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팥이 좋은가
이것은 무엇일까?
힌트, 저 글은 『동의보감』「탕액편」중의 내용이다. 동의보감? 탕액? 그러면 약재인가 하는 이들이 분명 계실 것이다. 물론 음식과 약의 근본은 같다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도 있으니 약재라 하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나 우리는 대개 저것을 식품으로 생각한다. 한자로는 소두(小豆) 혹은 □소두(□小豆)라고 한다. 이제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마지막 힌트! 겨울철 국민간식 붕어빵의 속을 차지하는 그것, 바로 팥이다. 그러니 소두 앞 네모칸 안에 들어갈 글자는 당근 ‘적’(赤)이고…….
어쨌거나 나는 팥을 좋아한다. 하지만 팥을 좋아하는 이유가 팥이 위와 같은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그러면서 저건 왜 인용해 놨느냐고 물으신다면 일...일종의 정보공유랄까?;;). 내가 팥이 좋은 이유는 팥은 할머니가 생전에 나에게 가장 확실하게 얘기해 주었던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좋았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도 가능한 좋아하고 싶었다. 내가 ‘나는 팥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건 아마도 할머니가 당신은 팥이 좋다고 하셨던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팥이 든 송편이 콩이나 깨가 들어간 송편보다 좋지만 차례상에 올릴 수 없는 것이기에(팥의 붉은 기운이 귀신을 쫓는다고 해서이다), 죽은 사람 먹을 깨송편은 만들어도 당신 입에 들어갈 팥 송편은 못 만들어 본 할머니. 호랑새 같은 시아버지도, 꾸중새 같은 시어머니도, 뾰족새 같은 시누도, 미련새 같은 남편도 진즉 사라졌건만 할머니는 끝내 명절 떡 하나를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우리들에게만큼은 팥을 갖고 여러 가지 것들을 해주었다. 할머니네로 이사왔던 첫 해의 첫 방학이자 내 인생의 첫 겨울방학, 시골의 동지섣달 긴긴밤을 할머니와 민화투로 보낼 때, 그때 우리의 입을 궁금치 않게 했던 것은 할머니가 직접 팥소를 넣어 만든 찐빵이었다. 집에서 팥죽 좀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는 말에 (물론 내가 하겠다는 말은 아니고...) 할머니는 원 없이 새알심을 만들게 해줬고, 팥죽도 처음으로 먹어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도대체 그게 어느 때였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게 되었지만 언제고 한번씩 할머니는 시루떡을 만들었다. 그런 날 할머니는 계란 하나도 깨지 못하게 했고, 떡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걸 시루째 안방에 한번, 광에 한번씩 갖다 놓고 뭔가를 빌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 행사(?)가 끝나야 우리도 시루떡을 먹을 수 있었고, 동네 할머니 친구분들게 떡 셔틀도 해다 드렸다. 떡을 한 날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팥고물! 떡도 좋지만 그 통팥의 고물을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을 때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당(糖) 기운!! 할머니가 나에게 해주었던 많은 먹거리 가운데 팥으로 된 것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동의보감』 수업을 들으면서 ‘통즉불통, 불통즉통’이나 ‘태과불급’만큼이나 많이 들었던 말은 한의학에서는 음식의 성분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기운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 해구신과 같은 것들이 약재로 소개되어 물개를 비롯해서 동물을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물개의 어떤 기운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운을 먹는 것에 기억을 먹는다는 걸 함께 포함시키고 싶다. 그렇다면 팥이 좋은 이유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팥은 나에게 가장 달달한 기억을 가져다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엄마가 생각보다 큰 병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아니 그런 병에 걸린 걸 그제야 확인했다. 당장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면역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기에 엄마에게 인터넷에서 본 팥찜질팩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랬는데 결국에는 엄마가 다 만들었다. 내가 결혼할 때 친구들한테 선물로 받았던, 그러나 한 번 쓰고는 바늘을 부러뜨리고 말아 고이 모셔두기만 했던 재봉틀의 바늘을 엄마가 갈아끼우더니 드르륵드르륵 몇 번에 뚝딱 엄마의 팥찜질팩이 만들어졌다. 다음날엔 이모의 찜질팩이, 다음날에는 내 것과 시어머니의 찜질팩이 만들어졌다. 검사를 위해 사흘밤을 우리 집에서 자야 했던 엄마는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 바람에 우리 동네 마트의 팥은 세 번에 걸쳐 나에게 싹쓸이를 당했다. 이 또한 달달한 기억으로 돌아오기를 빈다. 나에게 팥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편집부 몌미
이것은 무엇일까?
성질은 평하고 맛은 달고도 시다. 독이 없으며 소변을 잘 보게 하고, 옹종농혈과 소갈을 치료하며 수족과 창만을 아래로 내려준다. 또 이것은 체내의 수분을 쫓아내는 성질이 있으므로 수기와 각기(脚氣; 팔다리가 붓는 것)를 치료하는 최고의 처방이나 오래 복용할 경우 몸이 마르면서 살결이 검어지고 꺼칠해진다.
힌트, 저 글은 『동의보감』「탕액편」중의 내용이다. 동의보감? 탕액? 그러면 약재인가 하는 이들이 분명 계실 것이다. 물론 음식과 약의 근본은 같다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는 말도 있으니 약재라 하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나 우리는 대개 저것을 식품으로 생각한다. 한자로는 소두(小豆) 혹은 □소두(□小豆)라고 한다. 이제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마지막 힌트! 겨울철 국민간식 붕어빵의 속을 차지하는 그것, 바로 팥이다. 그러니 소두 앞 네모칸 안에 들어갈 글자는 당근 ‘적’(赤)이고…….
어쨌거나 나는 팥을 좋아한다. 하지만 팥을 좋아하는 이유가 팥이 위와 같은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그러면서 저건 왜 인용해 놨느냐고 물으신다면 일...일종의 정보공유랄까?;;). 내가 팥이 좋은 이유는 팥은 할머니가 생전에 나에게 가장 확실하게 얘기해 주었던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좋았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것도 가능한 좋아하고 싶었다. 내가 ‘나는 팥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건 아마도 할머니가 당신은 팥이 좋다고 하셨던 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순간 호흡을 한다는 건 천지에 가득찬 기운을 들이마시는 것이고, 그 기운 속에는 바람도 있고, 물도 있고, 냄새도 있다. 곡식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곡기에는 지수화풍, 음양오행의 모든 기운이 담겨 있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123쪽
팥이 든 송편이 콩이나 깨가 들어간 송편보다 좋지만 차례상에 올릴 수 없는 것이기에(팥의 붉은 기운이 귀신을 쫓는다고 해서이다), 죽은 사람 먹을 깨송편은 만들어도 당신 입에 들어갈 팥 송편은 못 만들어 본 할머니. 호랑새 같은 시아버지도, 꾸중새 같은 시어머니도, 뾰족새 같은 시누도, 미련새 같은 남편도 진즉 사라졌건만 할머니는 끝내 명절 떡 하나를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우리들에게만큼은 팥을 갖고 여러 가지 것들을 해주었다. 할머니네로 이사왔던 첫 해의 첫 방학이자 내 인생의 첫 겨울방학, 시골의 동지섣달 긴긴밤을 할머니와 민화투로 보낼 때, 그때 우리의 입을 궁금치 않게 했던 것은 할머니가 직접 팥소를 넣어 만든 찐빵이었다. 집에서 팥죽 좀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는 말에 (물론 내가 하겠다는 말은 아니고...) 할머니는 원 없이 새알심을 만들게 해줬고, 팥죽도 처음으로 먹어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도대체 그게 어느 때였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게 되었지만 언제고 한번씩 할머니는 시루떡을 만들었다. 그런 날 할머니는 계란 하나도 깨지 못하게 했고, 떡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걸 시루째 안방에 한번, 광에 한번씩 갖다 놓고 뭔가를 빌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 행사(?)가 끝나야 우리도 시루떡을 먹을 수 있었고, 동네 할머니 친구분들게 떡 셔틀도 해다 드렸다. 떡을 한 날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팥고물! 떡도 좋지만 그 통팥의 고물을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을 때 몸속으로 퍼져나가는 당(糖) 기운!! 할머니가 나에게 해주었던 많은 먹거리 가운데 팥으로 된 것은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동의보감』 수업을 들으면서 ‘통즉불통, 불통즉통’이나 ‘태과불급’만큼이나 많이 들었던 말은 한의학에서는 음식의 성분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기운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 해구신과 같은 것들이 약재로 소개되어 물개를 비롯해서 동물을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물개의 어떤 기운이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기운을 먹는 것에 기억을 먹는다는 걸 함께 포함시키고 싶다. 그렇다면 팥이 좋은 이유를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팥은 나에게 가장 달달한 기억을 가져다주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그 음식에 들어있는 기운을 종종 잊어버리는 게 아닐까.
얼마 전 엄마가 생각보다 큰 병에 걸려 버리고 말았다. 아니 그런 병에 걸린 걸 그제야 확인했다. 당장은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면역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기에 엄마에게 인터넷에서 본 팥찜질팩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랬는데 결국에는 엄마가 다 만들었다. 내가 결혼할 때 친구들한테 선물로 받았던, 그러나 한 번 쓰고는 바늘을 부러뜨리고 말아 고이 모셔두기만 했던 재봉틀의 바늘을 엄마가 갈아끼우더니 드르륵드르륵 몇 번에 뚝딱 엄마의 팥찜질팩이 만들어졌다. 다음날엔 이모의 찜질팩이, 다음날에는 내 것과 시어머니의 찜질팩이 만들어졌다. 검사를 위해 사흘밤을 우리 집에서 자야 했던 엄마는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 바람에 우리 동네 마트의 팥은 세 번에 걸쳐 나에게 싹쓸이를 당했다. 이 또한 달달한 기억으로 돌아오기를 빈다. 나에게 팥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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