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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페스티벌 후기] 비비대고, 흔들어 대고!―사이재, 주역페스티벌에 가다

by 북드라망 2024. 5. 28.

비비대고, 흔들어 대고!

―사이재, 주역 페스티벌에 가다

 

정기재(사이재)

 


2024년 5월 25일, 서촌의 북카페 ‘피스북스’. 지금 이곳에서는 정체불명의 여인들이 서로 엉덩이를 비비대고 어깨를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손에는 세 개의 작대기가 그려진 부채 8개를 꼭 쥐고 말이죠. 그리고 여인네들은 큰 소리로 외칩니다. “강유상마(剛柔相摩), 팔괘상탕(八卦相盪)! 굳셈과 부드러움이 서로 비비대고, 팔괘가 서로 흔들어 댄다~~~” 

‘정체불명’이라고 소개했지만 사실 이들의 신분은 확실합니다. ‘주역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이재 주역 낭송팀 ‘사이송’이거든요. 그런데도 ‘정체불명’이라고 소개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들의 모습이 참 요상하거든요. 사실 주역은 사서삼경 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기로 이름난 텍스트입니다. 오죽하면 공자께서도 죽을 때까지 그 이치를 다 알기 힘들다고 하셨을까요. 그런데 저 여인들은 이토록 고상한 주역을 저토록 요상하게 엉덩이 춤을 추며 낭송합니다. 경건한 주역과 불경한 막춤의 기묘한 만남! 뭐라 딱히 규정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보면 정체불명이란 말이 무리는 아니지요.

 



요상하기로 치면 ‘주역’과 ‘페스티벌’의 조합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사실 처음 ‘주역 페스티벌’을 한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사람들도 많이 물었지요. ‘주역 페스티벌이 뭐야?’ ‘주역하고 페스티벌이 어울려?’ 그럴 만도 했습니다. 동양 최고의 ‘지성’인 주역과 서양 최고의 ‘놀자판’ 페스티벌은 극과 극처럼 보였거든요. 학술제면 몰라도 페스티벌이라니요. 우환 의식으로 64괘를 지었다는 문왕이 벌떡 일어나실 일 아닌가요?

그런데 염려는 페스티벌이 시작되면서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저 엉덩이 춤을 춘 여인들도 외치고 있더군요. 서로 다른 것은 비비대고 흔들어 대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주역도 그러하다. 《계사전》 1장에 나오는 ‘강유상마 팔괘상탕’은 만물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하는 지를 설명합니다. 자연은 N극이 S극을 끌어당기듯 서로 다른 것을 끌어당기는데, 이렇게 다른 것들이 마찰을 일으켜 팔괘가 생기고, 그 팔괘가 서로 흔들어 대면서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죠. ‘주역’과 ‘페스티벌’의 만남도 그랬습니다. 최고 지혜인 주역과 최고 놀이인 페스티벌은 서로 마찰하고 섞이다가 결국 세상 어디에도 없는 ‘주역-페스티벌’을 만들어냈거든요. 

사이재에서도 ‘주역공부’와 ‘페스티벌’은 팽팽한 긴장상태로 처음 만났습니다. 공부할 시간도 빠듯한데 낭송, 퀴즈, 셀프 주역점 등 페스티벌에 신경 쓸 겨를이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행사를 준비하다 보니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첫번째 변화는 ‘주역 스피드게임 왕중왕전’ 예선에서 감지됐습니다. 공동체 대항 게임인지라 미리 사이재 대표를 뽑아야 했거든요. 30초 안에 괘상을 보고 괘명을 맞춰야 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대답에 박장대소가 터지기도 하고, 약이 올라 재도전을 하기도 하고, 뒤에서 절치부심 연습을 하는 사람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더니 이후 사이재 분위기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스피드 퀴즈를 연습하는 사람, 옆에서 덩달아 괘명을 읊조리는 사람, 셀프 주역점에 비치될 64괘 표의 오타를 찾는 사람.... 페스티벌은 시작도 안 했는데, 사이재에서는 벌써부터 놀이-주역, 주역-놀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싹을 틔웠지요.

 

 


그리고 드디어 주역 페스티벌의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는 오전 수업을 마치고 부지런히 서촌으로 달려갔습니다. 서촌 ‘피스북스’는 그야말로 시끌벅적 난장었습니다. 뿔뿔히 흩어져 있던 5개의 공동체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무리는 아니었지요. 그곳에서 우리 다섯 공동체는 주역의 팔괘처럼 서로를 흔들어 댔습니다. 배우고 자극하며 영향을 줬다는 말입니다. 

먼저 감이당, 남산강학원 선생님들은 『내인생의 주역 2』을 출간한 기념으로 북토크를 진행하셨습니다. 주역으로 일상을 꼼꼼하게 사유하는 저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주역에 대한 공부 의욕이 절로 솟구치더군요. 문탁 네트워크가 주역을 풀어내는 방식도 놀라웠습니다. 문탁은 이미 주역을 소재로 그림도 그리고, 비누도 만들고, 음식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그 노하우를 듬뿍 담아 2층을 주역 월드로 꾸며주셨는데, 그 실용성과 아이디어가 정말 놀라웠습니다. 주역의 세계관이 책 밖으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요. 그뿐인가요? 규문에서는 마치 진짜 점집을 옮겨 놓은 듯 레트로풍의 주역 상담소를 꾸며주셨습니다. 덕분에 상담을 받으신 분들이 마치 인생상담을 받은 듯 만족하셨다는 후문이 들리더군요. 저희 사이재는 가볍게 주사위를 던져 주역점을 칠 수 있는 셀프 주역점 코너를 준비했습니다. 오며 가며 많은 분들이 진지하게 주역점을 치시는 걸 보니, 애써 준비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짜 우리가 기다린 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낭송 대회와 스피드 게임!!! 낭송대회는 앞서 소개한 ‘사이에서 노래하는(낭송하는)’ ‘사이송’의 네 여인네가 맡았습니다. 일단 낭송 멤버가 어벤져스였습니다. 제주 이야기 할망 정복 샘, 차분한 카리스마 서윤샘, 분위기 메이커 옥주샘, 손재주 많은 암송의 달인 윤경샘. 이 네 여인은 매일 카톡에 암송한 것을 녹음해 올리면서 합을 맞췄다고 합니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암송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는 거다’라는 진리를 몸소 실행했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앞서 소개한 ‘비벼대고 흔들어 댄’ 팔괘의 생성 노래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느냐구요? 영광스러운 대상이었습니다. (이건, 자랑이 맞습니다. ^^)

두번째 하이라이트는 스피드 게임이었습니다. 미리 사이재를 후끈 달궜던 그 스피드 게임이죠. 이 경기에서는 감이당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사이재도 꽤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요. 그런데 성적보다 더 값지게 생각하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한장섭 선생님의 활약입니다. 한장섭 선생님은 사이재에서 4년째 주역을 공부하고 계신 주역의 숨은 고수이십니다, 그런데 스피드 퀴즈를 하시는 데에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느림의 고장 충·청·도 분이시라는 것, 게다가 충청도 분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느긋하시다는 점! 그런 장섭샘이 당당히 사이재 예선을 통과해 결선에 진출하셨으니 우리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주역 페스티벌은’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는 못했지만, 장섭샘을 스피드 퀴즈에 참여하게 하는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꾸준히 주역을 공부하신 내공이 속도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며 모두들 기뻐했지요.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장섭샘과 함께 연습도 하고, 기록에 귀를 쫑긋 세우며, 두손 모아 함께 선전을 기도했답니다. 

 



이렇게 5월 25일, 우리들은 서로 만나 비비대고 흔들어 대며 세상 어디에도 없을 ‘주역 페스티벌’을 만들었습니다. 뒷풀이 자리에서 선생님들이 말씀하시더군요. 처음에는 갸웃하며 시작했는데, 결국에는 즐기고 있더라고 말이죠. 게다가 여러 공동체에 흩어져 있는 오랜 도반을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앞으로도 북드라망에서는 이렇게 여러 공동체가 함께하는 잔치를 매년 열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내년에는 또 어떤 낯선 조합으로 만나 비비대고 흔들어 댈지 살짝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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