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겪기, 읽기, 만나기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말하기
저는 정말, ‘후기’ 쓰는 걸 어려워합니다. 내용정리와 제가 받은 느낌을 적어가는 것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그냥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적당히 늘어놓곤 합니다. ‘후기’는 정말로 어렵습니다. 그런 제가 『다르게 겪기』 북토크의 후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진행을 맡으신 문탁의 요산요수 선생님께서 ‘후기 좀...’이라고 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당연히 후기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흑.
구입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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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다르게 겪기』 북토크 후기는 적당히 사진으로 때울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줌’, 온라인 화상채팅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 ‘사진’이 찍힐 공간이 없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이런 형태의 ‘모임’을 허용하지 않으니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는 ‘공공안전경보’ 문자 속에 있는 ‘불필요한 모임 자제’에 낄 법한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래서, 불필요한 모임이기 때문에 ‘줌’에서 북토크를 진행했던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이게 진짜 필요한가 아닌가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죠. 이번 경우엔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다르게 겪기』 북토크엔 ‘줌’이 딱 알맞았다고 말입니다.
『다르게 겪기』는 어떻게 나왔나?
북드라망도 마찬가지로 코로나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확진자수가 갑자기 늘거나,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자가격리자가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재택근무를 하기도 하고, 하는 식으로요. 그러다가 마침 문탁넷을 보니 ‘전염병 시대에 읽는 책들’을 읽고 계신 게 아니겠습니까? 이로부터 『다르게 겪기』 기획이 탄생합니다. 문탁넷에 기존에 올라온 글들에 새로 쓴 글들을 합쳐서 책을 만들자. 이 ‘시국’을 다르게 해석해 보자는 의도였지요. 그리고, 책의 내용에 걸맞게, 이 시국에 맞춤하게 ‘전자책’으로 빨리 내보자 했던 것입니다.(물론 실제 편집 작업에 들어가면서, 종이책 작업을 하는 것과 똑 같다는 걸 알게 됩니다. 전자책이라고 편집을 안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책이 나오고, 북토크가 조직됩니다. 저는 처음에 ‘줌’에서 북토크를 한다는 소식에 약간 들뜨기도 했습니다. 워낙에 신문물을 좋아하는데다가, 각자의 공간에 있다가 ‘온라인’에 모여 무언가를 한다는 그 형식이 신선해 보였기에 두근두근 했던 것이죠. 그렇지만, 연습 삼아 예비모임을 가져본 후에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 이보다 어색한 것이 없다는 걸 말이죠. 아마 처음이어서 그랬을 겁니다. 어쨌든 어색하기 이를 데 없는 첫 모임을 가진 후, 마음이 바뀌어서 ‘실제로 하기 전에 줌 서버가 접속자 폭주로 뻗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당일에도 ‘줌’은 뻗기는커녕 예비모임 때보다 쌩쌩 잘 돌아갔습니다. ㅎㅎ
‘줌’이 처음에 왜 그렇게 어색했던가 생각을 해 보았는데요,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거기엔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당연히 있어야할 ‘소음’이 없었습니다. 그게 어색함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말하자면 어색함을 덮어줄 ‘사운드 카펫’이 없었던 것이죠. 발언자도 자신이 말하는 동안 의미를 가진 ‘말’이 아니더라도 사각거리고, 윙윙거리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야 내 말이 지금 어디까지 닿고 있는지 어디서 튕겨져 돌아오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법인데, ‘줌’에선 그게 없었습니다. 소리를 내고, 소리를 듣는 기관이 상호작용하는 게 아니라 보는 기관과 소리를 내는 기관이 상호작용을 하는 것, 눈으로 소리를 듣는 게 너무 낯설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르게 겪는 다는 것
저는 이른바 모든 사태를 한 번에 꿰뚫을 수 있는 ‘진리’, 다른 이름으로는 ‘법칙’이나 ‘원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별 사태들이 있고, 몇몇 사태를 포괄할 수 있는 원리들이 많이, 아주 많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태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그걸 해석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해석이 한 개인 당 하나씩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해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까지 생각합니다. 더 많은 해석을 생산할수록 더 많이 자유로운 것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다르게 겪기』를 지금까지 누려온 자유가 한없이 쪼그라들어버린 이 시점에 적절하게 나온 ‘자유의 서사’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 책을 가지고 ‘북토크’까지 해냈습니다. 책을 쓰고, 읽고, 이야기 하는 동안 닥쳐온 상황을 다루는 능력을 조금씩 더 키워낸 것이죠.
이를테면, 북토크 초반에 나왔던 ‘마스크’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그 전까지 그저 ‘마스크를 안 쓰면 다른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으니까’ 하는 이유로 마스크를 썼습니다. 말하자면 안 쓸 수 없으니 ‘그냥’ 쓴 것이었죠. 그런데 북토크 후에는 ‘평판’과 관련된 새털샘을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마스크를 씁니다. 또, TV뉴스에 등장하는 의료진들의 모습을 볼 때는 ‘의료-인류학’에 관한 명식샘의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일상의 각 순간들에서 좀 더 ‘생각’이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그저 해온 대로 할 수도 있는 일상에 ‘생각’이 침입해오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감각’이 조금씩 바뀝니다. 그건 사물을 대할 때, 사태를 겪을 때 드러나게 되고, 바뀌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코로나 사태’가 몰고온 일련의 변화들이 익숙해지고, 그 어색했던 ‘줌’으로 하는 대화가 재미있어지는 것도 아마 비슷한 경로를 통해 그리 되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직 어떤 것도 결론 내릴 수는 없지만, ‘코로나 사태’와 더불어 생각하기를 멈추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계속 생각하고, 더 생각하고, 더더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니체의 말 대로 ‘과잉’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한 시대가 마감하고, 다른 세계가 되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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