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찬란했던 황금기, 바로 지금 ― Pulp의 Spike Island
정군(『세미나책』 저자)
밴드 펄프가 무려 20여년 만에 새 앨범을 발매했다. 밴드의 결성 연도가 1978년이니, 그야말로 반세기에 가까운 활동을 해온 셈이다. 그런데 신보라니… 사실 나는 그들의 신보가 나왔다는 걸, 발매 후 반년쯤 지나서야 알았다. 요즘은 좋아하는 밴드의 새 앨범이 나오길 기다리질 않으니 몰랐던 게 당연하다. 이 말은 그러니까, 새로운 음악을 듣는 경로가 2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의미다. 예전엔 일부러 검색도 해보고, 간신히 살아남은 음악잡지 따위를 보면서 ‘씬’의 동향을 살펴가며 ‘새로운 음악’을 찾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애플 뮤직의 ‘최신 발매’ 항목만 쓱 훑어보고 몇 트랙 듣고 그만두는 식이다. 그러고는 곧장 그 찬란했던 황금기의 트랙들만 무한반복이랄까. 쩝. 그렇다. 새로운 음악을 들을만한 열정이 별로 없다. 게다가 요즘 밴드의 음악들은 별로 안 새롭다!!!!(나한테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여하간, 마침 오늘 소개할 펄프의 2025년도 앨범의 수록곡 Spike Island도 큰 틀에서 볼 때 비슷한 감각을 가진 곡이다. ‘그 찬란했던 황금기’의 포문을 열었던 밴드 스톤 로지스의 전설적인 Spike Island 공연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만들었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펄프의 프론트맨 자비스 코커가 ‘그 찬란했던 황금기’를 열었던 공연에 자기 인생을 투영하며 회고적인 느낌으로 쓴 곡이다. 일단 먼저 말하자면, 나는 그런 ‘회고적’인 거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이 곡은 그런 평소의 취향을 살짝 뛰어넘을 정도로 좋다. 팝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경쾌한 리듬감이라든가 자비스 코커의 여전히 퇴폐적이려고 하는 목소리라든가, 그야말로 그 시절의 ‘좋았던 요소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곡이랄까. 그러면서도 전성기에 비해 한결이 힘이 빠진 느낌이 편안하다. 이걸 종합하면 이런 거다. 과거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과거를 홀랑 깨버리는 이상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서 딱 한 발 정도 더 간 느낌이랄까? 듣는 사람들도 이 점에 공감하는 듯 하다. 공유한 BBC 뮤직 라이브 페이지에 달린 첫번째 댓글 늘
“I was young, I was sad and I was listening to Pulp. Now I am old, I am sad, and I am listening to Pulp.”(나는 젋고, 나는 슬펐어. 그리고 펄프를 들었지. 지금 나는 늙었고, 나는 슬프고, 그리고 펄프를 들어)을 보면 펄프가 신작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이 뭐였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잘 해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펄프는 20년 만에 신보를 낸 옛날 밴드지만, 마치 그랬던 적이 없는 것처럼, 1, 2년 만에 신작을 낸 밴드 같다.
다들 인생 전체를 걸고 젊어지려고 애를 쓰는 시대에, 해온 것에 조금씩 보태며 갈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인지! 그 정도만 해도 치명적인 뻘짓을 피할 수 있다…고 펄프의 신보를 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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