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소개가 올라가는 주에는 왠지 만화책을 사고 싶다. 그리하야 오랜만에(!) 만화책을 사기로 결심하고, 서점에 들렀더니 『도련님의 시대』가 뙇! 무슨 만화인지 살펴보니 나쓰메 소세키가 주인공이며, 게다가 그린이는 다니구치 지로! (예전에 소개했던 『시튼의 동물기』의 작가이다. 궁금하시면 여기를 클릭하시라!)
하지만, 지름의 이유는 늘 나중에 붙기 마련이다. 하하; 어쨌거나 오늘은 이 만화와 엮인 다른 책들과의 인연도 함께 소개하려 한다.
소세키와의 인연을 말하자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초판 표지
일단 소세키의 데뷔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부터 시작한다. (수업 커리큘럼이어서 읽게 되었지만) 고양이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고, 마지막에 고양이가 독에 빠져 죽는 장면은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그땐 책을 덮으면서도 ‘아니 왜 굳이 고양이를?’이란 생각이 들어 소세키가 야속했다. 두 번째로 읽게 된 것이 『도련님』인데, 깊이 생각하지 않고 ‘일단 지르고 보는’ 도련님은 완전 내 스타일! 어쨌거나 두 작품을 통해 나쓰메 소세키에 대한 깊은 호감과 애정이 충만한 상태였다.(다른 작품들은 꽤 심란한 내용이라는 것을 들은 적은 있지만...)
그런데 마침 『도련님의 시대』의 배경이 소세키가 신문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재하고 인기를 얻고 있을 무렵이며 두 번째 소설인 『도련님』을 구상하고 있던 그 시기라는 것이 아닌가. 오호라~~ 게다가 2월 9일은 소세키의 탄생 146주년이 되던 날! 우연히 알라딘 서재(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기념으로(?) 작년에 읽었던 『도련님』을 다시 펴보기도 했다. 소세키의 작품을 두 개만 읽었을 뿐인 나는, 이 우연한 사건들을 ‘운명적인 만남’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반드시 이번 주 만화 코너에 소개하리라 결심한 것이다. *-_-*
맥주 먹고 맴맴, 소세키의 주사
소세키가 살았던 그 시기 일본에는 서양문화가 많이 들어왔던 때인데, 맥주의 인기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린, 삿포로, 아사히 등 익숙한(!) 일본 맥주들이 바로 에도 말기에 탄생했다는 것! 맥주를 파는 집이 마구 생겨나던 그때, 소세키도 혼자 맥주를 마시러 간다. 그런데 그는 술이 약한 편이었고, 이내 술에 취해 옆 테이블의 남자에게 시비를 걸면서 싸움을 만든다. 이를 말리던 옆 테이블 사람들도 이 싸움에 말려들어, 그들은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아침이 되어서 술이 깬 소세키는 자신의 행동에 미안함을 느끼고 자신의 싸움을 말리던 청년들을 집으로 초대하게 된다. 고약한 술버릇 덕분에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 셈이다.
소세키는 영국 유학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서양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이 강하게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도련님』을 구상할 때, 도련님과 적대적인 인물인 '빨간 셔츠'를 외국인 교사로 상상하고 있었다. 그의 구상을 들은 호리 시로(소세키가 술주정으로 만난 협객 친구)는 조심스레 자신의 경험, 라프카디오 헌과의 추억을 소세키에게 들려주었다. 여기서 잠깐 흠칫햇는데, 라프카디오 헌이라는 이름이 낯익었기 때문이다. 환상문학에 한창 빠져있을 당시 기담문학 고딕총서를 구입했었는데(벌써 5년 전;;), 그때
1권이 바로 라프카디오 헌의 『귀담』이었던 것! 헐… 우리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전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하튼 호리 시로는 소세키에게 "단지 『도련님』이 헌 선생님 같은 갈 곳 없는 외국인을 괴롭히고 신나 하는 내용이 아니었으면 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일까, 빨간 셔츠의 캐릭터 설정은 바뀌게 된다. ^^
『귀담』에 수록된 '옮긴이의 글'을 다시 펼쳐 보니, 이런 부분이 눈에 띈다.
(라프카디오 헌은) 1896년부터 1903년까지 도쿄제국대학의 영문과 강사로 일하기도 하였으며, 1896년 일본에 귀화하여 고이즈미 야쿠모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1903년 헌은 갑작스러운 해고 통지를 받는다(그의 후임이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이다). 오사나이 카오루를 비롯한 당시 영문과 학생들은 헌의 해고에 분개하며 그의 유임 요구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헌은 임금삭감을 내건 학교 당국의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결국 유임되지 못했다. 해고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04년 3월 그는 와세다 대학에 강사로 초빙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반년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176~177쪽)
『도련님의 시대』속 내용은 물론 상상력에 의한 것이지만, 실제 자료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감탄했다. 만화는 오락거리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을 털어버린, 참고자료가 빽빽한 이 만화의 작가들은 대체 뭘 믿고 이렇게 진지한 작품을 그리게 된 것일까?
메이지 말년과 맞짱 뜬 '다른' 도련님들
난 항상 『도련님』만큼 슬픈 소설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이 작품이 영상화 될 때마다 왜 골계미를 주조로 연출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영상물들은 항상 내 기대를 배신해 오락이라고 하기 어려웠다. 동시에 메이지가 평온하고 서정적인 시대라는 통속적이고 형식적인 해석도 지긋지긋했다.
메이지는 격동의 시대였다. 메이지인은 어떤 의미론 현대인보다도 분주했을 터이다. 메이지 말기에 일본에선 근대의 감성이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몇 차례의 격진을 거친 지금까지 현대인에게 뿌리박혀 있다. (...) 그래서 난 『도련님』을 소재로 골라 허구를 토대로 그 작품이 어떻게 발상되고 구축되고 제작되었는지를, 국가와 개인의 목적이 급속하게 분리되기 시작한 메이지 말년을, 그리고 고민하면서도 의연한 메이지인을 그리려고 했다.
-'우리는 어떻게 『도련님의 시대』를 만들게 되었나', 246쪽
『도련님』을 읽고 난 후, 묘한 감정이 들었는데 굳이 묘하다고 말한 까닭은, '슬픔' 같은 단어로 다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하면서도 뭔가 마음이 짠한 그런 느낌이랄까. 여하튼 『도련님의 시대』의 작가들은 인기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연재를 시작한다. (일본 만화잡지는 독자들의 인기투표가 굉장히 중요한데, 인기가 없을 경우 연재가 중단되는 등 즉각적으로 반영된다. 만화계의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바쿠만』을 보시라!)
소세키가 전업 소설가가 될 것을 결심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에서 『도련님의 시대』작가들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았고, 그래서 멋진 장면이라 생각한다. ^^ 심지어 상업성을 포기하고 시작한 이 연재는 의외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타국에 사는 나에게도 무언가 감응되는 바가 있는데, 당시 이 연재를 읽었던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공감되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 『도련님의 시대』는 1986년 12월부터 1987년 3월까지 연재되었다. 일본의 경제가 무지막지하게 팽창하다가 훅 꺼져버린, 버블 경제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도련님의 시대』에서 소세키는 이렇게 말한다. "도련님도 고슴도치도 진 것이다. 하지만 도련님에겐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것은 기요가 있는 집, 즉 반근대의 정신이 있는 곳이었다"라고. 소세키는 알고 있었다. 미래에 성공하는 자들은 빨간 셔츠처럼 영민하게 자신의 기회를 낚아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하지만 소세키가 마음을 두고 지키고 싶었던 것은 시대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도련님이나 기요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무조건적인 팽창과 확장만을 요구하던 시기에, 한편으로는 그 반대의 흐름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도련님의 시대』의 작가들 역시 반가움과 그리움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세키의 작품만 읽었을 때에는 몰랐던 인연이 『도련님의 시대』를 통해 연결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마치 떨어져 있던 점과 점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소세키와의 깊은 인연을 마무리하는 인증샷과 함께 긴 글을 마무리 할까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이런 깊은 인연의 책들이 기억 속에서 퐁퐁 솟아오르면 좋겠다. 다음 포스트에서도 신간 지름은 계속 될 예정이다. 뿅! ^^
찍고 보니 도련님이 빠졌지만, 패..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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