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② 사건
하늘이 웃는다
《붉은 돼지》는 《마녀 배달부 키키》처럼 마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키키가 빗자루를 타는 마녀의 능력을 잃었다가 다시 찾듯, 붉은 돼지 포르코는 잃어버린 인간의 얼굴을 되찾는다. 날지 않으면 ‘그냥 돼지’가 되고, 인간으로서 날게 되면 ‘파시스트’가 된다. 그래서 인간으로서는 날 수 없고 돼지로 난다. 포르코가 다시 인간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하늘을 나는 인간이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자.
체리가 익어 갈 무렵
천상의 시점은 위험하다. 《라퓨타》의 악당 무스카는 지상의 모든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욕심에 빠졌고 결국 모든 권력보다 더한 권력을 쥐겠다며 하늘 위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았다. 그는 지상의 모든 사랑에 고개를 돌렸으며, 부에 대한 환상 속에서 자멸의 길을 걸었다. 《붉은 돼지》의 마르코가 인간으로서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까?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지상에 무기를 떨어뜨릴 수 있는 하늘의 인간들 속에서 그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붉은 돼지는 무스카가 아니라 파즈에 가깝다. 파즈는 친구 시타에게 고향을 보여주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라퓨타로의 비행을 선택했다. 마르코는 파즈처럼 누군가를 돕고 싶어했다. 결혼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은 친구가 비행으로 전사하는 것을 막으려고 대신 죽으려고도 했다. 마르코는 전쟁에서 영웅이 되는 것은 부상당한 적의 병사를 구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서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과 무관한 이들까지도 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전쟁은 ‘구하려는 인간’을 삼킨다. 마르코는 어떤 전투에서 적도 친구도 모두 잃고 혼자 살아 돌아오게 된다. 결국 그는 아무도 살리지 못한 자신의 비행에 절망해서 돼지가 되고 만다. 이렇게 미야자키는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마르코를 통해 무스카와 대결했던 파즈의 뒷이야기를 그린다. 파즈도 숱한 시도가 무참한 죽음만 불러올 뿐이라면 계속 하늘을 동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붉은 돼지》의 초반에 마르코가 노을 지는 하늘을 난다. 포르코는 곧 아드리아해의 호텔에 착륙하게 되는데 이때 지나가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 노래를 부른다. 붉은 비행기가 하늘을 날 때, 위로는 비를 예고하는 것처럼 검고 무거운 구름이 천천히 내려오고 아래에서도 밤 기운을 품은 어두운 구름이 서서히 올라온다. 이 사이에서 부서지는 오렌지 하늘빛은 어딘가에도 마음 붙이기 어려운 포르코의 고독을 잘 보여준다.
노래 가사는 슬프다.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은 지빠귀가 즐겁다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계절은 너무나 짧지~’ 이 노래의 기본 정서는 그리움이다. 노래 가사를 지은 사람은 프랑스 시인 장 바티스트 클레망인데, 그는 파리 코뮌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1870년 독일을 통일하려는 프로이센과 이를 막으려는 프랑스가 벌인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고 베르사유 협정이 맺어지자, 파리 시민과 노동자들이 71년 봉기를 일으켜 자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세운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지원을 받은 임시정부군이 코뮌을 진압하고 그 과정에서 일주일 동안 유혈 낭자한 시가전이 벌어진다. 피의 일요일에 휩싸인 파리는 그야말로 체리빛이었다. 혁명을 향한 정열은 핏빛 속에 뜨겁게 녹아내렸다.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은 용감한 시민군을 기념하며 혁명에 대한 그리움을 가득 담은 회한의 노래다. 하늘을 날며 사람을 구하려고 했던 젊은 날의 꿈이 전쟁과 함께 산산조각이 난 상태에서 마르코는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과거의 향수 속으로 침잠해버렸었다. 향수와 죄책감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꼭 맞물려 있어 어디로도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날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더욱 문제였다. 마르코는 비행의 새 목적을 찾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체리가 익어가는 계절을 들으며 확인한다.
유치원에 간 사나이
허무의 늪에서 마르코를 구하라! 미야자키는 나중에 《벼랑 위의 포뇨》에서 인간이 되고 싶은 인어공주 이야기를 패러디한다. 그런데 이런 동화의 패러디는 사실 《붉은 돼지》가 먼저다. 미야자키가 마르코를 구하기 위해 백설 공주 모티프를 갖고 오기 때문이다. 백설 공주가 일곱 난쟁이의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그림자 노동을 한 것처럼, 마르코도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나서면서 마법이 풀릴 계기가 마련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마르코가 어린이들을 구한 것 같지만, 포르코가 축 처져 있던 어깨를 펴고 누군가를 구하고 싶은 마음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이들이다.
유치원 아이들 구하기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아지트에서 샹송을 들으며 졸고 있던 포르코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맘마유토단이 광산에 급료를 운반하는 배를 습격하고 있다며 구해달라는 내용이다. 이 맘마유토단은 《라퓨타》에 나오는 맘마-도라의 아들들을 닮았다. 포르코는 일단 그런 싸구려 일은 안한다고 딱 거절한다. 하지만 여름 캠프 가는 유치원생들이 함께 납치당했다는 말을 듣자 거침없이 몸을 일으킨다. ‘짭짤하겠군!’하면서 말이다. 작품 초반에 포르코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나온다. 하지만 사실 돈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을 무사히 보내주면 수고비로 받게 될 자신의 금화 반을 맘마유토단에게 나누어 주겠다고까지 하니 말이다.
포르코는 구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활기를 찾는다. 그런데 이 납치사건은 일회적으로 생기를 얻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무시무시한 해적단과 벌이는 긴박한 추격전이다. 하지만 수영캠프에 가던 꼬마들은 해적들의 비행기를 놀이동산의 탈것처럼 즐긴다. 내부 기물을 갖고 장난을 치며, 연발하는 기관총을 같이 쥐고 허공에서 총알을 함께 발사한다. 아이들에게 저 흉악한 무기를 잡게 하다니 현실 엄마로서 기겁할 장면이기는 하지만 이 대결에서는 누구도 죽지 않는다. 아이들은 다만 위아래 전후좌우로 흔들리는 비행기의 진동을 즐기고, 쏘아대는 기계가 일으키는 경쾌한 리듬감을 즐길 뿐이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탄 공적의 비행선은 날개가 부러져 추락한다. 하지만 무슨 걱정이랴? 아이들은 수영 클럽 출신이다! 게다가 비행기니 침몰할 위험도 없다! 이처럼 비행이란 어린이가 즐거운, 하나의 놀이이다. 우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이유는 놀기 위해서다. 여기에 어떤 다른 목적도 없다. 이 즐거운 추격전에 시종일관 유쾌한 행진곡이 쿵짝쿵짝 흘러 아이들도, 그런 대결을 보는 배 위의 승객들도 모두가 즐겁다. 공중전은 너무나 유쾌하다.
투덜대지만 포르코도 너무 기쁘다. 프로펠러 앞을 알짱거리고, 바다 위에서 화장실을 찾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계속 잔소리를 하며 데리고 가지만 아이들은 즐겁다. 고장 난 비행기도 수리해야 하는 마당에 아이들 젖은 옷까지 말려야 하지만 그의 마음은 푸근해진다. 그리고 이 느낌 덕분에 마르코는 비행의 새 목적을 어렴풋이 예감한다. 비행기로 누구를 구하는 것보다 비행기에 누구를 태울까를 다시 고민하자! 《마녀 배달부 키키》의 키키는 딜리버리 서비스를 하다 마침내 하늘에 매달린 친구를 자기 빗자루로 구해 땅으로 데리고 온다. 비행기가 태워야 할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다. 《붉은 돼지》는 이 사람을 어린이라고 한다. 어린이와 함께 하면 비행은 즐겁다. 목숨을 살려야만 사람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즐겁기만 해도 비행에는 의미가 있다. 포르코는 아이들을 태우고 싶은 자기 마음을 보며, 죽음 앞에 섰던 무거움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꿈도 삶도 무한하다
포르코가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중요한 사건은 붉은 비행정 수리이다. 포르코는 낡은 엔진을 고치러 갔던 피콜로씨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과 만난다. 중요한 인물은 피콜로씨의 손녀, 미국에서 기술자가 되어 돌아온 17살의 피오이다. 하지만 피오 외에도 돈 벌러 대도시로 나간 남자들을 대신에 공장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은 힘차게 붉은 비행정 수리를 돕는다. 포르코는 이들이 협력해서 비행기 수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비행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
이유는 공장의 일하는 여성들이 보여준 자부심 때문이다. 이들은 애초에 정비사가 될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대공황 때문에 궁핍해진 처지, 돈 벌러 나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남편을 막연하게 기다릴 수만은 없어, 그들은 똘똘 뭉쳐 아버지 밑에서 공장 하나를 만들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지만 이들은 열심히 한다. 자기의 꿈이라든가, 타고난 재능 같은 것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 살길 앞에서 겁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낸다. 미야자키는 공장 안에서 각자 자신의 역할 앞에 당당하게 임하고, 즐겁게 임무를 완수해주는 여성들의 진지한 얼굴을 재치있고도 아름답게 많이 그린다. 비행기 동체가 될 나무를 자르고, 용접을 하고, 붉은색으로 도색을 하는 전체 과정에서 여성들의 표정은 당당하다. 자기가 조종을 할 것도 아니고, 설계사로 이름을 남길 수도 없지만, 그들은 하나의 비행기를 만드는 데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다. 정성을 다하면서! 못 두 개를 입에 물고 두 눈에 힘을 꽉 주고 망치를 들고 있는 정비사가 피에타상을 깎는 미켈란젤로보다 못할 까닭이 있으랴!
나중에 《바람이 분다》에도 나오지만, 미야자키는 나사못 하나 끼우는 일의 숭고함을 놓치지 않는다. 비행기 한 대를 만드는데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이란 없다. 공장을 운영하는데 중요한 사람 덜 중요한 사람이 없다. 일의 보람은 일의 경중에 있지 않다. 삶의 의미도 하는 바의 평가를 따르지 않는다. 포르코는 서로 의논하며 진지하게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자기 삶을 존중하는 인간을 본다. 돈 때문에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인간이지만, 인간에게는 여전히 희망적인 모습이 있다.
피콜로씨의 어머니와 이모들은 포르코가 멋진 돼지가 되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 할머니들도 손주 용돈 주는 일이라며 용접 등을 적극적으로 해낸다. 공장의 여성들은 닥치는 대로 살길을 찾고, 그 와중에 주어진 일거리와 먹거리에 감사한다. 이런 노동을 간단히 ‘돈 벌려고 열심히 한다’라든가, ‘결국 비행기는 누군가를 죽여버릴 거야’라며 부정해야 할까? 이들이 작업에 앞서 함께 그릇 가득 스파게티를 담아 포도주와 함께 먹는 모습은 하늘의 죽음을 두려워하던 포르코에게 지상의 삶이 갖는 생명력을 알게 해주었으리라. 우리의 일, 사랑, 꿈을 결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여성들은 파시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포르코가 파시스트들에게 미행을 당하게 되고 서둘러 피콜로씨의 공장에서 탈출해야 했을 때, 할머니들의 눈은 재미로 반짝였다. 이 할머니들이 바보라서, ‘파시스트’가 도대체 뭔지를 몰라서 그렇게 즐거워하신 것이 아니다. 이 할머니들의 아들이 어딘가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할머니의 어떤 자식은 무시무시한 전쟁과 공황 속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삶을 비관하지 않으신다. 자식을 사지로 내몬 그 비행기를 다시 만든다. 할머니의 활력은 어디서 오는가?
웃느라 눈가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들의 얼굴은 어떤 죽음도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이들을 겁줄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이 부분은 미야자키가 여성들의 활력을 아주 높이 평가하는 부분과도 관련된다. 포르코가 주유를 위해 찾아간 아드리아해 어느 섬에서는 공황이 닥쳤네, 전쟁이 시작될꺼네 하면서 매일같이 걱정만 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까페 여주인은 그런 불평 따위 더 들을 필요 없다며 당장 가게 살림에 바빴다. 피콜로씨의 공장에는 여성들이 있고, 작업하는 중간중간에 아이들이 쇠굴리기를 하면서 놀고, 마르코는 그것을 지켜보며 공장 구석에 앉아 갓난아이의 침대를 흔들었다. 비행기가 결국은 죽음을 부르더라고 해도, 비행기를 낳은 그 모성의 힘은 죽음을 초월한다. 생명은 중단 없이 자기 힘을 세상 속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니, 내가 누군가를 살리지 못해도 괜찮다. 다른 이가 살릴 것이며, 삶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마침내 포르코는 피콜로의 회사에서 지브리라는 엔진을 달고 멋지게 수리된 비행기를 타고 멋지게 하늘을 날아 오른다. 앞서 공적들과 공중전을 할 때 포르코는 아이들을 태우지는 못했다. 이제 새로 수리된 붉은 비행기에는 자신의 작업에 진심인 청년 피오가 탄다. 피오를 태우려면 한쪽에 실었던 기관총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무기를 실으면 사람은 실을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을 싣는다는 말은 무기를 버린다는 말과 같다. 드디어 젊은이를, 또 한 사람의 꿈을 가진 이를 자기 비행기에 태우게 되자 포르코의 기분은 급상승한다. 마르코는 지나의 정원 위를 멋지게 곡예 비행을 하며 날기까지 한다.
붉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로 날아 오르게 된 피오는 감탄한다. ‘하늘이 정말 예쁘다’고. 포르코는 저 하늘에 죽은 친구를 묻었다. 하지만 그 하늘에 포르코의 비행을 다시 응원하는 친구들이 새롭게 나타난다. 많은 이들을 사라지게 했지만 하늘은 늘 새로운 꿈으로 그 빈 자리를 채운다. 포르코는 공적들 앞에서 피오를 한 사람의 비행기 설계사로 인정해준다. 하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성별, 나이, 재능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이 아름다운 이유는 꿈을 꾸는 성실한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그의 생기 넘치는 영감을 절대로 해칠 수 없다.
한 편의 영화처럼
포르코의 마법이 풀리려면 아직도 한 단계의 관문이 더 남았다. 아이들을 태워보고 싶다는 소망, 하늘을 나는 자에게는 여전히 필수인 생명에 대한 희망, 이것이 커티스와의 대결에서 마지막으로 시험된다.
《붉은 돼지》에서 돼지 말고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일까? 체리의 여인 지나도 아니고, 비행의 파트너 피오도 아니다. 이 부분이 대반전인데 포르코가 하늘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이는 허풍쟁이 커티스다. 포르코가 비행사들 중 유일하게 인정하는 이가 커티스이며, 마지막 인간의 얼굴을 되찾은 포르코를 발견하는 이도 커티스다. 커티스는 지나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의 연적일 뿐만 아니라 포르코의 정신 세계를 제일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커티스는 어떤 인물인가? 10프로 정도 이탈리아인의 피가 섞인 미국인으로, 전쟁 영웅 포르코와 싸워 유명해지려고 한다. 공적들은 잘난 척 심한 커티스를 필요로 하면서도 은근히 무시한다. 왜냐하면 커티스에게는 비행에 대한 절박함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하지만 포르코는 커티스를 완전 인정한다. 그의 비행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커티스에게는 어떤 매력이 있는가? 심지어 지나도, 커티스의 청혼을 거절하기는 했지만 재미있는 미국인이라며 반가워했었다.
《붉은 돼지》의 마지막 배경은 하늘이다. 우연히 공적들의 시비에 말려든 포르코는 기술 좋은 커티스와 피오를 걸고 대결을 하게 된다. 둘의 대결을 보기 위해 작은 섬 하나가 갱, 해적, 밀수단, 사기꾼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의 쓰레기란 쓰레기는 다 모여든다. 이 대결을 축제처럼 생각하고 말이다. 파시즘의 기세가 하루가 다르게 무섭다지만 지중해 넓은 바다에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쓰레기가 이렇게나 많다니! 그것이 놀랍다. 공적들은 승패에 대해 판돈을 걸게 하며 구경꾼들 사이에서 돈도 번다. 구경 온 모두는 세기의 대결을 한껏 기대한다. 지나의 개인 비행정을 모든 비행사도, 지나와 함께 여기에 가보려고 발을 동동 구른다. 관객들은 모두 쓰레기들이라지만, 공적들까지도 오래간만에 목욕까지하고 참석한다.
아드리아해의 하늘에서는 어떤 대결이 펼쳐지는가? 아무도 죽지 않는다. 포르코는 아예 커티스를 향해 발사조차 않는다. 포르코는 커티스의 비행정을 맞추어 추락시킬 기세다. 커티스는 일단 마구 총을 쏜다. 하지만 포르코의 날렵한 비행술에 번번이 맞히지를 못한다. 결국 서로 꼬리를 물면서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모습이 된다. 그러다 서로 총알이 떨어진다. 할 수 없이 각자 비행기에 두고 있던 멍키 스패너, 빈 총, 여러 가지 도구들을 집어 던지면서 유치한 말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아예 섬의 해안으로 내려와 버린다. 이제 주먹질 시작이다! 여기에는 어떤 룰도 없다. 예고 없이 먼저 공격하기도 하고, 물 밑에서 두 다리를 끄집어 내리기도 하며,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다. 도입부에서 근사하게 와인에 담배에 온갖 폼을 다 잡았던 포르코는 완전히 동네 건달이 되고, 심지어 한쪽 선글라스 렌즈가 깨져 맞아 부은 왼쪽 눈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 광경을 구경꾼들 모두 하늘로 주먹을 흔들며 환호하고 즐긴다. 《붉은 돼지》OST 앨범을 보면, 이때 나오는 배경 음악 제목이 ‘dog fight’라고 되어 있다. 멋진 비행사들의 개싸움이라는 말이다. ^^
아드리아해에 있는 지나의 호텔은 그 인근에서 아무도 다툼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지나가 노래 부르는 홀에서는 공적도 포르코도 커티스도 각자 좋은 음식을 먹고 즐겁게 노래를 들으며 휴식을 할 수 있다. 다투지 않고도 서로의 자리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커티스는 누구인가? 그는 개싸움꾼이지만 무엇보다 지나의 노래에 매료된 사람이었다. 노래는, 그림은, 영화는 적대를 초월한다. 포르코가 커티스에게 인정한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이 두 사람은 섬의 관객들에게 주먹다짐을 함으로써 비행 이상의 큰 즐거움을 준다. 하늘에서 이룬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두 비행사 모두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작품 도입부가 다시 떠오른다. 간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포르코의 얼굴 위로 잡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씨네마’다. 포르코는 영화 잡지를 읽고 있었다. 파시스트에 쫓길 때 친구와 밀라노의 후진 극장에서 아이들과 만화 영화(미국 영화 같은)를 함께 보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또 커티스는 영화 배우를 꿈꾸는 비행사다. 모두 영화와 관련이 있다. 이 마지막 격투씬은 미국 서부 활극처럼, 그런데 장르는 코미디로 해서, 우당탕탕 전개 되는 한 편의 영화인 것이다. 푸른 하늘은 관객들에게는 극이 전개되고, 멋진 쇼가 펼쳐지는 배경이었다.
커티스는 나중에 헐리우드에 가서 유명한 배우가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돌아다녔으며, 비행 실력은 그를 유명하게 해 줄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조종사란 모름지기 포르코처럼 사람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 커티스는 머리를 절레절레 하며 ‘내 문제는 아니야~’ 했으리라. 그런 커티스가 예술의 의미를 이해한다.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파시즘의 나라는 만들지 않겠지. 적도 아군도 모두 극장에 가서는 나란히 앞을 보고 울고 웃을 테니까.
맨 처음, 세상사에 만사 심드렁해 보이는 포르코였다. 피오는, 유명한 전쟁 영웅이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안하고 있느냐며 이상하다고 했다. 키키가 우울했다면 포르코는 무기력했다. 이런 포르코가 벌떡 일어난다. 체험 학습에 간 열 다섯 명의 유치원생들을 납치되었을 때, 커티스가 피오와 결혼하는 것을 막으려 했을 때. 도시는 파시즘으로 다 물들어 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자기 즐겁자고 비행을 즐긴다. 포르코는 파시즘의 광풍에 빨려 들어가버린 전우들을 그리워하지만 직접 반전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전쟁은 나몰라라, 해적들처럼 자기 욕망 채우기에 바쁘지도 않았다. 붉은 비행정에 피오를 태우기 위해서는 기관총 하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포르코는 비행기에 아이와 소녀를 태우고 싶다. 혹은 멋진 비행쇼로 지상 사람들을 한번 크게 웃기고 싶다. 비행으로 사람을 살릴 길은 많고 많다! 포르코는 바로 이 점을 깨달으면서 자신의 저주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다시 인간이 된 포르코는 무엇을 하게 될까? 때는 파시즘의 검은 아가리가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무렵이다. 포르코는 다시 전쟁에 참여하게 될까? 아니면 커티스를 따라 할리우드로 가게 될까? 어디 길이 둘뿐이랴? 미야자키는 대결이 끝나고 정말 넓고 넓은 푸르름을 펼쳐 보이면서 한없이 작게 나는 비행기를 보여준다. 하늘은 너무나 넓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날아라!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미야자키 하야오-일상의 애니미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야자키 하야오-일상의 애니미즘] 신은 죽었다 (0) | 2024.01.25 |
---|---|
[미야자키 하야오-일상의 애니미즘] 자연과 문명의 저편 (3) | 2024.01.18 |
[미야자키 하야오-일상의 애니미즘] 선글라스와 양복의 저주 (0) | 2024.01.11 |
[미야자키하야오-일상의애니미즘] 섬들의 바다, 자율의 하늘 (0) | 2023.12.28 |
[미야자키하야오-일상의애니미즘] 청소는 나의 운명 (0) | 2023.12.21 |
[미야자키하야오-일상의애니미즘] 잃어버린 마법을 찾아서 (0) | 2023.12.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