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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과 지성』 저자 김해완 인터뷰 - 도시의 '시간 지도'를 제작하는 방법

by 북드라망 2018. 4. 25.

 『뉴욕과 지성』 저자 김해완 인터뷰

- 도시의 '시간 지도'를 제작하는 방법



1. 이 책 『뉴욕과 지성』을 두고 “42개월 동안 뉴욕에 살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제작한 뉴욕-시간의 지도”라고 하셨는데, 흔히 지도라면 공간을 다루는 것일 텐데요, ‘시간 지도’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쓰신 건가요? 


‘시간 지도’라는 낯선 말을 사용할 때 제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두 가지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에 도전할 것, 그리고 이런 개념의 분리가 제한하는 삶의 시야를 넓힐 것. 시간과 공간은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가장 익숙한 철학적 개념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인식할까요? 시계, 달력, 나이, 연표의 이미지를 통해서입니다. 시간은 계산되고, 축적되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반면 공간은 구글맵, 비행기의 노선, 그리고 각 장소를 대표하는 스테레오타입 이미지를 통해서 이해됩니다. 공간은 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간과 시간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공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남긴 흔적들의 총체고, 시간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를 통해서만 흐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통합성은 자명한 것이지만, 이 사실을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드뭅니다. 가령, 뉴욕에 온 대부분의 관광객은 뉴욕에 켜켜이 쌓인 시간을 배제한 채 당장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뉴욕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유령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반면, 뉴욕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뉴요커들은 자기 인생, 자기 시간에 매달립니다. 자기가 세운 삶의 목표를 달성할 때에 뉴욕이라는 공간은 의미를 갖습니다. 만약 계획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이곳은 지옥이 되겠지요. 이것은 뉴요커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인생(인생이란 결국 개인이 경험하는 시공간이니까요)을 대하는 두 가지 편향된 태도로 일반화될 수 있습니다. 한 집단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여러 공간을 표류하거나, 취업이나 결혼처럼 미리 세워진 시간의 스텝을 따라가거나. 어느 쪽이든 100% 만족스럽지는 않을 겁니다. 전자는 자기 현장이 부재하기에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울 것이고, 후자는 외부 세상이 제공하는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놓칠 테니까요.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철학자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보편적인 문제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태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뉴욕, 뉴욕 사람들, 그리고 뉴욕에 살고 있는 저 자신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제 개인적인 고민이 큰 몫을 했습니다. 남다른 삶을 살다가 20대 중반의 나이를 맞닥뜨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잃었던 겁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먼저 주제에 대한 태도를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뉴욕을 공간적 대상으로 삼고 분석할 수도 있었고, 뉴욕의 역사를 주제별로 서술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뉴욕에서 살면서 배운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공간의 통합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하여 자본주의가 포장하는 공간의 피상성과 국가-사회가 계획하는 홈 파인 시간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인간은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부터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연결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다름 아닌 평범한 일상입니다. 따라서 저는 바로 이 ‘연결지점’에 대해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도시에서 철저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일상이라는 물밑의 시간 속에서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그리고 이런 연결지점을 발견할 때, 매일 똑같아 보이는 도시의 환경은 또 어떻게 다르게 느껴질까?


이 질문에 하나씩 답을 찾아가는 것, 그럼으로써 이 도시(세상)에서의 제 처지를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시간 지도’를 제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시공간의 통합과 연결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표현이므로, 사실은 ‘이야기로서의 공간’이라고 풀어 말해도 무리는 없습니다. 저는 21세기 초반에 유학생으로 살고 있는 저의 시간, 뉴욕에 오기까지 여러 드라마를 겪었던 이민자들의 시간, 그리고 세상을 고민했던 지성인들의 시간을 기워서 뉴욕이라는 공간을 그렸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서 지난 100년 간 뉴요커들이 거쳐온 집단-인생을 살펴본 셈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된다고 믿습니다.)


이 지도, 이 집단적 이야기를 완성하면서 저는 10명의 지성인들을 길잡이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공부하고, 행동하고, 글을 썼던 이유도 저와 마찬가지로 일상 속에 운무처럼 펼쳐져 있는 시공간의 통합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뉴욕에 대해 붙들고 있는 문제의식은 다 다릅니다. 그런데 문제의식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르게 반복되고 있는 인간사의 고질적인 ‘문제’를 발견하는 자세입니다. 문제들을 따라가 보면 이 시간의 변주를 통해서 한 공간이 어떻게 독특한 개성을 갖추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뉴욕과 지성』은 뉴욕에 살았던 지성인들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지성을 통해서 시공간의 통합성을 경험해 보는 여정입니다. 결국 이 책의 주제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인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프로젝트를 제가 잘 수행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첫 도전인 만큼 부족한 점도 많을 테지만, 함께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2. 이 책에서 특정 장소와 지성과 선생님의 고민이 함께 연결되는 부분들이 인상적입니다. 실제로 그 장소에서, 이를테면 5번가에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피츠제럴드를 떠올리신 건가요? 아니면 그 장소에서 들었던 생각이나 고민을 담아두셨다가 이후에 비슷한 고민을 한 지성인을 찾아보시면서 연결해 보신 건가요?.

스콧 피츠제럴드


물론 후자입니다. 길을 가다가 지성인에 대해 떠올리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평소에 지적인 생각을 안 하고 살아서요, 하하. 『뉴욕과 지성』은 제가 뉴욕에 산 지 1년 반이 넘어가던 시점에 계획한 책입니다. 그 안 뉴욕에 살면서 마음 한쪽에 쌓아 두었던 고민과 의문이 갑자기 고개를 확, 쳐든 거죠. 이 도시가 제게 선물한 이 소중한 생각의 씨앗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이것들을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서는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앞서 설명한 ‘시간 지도’라는 별난 형식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식을 결정한 후에야, 제 프로젝트를 도와줄 10명의 지성인 후보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뉴욕의 명성이 워낙 드높은지라 이곳을 거쳐갔던 지성인들이 참 많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제가 뉴욕의 일상 속에서 겪은 혼돈을 가장 잘 대변해줄 사람들로 골랐습니다. 행복한 고민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결과적으로 탈락한(?) 분들에게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영국 웨일즈 출신 시인이자 뉴욕에서 숨을 거둔 토머스 딜런, 쿠바의 망명객으로서 뉴욕에서 15년 동안 살다가 고국으로 되돌아가 독립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호세 마르티, 뉴욕 강 건너 동네인 뉴저지의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


또 고백하자면, 원래는 뉴욕의 실제 장소까지 책에 등장시킬 생각은 없었습니다. 장소를 강조하려면 그곳에 있었던 ‘나’라는 사람을 전면에 등장시켜야 할 텐데, 책에 개인적인 색채를 진하게 드리우는 게 걱정 되었거든요. 이것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뉴욕 사람들의 집단적인 이야기가 되어야 할 테니까요. 하지만 나중에는 문제의식의 구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민을 떠올리게 된 순간과 장소를 그냥 통째로 보여 주는 쪽으로 글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저의 경험, 뉴욕의 장소, 지성인의 개념 모두가 ‘시간 지도’를 그리는 재료로 이용당한(?) 셈입니다, 하하.



3. 이 책에서 다루고 계신 장소들 중에 특별히 더 기억에 남거나 애정하는 장소가 있으신지요? 또 이 책에 등장하는 지성들 중 선생님께서 혹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 있나요? 있으시다면 그 이유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하철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제가 지하철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을 제외하면, 나머지 장소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원고를 쓰다가 바닥에서 잠들어 버렸던 제 잭슨하이츠 아파트의 거실을 가장 애정합니다.)


하지만 지성인 중에서 제가 가장 귀한 스승으로 모시는 분들은 있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올리버 색스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공부한 분야는 철학이었습니다. 과학이나 의학에는 완전히 문외한인 셈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과학자와 의사가 인간을 대하는 솔직한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력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


스티븐 제이 굴드를 통해서 저는 세상의 중심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변두리 종(種)으로서의 호모 사피엔스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이 아무 의미 없이 토해내어 희한하게 진화한 생명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흥미롭다는 것이죠. 이런 태도를 취하면 개체의 한계를 긍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의 특기인 ‘의미 부여’라는 행동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올리버 색스는 병이라는 한계를 인생의 일부로 전환시키는데 내공이 뛰어난 의사입니다. 그는 무조건적으로 병의 고통을 긍정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라는 세계가 몸과 만나는 지점을 환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끈질기게 추적해 갑니다. 이들의 연구에는 타인에 대한 진한 사랑과 호모 사피엔스의 공통 운명에 대한 관심, 그리고 개인적인 편견을 개입시키지 않는 냉철함이 동시에 깔려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서 저는 인간의 마음처럼 흥미로운 영역은 없고, 인간의 몸처럼 본질적인 공동체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체의 약점과 고통과 모순을 파헤치는 것이, 개체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배웠습니다.


진화론이나 신경학은 여전히 논쟁이 뜨겁게 붙는 분야입니다. 이 두 사람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많죠. 제 공부가 그쪽으로는 한없이 부족한지라, 어느 쪽이 진실인지 의견을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 두 사람에게 받은 감동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올리버 색스는 인간과 자연, 혹은 몸과 몸이 부딪히는 현장에서 지성으로 자기 윤리를 단련시킨 사람들입니다. 이들 덕분에 사람에게 치이고 사람에게 감동받는 뉴욕에서 더 열심히 살 수 있었습니다.    



4. 선생님의 이력이 특이한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를 다니셨는데 자퇴하고, 그 이후에는 연구공동체에서 쭉 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뉴욕으로 건너가서 다시 그곳의 검정고시를 치르고,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신 이력이 책 속에도 나오는데요, 어떻게 청년백수로 연구공동체에서 공부를 하며 지내다가 뉴욕에 가시게 된 거죠? 또 지금은 쿠바의 아바나에 계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자본주의가 발달한 도시에서 자본주의와 가장 거리를 두려는(듯 보이는) 국가로 가시게 된 건가요? 


이제는 제가 그때 왜 자퇴를 했는지 이유도 가물가물하네요, 하하. 중학교 때 아시는 선생님의 소개로 수유+너머 연구공동체의 청소년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고미숙 선생님을 만났고, 선생님과 함께 철학 공부를 하면서 강렬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용은 거의 이해를 못했지만, 이것이 학교 공부보다 훨씬 더 삶을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고민한다는 사실만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충격을 잊지 못해서였는지, 고등학교에 갔지만 금세 자퇴를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지루한 수업을 들으면서 3년을 보내느니 그 시간 동안 연구공동체에서 공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뭔가 대단한 결심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시간이 흐르면 나도 검정고시를 치러서 대학에 가게 되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후로 남산강학원(구 수유+너머 남산)에 5년 동안 몸을 담았습니다. 대학엔 가지 않았고, 그 대신 선배들 및 친구들과 함께 글쓰기와 책읽기, 공동체 생활을 배웠습니다. 누구보다도 바쁜 ‘청년 백수’가 되는 법을 익힌 거죠. 그러다가 MVQ(Moving Vision Quest)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길 위에서 배운다’는 말을 모토로 삼아서 학인들을 해외로 보내는 프로젝트였죠. 그렇게 저는 뉴욕에서 3년 반 동안 공부하면서 연구실의 공간을 매니징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20대 초반에, 경험도 없고 영어도 못하는 상태로 뉴욕에 홀로 뚝 떨어지니, 매번 제 단점에 걸려 넘어지면서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은 제가 책상 앞에서만 했던 철학 공부에 체온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무슨 학문을 공부하든 간에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복잡할 수는 없고, 무슨 글을 쓰든 간에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이 초대형 도시에서 저는 인간의 ‘미친 존재감’을 배운 겁니다!


현재 쿠바에 온 것도 MVQ의 연장선상입니다. 연구실은 쿠바의 대안적인 행보에 관심이 있었고, 저는 때마침 남미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죠. (뉴욕을 탈출할 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쿠바에 와서, 저는 정작 문학은 뒷전이고 엉뚱하게도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의학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의료 대국인 쿠바이기에 가능한 발상이었지만, 또한 뉴욕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일탈(?)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정치경제학적으로 보면 뉴욕과 쿠바는 극과 극으로 나뉘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사람 사는 곳입니다. 사회 체제의 차이가 일상에서도 큰 차이를 빚어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부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생로병사와 그에 따른 감정은 장소와 상관없이 언제나 공명합니다. 공명한다는 것은 동일하다는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MVQ 홈페이지_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계속 엇박자(?)가 난다더니, 십대 때 결정한 작은 일탈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네요. 정신없는 행보이긴 했지만, 결국 저를 일관되게 이끌어 온 원동력은 호기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호기심은 타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낯선 도시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리고 사람 일반에 대한 호기심으로 변했습니다. 앞으로도 이 호기심을 계속 따라갈 것 같습니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분들께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해주세요.  


저는 저를 ‘작가’라고 말할 때 항상 머뭇거리게 됩니다. 과연 저 자신을 프로다운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작가는 인간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데, 저는 결국 제 한계 밖에서는 글을 쓰지 못합니다. 십대 때는 학교를 자퇴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을 썼고, 그 다음 책에서도 철저하게 한국의 미래 없는 ‘청년 백수’ 입장에서 철학을 이야기했습니다. 『뉴욕과 지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그래서 세상 앞에서 어떤 윤리를 가져야 하는지 망설이는 이십대의 미숙함이 그대로 녹아있는 책입니다. 제가 제 한계를 잘 알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 미숙함을 숨기기보다는 드러내고 역으로 이용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처음부터 ‘지도 그리기’라는 형식을 택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뉴욕과 지성』은 독자분들의 개인적인 조건에 따라서 전혀 다른 책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동년배의 친구들은 제게 공감할 수도 있고, 더 나이 드신 분들은 제 고민이 귀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각자의 조건에서 자유롭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면서 바랐던 것은 단지 한 가지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제작한 이 시간 지도를, 독자분들의 시간 지도의 일부 재료로 써주신다면 참으로 기쁠 것 같습니다. 한국과 지구 반대편에 놓여 있는 뉴욕,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이 책을 쓴 제 목적은 달성한 셈입니다.


이 이야기를 써나갈수록 제 결론도 뚜렷해졌습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를 탐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속에서 저의 작은 역할을 매번 새롭게 찾을 수 있겠지요. 이것이 제가 뉴욕에서 배운 자유입니다. 뉴욕의 자유를 누리는데 꼭 뉴욕에서 살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있는 장소가 뉴욕만큼이나 사연이 많은 현장이라는 것을 재인식하는 것! 부디, 이 시간 지도 그리기 프로젝트에 동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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