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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이야기 ▽/발굴, <한서>라는 역사책

[발굴!한서라는역사책] 말년에 뉘우친 무제, 가을의 문을 열다!

by 북드라망 2021. 2. 18.

말년에 뉘우친 무제, 가을의 문을 열다!


한무제의 다른 듯 비슷한 역사적 평가


태자의 난이 발생한 기원전 91년, 무제는 66세로 천하를 호령했던 기세도 서서히 꺾이고 있었다. 무제는 태자가 강충의 음모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한서는 반고 논찬에서 무제의 탁월한 재주와 웅대한 계략, 뛰어난 혜안으로 이룬 업적은 인정했지만 공검(恭儉)의 아쉬움을 토로했었다. 이제 보니 안으로 백성을 챙기기 보다는 외적 확장에 힘쓴 무제가 말년에 화를 자초한 흑역사를 반고는 이 문장에 모두 포함시켰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무제는 진시황처럼 비극적인 결말로 끝을 맺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은산철벽 같은 상황에서 터닝을 했기 때문이다. 송나라 사마광이 지은 『자치통감』에는 무제의 말년 변화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효무제는 아주 사치하고 지극한 욕심을 가지고 있어서 번거로운 형벌을 사용하였고, 세렴을 무겁게 거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궁실을 사치스럽게 꾸몄고, 밖으로는 사방의 이적(夷狄)들을 정벌하였으며, 신(神)의 괴이함을 믿고 현혹되어 절도 없이 순유(巡遊)를 하였습니다. 백성들을 피폐하게 하여 도적이 일어났으니, 그런 것은 진시황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나라가 이러한 일 때문에 망하고 한나라는 이러한 일 때문에 흥했던 것은, 그래도 효무제는 먼저 돌아가신 왕의 도를 존중하였고, 통제하고 지킬 바를 알았으며, 충직한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속이고 감추는 것을 싫어하였으며, 현명한 사람을 좋아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이거나 상 주는 것을 엄정하게 밝혔으며, 만년에는 잘못을 고쳐 후사를 돌봐줄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망한 진나라와 같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망한 진나라 같은 화는 면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 사마광, 권중달 옮김, 『자치통감』 2권, 푸른역사, 245쪽

진시황과 무제는 통일 제국을 이룬 터라 늘 비교된다. 둘 다 능력이 뛰어나고 호색과 사치를 좋아했다. 하지만 무제는 진시황제에 비해 문장을 좋아했고 끝내는 간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문제를 고칠 줄 아는 군주였다는 것. 사마광은 진이 망하고 한이 망하지 않은 결정적 이유가 무제의 반성에 있다고 할 정도로 무제의 ‘뉘우침’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물론 무제의 가장 큰 업적은 영토 확장이다. 하지만 그가 욕을 먹는 이유 또한 계속된 대외정벌로 인해 백성들을 힘들게 해서이다. 영토 확장 후 하늘과 백성에게 인증받기 위해 무제는 진시황과 마찬가지로 전국을 다니면서 순유(巡遊)했다. 말이 순유지 그 여정이 진시황보다 더 긴 1만 8천리에 이르렀다고 한다. 황제의 이동은 엄청난 인력과 재력이 소모되는 일이다. 『사기』는 무제를 불로장생, 방술, 제사로 점철된 황제로 그리는데 백성의 원망이 반영된 시선일 것이다.

무제는 황로학을 문경제와 달리 신선의 도를 좋아하고 온갖 명산대천을 찾아 제사지내는 것으로 사용했다. 수행을 통해 천지와 하나 되기보다 천지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욕망, 즉 부국강병을 성취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랬던 무제가 나이 듦, 병듦, 그리고 아들의 죽음 앞에서 무상성을 느끼면서 무위 정치로 전환한다.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된 무제가 전쟁을 멈추고 내실을 기르는 무위로의 방향 전환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무제는 해냈다. 이제 한서가 그리는 그 변화 과정을 찬찬히 따라가 보기로 하자.

 

 


황제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은사의 힘

 

태자가 반란을 일으켜 무제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때 신하들은 아무도 나설 수가 없었다. 앞서 보았듯이 승상조차 입을 잘못 놀려 줄줄이 죽는 상황에서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때 홀연히 등장한 자가 있었다. 그들은 관료가 아닌 은사(隱士)로 칭해지는 은둔자 그룹이다. 은사? 생소하지만 제갈량도 은사였다면 감이 올 것이다. 보통 은사들은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국가가 위태로울 때 결정적인 한방 언행으로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기억할 것이다. 한고조 유방이 척 부인이 낳은 자식을 태자로 세우려하자 여태후는 자신의 아들 여의를 지키기 위해 장량에게 의논했던 일을. 유방은 당시 척 부인에게 마음이 기울어져 아무도 그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때 장량이 빼든 카드가 상산(商山)에 사는 4명의 노인이었다. 이 노인은 도가 높은 자로 이들이 발언하면 황제라도 무조건 따라야 했다. 은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 퍼지는 순간 민심은 바로 돌아서기 때문이다. 은사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이유는 사심 없이 국가를 살린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무제의 마음을 돌린 것도 호관현의 세 명의 노인 중 한명인 ‘영호무’가 상서를 올렸기 때문이다. 한서에는 그가 올린 문장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신이 알기로, 부는 하늘과 같고, 모는 땅과 같으며 자식은 만물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지가 평안하면 음양이 조화되고 만물이 무성하게 자라며, 부모가 자애하면 집안의 자식도 효도하고 순종합니다. 음양이 분화하면 만물이 일찍 죽고, 부자가 불화한다면 집안이 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면 자식이 자식답지 않고, 주군이 주군 노릇을 못하면 신하가 신하노릇을 못하니 비록 곡식이 있다 한들 어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 요임금은 대단한 효자였으나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못했으며, 효기는 비방을 당했고 백기는 방축되었는데 골육지친으로 부자가 서로 의심하였습니다. 이는 왜 그러했겠습니까. 훼방이 누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본다면 불효하는 자식은 없지만 부모는 다 살피지 못할 수 있습니다.
- 진기환 옮김, 「무오자전」, 『한서』 5권, 명문당, 217쪽

나는 은사라고 해서 도사처럼 주문을 외거나 신통술을 부릴 줄 알았다. 헌데 천지의 이치와 인간의 이치를 연결한 논리 정연한 문장으로 무제를 설득하고 있다. 요임금 같은 효자도 아버지 마음에 들기 어려웠다는 것. 그것은 주변 훼방 때문이지 자식이 효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선에 가까운 자의 문장을 언제 읽겠나 싶어서 전문을 가져왔으니 길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읽길 바란다) 계속 읽어보기로 하자.

지금 황태자는 한 황실의 적통이며 만세지업을 계승해야 하니 몸은 조종지중이며 피붙이로는 황제의 종자입니다. 강충은 백성으로 시골 천한 신하일 뿐이나 폐하께서 특별히 등용하여 지존의 황명을 받았다고 황태자를 압박하였으며 간사한 흉계를 꾸몄으며 모든 작술을 다 써서 친척간의 통로가 막아 불통하게 하였습니다. 태자가 들어와서는 주상을 뵐 수 없고 물러나면 산신들에게 곤란을 당하니 홀로 억울하여 알릴 데도 없어 분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기병하여 강충을 죽이고서 두려워 도주하였는데 이는 자식이 아비의 군사를 훔쳐 난관을 돌파하여 살려한 것으로 그 어떤 사심도 없었다고 신은 생각합니다.

『시경』에 ‘앵앵거리는 파리가 울타리에 앉았네. 화락한 군자시여 참언을 믿지 마소서. 참언은 바른 법이 아니니 온 나라를 흔든다오’라고 하였습니다. 지난 날 강충은 참소하여 조태자를 죽게 하였고 이를 천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 죄는 확실합니다. 폐하께서는 그러한 강충을 깊이 살피지 않았고 태자를 과도하게 책망하고 화를 매시면서 대병을 동원하시며 삼공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게 하시니 지자라도 감히 말할 수 없고 변사라도 설득할 수 없으니 신은 이를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폐하께서는 너그러이 마음을 푸시고 친족을 그만 사찰하시고 태자의 잘못을 걱정하지 마시면서 빨리 군사를 해산시켜 태자로 하여금 죽지 않게 하십시오. 신은 충성을 다하여 하루뿐인 목숨을 걸고 건장궐문 아래서 죄를 받겠습니다.
- 진기환 옮김, 「무오자전」, 『한서』 5권, 명문당, 219쪽

강충으로 인해 부자지간의 틈이 벌어졌다는 것. 이 노인네는 마치 이 사건을 옆에서 겪은 것처럼 생생하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산 속에 있는 노인네라 속세의 일에 무심할 것 같은데 황태자와 강충에 대해 모조리 알 뿐 아니라 태자가 반란을 일으킨 전후좌우 상황을 모두 파악하고 있다. 은사는 속세에 무심한 자가 아니다. 세속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 거리를 두고 세상을 관찰하는 자인 것이다. 이것이 은사의 힘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절대 나서지 않다가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등장해서 혼란을 바로 잡는 자. 무제는 영호무의 상서를 받고 크게 깨달았지만 이미 태자의 목숨을 구하기에는 때가 늦었다.ㅠㅜ


외로운 무제, 시골 노인네를 승상으로!


그때 한고조 묘를 지키는 낭관 차천추가 태자의 원한을 풀어주라며 등장한다. 꿈에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서 황제에게 상서를 올리라고 했다는 것. 슬픔에 찬 무제는 키가 8척이 넘고 몸이 장대한 차천추를 보고 “부자지간의 일은 남이 이야기하기 어려운데 공 혼자만이 옳지 않았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이는 고조 묘당의 신령이 공을 시켜 나에게 일러준 것이려니 공은 응당 나를 보좌하여야 할 것이다.”(「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한서』 5권, 명문당, 473쪽) 무제는 차천추를 승상으로 임명하여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한서는 “차천추가 별다른 재능이나 학식, 또는 문벌이나 공로도 없이 다만 말 한마디로 주상을 깨우쳐 준 것뿐이었고 몇 달 만에 승상이 되고 제후가 되었으니 이런 경우는 여태껏 없는 일”이라며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소문은 흉노까지 퍼져 흉노의 수장 선우가 “정말 그러하다면 한에서 승상을 임명하면서 현인을 등용하지 않은 것이니 누구나 되는대로 상서하면 차지하는 자리일 것이다.”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무제의 판단력에 문제를 제기한다. 다행히 차천주는 지혜롭고 돈후한 자였다. 이런 차천추를 한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승상 차천추는 비록 이윤과 여상의 반열에 올랐다지만 나라의 중요한 요직에 있으면서 주머니를 싸맨 듯 아무 말도 못하고 육신이나 보존하고 떠나가 버렸다. (모두가 다)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다. 승상과 어사대부 두 부서의 관리들도 바른 의논으로 재상을 보좌하지 못하고 같은 무리가 되어 따라 행동하며 뜻을 굽히고 아부나 하면서 상관의 뜻에 맞추고 하였으니 소인의 무리 속에 누구를 뽑을 수 있겠는가.
- 진기환 옮김,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한서』 5권, 명문당, 521쪽

차천추에 대한 반고의 평가는 매우 인색하다. 왜 그런 것일까. 그가 지혜로운 것은 인정하지만 차천추는 시골 노인네에 불과하다. 배우고 본 것이 적으니 승상 역할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제는 차천추의 조언으로 태자를 위해 호현에 사자궁(思子宮)을 지어 넋을 기릴 수 있었음을 고마워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무제 옆에서 조언해줄 신하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무제는 신하를 믿을 수 없었고 신하도 목숨이 위태로우니 황제의 비위만 맞추고 있었다. 주변 사람을 신뢰하지 않다보니 차천추의 작은 언행에 무제는 감동했고 그를 승상까지 시켰다. 황제라는 지위가 무색할 정도로 말년의 무제는 외로워 보인다. 능력자가 약해지면 폭군이 되기 쉽다.

다행히 무제에게 조언해줄 귀인이 등장했고 그 말을 귀담아 들었기 때문에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은사가 등장하지 않았고, 차천추가 강충과 같은 자였다면 제아무리 무제라도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무제가 반성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은사가 조언하고 차천추가 등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한서를 읽다 보면 주체가 모호해진다. 선후 관계를 알 수 없는 흐름만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관계를 통해 흘러간다.

그러니 어떻게 삶이 흘러갈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내게 선택된 것은 매 순간마다 누구를 만나고 누구에게 귀를 열 것인가이다. 그것은 곧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와 연결될 것이다. 다음에 나오겠지만 무제의 변화는 정말 파격적이다. 이런 변화를 보면 왜 은사와 차천추가 등장해서 무제를 도와주었는가가 이해되기도 한다.

 


말년에 변한 정치, 가을로 가는 문을 열다


무고의 화가 일어난 후 2년이 지났다. 현실적인 이익에 밝은 상인 출신 상홍양은 무제에게 흉노를 방비하기 위해 신강성 윤대현(輪臺縣)에 초소를 세우자고 건의했다. 하지만 무제는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린다.

 

(중략)지난번에 이사 장군이 패전하며 군사는 포로로 잡혀갔으나 흩어졌으니 비통한 마음은 늘 짐에게 있었다. 이제 먼 속 윤대에서의 둔전을 주청하며 초소를 세우고 길을 내자고 하는데, 이 또한 천하 백성을 고생시키는 것이며 백성을 걱정하며 돕는 길이 아닐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짐이 수락할 수 없도다. 대홍려 등이 또 의논하기로는 죄수를 모아 흉노로 가는 사신을 호송케 하자는데, 이는 작위를 하사하는 기준을 분명히 하여 백성의 원한을 보상하자는 뜻이나 이는 오패 시절에도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중략)
- 진기환 옮김, 「서성전(하)」,『한서』 9권, 명문당, 378쪽

이것은 ‘윤대죄기조(輪臺罪己詔)’로, 무제는 자신이 지금까지 영토 확장을 위해 얼마나 가혹한 짓을 했는가를 조목조목 짚으면서 반성하고 있는 조서이다. 참회하는 황제! 참으로 놀라운 능력이다. 사마광 말대로 진나라와 한나라 운명의 엇갈림을 증명하는 글이기도 하다. 이 조서 이후 무제는 군대를 다시 출병시키지 않았다고 한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승상 차천추는 부민후(富民候)에 봉해진다. 부민후란 한자 그대로 ‘백성을 풍족하게 한다’는 뜻이다. 차천추에게 내리는 이름이지만 무제의 새로운 통치 방향이 반영되어 있다. 차천추는 아랫사람들이 무제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황제의 마음을 여유 있게 하고 백성을 위로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많은 해법을 내놓았다. 은혜를 베풀고 형벌을 완화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화평하게 해서 천하를 즐기라고 무제에게 조언한다. 하지만 무제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후회하면서 자신의 부덕함으로 무고의 화가 사대부까지 흘러갔다면서 식사를 한 끼로 줄이고, 자신을 위해 축수하는 대신 업무에 집중할 것을 관리들에게 당부한다.

 


뜨겁고 화려한 여름으로 막을 내릴 뻔한 한나라는 무제의 변화로 새로운 시기로 진입하게 되었다. 여름은 끝이 아니다. 여름이 끝나면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는 법. 하지만 그 문은 아무나 열 수 없다. 그 문을 열고자 준비하는 자만이 열 수 있다. 밖으로의 확장을 멈추고 안을 향한 힘의 전환! 이제 무제가 소제에게 바턴을 넘겨주면서 한나라의 가을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바턴을 넘기는 과정도 드라마틱하니 다음을 기대하시라.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무제의 말년 변화가 없었다면 한나라의 가을을 기대할 수 없었음을 잊지 마시라.

 


Tip.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한무제 에피소드

 

동의보감에 한무제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권력자 한무제가 의학서이자 양생서인 『동의보감』 에 왜 등장하는 걸까. 옛 이야기처럼 재미가 있으니 우선 읽어보기로 하자.

옛날 태산(泰山)아래 한 노인이 살았는데 그 이름은 알 수 없다. 한(漢) 나라 무제(武帝)가 동쪽 지방을 순행하다가 길옆에서 김을 매는 한 노인을 보았는데 등에 두어 자 되는 흰 광채가 솟았다. 무제가 이상하게 여겨서 그에게 도술을 쓰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이에 노인이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이 85세 되던 때 노쇠하여 죽을 지경으로 머리는 세고 이는 빠졌습니다. 그 때 어떤 도사가 신에게 대추를 먹고 물을 마시면서 음식을 끊으라고 하는 한편 신침(神枕)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베갯속에는 32가지 약을 넣었는데 그 중 24가지 약은 좋은 것으로 24절기에 맞는 것이고 나머지 8가지는 독성이 있는 것으로 팔풍(八風)에 응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 방법대로 했더니 도로 젊어져서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왔으며 하루에 300리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은 금년 180세인데 속세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손들이 그리워 속세에서 곡식을 먹은 지 이미 20여 년이 되었는데도 아직 신침(神枕)의 효력으로 늙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제가 그 노인의 얼굴을 보니 한 50세쯤 된 사람같이 보이므로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진실로 그렇다고 말했다. 이에 무제가 그 방법대로 베개를 만들어 베었으나 곡식을 끊고 물만 마시는 일은 하지 못했다.
- 허준, 동의문헌연구실 옮김, 「내경편)」,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227쪽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황제가 시골 노인네에게 양생에 대해 배우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해도 생로병사의 문제는 풀 수 없는 법. 180세 노인네가 50세처럼 생기 있는 비밀을 무제는 알고 싶어 한다. 그가 처음에는 도술인가 싶어 비결을 알고자 했지만, 비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연의 순리대로 소박하게 김매며 사는 게 양생의 요체임을 알게 된다.

처음에 동의보감에서 이 이야기를 만났을 때는 재미난 이야기 정도로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한서를 읽은 후 생각이 달라졌다. 무제의 말년 변화를 동의보감 버전으로 그린 게 아닌가 싶다. 『동의보감』에 등장한 무제와 『한서』의 무제는 묘하게 겹쳐진다. 황제면서 신선이 되고 싶은 자, 아니 화려한 황제의 능력도 신선을 향한 구도의 능력도 모두 발휘했던 자. 우리 안에 있는 팽창의 욕망과 구도의 힘이 공존함을 알게 하는 자. 무제는 성속을 넘나들면서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글_박장금(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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