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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요요와 불교산책]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by 북드라망 2022. 10. 7.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71)


 
『무소의 뿔 경』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이 구절은 독립, 자유, 결단, 마이 웨이와 같은 이미지와 결부된다. 지리멸렬한 현실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라, 이런저런 주위의 시선과 기대 따위 훌훌 털어 버리고 네 식대로 살아도 좋다는 희망과 위로를 주는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일 게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 제 살 길 외에는 관심 없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얽히고설켜서 잘 사는 방법을 찾아도 모자랄 판인데 불교마저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을 생각하면 이런 식의 이해들은 다소간 오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홀로서기를 감행하라,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제 갈 길 가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라, 라는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가(出家), 익숙한 습속을 떠나라
먼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집을 떠난 출가사문들을 향한 말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출가사문이란, 붓다의 시대인 기원전 6세기경에 고대인도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비판적이고 이단적인 자유사상가들이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믿어져온 성스러운 『베다』의 가르침과 제식주의에 이의를 제기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사제계급인 바라문들이 주관하는, 수많은 희생동물을 바치는 거대한 제사가 선업과 공덕을 쌓는 최고의 길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고행과 절제, 명상적 삶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지식과 통찰만이 우리의 삶을 자유와 해방으로 이끈다고 주장했다.

이들 출가사문들은 바라문들과는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했다. 바라문들이 가정을 꾸리고 부를 축적하면서 현세의 쾌락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자유사상가들은 집을 떠나 오직 수행하는 삶에 올인했다. 바라문계급은 출생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사문은 출신을 따지지 않았다. 사문은 출생과 상관없이 집을 떠나 수행·정진하는 자들에게 부여된 칭호였다. 붓다 역시 출가사문의 한 사람이었다. 붓다는 통치자 계급으로 태어난 크샤트리아였지만, 자신의 출신을 버리고 사문이 되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출가자를 향한 말이었다는 것은 그가 가는 방향이 분명했다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집을 떠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일까. 대개 집은 안식처이거나 귀환의 장소에 비유된다. 돌아온 탕아에게도 오딧세우스에게도 집은 돌아갈 곳이었다. 그러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자에게 집은 버리고 떠나야 하는 곳이다! 붓다에게 집이란 익숙한 사유와 습속을 유지하고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삶의 장소이다. 그러므로 ‘집’을 떠나야 비로소 다른 삶을 생각할 수 있고 다르게 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집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믿어온 것들을 해체하고 떠나는 실천을 하라는 요구이다.

자식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재산도 곡식도 친지들도, 모든 욕망의 경계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다. 여기에는 행복이 없다. 이곳에는 만족은 적고 괴로움이 많다. 이것은 낚시 바늘이다’라고 현자라면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에 사는 물고기가 그물을 찢는 것처럼, 모든 장애들을 끊어버리고, 불꽃이 불탄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산호나무가 잎들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재가자로서 지닌 모든 특징을 버리고, 출가하여 가사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60~64)

 



걸식,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집밥이라는 말을 들으면 입에 침이 돌고 뱃속이 든든하고 따뜻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집은 밥의 장소이다. 집을 떠난 붓다는 어떻게 밥을 해결했을까? 붓다에게 출가는 곧 걸식을 의미했다. 불교의 승려를 비구, 비구니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걸식하는 남자, 걸식하는 여자라는 뜻이다.

붓다는 아침이 되면 수행처인 숲에서 나와 마을로 탁발하러 가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붓다는 먹고 사는 문제를 전적으로 재가자들이 공양하는 음식과 시주물에 의지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이렇게 걸식하면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러 가는 것이었다. 걸식은 어떤 축적도 없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붓다가 자신과 제자들에게 허락한 소유물이란 진흙으로 빚은 발우 하나, 버린 천을 기워 만든 가사 한 벌, 소의 똥오줌으로 만든 비상약품 약간이 전부였다.

집을 떠난 출가자들은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심산유곡에 들어가 고요히 은거하는 은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유자적 텃밭을 가꾸며 자급자족하지도 않았다. 수행승들의 걸식은 마을을 향해 열린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아침이면 발우를 들고 마을의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먹을 것을 구했다. 붓다도 매일 마을에 걸식하러 가면서 세상의 칭찬과 비난, 거부와 환대, 예배와 모욕, 이 모든 것과 마주했을 것이다. 밥을 얻지 못한 날도 있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먹을 것을 마을 사람들의 선의와 호의에 의지하는 출가사문들에게 주는 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평정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소욕지족(少欲知足)이 몸에 배야 한다.

 

일반사람들이 집착하는 욕망과 탐욕을 떠나 눈을 갖춘 님이 된다면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배를 가득 채우지 말고 음식을 절제하고 욕심을 적게 하고 탐욕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욕망이 없어지고 버려져서, 욕망을 여읜 것이 열반입니다. 성자의 삶을 사는 님은 탁발을 하고 나서, 나무 아래로 가까이 가서 자리를 잡고 숲 속의 빈터에 머무는 것이 좋습니다. 슬기롭게 선정에 전념하고, 숲 속에서 즐기며, 스스로 만족해하며, 나무 아래서 선정을 닦으십시오.(『숫타니파타』706~709)

 


유행(遊行), 흔적을 남기지 말라
붓다의 시대에 불교 수행자들의 삶의 기본 형태는 유행이었다. 집을 떠난 이들은 지붕 없는 곳에서 먹고 자고 수행하는 유행자로 살았다. 심지어 붓다는 수행승들에게 한 나무 아래에서 사흘 이상 머물지 말라고도 했다. 수행하기 위해 찾은 숲속의 나무 그늘조차 사흘 이상 한 곳에 머물면 ‘내 것’이라는 집착이 생기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걸식과 유행은 무소유와 무집착을 닦는 수행이었고, 또 무소유와 무집착을 구현한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문탁에는 공간을 이용한 후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생활윤리가 있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흔적이 반드시 뒷정리를 잘 하는 것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령 문탁 공부방에는 내가 즐겨 앉는 자리가 있다. 우리 모두 공부방에는 특정인의 자리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어느새 그 책상은 나에게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내 자리처럼 되어버렸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내 자리가 없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생각일 뿐이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야 흔적이 남지 않는다.

유행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그저 혼자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든 생각이든 물건이든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소유적 삶에 대한 경계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유행자의 삶의 방식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하늘을 나는 새가 허공에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감각적 쾌락은 다양하고 달콤하고 즐거우니,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마음을 혼란시킨다. 욕망의 가닥들에서 이러한 위험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 고뇌이고 종기이고 재난이며,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이다. 욕망의 가닥들에서 이러한 두려움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50~51)

 


공동체, 선우(善友)와 함께 가라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나 감각적인 욕망의 위험만큼이나 붓다가 경계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었다. 출가자도 유행자도 혼자서 살지 않는다. 마을과의 관계에서 밥을 얻고, 유행하며 수행자들을 만나 벗이 되고, 같이 수행하는 벗들과 서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인간관계로부터 떨어져 홀로 지내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집착할 때의 위험을 잘 살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금세공사가 잘 만들어낸 빛나는 한 쌍의 황금 팔찌도 한 팔에서 서로 부딪치는 것을 보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와 같이 두 사람이 같이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리니, 이러한 두려움이 다가옴을 잘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48~49)

교제가 있으면 애착이 생기고, 애착을 따라 이러한 괴로움이 생겨나니, 애착에서 생겨나는 위험을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정을 나누며, 마음이 얽매이면 유익함을 잃으리니, 사귐에서 오는 이러한 두려움을 살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36~38)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담그지 못하는 것이 아니듯이 교제에서 생기는 애착과 불화를 두려워하여 모임을 피하는 것이 반드시 능사는 아니다. 웬만한 내공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를 받으면서 공부할 때 더 자극을 받고 힘을 얻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공부에서도 수행에서도 성숙하고 좋은 벗을 얻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좋은 삶에는 좋은 벗이 필요하다. 깨달음을 얻고 나서 붓다가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이전에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를 찾아가 설법한 것이었다. 이 만남을 통해 최초의 불교 수행자 공동체인 승가가 탄생했다. 붓다는 평생토록 걸식하고 유행하며 흙먼지 나는 길 위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났다. 숲속의 나무 아래에서, 하룻밤 잠자리를 구해 들어간 옹기장이의 움막에서 인연이 된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했고, 승가를 함께 꾸려갈 소중한 도반들을 구했다. 사리뿟따도, 목갈라나도, 마하가섭도 그렇게 길 위에서 만난 좋은 벗, 선우들이었다.

만일 어질고 단호한 동반자, 성숙한 벗을 얻는다면, 어떠한 난관들도 극복하리니, 기쁘게 새김을 확립하여 그와 함께 가라. 어질고 단호한 동료수행자, 현명하고 성숙한 벗을 얻지 못한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은 행복을 기린다. 훌륭하거나 비슷한 친구를 사귀되, 이런 벗을 만나지 못하면 허물없음을 즐기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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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좇지 말고 다른 삶의 방식을 발명하라는 붓다의 선언으로, 또 뉴노멀이니 뭐니 말은 많지만 여전히 욕망을 키우는 것에 몰빵하는 일방통행로를 달려가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주는 붓다의 메시지로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보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내 욕망에 충실하겠다는 자유선언’이나 ‘홀로 서기의 행복’이나 ‘마이 웨이’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욕망을 버리는 자유’와 ‘어질고 현명한 벗과 함께 하는 삶’과 ‘치열한 정진’에 대한 독려로 읽을 수 있다.

출가를 문자 그대로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해체하는 실천으로 재정의 한다면 우리는 출가에 대해 얼마든지 다른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다. 인생에 단 한 번 감행되는 특별한 사건으로서의 출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다른 삶을 상상하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 출가를 이해한다면 재가자와 출가자의 형식적 구분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걸식과 유행 또한 마찬가지다. 소욕지족하는 삶, 머물지 않는 삶, 흔적을 남기지 않는 삶 역시 출가냐 재가냐, 불교신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도 지금 여기에서 좋은 벗을 찾아 그와 함께 좋은 삶에 대해 상상하고 시도하기를 멈추지 말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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