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 자궁과 통하다
나는 지금 ‘생리중’이다. 이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하게 되다니 나도 참 뻔뻔해졌다. 내 고등학교 때 에피소드 하나 소개하련다. 그때 나는 생리통이 굉장히 심했다. 내 생리통 증상은 대충 이렇다. 일단 생리 시작 전부터 배가 살살 아프다. 아랫배는 얼음을 올려놓은 것처럼 차갑고, 소화기관들이 일제히 셔터를 내리고 영업을 중지한다. “나, 오늘은 일 그만할래.” 그동안 쌓인 악감정을 주인에게 쏘아붙이고 나 몰라라 나가버리는 창름지관들(倉凜之官:창름지관이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를 말하는데 비·위장은 음식을 받아들이고 소화시켜 그것을 온몸에 운행하므로 이런 명칭이 붙었다). 그때마다 나는 양호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 배를 끌어안고 갖은 인상을 쓰면서. 그때 마침 지나가던 교감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어디가 아파서 이러고 있나?”
“예~에, 배가 아파서요.”
“배가 아파? 너 오늘 아침에 뭐 먹었냐?”
“뭐 별거 먹은 게 없는데요. 콩나물국이랑 밥이랑….”
“얼굴이 하얀 게 니 체했나 보다. 가만있어 보자.”
교감선생님은 어디서 가지고 오셨는지 대바늘을 들고 다시 나타나셨다. 내 손을 따려는 것이다. 처음 엄지를 땄을 때 피가 나지 않자 교감선생님은 “오매야, 이봐라. 니 억수로 체했네.” 그리고 내 열 손가락을 다 따셨다. “어떻노? 이제 손을 땄으니까 괜찮아질거다.” 교감선생님은 기쁜 얼굴로 다시 나가셨다. 열 손가락을 다 찔린 나는 힘없이 자리에 다시 누웠다. ‘교감선생님, 그 배가…, 그 배가 아닌데요. 아이고 손이야, 아이고 배야.’
낄낄낄! 웃음이 난다. 그땐 생리통이란 말을 하기가 너무 부끄러웠다. 생리대 사는 것도 매번 엄마한테 부탁했으니 오죽했을까. 생리하는 게 죽을 죄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특별히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나처럼 그 사실을 숨기고 부끄러워했으니까. 그럼, 사춘기 소녀의 부끄럼타는 심리 때문일까? 이건 일정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사춘기가 지나서도 그걸 말하는 건 쉽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몸을 잘 단속하고 진통제를 언제쯤 먹고 어떤 약이 나한테 더 잘 듣는지 요령만 늘었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뭘 말해주는 걸까? 여기에는 여성의 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랜 편견이 감춰져 있는 게 아닐까? 우리 사회가 여성의 몸에 일어나는 현상은 숨겨야 하는, 그것은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그래서 오로지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배치되어 있는 건 아닐까? 이것은 여성을 삶에서 소외시키고 아니, 여성 스스로 소외되는 일이다. 월경은 생명 탄생의 첫걸음이다. 그런데도 이것이 어째서 여자만의 일일까? 생명의 차원에서 이것은 옳지 못하다. 오늘의 혈자리 지음은 여성의 몸과 아주 관련이 깊다. 지음은 여성의 기관, 자궁을 위한 혈자리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자궁과 지음의 관계를 만천하에 드러내 보자.
생명의 궁궐, 자궁
자궁은 아기를 만들고 키우는 곳이다. 물론 월경이 일어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포(胞)라고 한다. 포는 비록 오장육부에 속해 있지 않지만,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동의보감』은 말한다.
포는 ‘적궁(赤宮)’이라고도 하고, ‘단전(丹田)’이라고도 하며, ‘명문(命門)’이라고도 한다. 남자는 여기에 정(精)을 저장했다가 내보내고, 부인은 포를 통해 잉태하게 되니 포는 생화(生化)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행의 어느 것에도 속하는 것이 아니다. 수의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고 화의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천지(天地)의 작용을 달리 부른 이름으로서, 땅이 만물을 생화(生化)하는 것을 본뜬 것이다.─『동의보감』, 「내경편」, ‘포’, 법인문화사, 444쪽
그렇다. 포는 하늘과 땅의 다른 이름이다. 하늘은 양, 땅은 음. 음양이 모두 자리하는 곳이다. 여기에는 어떤 차별상이 없다. 왜? 생명은 음양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이라고 칭하고 구별할 뿐이다.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는 것. 여성 안에 남성이 있고, 남성 안에 여성이 있는 것. 그것이 생명이다. 그래서 포는 생명의 원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다. 다만 길러내야 하기 때문에 땅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그래서 자궁은 몇백 배로 늘어난다. 보통 때는 무게 60g, 길이 7cm에 주먹만한 크기지만 임신하면 500배에서 1000배까지 늘어난다. 아기가 자랄 수 있도록 위쪽은 넓고 아래쪽 출입구쪽으로 좁아지는 역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생명의 원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 자궁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포를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로 나누어 본다. 좁은 의미의 포는 여자의 자궁을 가리키고 넓은 의미의 포는 단전 또는 명문과 연결된 포 전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포가 넓은 의미로 쓰일 때에는 남자의 ‘포’도 가능하다. 남자의 포는 단전 또는 명문에서 정(精)을 내는 일을 한다. 여자의 포는 특별한 자체의 공간을 가지고 그곳에서 남자의 정을 받아 자신의 혈과 합쳐 생긴 태아를 기른다. 결국 포는 남자에게는 정액을 내는 곳이고 여자에게는 아이를 간직하여 기르는 곳이다. 생명의 궁궐, 이곳이 자궁이다.
월경과 여성의 몸
주지하듯 자궁은 생명의 근원처다. 그렇다면 여성의 몸에서 한 달에 한번씩 나타나는 월경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또 그것은 임신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포와 맥, 혈의 관계로 설명한다.
여자는 14세가 되면 천계(天癸)가 이르러 임맥이 통하고, 태충맥(太衝脈)이 왕성해지면서 월경이 때맞추어 나오므로 자식을 낳을 수 있게 된다.… 충맥은 피가 모이는 곳이고, 임맥은 자궁과 태를 주관하여 이 두 가지가 서로 의지하므로 자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월사(月事)라고 하는 것은 화평한 기운이 포에 있으면 항상 30일에 한 번씩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 「내경편」, ‘포’, 법인문화사, 444쪽
여기서 키워드는 천계와 충·임맥과 월경이다. 이 삼박자가 제대로 돌아가야 임신을 할 수 있다는 것. 우선 천계부터 보자. 천계(天癸)는 선천의 정(精) 속에 구비되어 있는 생식 기능을 촉진하는 물질이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온다고 해서 천(天)인데, 여기서 하늘은 태어날 때 이미 받아서 태어난다는 말이다. 계(癸)는 선천의 정(精)이 계수(癸水)의 형태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정액같이 액체, 수(水)의 형태로 화생한다는 것이다. 천계(天癸)는 신(腎)의 정기(精氣)가 충만해져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생성된다. 천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생식기의 발육과 성숙이 일정정도에 이르고 월경이 때맞춰 이뤄져서 태아를 잉태할 필요조건을 갖추게 되었음을 말한다.
현대의학은 이것을 난소의 작용으로 본다. 사춘기에 이른 여자가 지방이 축적되면 난소는 여성의 몸을 변화시키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골반이 넓어지고 음모가 나고 지방층이 두꺼워지고 유방이 부풀기 시작한다. 이어서 난포자극호르몬, 황체호르몬, 생식샘자극호르몬 같은 성호르몬을 내보내서 배란과 월경이 이뤄진다. 이 호르몬들은 한 달을 주기로 순환하여 무려 35년 동안 활동한다. 따라서 천계의 발생과 고갈은 신정(腎精)의 성쇠, 생식능력의 성숙과 퇴화를 말해준다.
다음은 충맥과 임맥. 자궁에서 시작하여 척추 안쪽을 따라 상행하는 충맥과 임맥은 경락의 바다다. 충맥은 전신을 관통하므로 “십이경맥의 바다”이고, 임맥은 수족삼음경(手足三陰經:팔다리에 있는 3개의 음경. 육장(六臟)과 연계되며 사지(四肢)의 안쪽에 분포한다)과 음유맥(陰維脈:전신의 음맥(陰脈)들을 서로 긴밀하게 연계하는 작용을 한다)과 만나므로 “음맥의 바다”다. 다시 말해 충맥이란 오장육부의 경맥에서 생성된 피가 모이는 곳(血海)이고, 임맥은 음맥의 근원지인 자궁과 관련이 깊어 임신을 주관한다. 남자는 충맥이 계속 돌게 되어 있지만, 여자는 포에서 멈추게 되어 있다. 남자는 피가 계속 도니까 쌓이는 것이 없다. 하지만 여자는 포에서 멈추게 되어 있으므로 쌓여 가득 차게 된다. 여기에 차 있던 것이 때맞추어 넘쳐나는 것이 바로 월수(月水), 곧 월경이다.
월경이라는 말은 한 달마다 달이 둥글어졌다가 이지러지는 것에 비유해서 표현한 것이다. 만일 충맥이 잘 통해 경혈이 순조로울 때 남자에게서 정을 받고, 임신을 주관하는 임맥의 활동이 순조로우면 피가 월경으로 나오지 않고 임신으로 이어진다. 이와 반대로 충맥과 임맥이 손상되면 월경불순이나 대하(분비물), 붕루(하혈) 같은 병이 발생한다.
마지막 월경. 월경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천계와 충맥, 임맥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순조롭다. 그래서 여성의 몸은 월경이 어떠냐에 따라 진단할 수 있다.
병을 앓을 때 남자는 반드시 성생활에 대한 것을 물어보아야 하고, 여자는 먼저 월경과 임신에 대한 것을 물어보아야 한다.─『동의보감』, 「잡병편」, ‘변증’, 법인문화사, 969쪽
남자는 양기라 계속 쓰게 되고 여자는 음기라 쌓아두게 된다. 예를 들어 충맥에 피가 계속 쌓여도 문제고 안 쌓여도 문제다. 쌓이면 어혈이 되어 통증을 일으키고, 안 쌓이면 월경불순이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성의 몸은 이 혈과의 관계가 관건이다. 이 혈안에 감정과 생각과 생활이 담겨 있다. 『동의보감』에 이를 표현한 대목을 보자.
부인은 음기(陰氣)의 결집체로서 늘 습한 곳에서 거하게 되는데, 15세 이상이 되면 음기가 떠올라서 온갖 생각이 마음을 움직여서 속으로는 오장을 상하게 하고 겉으로는 얼굴을 상하게 하며 월경이 있다 없다 하거나 월경이 앞당겨졌다 늦어졌다 하거나 어혈이 생겨 뭉치거나 월경이 끊어지기도 하고 태아가 떨어지기도 하는 등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증상이 나타난다.
─『동의보감』,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93쪽
여성의 몸은 음이 모여 늘 습과 더불어 산다. 아! 음체인 여성의 운명이여. 어혈, 담음, 울체가 여성의 몸에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생명이 어찌 음만 있을까? 여성의 몸이 음기가 많은 조건이라면 애써서 양기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아프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기혈을 순환시켜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생리통이 심했던 것도 이 몸의 생리를 모른 채 움직이지 않았던 원인이 크다. 어떻게든 안일하게 그냥 약으로 떼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고스란히 나의 습(習)으로 자리 잡았고, 감정도 생각도 생활도 울체되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바꾸려면 몸을 써야 한다. 몸을 써야 운명이 바뀐다. 앞에서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얘기했지만 이것보다 먼저 내 몸의 생리를 알고 나의 습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지음, 자궁과 통하다
그렇다면 지음은 자궁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음의 작용력이 클 수밖에 없는 게 여성의 몸이라면 지음은 어떤 작용을 하는 걸까?
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어서 땅을 본떴으며, 기항지부(奇恒之府)의 하나이다.
─『동의보감』, 「내경편」, ‘포’, 법인문화사, 444쪽
자궁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음을 간직하고 있으니 수(水), 땅을 닮았기에 토기(土氣)와 통하는 기관이다. 지음은 새끼발가락 끝에 있다. 이곳은 족태양방광경의 기맥이 흐르는 맨 끝 부위이다. 머리에서 시작한 방광경맥은 새끼발가락에 이르러 족소음신경에 연결된다. 이 말은 양기가 다하고 음기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음(陰)에 이르렀다(至) 하여 지음이다. 여기서 음은 물론 족소음신경이다. 족태양방광경의 수와 족소음신경의 수가 합쳐져 있는 곳이 지음이다. 또한 지음은 발끝에 있어 땅의 기운을 받는다. 곧 토기와 통한다는 말이다. 결국 지음은 수와 토기를 갖추었음으로 자궁과 통한다. 통즉불통(通卽不通). 통하면 아프지 않다고 했던가? 자궁과 같은 기운으로 통하는 지음은 그래서인지 자궁질환에 명혈로 불린다.
새끼발가락 바깥측면 부위에 위치한 지음
지음은 오래 전부터 안산(安産)의 뜸자리로 사랑받아 왔다. 분만할 때 아기를 밀어내는 힘이 약해져 분만이 지연될 때, 일명 무통분만에 좋다. 또한 포의(胞衣,태아를 싸고 있는 막과 태반)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을 때 곤륜과 삼음교와 함께 뜸을 뜨면 좋다. 이밖에 뱃속에 있는 태아의 위치를 바로잡아 주는데도 효과가 좋다. 아참,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임산부는 지음에 침을 놓아서는 안 된다. 정과 혈이 뭉쳐져 있는 것이 태아라고 할 수 있는데 지음에 침을 놓으면 태아를 흩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침 대신 뜸을 뜨고 임신초기에는 삼가는 것이 좋다.
지음을 통해서 자궁과 여성의 몸에 대해 알아보았다. 『장자』에 이런 말이 있다. “지음은 엄숙하고 지양은 밝게 빛난다. 엄숙한 것은 하늘에서 나오고 밝게 빛나는 것은 땅에서 나온다.” 지음이 머리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 발끝에 이르는 것은 하늘에서 엄숙함이 나오는 것과 같다. 다시 지음으로부터 밝게 빛나는 것은 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음양의 조화이듯 음체인 여성이 양으로 밝게 빛나려면 땅의 기운을 받아 순환시켜야 화평하다. 그러니 여성들이여! 땅을 밟자. 걷고 걷고 걸어보자. 지음이 여성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이영희(감이당 대중지성)
벚꽃 놀이도 할겸 산책하면서 지음을 자극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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