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43인의 시인들이 직접 손으로 쓴 시 모음 『시인이 시를 쓰다』


시인의 글씨와 시를 함께 볼 수 있는 선물 같은 시집
 ― 43인의 시인들 『시인이 시를 쓰다』




참 신기하게도 글씨는 그 사람의 성격을 닮아 있다. 단순히 예쁘게 쓴 글씨냐 못 쓴 글씨냐를 떠나서 크기나 획의 모양, 글씨 사이의 간격(업계 용어로 ‘자간’) 등을 보면 내가 아는 그 사람의 성정과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편집과정 중에 저자교정지를 받아서 보는 과정이 재미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는 필자들의 글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실 좀처럼 그 사람의 글씨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다. PC, 개인용 컴퓨터가 생활필수품이 되기 전만 해도 친한 사람이면 그 사람의 글씨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친해져도 서로의 글씨를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_각각 2016년 7월, 2014년 12월, 2014년 7월에 독자님들께 보내드린 북드라망 손편지입니다.
모두 다른 사람이 썼지요. 요즘은 한 분이 써주고 계십니다. 누구일까요? ^^


예전에, 그러니까 16~17년 정도 전만 해도 출판사에서 받는 서점의 주문은 팩스와 전화가 주를 이루었다. 큰 출판사야 다르겠지만 작은 출판사들은 설령 주문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이 따로 있다고 해도, 오전에 서점에서 전화가 몰려오니까, 그 직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주문전화를 받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주문장에 수기로 주문 내용을 적어 넣는데, 그렇다 보니 주문장에는 사장님부터 편집자, 영업자, 주문받는 총무의 글씨까지 출판사 전 직원의 글씨가 다 적혀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는 광경이지만, 그때 지금은 베테랑 편집자인 당시 어느 신입직원의 주문장 글씨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한 글자 안에서도 자모 획이 따로따로 자기를 드러내는 참으로 강한 개성의 글씨였던 것이다(그렇다. 각 잡힌 모습과 완전 다른 보기 드문 악필이었다).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성정과 성격)을 떠올리는 나는, 그래서 악필이건 달필이건 내가 좋아하거나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글씨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나에게 선물 같은 시집을 발견했으니, 바로 무려 마흔세 명이나 되는 시인들의 글씨로 시를 읽을 수 있는 『시인이 시를 쓰다』이다.





내 경험상 글씨의 자간이 좁은 사람은 예민한(섬세함과 소심함이 공존하는) 사람이다. 글씨를 크게 쓰는 타입이건 작게 쓰는 타입이건 작은 일에도 눈길을 주는 섬세함과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기면 좋을 일을 붙들고 고민하는 소심함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나처럼 글씨를 작게 쓰면서 자간도 좁은 사람은 겉모습이나 행동을 조금만 보아도 아, 소심한 사람(예민한 사람)이구나 짐작하기 쉬운 스타일이라면, 달필인 데다 크게 쓰는데 자간이 좁은 이들은 하는 행동이나 모습은 호탕해 보이지만 내면이 참 여리디 여린 스타일인 경우가 많았다. 아,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뭔가 과학적인 것과는 아무 관련없는 순도 100% 내 경험에서 추론한 ‘나만의 사실’이다.^^;;






참,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일어날 거라 생각하지 않은 인연을 하나 맺었다. 그건 수년 전, 내가 블로그에 쓴 글을 보고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 한 분이 내게 출판사로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근데 내 팔자에 이런 인연이 있는 건지, 아주 오래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긴 했었다. 그러니까 아직 독자엽서라는 게 있던 시절, 매호 챙겨 보던 문예지에 독자소감 같은 걸 적어보낸 적이 있었는데, 다음호 잡지에 그 소감이 실렸었다. 그걸 보고 역시 전혀 알지 못하는 이가 내게 편지를 보냈고, 한동안 펜팔(?)친구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나는 1년에 몇 번쯤 편지를 왕래하는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남쪽 지방에 사는데, 우리는 전화를 한 적은 없고, 보통 손편지로, 가끔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지금까지 두 번 만났다). 그 친구의 글씨는 마치 컴퓨터의 서체처럼 간격과 획이 일정하고, 꼭꼭 눌러 쓴 글씨가 아니라 몸에 힘을 빼고 쓴 글씨다. 직접 만나본 그는, 그의 글씨처럼 참하고, 섬세하고,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다. 쓸데없이 목소리나 행동에 힘을 주지 않고, 어찌 보면 기운이 없어 보일 수도 있을 만큼 언뜻 약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글씨에 담긴 어떤 단호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삶에 대한 그의 태도와 닮아 있는 글씨다.


그의 글씨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그가 선물해 준 박노해의 시 「그 여자의 바구니」를 아래에 붙여 놓는다. 그이가 이 블로그 글을 본다면, 이 글을 지난 번 편지에 대한 나의 늦은 답장으로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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