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이 가득한 세상에서
목공소 괴담
목공소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급한 주문이 있어 밤늦게까지 목공소에 남아있던 날. 목수님은 먼저 퇴근하셨고, 나도 퇴근을 위해 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동네는 조용했고, 방금 전까지 들리던 테이블 톱의 소음이 사라진 탓에 목공소는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기계들과 쌓여있는 나무들이 왠지 으스스하게 느껴지던 순간, 갑자기 목공소 한쪽에서 엄청나게 큰 굉음이 들려왔다.
“꽝!”
“으악!” 난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내팽겨 치고 일단 목공소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무슨 소리지…?’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천천히 문을 열고 목공소에 들어섰다. 목공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불을 켜고 소리가 난 장소로 조심스레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목공소에 온 손님들을 맞고 상담하기 위해 만들었던 테이블이 두 갈래로 쩍 하고 갈라져 있었다.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불을 끄고 도망치듯 목공소를 나갔다. 목공소 괴담의 탄생 순간이다.
변화를 거듭한다
다음 날 목수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갈라진 나무 사이에 본드를 넣고 클램프로 양쪽을 걸어 당겨 고정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거실에 만들어놓은 테이블이 굉음을 내며 갈라졌다는.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나무는 계절, 특히 습도의 영향을 받아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겨울은 건조해서 목재가 머금고 있던 수분을 내 뱉으며 조직이 수축하고, 여름은 습해서 다시 그 조직 사이사이로 수분이 들어와 팽창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몸과 피부가 작아지고 주름이 잡히는 것처럼, 나무도 결과적으로 수분을 머금을 수 있는 조직이 수축을 향해 나아가며 점점 더 건조된다. 굉음과 함께 갈라지는 이 현상은 따라서 나무의 접착 면 혹은 결합부위에서 일어난다.
원목 테이블을 예로 들어보자. 나무와 나무를 본드로 접착해 상판을 만들고, 이렇게 접착된 상판을 테이블 다리에 나사나 철물을 이용해 고정하면 수축과 팽창의 움직임이 억제된다. 억제된 힘은 약한 곳에서 쌓이며, 더 이상 구조가 그 힘을 견딜 수 없게 되었을 때 본드가 약한 부분이 ‘쩍’ 하고 떨어지거나, 나사나 철물이 박혀있던 자리에서 갈라짐이 생긴다. 따라서 이런 현상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하고 느린 변화들이 거듭되며 어떤 한계치에 도달해 보여 진 것 뿐, 나무는 사실상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끝내 굉음과 갈라짐이 없는 경우에도 변화는 지속된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라면, 이러한 변화를 예측하여 가구를 만들어야한다. 수축과 팽창의 방향에 맞게 나사나 철물을 사용하고, 본드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가구를 주문하는 클라이언트에게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가구를 관리하는 요령을 일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알리기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그것은 실제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만들고 관리해도 끝내 갈라지고 틀어지는 가구들이 있다. 우리가 모든 미세한 변화들을 전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를 거듭하는 물질의 성질은 비단 나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철, 콘크리트, 플라스틱. 우린 이것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믿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재료들은 온도, 습도, 바람과 빛 등의 다양한 조건에 맞추어 변화하기를 거듭한다. (철로의 홈, 도로, 특히 교량 위 콘크리트의 틈을 생각해보라)
합판의 작은 역사
그러나 우린 이 재료들이 멈추어 있다고 믿을 뿐 아니라, 모든 것들이 멈추어 있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멈추어 있는 것을 만들고자 노력한다. 원목의 수축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 중에는 합판이라는 재료가 있다. 합판은 원목을 얇게 켜서, 교차로 쌓아 접착한 판재다. 이렇게 하면 수축 팽창의 방향이 엇갈리며 당기고 밀어내는 힘들이 서로에게 작용해 그 변화가 성공적으로 억제된다.
합판이 처음 제작된 것은 기원전 3,500년경으로 추정된다. 고대 이집트 황제의 무덤에서 나무를 얇게 켜 교차로 접착한 판재로 만든 가구가 발견되었다. 갈라지거나 틀어지는 목재의 성질을 알고 있던 고대의 목수들이 황제의 무덤에서 영원히 존재할 가구를 위해 엄청난 노력과 능력을 쏟아 이 판재를 만들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목재로 얇고 넓은 판을 만드는 일이다. 전기를 이용해 일정한 속도로 톱을 움직이도록 하는 모터, 이 모터에 단단히 고정되어 일정한 방향과 간격을 유지하며 절삭하는 원형 톱날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합판 한 장을 만드는 일은 수행 혹은 기도와 같았을 것이다. 울퉁불퉁하게 잘려진 판재를 다듬는 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은 일을 향해 아주 조금씩 나아가는 일. 그래서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아니라, 황제의 무덤에서만 발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고대의 무덤에서 합판 가구는 이른바 ‘과-스펙’으로써 황제의 권능을 보여주는 물건이었지만, 오늘날 합판 가구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저-스펙’이라는 점이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이 정말 기적처럼 간단해진 것은 산업화 이후다. 19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덕분에 기계식 목공도구들의 개발 및 도입, 철물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가구는 비숙련 노동자에 의해 공장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값싸고 변형이 적은 가구가 집집마다 보급되었다. 변화를 멈추도록 하는 것은 대량생산의 필요와 맞물린다. 쉽게 자르고 결합해 보급하기 위해서 수축팽창이라는 성질로 인해 나무는 적절한 소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마침 합판의 필요와 그것을 만드는 기술이 동시에 준비된 것이다.
더 무서운 괴담들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의 중차대한 변화들은, 인간의 삶과 욕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동안 인류가 중요하다고 믿어왔던 가치들은 순식간에 낡은 것이 되었다. 더 이상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간들은 변화가 없는 재료를 활용해 더 많이, 더 빠르게 생산하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 도시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고, 화려했고, 삶의 질은 순식간에 향상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들은 이후 100년 뒤에 당연하게 벌어질 무시무시한 일들을 외면하고 모른 척 하는 위에서만 가능했다. 합판 수요의 급격한 증가는 당연히 몇 십 년, 아니 몇 백 년이 걸려 곧게 자란 나무들을 너무 쉽게 베어버리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나무들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제일 먼저 베어졌다. 산업화 이후 지구의 온도는 1°C 상승했다. 그리고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의 온도가 1.5°C 상승하면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재료들이 멈추어 있도록 한 우리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지구 전체를 엄청난 변화 속으로 이끌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 유래 없는 장마, 한반도를 강타한 세 번의 태풍, 호주와 미 서부의 산불을 보라. 이 모든 상황들이야말로 괴담이 아닌가.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런데 산업화 이전부터 재료의 변화에 민감했던 장인들은, 언제나 이러한 변화들을 경계하고 경고해왔다. 오늘날까지도 나무라는 재료의 변화에 맞추어 집을 짓는 기술을 구전으로 전승하는 일본 호류지가의 장인 중 한명인 니시오카 쓰네카즈는 『나무에게 배운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나무도 심었습니다. 이 집은 이백 년은 갈 테지, 지금 나무를 심어 두면 이백 년 뒤에 집을 지을 때는 안성맞춤일 테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삼백 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있었던 것이지요. 심은 나무가 자라기까지 기다렸고, 또 마구 쓰고 버려서는 안 된다는 정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나무의 성질을 살려서 알뜰하게 쓴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생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 조금 더 긴 눈으로 세상사를 보고 생각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좌우간 한 번 쓰고 버리는 생활이 기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니시오카 쓰네카즈, 최성현 옮김, 『나무에게 배운다』)
그가 말하는 시간 감각이라는 것은 아마도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는 것일 테다. 나무를 사용하면 나무를 심고, 심은 나무가 자랄 때까지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것들이 자라나고 없어진다는 사실, 변화한다는 사실이 또 다른 변화의 원인이 될 거라는 아주 간단하고 명료한 발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갑자기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일이란 없다. 우리가 그것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알고 싶지 않을 뿐이다. 당연하게도, 괴담들은 우리가 그것의 원인을 알지 못할 때 생겨난다.
“꽝!” 소리는 물론 다시 들어도 무섭겠지만, 나는 나무가 변화를 거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 더 이상 그 원인에 대해 불필요한 상상을 하며 덜덜 떨지 않는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들 역시 어떤 변화의 일부라면 우리는 우선 그 일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데서 괴담에 대한 공포를 걷어낼 수 있다. ‘갑자기 지구가 왜 이래?’가 아니라, ‘우리의 어떤 행위들과 이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을까?’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이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전 지구적인 규모의 대책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무가 보여주는, 그러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변화처럼, 거듭되는 미세하고 느린 그런 작은 실천들이 필요한 건지도.
글_김지원(길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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