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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의 동행

by 북드라망 2026. 3. 3.

병과의 동행

성승현(감이당)


끔찍한 암?
암 진단을 받은 이후 수술과 회복의 시간을 보내는 데 한 해를 다 보내고 있다. 사실, 암이라는 큰 병에 걸리고 나면 존재가 변환되는 경험을 할 줄 알았다. 출판사에서 이에 대한 글을 짧게나마 써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별다를 것이 없었다. 느끼고 깨달은 게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서사랄 것도 없다. 암환자라면 겪었음직한 비슷비슷한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뻔한 투병기를 쓰게 될까봐 그만두기를 몇 번이나 했다. 하지만 미련이 남았다. 나 역시 이 시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기에, 이런 계기가 생긴 것이 고마웠다. 끄적끄적 적어두었던 메모들을 다시 살펴보고, 이 사건을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 돌아봤다.


‘암’이라는 사건과 처음 맞닥뜨렸을 때, 생각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힘들다느니, 후회가 된다느니 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고 있던 공부, 강의 준비에 열중하려고 노력했다. 억지로 그런 게 아니었다. 어쩌면 닥칠지도 모를 ‘죽음’을 생각하니, 공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텍스트들을 놔두고? 남은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던 거다. 게다가 그 시간 동안은 어쩐 일인지 감정도 평온하게 흘러갔다. 화나 짜증,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것에 너그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남이 보면 암에 걸린지도 모르겠다’는 말로 나의 평정한 일상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모든 게 지금까지 공부한 보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생노병사를 대하는 스승들의 태도를 배웠고, 그것이 이런 위기의 순간에 표현이 되는구나 싶었던 것.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스스로도 속아 넘어간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상소견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이후, 암 진단이 확정되고,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을 하기까지 나는 ‘암’이라는 말을 굳이 꺼내고 싶지 않았다. 암에 걸린 사람들이 암환자임을 숨긴다고 하던데, 어떤 심정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내 일상의 모든 것이 암이라는 주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꽤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내려고 했던 게 담담해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상 바깥의 삶, 그러니까 암환자로서의 삶을 살기 싫었던 거다. 암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동일화하려는 덩어리가 아닌가. 불교에서도 오온(색수상행식이라는 다섯 가지 덩어리)을 모든 고통의 근원으로 본다. 덩어리로 된 것은 ‘자기’를 고수하려는 집착에서 나온다. 작디작은 집착이 작은 덩어리가 되고, 그 덩어리가 커지면서 존재 자체가 되는 상상을 했더니, 말 그대로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불교를 비롯해 인문학 공부를 오랜 시간 했는데, ‘나를 버리고 비우는’ 공부의 방향과는 정반대 벡터를 향하고 있는 병에 걸렸다니! 스스로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병을 끔찍한 것으로 여겼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환자로 사는 게 어때서!
수술이 끝나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나는 바로 공동체에 복귀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체력을 조절해나가면 남은 일정을 소화하지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체크하기보다는 빨리 일상에 복귀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남겨둔 일들, 책임져야 할 일들을 몸보다 앞서 생각하는 습관 또한 여전했다. 그러던 와중에 공동체에서 ‘남은 일정은 신경 쓰지 말고, 회복에 힘쓰라’는 얘기를 듣게 됐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 휴식이 길어지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멈춤’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막상 이렇게 흘러가자, 내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쉽게 피로감을 느꼈고, 몸에 남아있는 통증도 여전했다. 그제서야 알게 됐다. 수술과 통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자, 서둘러 ‘암환자’ 딱지를 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고. 동시에 아직은 환자로 살 때라는 것도 알게 됐다.


5년 전 즈음 일이 생각난다. 어머니가 암 수술을 하게 됐다. 호방한 성격의 어머니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며 씩씩하게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너무나 약해졌고, 소심해졌다. 나는 어머니가 어서 빨리 수술 이전의 상태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마음을 약하게 먹으니 일상이 그렇게 위태로운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책을 여러 권 가져다드리며 필사해보길 권했다. 당시 감이당에 ‘정화스님의 멘토링’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스님께서는 “그 마음은 어머니에 대한 폭력”이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어머니 속도대로 회복을 하고 있는 거라고, 회복을 하고 있는 만큼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니 자식 마음대로 어머니의 속도에 간섭하지 말라고 따끔하게 혼을 내셨다. 그때 너무 부끄러웠고, 어머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똑같은 방식으로 다그치고 있었던 거다. 얼른 수술 이전으로 돌아가라고. 여전히 폭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자,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됐다. 암환자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경험해볼 일이다. 속도는 더딜 것이지만, 회복의 과정을 천천히 겪기로 했다. 환자로 사는 게 어때서!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자 새로운 질문이 생겨났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지? 너무나 오랜만에 던져보는 질문이었다. 빼곡했던 일정이 사라지자, 하루하루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없이 게으르지만, 해야 할 일이 주어지면 부지런해지는 편이다. 머릿속은 복잡하게 돌아가는데, 몸은 무거운 편이랄까. 좀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평소에 ‘할 일’을 설정해놓는 편이다. 안 그러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무엇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내 신체도 느리게 흘러가야 했다. 이에 적합한 ‘할 일’을 설정해야만 했다. 


가장 기본적으로 신경써야 할 것은 음식과 운동이었다. 주변에서 먹을 것에 신경쓰라며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 그렇다고 매 끼니마다 몸에 좋은 것을 해 먹느라 온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생각을 바꿨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지 말자. 그리고 매 끼니를 소박하게 먹자고 말이다. 그리고 저녁 때마다 2시간 남짓 걸었다. 일산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았다. 일산에서 10년 넘게 살았는데, 모르는 곳이 너무 많았다. 이렇게 식사가 단순해지고, 운동하는 루틴이 생겼지만, 시간은 여전히 많이 남았다.


나는 평소 생각이 분주하고, 관심 분야가 넓어 산만한 편이다. 무엇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어렵다. 이런 산만함에 가장 적합한 처방은 명상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복을 하느라 느릿해진 내 몸의 속도와 변함없는 일상을 답답해하는 상태에서 명상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은 ‘철학하기’였다. 아픈 상태여서였을까, 아니면 내가 평소 좋아하던 철학자여서일까. 니체를 다시 만나보기로 했다. 니체는 거의 평생을 아픈 상태로 철학을 했다. 니체가 앓은 병만 해도 여럿이다. 두통, 위통, 구토, 안질, 신경질환 등에 시달리며 “내 실존은 끔찍할 정도의 짐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던 것.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도 니체는 병자로만 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병에 사상과 철학을 처방했던 것이다. 위대한 건강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 니체를 다시 공부해보고 싶었다. 개념 하나하나를 물고 늘어지기에 딱 좋은 시기였다. 서브(?) 프로젝트도 있었다. 미뤄두었던 칸트도 이런 때에 조금이라도 읽어보자 싶어 친구와 한 달에 한 번 만나 세미나도 했다. 건강하게 아플 수 있는 힘이 철학에 있다고 했던 니체의 말처럼, 개념 하나하나를 읽어가며 나의 상황을 사건화할 수 있었다. 즐거운 학문생활이었다. 갑자기 주어진 공백의 시간을 이렇게 채워나가며 심신의 회복에 힘썼다. 

 

 


이전의 나로, 이후의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
이제 생각해본다. 나는 ‘암’이라는 사건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두 가지의 방향이 있다. 먼저, 암이 내게로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암이 들이닥쳤다는 느낌을 준다. 마치 재난처럼! 다른 방향으로 보면 내가 암을 불렀다고도 볼 수 있다. 인과응보처럼! 이 두 가지 관점은 암에 대한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먼저 암이 내게로 왔다는 것은 수동의 표시다. 암이 찾아왔으니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그렇듯 정해진 수순에 따라 암이라는 질병에 대응한다. 수술과 치료를 받고, 그 후에는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일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몸을 회복하기 위한 이 리스트가 내게는 꽤나 수동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암에 걸리면 주어지는 천편일률적인 매뉴얼이니까.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은 없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더 큰 문제는 병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거다. 스트레스를 준 누구, 피로를 조장한 어떤 환경 등… 자신은 피해자가 되고, 동시에 가해자 혹은 가해환경을 설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스트레스 대상을 자신의 삶에서 제거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설정한다. 그런데, 이게 지속적 가능한 일일까. 불편하고 싫어하는 영역에 대해서 눈 감고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삶의 영역이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내가 암을 불렀다고 하면 느낌이 좀 달라진다. 내가 불렀으니, 내가 보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꽤 능동적으로 느껴진다. 나의 무엇이 암을 불렀을까? 굳어진 평소의 악습, 나약한 마음, 신체적 역량 등이 관계를 맺은 결과일 것이다. 이렇게 열거하고 나니, 암이라는 질병에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약한 체력, 약한 마음, 헛된 망상, 중독적 습관들을 떨쳐내지 못하는 존재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쓰담쓰담 위로를 건네고 싶지는 않다. 사실상 망치로 뒤통수를 때리고 싶다. 왜냐하면 열거된 내용들은 나를 살리기보다 시들게 하고 어쩌면 죽이는 쪽으로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두 가지 태도가 범벅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지나고, 지난 일들을 차분하게 돌이켜보니 조금씩 정리가 되어간다. 내 삶의 방식이 암이라는 사건을 불러왔고, 나는 그것을 겪은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마음과 태도가 다음을 결정할 거라는 것! 물론 병원에서는 5년 동안 이상소견을 보이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할 것이다. 그런데, 완치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암을 불러왔던 그 태도를 고수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비슷한 사건은 반복될 것이다. 이제 나는 암에 대해 시비 판단을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암이라는 이야기만 들으면 공포에 질리고, 두려워한다. 혹은 더없이 가엽다는 마음을 품기도 한다. 무서운 병인 것은 틀림없지만, 끔찍하게만 생각하지 말고 이 병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 삶은 이 병과 계속해서 동행할 것이니 말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암은 내게 선물같은 것이기도 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선사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수술에 따른 고통, 회복을 위한 기다림 등등. 무엇보다 이 병을 계기로 단절됐던 관계가 다시 이어지기도 했고, 이름도 모를 수많은 암환자들과 연결되기도 했다. 암환자들의 일상, 의료진, 병원 환경, 병의 역사 등에 마음이 열리게 되었다. 내 마음의 닫힌 부분이 만들어낸 병일텐데, 역설적으로 이 병은 많은 것들에 마음을 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마음을 잘 정리해서 세상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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