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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속이 뒤집히는 고통! 멀미에는 중저혈을 눌러주세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1. 28.

멀미의 명약, 중저(中渚)


멀미와 땜통


11살. 머리에 땜통이 생겼다. 반질반질한 속살이 조금씩 드러나더니 500원짜리 동전크기만큼 빠지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2000원이 조금 넘게 될 무렵, 엄마가 나섰다. 최신의학의 기술을 찾아 시내로 향한 것이다. 시골에서 시내까진 버스로 2시간. 학교는 땡땡이. 나는 신이 났다. 흥부가에 나오는 운봉을 지나 큰 고개를 두서너 개나 넘어야 도착하는 시내. 하지만 이 위대한(?) 세계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몸져누웠다. 멀미였다. 시내에 있는 외갓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방에 이불을 덮고 한참을 누워있어야 했다. 하늘이 노랗고 천지가 빙빙 돌면서 헛구역질이 난다고 했다. 엄마가 방에 쓰러져 있는 사이, 나는 호랑이 같은 외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오락실로 향했다. 촌놈에게 펼쳐진 향락과 사치의 오락실. 한참을 오락에 빠져있다 껄렁껄렁한 막내 외삼촌에게 걸려 뒷목 잡혀 끌려나오기까지 엄마는 깨어나지 못했다.
 


얼마 후. 간신히 깨어난 엄마는 날 이비인후과로 데려갔다.(난 왜 이렇게 이비인후과와 인연이 깊은가. 탐구해볼만한 주제다.^^) 거기엔 젊은 의사가 앉아 있었다. 요리저리 땜통들을 살펴보고 만져보더니 의사는 말했다. “영양실조네요.” 우르르 쾅쾅! 웬 영양실조? 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는 엄마의 울음보를 터트렸다. 밭일이다 목장일이다 바쁜 와중에 자식새끼를 방치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던 것.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이 한순간에 원망스러워졌던 거다. 하지만 난 의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난 그때도 역시 너무 잘 먹고 있었다.(--;) 친구들과 산을 뛰어다니면서 메뚜기며 잠자리며 개구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때 되면 온갖 과일서리에 열을 올렸다. 감을 서리하러 갔다가 땅벌에게 호되게 당해 36계 줄행랑을 친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영양실조라니! 최신의학은 그렇게 엄마의 눈물샘만 터트려 놨다.
 

병원을 나와 엄마는 날 시장으로 데려갔다. 굳게 다짐을 한 모양이었다. 잘 걷어 먹이리라! 난 거기서 국수 한 그릇을 먹었다. 병원에 갈 때면 어김없이 그 국수집에 들러 국수를 사줬다. 아, 난 아직도 그 국수의 맛을 잊을 수 없다. 늙고 뚱뚱한 할머니가 대충 냄비에 끓여서 주던 국수 한 그릇. 그걸 고개를 처박고 땜통을 훤히 드러내며 폭풍흡입하고 있던 나. 엄마는 자기 국수를 내게 다 덜어주고 국물만 몇 모금 마셨다. 난 날 챙겨주는지 알았다. 하지만 그건 멀미 때문이었다. 많이 먹었다가는 또 다 토해낼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그날 엄마는 버스 안에서 참 많이 울었다. 뒤에 앉은 내가 봐도 어깨가 들썩거렸다. 산길을 달리는 버스와 들썩이는 어깨. 그 리듬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그때 엄마 뒤에 앉아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과자를 먹어치웠다. 듬성듬성 빠진 머리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때까지만 해도 난 엄마가 멀미의 고통 때문에 그렇게 운다고 생각했다.



멀미의 메커니즘


엄마는 시내-여자였다. city-women! 우체국 직원이라는 아버지의 거짓말에 속아 지리산 골짜기로 시집을 왔다. 시내에 살 땐 멀미가 없었다. 버스를 타도 평지를 달리고 짧은 거리만 타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 시내-여자가 고개를 넘고 또 넘어야 하는 산길을 2시간 달려야하니 멀미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만이 아니었다. 촌에서만 살던 시골-여자, 할머니도 멀미의 여왕이었다. 시골에서 시내로 나갈 때면 어김없이 멀미에 시달렸다. 할머니는 아직도 움직이는 것들만 타면 멀미를 한다. 멀미하는 여자들. 익숙했던 삶의 공간을 벗어나자 그녀들은 멀미에 시달렸다.


멀미는 탈 것들과 함께 등장했다. 배를 타고, 마차를 타고, 기차를 타면서 멀미라는 병이 생겼다. 근대 초기엔 시속 20km로 달리는 기차 안이 멀미 환자로 가득했다. 그들에겐 너무나 빠른 속도, LTE였던 것. 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땅이 저절로 움직이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몸은 곧바로 반응했다. 머리가 빙빙 돌면서 구역질이 나고 아무리 눈을 감고 있어도 그 증상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빙글빙글 맴맴 도는 천지. 이 맴맴 이라는 단어에서 멀미라는 말이 생겨났다. 맴맴 에서 멀미로. 맴맴~ 빙글~ 빙글~. 이렇게 쓰기만 해도 멀미가 날 거 같다.(--;)


왜 멀미를 멈추게 하는 기술을 발명되지 않을까. ㅠ.ㅠ


멀미의 역사는 깊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 히포크라테스(B.C 460~370)도 의서에 멀미에 관해 적었다. 지중해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그리스인들에게 뱃멀미는 아주 흔한 병이었다. 멀미로 인해 생기는 구역질이라는 단어 ‘nausea’ 또한 배를 뜻하는 ‘naus’가 그 어원이란다. 그만큼 오래된 병이자 일상적인 병이었던 셈이다. 헌데 지금도 멀미를 완전히 해결해준다는 기술은 없다. 대신 우주멀미라는 말까지 생겼다. 우주비행사들이 걸린다는 멀미. 왜 멀미를 멈추게 하는 기술은 발명되지 않는 걸까.


멀미는 분리경험이다. 걷지 않고도, 자기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이 살고 있는 시공간으로부터 급작스럽게 분리되는 경험. 이 체험이 천지를 빙글빙글 돌게 한다. 간혹 3D영화를 보고 나서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운 느낌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자기 발로 가지 않고도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신세계로. 이 낯선 세계와의 조우. 그것이 멀미를 유발한다. 그런 점에서 멀미는 일종의 문명병에 해당한다. 문명의 핵심은 편리다. 몸을 쓰지 않고도 무언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세계. 몸은 여기서 혼란을 겪는다. 


몸에도 속도와 길이 있다. 계절의 속도, 하루의 속도, 내 삶의 속도, 그것을 따라 몸에서 유동하는 기의 속도. 이 속도들이 몸의 속도를 만든다. 이 몸의 속도를 인위적으로 벗어날 때 생기는 것. 그것이 멀미다. 멀미가 서양의학에서 ‘가속도병’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몸은 알게 모르게 천지자연의 속도와 일상의 속도를 따라간다. 내가 살아가는 시공간과 그 속에서의 흐름. 이것에 딱 달라붙어 있다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 자체가 몸이다. 그래서 조금은 알겠다. 왜 몸을 우주(宇宙)라고 하는지. 몸을 탐구하는 것이 왜 우주를 탐구하는 것과 동급인지를. 한의학에서 멀미의 증상은 역란(逆亂)에 가깝다. 역(逆), 거슬러 올라서 란(亂), 어지럽다. 무엇이 역(逆)하고 란(亂)하게 만드는 걸까.


『영추』에서는 “황제(黃帝)가 묻기를, ‘무엇을 역란(逆亂)이라 하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기백(岐伯)이 대답하였다. ‘청기(淸氣)는 양(陽)에 속하는데 도리어 음(陰)에 있고 탁기(濁氣)는 음(陰)에 속하는데 도리어 양(陽)에 있으며, 영기(營氣)는 도리어 양분(陽分)에서 순행하고 위기(衛氣)는 도리어 음분(陰分)에서 역행하여 청기와 탁기가 서로 범하여 가슴속에서 혼란하게 되는 바, 이것을 태만(太悗)이라 합니다. 그런데 기가 심(心)에서 역란(逆亂)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 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게 됩니다. 기가 폐(肺)에서 역란하면 몸을 굽혔다 젖혔다 하며 기침할 때 갈갈거리는 소리가 나고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숨을 내쉬게 됩니다. 장위(腸胃)에서 역란하면 곽란(霍亂)이 생깁니다. 팔다리에서 역란하면 팔다리에 궐증(厥證, 무기력증)이 생깁니다. 머리에서 역란하면 머리가 아프고 무거우며 어지러워 넘어지게 됩니다.’”라고 하였다.


─『동의보감』, 「내경편·기(氣)」, 법인문화사, p.261 


핵심은 음양이 자기 갈 길을 잃었다는 것에 있다. 맑은 기운과 탁한 기운이 서로의 영역을 넘어서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만드는 것. 그것이 역란을 일으킨다. 어디에서 이런 혼란이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그 증상도 천차만별이다. 심(心)에서 일어나면 가슴이 답답하고, 폐(肺)에서 일어나면 재밌게도 갈갈갈 소리를 낸단다. 머리에서 생기면 어지럽고 넘어질 것 같은 현기증이 일어나고, 소화기관에서 생기면 곽란(霍亂)이 일어난다. 딱 봐도 멀미의 증상들을 종합해놓은 것 같은 이것. 산만하게 뒤섞이고 차서(次序)가 없어진 상태. 이것이 역란(逆亂)이자 멀미다. 우리가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저것 산만하고 두서없이 할 때 혼란스럽고 속이 메스껍다. 그런 삶 자체를 구역질난다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증오하기도 한다. 그 말 자체가 그냥 몸의 반응이다. 그렇게 사는 건 온몸의 기를 거꾸로 솟구치게 해서 어지럽고 구역질나게 한다는 것. 몸은 참 정직하다.



멀미-대란, 토사곽란(吐瀉霍亂)


『동의보감』엔 멀미에 관한 기록이 단 한 건 등장한다. “뱃멀미로 토하고 설사하는 것. 뱃멀미로 몹시 토하거나 설사하여 갈증이 생겼을 때 물을 마시면 곧 죽는다. 이때는 동변(童便)을 마시는 것이 가장 좋고, 자기 오줌을 마셔도 좋다.” 왠지 뱃멀미는 절대 해서는 안 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헌데 좀 아쉽다. 멀미에 대해서 아주 상세하게 가르쳐줄 거 같은데 이게 전부다. 흥미로운 건 멀미에 대한 기록이 「곽란(霍亂)」파트에 실려 있다는 점이다. 앞서 살폈듯이 장위(腸胃), 즉 소화기관에서 역란(逆亂)이 발생했을 때 생기는 게 이 곽란(霍亂)이다. 허준은 멀미를 곧 이 소화기관의 문제로 파악했다는 얘기다.


곽란(霍亂)은 그 병명부터가 좀 재밌다. 곽(霍)은 비 우(雨)와 새 추(隹)가 합쳐진 글자다. 비가 와서 새가 푸드덕 거리면서 나는 모양이 이 글자의 의미다. 비 피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빠르게 옮겨 다니는 모습이 떠오른다. 란(亂)은 얼핏 봐서는 상상하기 힘들겠지만 어지럽게 엉킨 실타래를 상형한 글자다. 그러니까 아주 빠르게 기(氣)가 얽히고 갈 곳을 잃은 상태가 곽란의 상태다. 흔히 토사곽란(吐瀉霍亂)이라고 부르는 게 바로 이 곽란이다.


곽란은 급박하게 기의 상태에 변란이 생긴 것이다. 대체로 평소 속에 열이 몰려 있는데다가 겉으로 한사(寒邪)에 감촉되면 일시에 음(陰)과 양(陽)이 뒤섞이게 된다. 그리고 이 병은 본래 음식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날 것과 찬 것을 지나치게 먹어서 습열(濕熱)이 속에 심히 몰리게 되면 중초(中焦)의 소화 작용이 상실되어 기가 오르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하게 되는 것이다. 곽란은 찬 것을 마시거나 한사(寒邪)에 감촉되거나 지나치게 배가 고프거나 몹시 성을 내거나 배나 차를 타고 멀미를 하여 위기(胃氣)를 상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토하고 설사하는 증상이 동시에 일어나는데, 약을 더디 쓰면 잠깐 사이에 구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다.


─『동의보감』, 「잡병편·곽란(霍亂)」, 법인문화사, p.1272


앞서 본 역란(逆亂)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음양이 뒤섞이는데 구체적으로 기가 오르내리지 못하기에 생긴다는 것. 음양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순환하고 몸을 오르내려야 하는데 그것이 콱 막혀서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를 뿜는다. 상상만 해도 찹찹해지는 몰골이 아닐 수 없다. 곽란은 중한 것이 있고 가벼운 것이 있다. 중한 것은 건곽란(乾霍亂)이고 가벼운 것은 습곽란(濕霍亂)이다. 건곽란은 말 그대로 아주 강건한(乾) 곽란이다. “건곽란일 때 죽는 경우가 많은 것은, 위로는 토하지를 못하고 아래로는 설사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하게 한 음식물이 배출되지 못하므로 정기(正氣)를 꽉 막아서 음기(陰氣)와 양기(陽氣)의 운행을 막게 되니, 답답하여 안절부절못하고 안타까워 날뛰며 숨이 차고 배가 불러 오르다가 죽는 것이다.”



헉! 토하지도 싸지도 못하면 배가 불러 오르다가 죽는다니. 무서운 질병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멀미가 심할 때 한바탕 토악질을 하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든다. 그러면 멀미가 가라앉는다. 바로 이렇게 토하고 설사하면서 밖으로 다 뿜어내는 것이 습곽란에 해당한다. 물론 너무 많이 뿜어내면 곤란하지만 정말로 뿜지 못하는 건곽락일 때는 어떻게든 토하게 하거나 설사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죽는다.


헉!!!....대체 오줌이 뭐 길래?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왜 멀미에 걸려 죽게 됐을 때 오줌을 먹어야 한다고 했을까. 대체 오줌이 뭐 길래? 『동의보감』에 따르면 그 따듯한 오줌은 사실 성질이 차다. 그래서 오줌을 마시면 위에 떠 있는 화기(火氣)를 데리고 밑으로 내려간다. 그것의 효과가 어찌나 빠른지 『동의보감』에서도 “매우 빠르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줌은 맛은 짜다.(먹어본 게 틀림없다.--;) 더구나 심폐(心肺)를 윤활하게도 하고 열로 인한 광증(狂症)이 생겼을 때 그것을 풀어주고 피부와 그 밑에 있는 살점을 윤택하게도 해준단다. 뭐 이거 완전 만병통치약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헌데 더 놀라운 건 이 오줌을 40년간 먹은 여자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 잠깐 그 스토리를 감상해보자.


일찍이 어떤 늙은 부인을 만났는데 80살을 넘었으나 얼굴 모양은 40살과 같았다. 그래서 그 연유를 물으니, 나쁜 병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인뇨(人尿)를 먹어보라고 알려주어 40여 년간을 먹었더니 늙어서도 건강하고 다른 병도 없다고 하였다.


─『동의보감』, 「탕액편·인부(人部)」, 법인문화사, p.1863


그렇다. 뭐든 40년만 믿고 꾸준히 하다보면 다 통하게 되어 있다!^^ 더구나 동안의 얼굴까지. 그럼 이 오줌을 동안을 위한 건강식으로 아주 대대적으로 홍보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해도 좀 거시기하다. 진짜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지 않는 한 절대로!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당연히 방법이 있다. 바로 삼초(三焦)를 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제일 빠른 방법이다. 왜냐고? 주지하시다시피 곽란은 음양의 길이 막혀서 생기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삼초(三焦)는 수곡(水穀)이 통하는 길인 바, 사기(邪氣)가 상초(上焦)에 있으면 토하기만 하고 설사는 하지 않으며, 사기가 하초(下焦)에 있으면 설사만 하고 토하지는 않으며, 사기가 중초(中焦)에 있으면 구토와 설사를 함께 한다. 곽란(霍亂)은 (…) 청탁(淸濁)이 서로 범하여 음기(陰氣)와 양기(陽氣)가 가로 막혀서 생긴다.” 이 뒤엉킨 음양의 통로를 뚫으면 멀미도 곽란도 쉽게 해결된다. 길은 삼초(三焦)에 있다.


삼초는 음양의 통로다. 아래로부터 위까지, 위로부터 아래까지. 수승화강, 몸의 상하축을 연결해주는 것이 삼초다. 하여 지난 관충(關衝)편에서 살폈듯 삼초는 몸을 태극상태로 유지시키는 통로다.(관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불 빼 드릴까요? 관충(關衝)'을 참고하세요.) 이 통로를 따라 음양이 순환하면서 몸의 항상성이 유지된다. 항상성이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일정한 리듬과 박자를 가진다는 것. 그런데 이 항상성에 일대 혼란이 야기되면서 생긴 것이 곽란이기에 삼초의 길을 통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럴 땐 삼초경(三焦經)의 혈자리 가운데 중저(中渚)가 특효다.



손등의 멀미약, 중저(中渚)


중저(中渚)는 수소양삼초경의 수목혈(兪木穴)이다. 삼초경 가운데서도 목(木)의 기운을 가진 혈자리라는 뜻이다. 목(木)은 뚫는 데는 명수다.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듯이, 나무가 하늘을 뚫고 끝없이 올라가듯이, 이 목의 기운은 뚫는 것을 그 본분으로 삼는다. 우리 몸에선 간(肝)이 그 기능을 담당하는데 간(肝)은 몸에서 막힌 곳을 뚫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주 업무로 한다. 그러나 안팎으로 소통이 되지 않을 땐 이 목기(木氣)가 아무렇게 뻗쳐 사고를 친다. ‘확 그냥 막 그냥 여기저기 막 그냥’ 아무에게나 화를 내고 분노한다. 막강한 발산의 힘, 뚫는 힘이 가져오는 부작용인 셈이다. 허나 곽란으로, 멀미로 꽉 막힌 삼초의 길을 뚫기 위해선 이 강한 목기(木氣)가 필요하다. 중저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혈자리다.


중저의 저(渚)는 모래섬이라는 뜻이다. “삼초경수도(三焦經水道)를 강물에 비유하여 그 기맥이 이곳 혈자리에 계속 머무는 것이 마치 강에 있는 모래섬과 같아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 산차이원화, 『내손으로 하는 경혈지압 마사지 324』, 국일미디어, p.120


쉽게 말해 삼초경의 기운들이 모여서 중간(中)에 모래섬(渚)을 이루고 있는 혈자리라는 것. 그만큼 기운이 강한 혈자리라는 얘기다. 얼마나 기운이 센 혈자리면 이런 진술까지 등장한다. “만물이 생성하고 경락이 충실하여 천지의 여기(돌림병을 일으키는 기운)를 방지한다. 중풍과 중서(中署)로 인한 병을 막아주므로 중저라고 이름한다.” (『내손으로 하는 경혈지압 마사지 324』, p.120)


멀미엔 중저혈이 최고!


돌림병에 중풍, 중서(더위 먹은 것)까지 막아주는 혈자리란다. 이렇게 기운 센 혈자리에 멀미가 문제겠는가. 중저는 그 강한 힘으로 삼초를 소통시킨다. 음양의 통로를 목(木)의 기운을 뚫는다. 오줌을 마시지 않아도 위로 뜬 열을 내려주고 긴장된 근육을 풀어서 몸을 편안하게 만든다. 꼭 멀미가 아니어도 간혹 생기는 현기증에도 중저는 효과를 발휘한다. 요새 새롭게 유행하는 메니에르병도 이 중저로 다스린다. 그럼 중저는 어디에 있을까.


중저혈의 위치는 바로 여기!

중저는 손등에 있다. 새끼손가락의 중수골과 네 번째 손가락의 중수골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 눌러보면 쉽게 아~ 여기구나 하는 느낌이 드실 거다. 멀미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차를 타기 전이나 멀미의 기운이 느껴질 때 이곳을 오랫동안 자극해주면 된다. 그럼 자기도 모르게 몸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몸엔 수많은 길이 있다. 감정의 길, 생각의 길, 음식의 길, 피와 기의 길. 이 길들이 그대로 내 일상의 길이 되고 실제로 존재하는 유형의 길과 연결된다. 이 길들은 끊어지지 않는다. 다만 막히고 혼란스러워지고 어긋날 뿐이다. 이것이 우리에겐 멀미를 경험하게 한다. 이 길을 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삼초의 역할이자 중저의 기능이다. 이제 기억하라. 손등의 멀미약을.

내 500원들의 정체. 이제는 그것을 안다. 화기(火氣). 그것이 머리를 숭숭 빠지게 했다. 젊은 의사의 약은 효과가 없었다. 동네에 살고 계시던 우리 할머니의 아버지, 그러니까 호칭을 뭐라고 불러야할지 진짜 난감한 그 할아버지의 약을 바르고 나았다. 검고 시커먼 똥처럼 생긴 곤약. 그것을 구두약처럼 머리에 바르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또 그렇게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 지금이라면 아마도 한 계절 혹은 한 절기만 넘기면 나을 병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이젠 그 절기와 계절, 그것들과 무관하게 머리가 빠진다. 젠장! 우울하다.(--;) 엄마와 할머니는 아직도 차를 오래 타면 멀미증상을 호소한다. 이제 내가 그녀들의 손을 만져줄 차례가 된 것 같다. 어쩌면 나도 그 손을 보고 엄마처럼 어깨가 들썩이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그랬던가. 인생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서 서로서로 이어져 있다고. 그것이 삶의 길이라고.



류시성(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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