”(『문답식 한의학개론』, p.116) 딱 봐도 담의 포스가 좀 느껴진다. 장군감이 확실하다.(인월과 호랑이 기운은 '솟아라 호랑이 기운! - 봄을 여는 지지'를 참고하세요.)
담기가 약해지셨나......
이쯤 되면 왜 의사가 담병(膽病)이라고 진단했는지 짐작이 간다. 바로 호랑이의 기운을 잃어버린, 이빨 빠진 맹수 같은 담(膽). 그것이 공포와 불안의 원인이다. 우주의 물리적 법칙은 그렇다. 가장 용맹한 것은 그 용맹함의 크기만큼 나약하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낮은 것과 같다. 반드시 이 양변이 동시에 작동해야 존재가 구성된다. 그러니 몸에서도 가장 용맹한 담이 병들면 자연스레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변한다. 담(膽)이 병들었을 때 생기는 증상들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일단 담병에 걸리면 한숨을 푹푹 쉰다. 또한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고, 목구멍엔 뭔가가 걸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침을 자주 뱉는다. 그냥 한 눈에 봐도 참 용맹과는 거리가 멀다.
담병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열(寒熱)과 관련이 있다. “담병의 증상으로는 흔히 오한과 발열이 나타난다.”(『동의보감』) 오한이 나면서도 열이 나는 증상. 바로 우리가 흔히 앓는 감기증상이 담병의 증상 가운데 하나다. 하여 어린애들이 감기에 잘 걸리면 담(膽)을 의심해야 한다. 특히나 혼자 잠자기를 무서워한다면 담의 문제일 가능성이 거의 100%에 해당한다. 여자아이의 증상도 이러했다.
추측컨대 여자아이는 부잣집에서 자란 것이 분명하다. 기록에 나와 있는 것처럼 계집종을 여럿 부릴 정도의 재력을 갖춘 집안인 것이다. 이러면 담기(膽氣)가 약할 것이 뻔하다. 왜냐고? 담기는 시련과 마주해야 단련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 언 땅을 뚫고 나와야 하는 봄의 새싹처럼, 굶주려 죽지 않기 위해서 온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먹잇감을 응시하는 호랑이처럼. 이 야생 혹은 생존의 절박함 앞에 서야 담기가 발휘된다.
담기는 시련과 마주해야 단련된다!
그럼 의사는 왜 담을 따듯하게 하는 처방을 내린 것일까. 이 처방엔 지금 담이 얼어붙어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얼어붙은 담이 공포와 불안의 근원에 해당한다고 진단한 셈이다. 이른바 냉담병(冷膽病)에 걸렸다는 것. 일단은 그것을 풀고 담을 따듯하게 해야 공포와 불안도 사라진다. 『동의보감』에는 담(膽)이 차가워지면 잠조차 잘 수 없다고 되어 있다. 담의 용맹함이 없어지고 두려움이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또한 잠을 자더라도 악몽을 꾸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물론 반대의 증상도 존재한다. 담이 너무 뜨거우면, 이른바 열담병(熱膽病)에 걸리면 성급함을 주체하지 못해 사고를 친다. 용맹함이 아니라 권위와 힘을 앞세운 폭군이 되는 것이다. 잠도 너무 많이 자게 된단다. 담(膽)은 중정지관(中正之官)으로 불린다. 몸의 중(中)을 지키는 관리라는 뜻이다. 그런 관리가 스스로 냉열을 조절하지 못하면 몸 또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 중(中)을 지키는 관리의 중(中)을 되찾기 위해 온담탕을 처방했던 것. 그럼 혈자리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혈자리는 어떤 혈일까. 협계(俠谿)가 바로 그런 혈자리다.
협계, 담의 용맹함을 위하여
협계(俠谿)는 족소양담경의 수혈(水穴)이다. 담경의 물기운을 조절할 수 있는 혈자리라는 뜻이다. 담이 열담할 때 협계를 보(補)하면 담을 차게 만들고, 사(瀉)하면 담을 따듯하게 만든다. 보사의 방법은 간단하다. 담경이 흐르는 방향 쪽으로 자극을 가하면 보(補), 그 반대방향으로 자극을 주면 사(瀉)에 해당한다. 담경은 바깥쪽 눈가에서 시작해 몸통을 타고 내려가서 네 번째 발가락 끝에서 끝난다. 곧 발등에서 발가락이 있는 방향으로 자극을 주는 것이 보(補)에 해당하고, 반대로 발가락에서 발등 쪽으로 자극을 주는 것이 사(瀉)에 해당한다.
그럼 그 위치는 어디일까. 위치는 협계(俠谿)라는 이름 안에 담겨 있다. 협(俠)은 끼여 있다는 뜻이다. 협(夾)이라는 글자에서 비롯된 이 글자는 두 사람이 한 사람을 부축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자세히 보시라. 사람 두 명이 한 사람을 부축하고 있다. 계(谿)는 시냇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협계라는 혈명(穴名)은 끼여 있는 계곡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곧 네 번째 발가락과 다섯 번째 발가락 사이에 끼여 있는 작은 계곡이 협계의 위치다. 이렇게 말로 하면 당연히 못 찾는다.^^ 그림을 보시라.
앞서 살폈듯이 협계는 주로 담이 차가워져서 잠을 자지 못하는 증상에 많이 사용된다. 잠이 잘 오지 않으시는 분들은 협계를 사(瀉)해보시길 바란다. 또한 협계는 간기(肝氣)를 소통시키고 열을 내려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머리로 열이 올라가서 생기는 현훈(眩暈)이나 두통 등에도 효과적이다. 어린아이들이 감기에 걸렸을 때 이곳을 자극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병은 안과 밖의 합작품이다. 내가 병의 입구를 열어주었기 때문에 병은 그 길을 따라 몸으로 들어온다. 담(膽)은 이 길을 호위하는 용맹한 무장이다. 헌데 이 담이 한열(寒熱)로 무기력해졌을 때 좀처럼 걸리지 않던 감기도 쉽게 걸린다. 이 담의 용맹함을 되찾아주는 혈자리, 그게 협계(俠谿)라는 것을 꼭 기억해두자. 또한 용감하게 한발 내딛어야 하는데 마음속에 두려움과 공포가 일어날 때 넷째 발가락과 다섯째 발가락 사이의 계곡을 사정없이 눌러주자. 곧 두려움과 공포감이 사라질 거다.
두려움과 공포감이 밀려올 때는 협계!
두려움과 공포는 시작하는 기운이 없어졌을 때 가장 커진다. 스스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펼쳐보려는 연습을 중단할 때 불안과 공포, 두려움의 싹이 튼다. 시작하는 기운은 봄의 기운이자 목기(木氣)다. 청춘이고 새싹이다.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고자 할 때, 지금의 상황을 지속시키고자 할 때 이 청춘의 힘 또한 땅속에 묻힌다. 허나, 우주엔 그런 법이 없다. 봄이 단 한 번도 오지 않은 해란 없다. 두려움과 공포, 불안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당장 스스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청춘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는 몸의 호랑이, 담의 생리다. 시작하라. 청춘이여.
류시성(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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