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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왕양명마이너리티리포트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by 북드라망 2021. 8. 13.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

 

 

 

何陋軒記
昔孔子欲居九夷 人以為陋 孔子曰君子居之 何陋之有 守仁以罪謫龍塲龍塲 古夷蔡之外 於今為要綏 而習類尚因其故 人皆以予自上國往將陋其地弗能居也 而予處之旬月安而樂之求其所謂甚陋者而莫得 獨其結題鳥言山棲羝服無軒裳宮室之觀文儀揖讓之縟然此猶淳龎質素之遺焉 蓋古之時法制未備則有然矣 不得以為陋也 夫愛憎面背亂白黝丹浚奸窮黠外良而中螫諸夏蓋不免焉若是而彬鬱其容宋甫魯掖折旋矩矱將無為陋乎 夷之人迺不能此其好言惡詈直情率遂則有矣世徒以其言辭物采之眇而陋之吾不謂然也 始予至無室以止居於叢棘之間則鬱也 遷於東峯就石穴而居之又隂以濕 龍塲之民老稚日來視予喜不予陋益予比 予嘗圃於叢棘之右 民謂予之樂之也相與伐木閣之材就其地為軒以居予 予因而翳之以檜竹蒔之以卉藥列堂階辯室奧琴編圖史講誦逰適之道 畧具學士之來逰者亦稍稍而集於是人之及吾軒者若觀於通都焉而予亦忘予之居夷也 因名之曰何陋以信孔子之言 嗟,夫諸夏之盛其典章禮樂厯聖修而傳之夷不能有也則謂之陋固宜 於後蔑道徳而専法令搜抉鈎縶之術窮而狡匿譎詐無所不至渾樸盡矣 夷之民方若未琢之璞未繩之木 雖粗礪頑梗而椎斧尚有施也 安可以陋之 斯孔子所為欲居也歟 雖然典章文物則亦胡可以無講 今夷之俗崇巫而事鬼 凟禮而任情不中不節卒未免於陋之名則亦不講於是耳 然此無損於其質也誠有君子而居焉其化之也蓋易而予非其人也記之以俟來者

 


하루헌기(何陋軒記)

옛날에 공자께서 오랑캐땅 구이(九夷)에서 살고자 한다고 하시자 사람들이 어째서 하필 그런 비루한 곳이냐고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군자가 거처하는 것에 어찌 비루함이 있겠는가?”

나 왕수인은 ‘인을 지킨’ 죄를 얻어 용장땅으로 유배되었다. 용장은 고대로부터 변방의 오랑캐 지역이었고 지금에 와서는 통제되었지만, 그럼에도 습속은 그 오래된 것들을 받들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이것 때문에 내가 문명한 나라에서 그 비루한 지역으로 가게 되면 살기 힘들 거라 걱정하였다. 하지만 나는 한 달 가량 되었지만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고 있고 이른바 진짜로 비루하다 할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려 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이들은 독특한 상투를 틀고, 새소리 같은 말을 하고, 산에 살며, 짐승가죽으로 몸을 두르고 있다. 하여 수레나 제대로 된 의상 혹은 궁실과 같은 건물과 같은 볼만한 것이 없고 문명이나 의례 또는 절하고 사양하는 예절 등의 번듯함도 없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순후 독실하고 바탕이 소박한 유습이라 할 만하다. 대개 그 옛날옛적에는 법과 제도가 미비하였으니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부득이하여 그렇게 된 것을 비루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에 비하면 앞에서는 친하면서 뒤로는 증오하고, 흰 것과 검푸른 것과 붉은 것 등을 뒤섞어버리며, 간교함이 깊고 교활함이 궁극에 달하였으며, 겉으로는 선량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독을 쏘려는 마음을 품는 것 등에서 지금의 제하(諸夏;중국) 사람들은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하면서 그 용모만을 빛나고 화려하게 꾸미고 송나라의 관을 쓰고 노나라의 의복을 껴입은 채, 굽혔다 펼쳤다 하는 식의 문명 예의의 잣대에 절합되기만 한다면 장차 비루함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곳 오랑캐인들은 중화인들처럼 그럴 수 없어서, 그들은 바른 말을 좋아하고 욕하는 말을 싫어하며 감정에 솔직하고 마음을 따라 이끈다. 그러한즉 세상 사람들이 이것으로써 그 말의 꾸밈과 문물의 다채로움 따위의 치우친 시각으로 그것을 비루하다 말한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처음 이곳 용장에 왔을 때 머물 집이 없었고 가시덤불 숲 속에 거처를 삼아 유지했는데 답답하고 우울했다. 동쪽 봉우리로 옮겨 바위 동굴로 나아가 거처를 삼았는데 그곳은 또 음지인데다 축축했다. 그 무렵 용장 지역의 원주민 노인과 아이들이 날마다 감시하듯이 나를 보러 왔는데, 내가 이곳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기뻐하더니 나를 도와 이익을 주고자 하였다. 얼마 후에 나는 무성한 가시덤불 숲의 오른쪽 한 켠에 채마밭을 만들었는데, 원주민들은 내가 즐거워할 것이라 말하면서 함께 나무를 베고 건물을 지을 목재를 마련하여 그 땅에 나아가 집 한 채를 지어 내가 거처하도록 해주었다.

나는 이 집을 인연 삼아 측백나무와 대나무로 그늘을 만들고, 초목과 약초를 심었다. 건물로 이어지는 계단을 만들고 거실을 나누어 구석마다 거문고와 서책 등을 놓아 강학하거나 유유자적한 도를 누리도록 하였다. 이렇게 대략 갖추어지자 점차 지역 학사들이 찾아와 어울려 노닐게 되고 모여들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집에 이르는 것을 도회지를 내왕하는 것처럼 여겼고 나 또한 내가 오랑캐땅에 살고 있다는 걸 잊게 되었다. 이것을 인연하여 ‘하루(어찌 비루함이 있으랴)’라 이름지음으로써, 공자의 말씀을 굳게 믿는다.

아! 제하(중국)가 성대함은 그 법전과 예악 및 성왕들의 책력을 받들어 닦고 후대에 전한 것이었고 오랑캐들을 그런 것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루하다고 했던 것이니 이는 진실로 옳다 할 만하다. 그러나 이후로 도덕을 멸시하고 법령을 농단하며 약점을 캐내고 굴레를 덧씌울 계략 등이 끝도 없이 등장하고 교활함과 협잡질 등이 하지 못할 짓이 없는 데까지 이르게 되니, 질박한 기풍은 멸진해버렸다. 이에 반해 오랑캐땅의 원주민들은 아직 쪼아내지 않은 박옥(樸)그대로이고 아직 재단하지 않은 원목 그대로이다. 비록 거칠고 완고하지만 오히려 쇠망치와 도끼로 다듬어볼 만하니 어찌 이들을 비루하다 할 수 있으랴. 바로 이것이야말로 공자께서도 구이(九夷)에서 살고자 하신 뜻일진저!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법전과 문물 제도 등에 관해 또한 어찌 한 마디 강설하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이곳 오랑캐땅의 습속은 무당을 숭배하고 귀신을 섬기고 있다. 예를 업신여기고 마음 이끌리는 대로 행하면서 적중하지도 못하고 적절하지도 못하다. 하여 끝내 비루하다는 말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는 배우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들의 질박한 바탕까지 손상시킨 것은 아니니 진실로 어떤 군자가 이곳에 거주한다면 변화할 것이다. 이것은 대개 쉬운 일이지만, 그 군자가 나는 아니다. 이에 기록으로 남겨 나중에 올 군자를 기다린다.

번역_문리스(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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