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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내인생의주역

[내인생의주역] 술과 음식에서 기다린다는 것

by 북드라망 2020. 3. 24.

술과 음식에서 기다린다는 것

 


水天 需 ䷄


需, 有孚, 光亨, 貞吉, 利涉大川.


初九, 需于郊, 利用恒, 无咎.


九二, 需于沙, 小有言, 終吉.


九三, 需于泥, 致寇至.


六四, 需于血, 出自穴.


九五, 需于酒食, 貞吉.


上六, 入于穴, 有不速之客三人來, 敬之, 終吉.

 


살아간다는 건 늘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인 것 같다. 어릴 적 동생과 함께 시장간 엄마가 돌아오길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해질 무렵 두 손 가득 물건을 들고 내리는 엄마를 보며 뛰어가던 우리들. 그 기다림은 참 행복했다.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기다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것에 대한 기다림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늘 약간은 긴장되고 초조하고 애가 탄다.


수(需)는 기다림의 괘이다. 상괘인 감(坎)괘는 빗물을 상징하고, 하괘인 건(乾)괘는 하늘을 상징한다. 괘상(卦象)으로 보면 하늘에 구름은 있으나 기다리는 비 소식은 아직 없는 것. 이것이 기다림이라는 것이다. 수천수의 효들은 여러 기다림의 모습을 보여준다. 교외에서 느긋이 기다리며 항심을 유지하는 초효(需于郊 利用恒)부터 기다림에 지쳐 피를 흘리며 자신의 동굴에서 나오는 사효까지(需于血 出自穴). 그런 모습들을 보자니 기다릴 일이 있을 때 나는 어떻게 기다렸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기다림이 있었지만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창이지’와 관련된 기다림이었다. 서울에서 창원을 오가길 어언 5년째. 창원에서도 세미나를 열고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작년 ‘창이지’라는 공간을 열었다. 그 과정에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많은 일들을 했다. 세미나 프로그램을 짜고, 전단지를 뿌리고, 밴드를 만드는 등등. 그러고는? 초조한 기다림이 있었다. 주역 세미나가 있던 첫날을 잊지 못한다. 월요일 10시에 시작한다고 공지가 나갔는데 5분 전까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 초조함이란. 미리 세미나비를 입금한 한 사람이 있었고, 오겠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정작 시작 5분 전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10시 정각.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서고, 5분 후 또 한 사람. 그렇게 4명이 모였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문을 열며 들어서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나의 기다림은 너무나 애가 타고 초조한 것이었다.




그런데 수괘의 기다림은 ‘유부(有孚)’부터 말한다. 마음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마음에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밝게 형통(光亨)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될지 안 될지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유부 할 수 있나. 상전(象專)에서는 한 술 더 떠, ‘구름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수이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먹고 마시며 잔치를 즐긴다.’고 한다. 황당하다. 어떤 경지가 되면 먹고 마시며 잔치를 즐기며 기다릴 수 있는 것일까.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편안히 기다리는(需于酒食) 것은 오효이다. 정이천은 “구오효는 양강한 자질로 중(中)에 자리하고 정(正)을 얻어 천자의 지위에 자리하니, 기다림의 도리를 다한 것이다”며 오효의 기다림을 설명한다. 자신이 한 일에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양강한 자질의 군자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군자가 자신을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바르게 자신의 도리를 다했기 때문(貞吉)’.


비는 어떻게 내리는 것일까? 먼저 구름이 모여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계획을 세우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추진하는 등등은 모두 구름을 모으는 단계이다. 그렇다면 비는? 일의 성사는? 대부분은 수많은 인연조건들이 ‘비는 오지 않고 구름만 잔뜩 낀 하늘처럼’ 답답하게 오고가다가 어느 날 ‘문득’ 성사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구름을 모으는 데까지이다. 구름 속 작은 응결핵이 물 분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가 문득 비가 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 오효의 군자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구름의 힘을 믿고 기다릴 수 있다. 컴컴하니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어느 날 후두~둑하고 비가 떨어질 것을. 그래서 수괘는 유부(有孚)로 시작하나 보다. 어떤 일에서건 내가 할 수 있는 도리를 바르게 끝냈으면 그 다음은 술과 음식을 먹으며 편안히 기다리는 것. 이제 내가 할 일은 그것뿐.



창이지의 첫 기다림 이후, 난 계속해서 많은 기다림을 겪고 있다. 하나의 세미나가 끝나고 다음 세미나 공지를 하면서 난 또 기다린다. 그 시간들 속에서 수천수 오효의 기다림을 생각했다. 아직은 술과 음식에서 기다리는 오효의 마음을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바르게 자신의 도리를 다한 후 믿는 마음으로 편안히 기다리는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 기다림에는 어릴 적 버스정류장에서 시장간 엄마를 기다릴 때와 같은 행복함이 함께하리라 생각해본다.


글_장현숙(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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