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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린 선생님의 임진왜란 이야기

[허남린 선생님의 임진왜란 이야기] 깡보수와 아리송한 환상

by 북드라망 2026. 3. 17.

깡보수와 아리송한 환상 

캐나다 UBC 아시아학과 허남린 선생님 


모든 것에는 인간적이거나 납득이 가는 범위라는 것이 있다. 공공선은 이들 울타리 안에서 자라며 인간사회를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몇몇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20-30대가 점차 보수화하고 있음을 본다. 최근에 있었던 일본에서의 총선이 이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90퍼센트 정도가 표를 던졌다고 한다. 들어본 적이 없는 정말 소름이 끼치는 수치이다. 일본의 사회당이 가장 활기 있던 시기는 일본이 가장 융성하던 시기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당선자가 제로였다.

보수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일정 범위 안에서 지킨다는 뜻이다. 타자에 대한 관용을 포함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면 일정 범위를 논할 필요도 없이 보수는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기 욕망밖에 없고 지킬 것이 없는데, 무엇을 지키려 한다는 것은 아예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젊은 층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이 그렇게 많고 풍요로운가? 지킬 것이 그토록 많아 보수로 흘러가고 있는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자신들이 가진 것이 많지 않음에도, 뺏길 것이 별로 없음에도, 무조건 보수라면 그것은 자신들이 뺏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많이 갖고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런 환상 속에 살면서, 그 환상을 지키려고 보수적이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들은 무슨 환상을 갖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환상을 채울만한 그럴듯한 환상의 실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환상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자기 환상을 망치는 적대적 세력이 존재한다는 또 다른 환상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유추해 본다. 그들만 없으면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을 방해하고 빼앗아 가려는 적대 세력이 있다는 환상으로 이어지고, 그 환상을 현실에 투영해서 보수가 된 것은 아닐까? 알쏭달쏭하다.

분명한 것은 그런 환상 속에 사는 지나친 보수들이 여러 나라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이다. 실체도 없는 환상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하는 짓거리란 거의 모두 약자를 배척하면서, 동시에 약자를 등쳐 먹으려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무조건 돈 싸 들고 와서 투자하라고 윽박지르면서, 동시에 그들만 없으면 자기들의 천국이 될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다. 실제로 그런 환상이 미쳐 날뛰면서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넣고, 환호를 지르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한다. 무서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고 하는 본능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먹이를 뺏으려 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한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물리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납득할 만한 이해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지독한 환상에 살고 있는 부류가 한국에도 적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정말 이해 자체가 되지 않는 집단도 있다. 지나치게 많이 가진 것도, 과도하게 광분하며 지킬 것도 없는데, 무조건 보수가 되어 이에 절어 있는 층이 지역에 따라 두껍게 형성되어 있다. 이들은 정말 무엇을 막무가내로 지키려 하는가?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모델이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니어가 되어 갈수록 진보적으로 되어 가는 것은 인간답고 살만한 세상을 향한 자연스런 흐름이다. 아주 쉽게 생각하면, 사회가 진보적이어야 시니어를 포함해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 촘촘해지기 때문이다. 각종 사회보장제도는 진보의 산물이다. 보수는 이를 죽이려 하고 작게 만들려고 한다. 사회보장제도는 보수의 적이다. 진보의 목소리가 크면, 다양한 사회보장제도가 만들어지고, 그 혜택은 약자나 시니어를 넘어 모두가 더불어 누리며 같이 살아가게 된다. 때문에 사회의 구석구석을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어, 시니어 시민층의 진보성은 사회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다. 그나마 우리 주변에 자연이 어느 정도 보호되어 있는 것도 그들의 진보가치의 덕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꼴통 보수는 인구학적 관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역사상 가장 특이한 집단이다. 그들은 학문의 큰 난제로 남아있다. 아마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여러 이론적 시도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녹녹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 납득이 갈만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이해한다고 할 때, 그것은 모두 합리성의 원리 위에 서 있다. 납득이 간다는 것은 그것이 합리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뜻이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선사회는 보수가 되다 못해 점차 깡보수가 되어 갔다. 그 보수성은 결코 다수의 바람이 아니었다. 이는 모든 권력과 부를 독점하고 마음대로 욕망을 휘두르던 소수의 지배계급이 공고하게 구축해 간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권력과 재물을 독점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러한 경험을 겪은 후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지키고, 이를 더욱 늘리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렇게 해서 사회 전체가 그들을 위한 세상으로 변해가면서, 그들은 더욱 보수적인 세력으로 진화되어 갔다.

인간 행동의 가장 기본 원리인 합리성 가운데 숨어있는 나만의 욕심, 나만의 욕망, 그 가장 더러운 속성이 그들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지배했다. 남이 손대기 전에, 다른 계층으로 옮겨가기 전에, 갖고 있는 것을 지키자, 그것을 더욱 늘려 이를 누구도 넘볼 수 없게 크게 만들자, 이러한 식으로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갔다.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자기중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들은 아주 더럽게 탁월했고 변함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조선사회는 그리 이해하기 힘든 사회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는 힘없이 지배당하는 층에서 보면 지옥이었다. 소수의 한쪽이 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리고 높은 담을 더 높이 쌓으면 쌓을수록, 다수의 인민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배고파 힘이 없어 대들 수도 없었고, 더구나 일어나 뒤집어엎을 힘도 없었다.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소수 집단이 전례 없는 성공을 구가했던 사회였다. 그렇게 몇 세기가 흘러가다 모두에게 파국을 안겼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세상은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굴절된 합리로도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에는 뚜렷한 실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그들이 그냥 거의 맹목적으로 붙잡고 있는 환상뿐이다. 환상에 지배당하는 세상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그러한 농락을 즐기며 환상하는 이중 환상에 빠진 세상이 된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몇 자 적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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