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브로콜리너마자 EP, 1집 - 숙성되는 것은 음반이 아니라, 나

브로콜리너마저 EP, 1집 - 숙성되는 것은 음반이 아니라, 나



나는 특별히 가리는 것 없이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아니 '따라'라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핑계 삼아 여러 음악을 듣는다. 그런데 최근, 이라고 하기에는 벌써 5~6년째 거의 듣지 않는 음악이 있으니, '한국 인디' 음악들이다. 한국어 가사가 나오는 음악이라면 주로 90년대 이전의 것들을 듣는 편이다. 아니면, 아예 보아의 초기 앨범이나 걸그룹 노래들을 듣기도 한다.(어흠) 그러니까 짐작할 수 있겠지만, 한국 인디 음악들을 거의 안 듣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러니까 '가사' 때문이다. 그 노래들의 가사가 별로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도무지 뭐랄까……, 공감이 잘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이입이 안 된다고 해야 하나. 이를테면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다가 헤어진 이야기가 있다고 치면, 나는 이문세 3, 4, 5, 7집에 수록된 노래들이나 김광석(<그날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들국화(<매일 그대와>)의 노래들이 훨씬 와닿는다. '그런 일'에 관한 한 몹시 '올드'한 정서를 좋아하는 셈이다. 다만, 그렇다고 내가 그런 사랑을 해봤거나, 하고 싶다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말하자면, 그냥 '간접체험' 쪽을 더 선호한다고 해두자. 그 일들을 내가 진짜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몹시 피곤해진다. 


그러면, 그 오래된 노래들과 2000년 이후의 노래들이 뭐가 어떻게 다른가. 음……, 나도 잘 모르겠다. 사실 '한국 인디 음악'이라고 통으로 묶어 버릴 수도 없다. 말이 안 된다. 그렇지만, 대충 그냥 느낌으로만 보자면, 오래된 것들이 '회화적'이라면 최근의 것들은 좀 더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추상적'인 느낌이다. 전자의 정서는 타자를 향하고 있는데 반해, 후자의 경우는 자기애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 더불어서 전자에게 어떤 '거리'가 있는 데 반해, 뒤의 것에는 '거리'가 없다. 이건 순전히 '느낌'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나는 그냥 '막연하게' 그렇게 느낀다. 그렇다 보니, 음악(감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다. 


물론 한참 인디음반들을 사모아 듣고 하던 때가 있기는 있었다. 좋아하는 밴드의 새앨범 발매를 기다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정말이지 어느 한순간에 '에이 그만해야겠다' 했던 것 같은데 그게 20대 후반쯤이었다. 그 무렵 나는 조선펑크의 울분이나 익살에도 그다지 공감할 수가 없었고, '섬세한 감성'류의 섬세함에도 지치고 말았으며, '샤방'류의 '샤방'을 즐기기엔 너무 바빴던 데다가, 금속성 사운드에 몸을 싣기엔 꽤나 액체적인 인간이 되어있었다. 


어쨌거나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이제는 거의 사지도 듣지도 않게 되어버렸는데, 그런 와중에도 아주 가끔씩 꺼내 듣는 음반이 브로콜리너마저의 첫번째 EP와 1집 <보편적인 노래>다. 




첫번째 EP를 들었을 무렵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인디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음반이 나왔고,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도 알았음에도 이 음반은 '일단 보류' 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이유는 뭐, 간단한데 '무슨 밴드이름이 이래' 싶었던 탓도 있다.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네이밍이지만, '브로콜리너마저'가 처음 등장할 당시만 해도 범상한 이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밴드 이름이라면 '브로콜리'이거나, 하다못해 '너'이거나 해야 할 것 같은데 '브로콜리너마저'라니. 심지어 나는 브로콜리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아마 친구가 '야 이거 가사가 좋다'하며 추천하지 않았다면, 음, 아마 영영 듣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렇게 '주목받는' 류의 음반을 사모으는 걸 그만둘까 말까 하던 무렵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역시 사두길 잘했다. (지금은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노래'가 좋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정말 오래간만에 '노래'를 듣는 느낌이었달까? 조금 이상한 말이지만, (이걸 어떻게 설명한다……), 그러니까 '음악'을 감상하는 거랑은 다른 '노래'를 듣는 느낌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래도 영 이상하네. 쩝.) 아, 그러니까 '좋은 노래'에는 귀에 들어와 앉는 것 이상으로, 마음에 전해지는 '가사'가 꼭 있어야 한다. '앵콜요청금지'가 그랬다. 첫구절 가사부터 그랬다. '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걸 일깨워주는 가사다. 이 음반을 그 시절에 얼마나 듣고 또 듣고 그랬는지 모른다. 지난 시간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중에 1집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정말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EP음반을 들었을 때의 임팩트는 없었다고 해야 하나……. 좋기는 했는데, 좋은 노래들이 12곡이나, 그것도 어쩐지 '매끈한' 느낌으로 변한 채로 가득 들어있으니, 쉽게 꺼내서 듣기가 어려웠다고 해야 할까? 이건 대체로 한번 꺼내면 1번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한 자리에 듣는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부담스러웠다고 해야할까? 그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 그러고 난 다음이었다. 몇 번 듣다가 놔둔 음반이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또 3~4년 쯤 지났는데, 그렇게 시간이 좀 흐르고 나서 다시 들어보니 훨씬 좋아졌다. 부담스러웠던 '매끌매끌'한 느낌도 훨씬 가라앉아 있었고, 여전히 커다란 임팩트는 없으나 반대로 아주 편안하게 모든 트랙을 들을 수 있는 여유 같은 것이 생긴 것이다. 도대체 4년 여의 시간 동안 CD장 안에 꽂혀있던 음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게 바로 '시간의 힘' 같은 것일 수 있겠다. CD장 안에서 잠자고 있던 음반 속으로 먼지가 들어가고, 음반 표면에 좀 쌓이고 하면서 날카롭게 서 있던 음향들이 깎여나가면서, 마치 오래된 와인처럼 숙성된 것……은 당연히 아니고, 그 사이에 아마 내가 변한 것이 진실이겠지.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들이 '오래된 기억' 되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그 사이에 들었던 음반들의 음향들에 모종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이제는 괜찮네?' 하게 된 것일게다. 요지는 어쨌거나 '거리'가 생겼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어쩌다 꺼내서 듣게 될 때면, 음반 두장을 모두 꺼내어 순서대로 주욱 듣거나 한다. CD시대가 저물면서 부쩍 자주 나오는 '디럭스 버전' 같은 느낌이랄까? 해외 명반들을 재발매 하면서 이런저런 버전들을 추가해 더블 앨범으로 만드는 그런 것 말이다. 이게 밴드에게는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쩌랴 이 음반이 나에게는 어느 한 시절을 기억하는 기호로 콱 박혀 버린데다가 지금 들으면 그 몇 년 전의 이미지들 밖에 떠오르질 않으니……. 


아, 그러고 보니 이 음반들이 꼭 '추억 속의 인디 가요 열전' 같은 느낌만 주는 것이 아닌 게, 1집에 수록된 '유자차' 같은 노래는 아주 훌륭한 '늦겨울' 노래여서, 1월말에서 2월 사이에 들으면 아주 좋다. 그 유명한 가사 말이다.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물론, 지금은 그런 풋풋하면서도 어쩐지 따뜻한 '로맨스-판타지'스러움이 떨떠름 하기는 하지만(그런데 생각해 보면 판타지가 아닌 로맨스가 어디 있겠는가), '작품'이다 생각하면 그럴 것도 없기는 하다.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지금처럼 편안하게 듣는 것이 좋기는 하다만, 그 시절에 느낀 그 떨떠름함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혹여 내가 원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는 거라는 소리. 역시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을 일깨워 주는 노래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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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정건화 2021.02.07 17:15 답글 | 수정/삭제 | ADDR

    저는 한국 인디든 뭐든 그닥 깊이 파고들어본 적은 없지만서도, 한국 인디의 가사가 '자기애적'이고 '거리가 없다'는 말씀에 공감이 가네요.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유자차를 들을 계절이 왔다는 걸 일깨워주셔서 감사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