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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내인생의주역 시즌2

[내인생의주역시즌2] 유랑하는 청년들이 겨누어야 하는 것

by 북드라망 2023. 3. 9.

유랑하는 청년들이 겨누어야 하는 것

火山旅(화산려) 
 
旅, 小亨, 旅貞吉.
려괘는 조금 형통하고, 유랑함에 올바르게 행동해야 길하다.

初六, 旅瑣瑣, 斯其所取災.
초육효, 유랑하는 자가 비루하고 쪼잔하니 이 때문에 재앙을 자초한다.

六二, 旅卽次, 懷其資, 得童僕貞.
육이효, 유랑하는 자가 숙소에 드니 노잣돈을 지니고 있고 어린 종복의 충직함을 얻는다.

九三, 旅焚其次, 喪其童僕貞, 厲.
구삼효, 유랑하는 자가 숙소를 불태우고 어린 종복의 충직함을 잃어버리니 위태롭다.

九四, 旅于處, 得其資斧, 我心, 不快.
구사효, 유랑하는 자가 거처할 곳이 있고 그 노잣돈과 도끼를 얻었지만, 나의 마음은 불쾌하다.

六五, 射雉一矢亡, 終以譽命.
육오효, 꿩을 쏘아 맞히어 화살 하나로 잡은 것이다. 끝내 영예와 복록을 얻는다.

上九, 鳥焚其巢, 旅人先笑後號咷, 喪牛于易, 凶.
상구효, 새가 둥지를 불태우는 것이니 유랑하는 자가 먼저 웃고 나중에는 울부짖는다. 소홀히 여겨서 소를 잃어버리니 흉하다.

 

‘유랑하는 나그네’, ‘여행자!’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는 단어다. 몸담았던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유랑의 길에 선 나그네. 어디에도 매인 것 없이 훌훌 털고 휘적휘적 구름처럼 물처럼 흘러 다니니 자유롭기 그지없을 것 같다. 맞다. 정착민이 아닌 길 위의 노마드! 자유로운 삶의 대명사 같은 말이다. 그러나 막상 집 떠나 길 위에 서 본 사람은 안다. 그런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동떨어진 간극을. 일시적이든 홀로서기를 위한 것이든 낭만은 고사하고 당장 잠잘 곳,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길 떠난 이에게 없으면 안되는 게 노자 돈(資)이고 사람의 도움이다. 이도 저도 변변찮은 나그네에겐 그저 고달프고 외로운 유랑길이기 십상이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닌 것이다. 허나, 고생할 때 하더라도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나는 게 인간사 자연의 이치다. 나이가 차면 부모의 품이 더 이상 편안하지도 않을뿐더러 또 편하다고 마냥 주저앉아서도 안 되는 때가 온다. 물론 요즘은 금수저 은수저니 캥거루족이니 하는 자조섞인 말처럼 집을 떠나지 않으려는, 아니 떠나지 못하는 청년들도 많다. 하지만 자의든 타의든 길 위로 나서야 하는 시기가 청년기 아닌가. 풍요의 성대함(풍괘)이 무너지고 그 끝에 등장한 여(旅)괘를 보니 집 떠나 고생을 자처하는 청년들이 떠올랐다.

 


집을 떠나 필동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으로 공부하러 모여든 청년들. 이들은 왜 집을 떠나왔을까. 이유는 가지가지다. 부모에게 등 떠밀려서,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날이 막막해서, 학교 공부가 무의미해서… 등등. 집에 있으면 의식주 해결이라도 되련만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다. 주역이 쓰여졌던 시대에 비하면 지금은 풍요로움이 극에 이른 시대라 할 수 있다. 적어도 헐벗고 굶주리는 시대는 아니니.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함이 그대로 정신적인 여유와 풍요로움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아니 더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이 될 수 있다는 걸 앞서 풍괘에서도 보여준다. 상대적인 결핍감과 앞날에 대해 불안함, 우울함과 자의식 따위로 마음의 결은 한층 더 가난하고 강퍅해져 가는 것 같다. 편하고 익숙한 집에 계속 머물면서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집이 더 이상 안전지대도 아니다. 손에 쥔 폰 하나만으로도 갖가지 위험한 상황과 조건 속으로 빠져들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가진 것 없이 길 위로 나선 청년들. 이들의 목표는 그저 의식주 해결이 아니다. 공부로서 자기 삶의 길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유랑하는 나그네의 괘, 여괘에서는 어떻게 그 길을 보여줄까.

려괘는 불을 상징하는 리(離)괘가 위에 있고 산을 상징하는 간(艮)괘가 아래에 있다. 산은 멈추어 자리를 바꾸지 않는 반면 불은 타오르면서 머물지 않으니 서로 어긋나 떠나가는 형상이다. 그래서 ‘나그네’ 혹은 ‘여행자’라 이름 붙였다. 나그네건 여행자건 늘 움직이고 떠나고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 게 제 모습이다. 그런데 여괘의 괘상을 보면 늘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산이 떡하니 안에 버티고 있는 게 흥미롭다. 간괘의 산은 멈춤(止)을 의미한다. 유랑하면서도 멈추어야 할 때가 있으니 바로 곤궁할 때다. 여괘는 자기 자리가 없이 유랑하는 것 자체를 곤궁함으로 본다. 그래서 곤궁한 나그네에겐 합당한 자리에 멈추어서 현명한 사람에게 붙어있는 것이 유랑에 대처하는 마땅한 방도라는 것. 그러면 어려울 때 이렇게 곤궁함을 해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게 아니다. 불인 리괘는 붙어있다(麗:걸릴 리)는 상징과 더불어 밝게 세상을 비추는 의미가 있다. 비록 곤궁한 나그네로 유랑하지만 세상을 밝게 비추는 덕목을 요구한다. 그러니 나그네의 형통함은 곤궁할 때 멈추어 현명한 사람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가와 더불어 어떻게 세상을 밝게 비추는 능력을 갖추는가에 달려있다. 이 두 가지 미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육이효와 육오효다.

이 청년들을 보고 있자니 딱 여괘의 육이효처럼 머물 곳(次)과 물자(資)와 도와주는 사람들(童僕)까지 완벽히 갖추었다. 곤궁하기는커녕 집 떠난 유랑자의 최선!처럼 보인다. 삼삼오오 공동으로 머물 곳을 마련하고, 공동주방에서 함께 밥을 해결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스승과 동료들이 있으니 얼핏 뭐 하나 빠질 게 없다. 게다가 각자 이곳 공동체에서 맡은 일로 알바도 하고 자립하며 공부까지하고 있으니 내 눈엔 참 복 많은 젊은이들로 보인다. 이들은 애초 프로그램의 규정을 지키며 공부하려고 뜻을 두고 왔다. 하지만 적응이 그리 만만한 건 아니다. 공부도 공부지만 타자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디 쉬운가. 자만에 찬 구삼효처럼 섞이지 못하고 처할 곳도 사람도 모두 잃게 되는 위태로움에 처하기도 한다. 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겸손함과 협력으로 동료들과 섞이기가 영 힘든 것이다. 그래서 겉돌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하고, 잘하려고 엄청 애쓰다가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육이효와 같은 중정의 안정이 어찌 쉽게 주어지겠는가. 그러니 지금 얼핏 안정돼 보인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끝까지 가 보아야 하는 것이다. 좌충우돌하면서도 끝까지 가는 힘은 단지 머물 곳과 물자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나의 흥미를 끈 효는 육오효다. 六五, 射雉一矢亡, 終以譽命.(꿩을 쏘아 맞히어 화살 하나로 잡은 것이다. 끝내 영예와 복록을 얻는다.) 꿩은 리(離)괘의 문명함을 말한다. 꿩의 아름다운 날개와 그 화려함을 빗대어 문명과 문화의 시대를 여는 리괘의 상징물로 삼은 것. 꿩을 쏘아 화살 한 발로 명중하듯 잡으라는 건 문명의 덕을 겨냥해 잡으라는 말이다. 문명의 지혜로써 세상을 밝히는 나그네의 형통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집 떠난 나그네도 종류가 있다. 초효처럼 마음속에 간직한 뜻이 낮고 추한 자는 유랑하며 더욱 곤궁하고 비루하고 쩨쩨해진다. 마치 수행에는 뜻이 없는 비구의 탁발이 거렁뱅이의 걸식으로 전락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육오는 문명한 지위에서 문명하고 유순한 덕을 지닌 자다. 군주의 자리라서가 아니다. 집 떠나 유랑하는 나그네에게 군주의 자리란 없다. 그 마음속에 품은 뜻이 군주처럼 높고 문명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문명은 무지에서 벗어난 밝음이자 지혜다. 인간이 문명의 밝음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만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원리를 깨우쳤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를 향해 가야할지, 어둠 속에선 길이 보이지 않는다. 방향을 잃고 넘어지고 헤매기 십상이다. 무지에서 벗어나 어둡고 캄캄한 길을 비춰줄 밝은 빛이 곧 공부 아닌가. 붓다도 공자도 집을 나와 길 위에서 삶의 비전을 모색했다. 오직 한 마음으로 삶의 등불이 되어 줄 진리와 지혜를 구했다. 어디 붓다, 공자뿐인가. 텍스트로 접하는 많은 앞서간 스승들 역시 마찬가지다. 각자의 방식으로 터득한 지혜로써 자기만의 삶의 길을 갔음을 보여준다.

 


공부에 뜻을 두고 길에 나선 청년들이 온 마음을 다해 겨누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자기 삶의 길을 밝혀줄 지혜를 구하고자하는 간절한 마음과 뜻! 단 한 발의 화살로 꿩을 명중하듯(射雉一矢亡) 공부의 과녁을 벼리고 벼리며 집중하는 마음! 끝까지 공부의 길을 가는 스스로의 내면의 힘은 그로부터 나온다. 그럴 때 절로 스승과 동료들의 신뢰도 따라 온다. 길 떠난 나그네의 처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함께하는 것보다 더한 영예와 복록(終以譽命)이 있을까. 유랑하는 청년들이 마침내, 단 한 발의 화살을 쏘아 공부의 과녁에 명중하기를!

 

 

 

글_안혜숙(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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