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정희성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나 자신의 해방을 위해 가는 여정

 ― 정희성 1978년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1991년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그리고 정희성 2001년 시집 『詩를 찾아서』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봄이 오기 전에 나는
얼음을 꺼야 한다
누구는 소용없는 일이라지만
나는 자유를 위해
증오할 것을 증오한다


― 정희성, 「이 곳에 살기 위하여」 부분, 『저문 강에 삽을 씻고』, 24쪽


“불의의 시대에 맞서는 힘은 증오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한 나의 언어는 부드러움을 잃고 점차 공격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 기실 말은 다른 사람을 고무시키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옭아매기도 했던 것이다. 공격적인 나의 언어는 나 자신의 심성마저도 거칠게 변화시켰다. (……) 나는 너무도 오랫동안 미움의 언어에 길들어왔다. 분노의 감정이 나를 지배하는 동안에만 시가 씌어졌고 증오의 대상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때만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자 한다. 나는 나의 말로부터 해방되고 싶고 가능하다면 나 자신으로부터도 해방되었으면 싶다. 이제 길을 나서기는 했는데 나와 내말이 어디에 가 닿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 정희성, 「시인의 말: 시를 찾아 나서며」, 『詩를 찾아서』, 창비, 2001, 80~83쪽.


니체는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이 그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보게 된다.”(『선악의 저편』)


여러 사정과 사연으로 또 어떤 시절인연을 계기로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의 바로 맞은편에 떨어질 때가 있다. 그 존재는 내 분노와 원한과 슬픔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자아낸다. 그리고 분노는 원한을 갚으라고 떠밀고, 떠밀려 나갈수록 슬픔은 퍼내도 퍼내도 가슴에 가득 고이고 만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시절을 짧든 길든 약하게든 강하게든 맞이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를 지나와서 보면 남은 자리에는 증오로 황폐해진 정신과 분노로 타버린 마음과 슬픔으로 잔뜩 찌푸려진 얼굴(정확히는 표정)만이 남아 있다. 이걸 깨닫는 순간, 새로운 선택의 길이 열린다. 이 상황을 원망하는 길로 갈 것인가, 모든 걸 리셋하고 다른 마음자리를 찾아 떠날 것인가. 시인은, 아마도 후자의 길에 들어선 듯하다.

정희성의 두 번째 시집 1978년 간행되었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표지. 이 사진의 앞표지는 1978년 발행된 초판의 것이 아니라 1993년 발행된 재판의 것이다.


정희성의 네 번째 시집 2001년 간행되었던 『詩』를 찾아서 표지


정희성은 이른바 ‘참여시’로 분류될 만한 당대의 시인들 중 내 마음을 끌었던 (이제와 고백하건대) 몇 안 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꼭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고 어여쁜 언어로 쓰인 것만이 시가 아니요, 일상의 언어로 일상의 구질구질하고 힘든 부분을 이야기해도 마음을 끌고 아름다운 시가 있음을 알지만, 처음 대학에 들어가 접하게 된 많은 시들은 어쩐지 교과서에 실린 시들처럼, 중요한 것 같기는 했으나, 내 마음을 끄는 것은 적었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들게 된 정희성의 시집 『저문 강의 삽을 씻고』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이 가득 찬 시집이었으나, 마음을 울리는 시들이 많은 시집이었다.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쉬는
공기여
시궁창에도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 이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自由여


― 정희성, 「너를 부르마」 全文, 『저문 강에 삽을 씻고』, 67쪽


잘 알려진 민중가요의 노랫말이기도 한 이 시를 비롯하여, 정희성의 시집에는 무언가 메마른 분노가 아니라 섬세한 감성으로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기에 나오는 그런 통곡 혹은 절규처럼 느껴졌다.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당신마저 비웃지만
서러운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우리들의 시대는 없는 사람이 없는 대로
맘 편하게 살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세상 사는 일에 길들지 않은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도 노엽다
내 사람아, 울지 말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라
평생에 죄나 짓지 않고 살면 좋으련만
그렇게 살기가 죽기보다 어렵구나
어쩌랴, 바람이 딴 데서 불어와도
마음 단단히 먹고
한치도 얼굴을 돌리지 말아야지


― 정희성, 「길」 全文,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32쪽



정희성의 세 번째 시집 1991년 간행되었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표지


그러다 만난 그의 세 번째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는 역시 정희성 특유의 절절함이 깔려 있는 현실 비판적 시들이 주로 실려 있었지만, 어쩐지 내게는 두 번째 시집보다는 약간 더 성마른 느낌을 주었다. 물론 표제시를 비롯해 그렇지 않은 시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한동안 정희성의 시를 잊고 지냈다. 그러고 보면 정희성 시인은 두 번째 시집과 세 번째 시집 사이에도 13년을 보낸 분이다. 시집이 나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잊히기도 쉽다.


시인은 또 10년의 시간을 보내고야 네 번째 시집인 『詩를 찾아서』를 2001년에 내놓았는데, 내가 이 시집을 발견한 것은 8년이나 지난 2009년쯤었던 듯하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때 이 시집을 발견한 것이, 약간 과장되게 말하면 무슨 운명처럼 느껴졌다. 왜, 그런 때가 있지 않나. 내가 실연의 슬픔을 맞게 되었을 때 마침 거리에서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가 흘러나온다든지 하는 그런 때.


오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
삼십년이 넘게 군사독재 속에 지내오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다보니
사람 꼴도 말이 아니고
이제는 내 자신도 미워져서
무엇보다 그것이 괴로워 견딜 수 없다고
신부님 앞에 가서 고백했더니
신부님이 집에 가서 주기도문 열 번을 외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애 같은 마음이 되어
그냥 그대로 했다


― 정희성, 「첫 고백」 全文, 『詩를 찾아서』, 32쪽


이 시를 읽는 순간, 콧등이 시큰해진 건, “사람 꼴도 말이 아니고 / 이제는 내 자신도 미워져서 /  무엇보다 그것이 괴로워 견딜수 없다”는 그 고백이, 내 마음에서 나온 듯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대체로 짧은 것은 제일 앞에 인용했던 이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내 말로부터 해방되고,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던 시인의 마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짧은 시들 중에, 아마 고르고 또 고르고 더듬거리며 쓰였을 그 시들 중에 “사랑해 // 때늦게 싹이 튼 이 말이 / 어쩌면 / 그대도 나도 모를 / 다른 세상에선 꽃을 피울까 몰라”(「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중)처럼 아직 평화롭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다른 삶 다른 평안을 찾아가는 마음의 행로가 드러나는 시들이 내 눈에는 많이 들어왔다.



시인은 말로부터 해방되고, 자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을 찾았을까. 문득 20여 년 전 좋아하며 외우던 그의 詩가 오늘은 또 다른 의미로 떠오른다. 나 자신의 해방은… 어쩌면 4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결국 어떤 타인과 어떤 옷감을 자아내는 날줄이 되느냐, 씨줄이 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全文,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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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강가에나무 2016.05.19 15:42 답글 | 수정/삭제 | ADDR

    정희성 선생님의 <詩를 찾아서>는 아끼는 시집 중 하나입니다.
    10년의 세월을 보내시고 세상에 내어놓으신 시집을 읽으며
    인간의 언어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 말과 글이 있기 이전
    그 침묵의 시간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을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詩를 찾아서>라는 시의 첫 두 문장은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시들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은 숙연한 마음,
    절을 짓는 심정으로 한 자 한 자 쌓아올리셨을
    시인들의 마음을 조심스레 짚어보기도 했습니다.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같은 풀들에게 물을 주며
    그것들을 '꽃'이라고 말하던 제자의 딸 민지 앞에서
    '그건 잡초야'라고 말하려던 입이 다물어졌다던 <민지의 꽃>도
    푸른 것들 투성이인 들판 앞에 서면 늘 생각이 난답니다.

    다시 시집을 꺼내어보니 2004.3.13. 이라는 날짜와 함께
    그날의 짧은 단상이 끄적여져 있네요.
    시간이 지났건만 아름다운 것들은 늘 가슴에 오래 남아 지금을 살아가게 합니다.
    다시 그 시간들과 지금에, 이렇듯 좋은 글로 말을 걸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참,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는 수녀님들께서 노래로도 부르셨는데
    선율이 담백하고 참 고와요... 여기에 들어가시면 들어보실 수 있어요~
    http://windy327.blog.me/90081040639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남겨봅니다.. ^-^

    • 북드라망 2016.05.20 10:01 신고 수정/삭제

      강가에나무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희 역시 이렇게 따듯한 이야기를 건네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로 읽는 것과 노래로 듣는 것은 참 묘한 차이가 있네요. 좋은 노래도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