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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혁명가 톨스토이

[삶의 혁명가 톨스토이] 무저항과 불복종_국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다

by 북드라망 2026. 10. 14.

무저항과 불복종_국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다

김희진(감이당)


명예를 찾아 떠나는 자들
모스크바의 한 기차역, 언제나 환송하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이곳에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귀부인들의 꽃다발 증정, 합창과 즉석연설 같은 화려한 퍼포먼스가 역사 곳곳에서 벌어진다. 『안나 카레니나』의 마지막 8부의 시작을 여는 장면이다. 러시아의 서남쪽 쿠르스크로 향하는 기차가 의용군들을 태우고 갈 예정인데,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세르비아, 루마니아 등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발칸반도다. 

 

브론스키도 여기 있다. 안나가 죽은 뒤 ‘거의 미치광이 같은 상태’가 되어 폐인 생활을 하고 있던 그는 이 기차를 타고 참전하러 간다. 아들을 배웅하러 온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지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정말 하느님의 도움이에요, 이번의 세르비아 전쟁이 말입니다. 나는 이제 늙어서 이런 일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만, 그 아이에게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은혜입니다” (『안나 카레니나』3, 문학동네, 450쪽) 그녀는 아들이 혹시 극단적 선택을 할까봐 노심초사 지켜보며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로 보내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보통은 전장에서 살아돌아왔을 때 하느님의 도움이라고 하는데, 죽을 자리를 찾아서 전장에 가는 것을 하느님의 도움이라고 하는 것은, 목숨보다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어떤 명예를 말하는 걸까? 브론스키의 군대시절 친구인 야쉬빈도 ‘있는 재산을 다 털려버리고 세르비아로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는 도박 중독자다. 이렇듯 러시아에서는 어떤 출구도 찾을 수 없는, 더 이상 살아나갈 힘이 없는 사내들이 전장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를 연재해오던 《러시아 통보》는 8부의 게재를 거부했다. 편집장이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했지만, 톨스토이는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겠다고 했다. (『톨스토이』, 앤드류 노먼 윌슨, 책세상, 427쪽) 당시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에서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저항운동이 일어나 투르크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보스니아나 세르비아 등 슬라브계 나라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던 러시아는 당시 자국의 상황이 안 좋아서 섣불리 참전할 수 없었는데, 러시아의 슬라브위원회가 즉각 나서서 용병을 모집했다. 퇴역 군인과 민간인, 심지어 현역 군인들까지 제대를 하고서 민간인 신분으로 용병에 참여했다.  


19세기, 사회 질서의 개혁을 선도하려는 러시아의 여러 사상운동 가운데, 슬라브주의는 민족주의 운동이다. 화려한 논리로 무장한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인민주의보다 모호하면서도 보수적인 슬라브주의는 러시아가 투르크에 패배했던 크림전쟁 이후로 점점 퍼져갔다. 슬라브주의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억압받는 슬라브형제들을 위해 러시아가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러시아의 역사』 하권, 니콜라스V.랴자놉스키 외, 까치, 578쪽), 언론 역시 연일 전쟁의 상황과 의용군의 모집 상황을 열렬히 보도했다. 그런 와중에 『전쟁과 평화』의 저자가, 수많은 애독자가 대망의 마지막회를 기다리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에 이런 냉소적인 뉘앙스의 장면을 담는다니! 그것은 편집장 입장에서 톨스토이와의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애독자들의 기다림을 저버리더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나보다.  
  

늙은이는 이미 두 번의 전쟁을 겪어온 군인이었다. 그는 군인이란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의용병들의 태도, 말씨, 그리고 내내 술병에 들러붙어서 거들먹대는 꼴을 보며 보잘것없는 군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군청소재지의 주민이었기 때문에 그 도시에서 주정뱅이이자 도둑놈인, 이제는 아무도 고용할 사람이 없게 된 노동자가 종신병으로 출정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경험상 현재와 같은 사회의 분위기에서 세론에 반대된 의견을 말하는 것, 특히 의용병을 비난하는 것의 위험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도 역시 카타바소프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 3, 문학동네, 446쪽)


기차에 타고 있던 노련한 노인의 눈에 훤히 보이는 이 진실! 그러나 레빈의 집으로 놀러가기 위해 이 기차를 탄 레빈의 형과 카타바소프라는 지식인은 자신들이 기차에서 직접 본 장면을 왜곡한다. 카타바소프가 의용군 객차에서 본것은 알콜중독자, 도박중독자, 부랑자들이 전쟁터에서 뭔가 인생역전을 이루어보려는 듯 흥분해서 떠들어대는 장면이다. 그러나 자기 객차로 돌아오자마자 그들은 ‘뛰어난 젊은이’로 각색된다. 왜? 이 전쟁은 핍박당하는 슬라브 형제를 돕고, 이교도로부터 정교회를 보호하는 정의로운 전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명분을 주장하는 자들에겐 이렇게 자발적으로 달려나가는 의용군들은 숭고한 희생정신의 훌륭한 젊은이여야만 했다. 이렇듯 소설의 내용은 진실을 외면하는 지식인들마저 꼬집고 있으니, 톨스토이는 전쟁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에게 날선 공격을 당했다. 도스토옙스키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다. 

 

 


여론의 폭력_프로파간다
《러시아 통보》에서는 8부가 빠진 채 연재가 종결되었지만, 이후에 톨스토이는 당연히 8부를 포함한 단행본을 출판했다. 그러나 출판을 하고나서야 그의 의견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아니다. 왜냐면 8부의 내용에는 이미 전쟁에 반대하는 레빈이 형과 카타바소프에게서 집중포화를 당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8부의 레빈은 여태까지의 소설 속 레빈이라기 보다는 톨스토이의 사상과 의견을 대변하는 아바타에 가깝다. 그들의 쟁점은 이렇다. 레빈은 슬라브주의라는 것은 민중 전체의 의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반면 형은 슬라브주의가 전체 국민의 소수라 할지라도 전체를 견인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의 필요성을 알리고 민중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빈은 소수가 전체를 견인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면서도 반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영문도 모르고 전쟁지원 모금에 참여하는 보통의 민중들은 자신의 의견이랄게 없어 반대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할 게 뭐가 있겠어요?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폐하께서 우리들 대신 생각해주고 계시는걸요.(...) 폐하께서는 뭐든 다 잘 알고 계시니까요” (안나카레니나 3, 502쪽)  옆에 있는 하인에게 교회에서 들은 성전(聖戰)에 나서야한다는 설교에 대한 생각을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하지만, 뚜렷한 주견이 없고 하자는대로 따른다고 해서, 그들이 전쟁에 동조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들이 설파한 것은 자칫 그를 멸망케 할 뻔했던 지식의 오만,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형도 포함된 소수의 사람들이 수도로 올라온 몇백의 입심 좋은 의용병들에게 들은 것을 근거로 하여 자기들이 신문과 함께 민중의 의지와 사상을, 복수와 살인으로 표현되는 사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할 권리를 가지는 데 동의할 수는 없었다. 그가 그것을 승인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기도 그중 한 사람인 민중 가운데에서 그와 같은 사상의 발현을 보지 못했고 또 자기 자신도 전혀 그와 같은 사상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나 카레니나』3, 문학동네, 508쪽)


톨스토이는 의견이 없거나 침묵하는 다수 및 묵살당하는 반대 의견의 대리자로서 여론몰이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전쟁이 시작되기만 하면 신문사의 수입은 당장 갑절’ (『안나카레니나』 3, 506쪽)이 된다. 폭력성만큼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것이 없으며, 언론은 그것으로 장사를 한다. 장사가 잘 되면 그것은 여론, 즉 민중의 의지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민중의 의지에 다양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자극적인 여론을 하나를 만들어 공동체 전체의 힘을 파괴적으로 몰고가는 것. 20세기의 참상을 이끈 프로파간다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태를 풍자하는 8부를 게재하지 않고 침묵시키는 현실이야말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닐 수 없다.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언론의 행태는 점점 심해지고, 그 영향력도 겉잡을 수 없이 커졌다. 1900년에 톨스토이는 <애국주의와 정부>라는 글에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부추기는 증오심에 대해 또 다시 비판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속여서 타국을 증오하도록 하기 위해 “타민족에게 온갖 부당하고 잔인한 짓을 저질러서 자기 민족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을 자극하고, 그 후에는 이런 적대감을 활용하여 자기 민족 내부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거대한 죄』, <애국주의와 정부>, 바다출판사, p.16)  증오를 생산하는 그들의 방법은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약탈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대에는 빼앗고 죽이면서도 그 상대를 증오하진 않았다. 사막과 같은 곳에서 약탈을 하는 무리는 형제애가 강하고 빼앗은 것을 나눈다. 자기의 이익이 살인과 약탈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전쟁은 그 이익을 극소수의 사람들이 모두 차지한다. 영국이 인도에서 빼앗은 것을 영국 국민이 나누어 가졌던가?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보어전쟁에서 황금광산을 두고 잔인한 전투를 벌이지만, 황금이 군사들에게 나누어졌는가? 자기 손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도 그들에게 전쟁을 지지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하는 방법은 ‘국가’의 이익과 ‘민족’의 명예를 위해 피를 흘릴 가치가 있다는 망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나에게 해를 입힌 적도 없는 처음 만난 상대 병사를 죽이기 위해선, 그들 민족이나 나라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복수심이 필요하다. 

 

톨스토이는 1854년 크림전쟁에서 오스만투르크와 유럽의 연합 군대에 속절없이 패하고 돌아온 러시아 군의 한 명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오스만투르크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며, 투르크가 슬라브계 나라에 저지른 악행을 격앙된 어조로 퍼뜨린다. 그것이 『안나 카레니나』의 8부를 쓰던 1876년의 터키-러시아 전쟁을 추동하는 프로파간다였으며, 20세기를 폭력의 세기로 점철시킨 애국과 증오의 프로파간다인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상대국에 대한 이유 있는 복수심이라면 크림전쟁에 참여했던 톨스토이야말로 가장 먼저 투르크와의 전쟁을 찬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여 본 사람들은 대부분 톨스토이처럼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혼을 타락시키는 살인을 애국주의라는 거짓된 망상 속에서 무수히 행하고, 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 톨스토이_애국의 가면을 벗기다
톨스토이는 한 번도 자신을 아나키스트로 여기지 않았다. 그의 궁극의 비전은 하느님의 섭리에 복종하는 삶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을 지켜야 하고, 살인을 하지 않으려면 전쟁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이웃나라를 자극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을 일으켜놓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낸다. 19세기에 독일은 이미 국민개병제를 실시했으며, 러시아도 징집령이 내려지면 원치 않는 젊은이들이 강제로 총을 들어야 했다. 정부는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위해서 존재했다. 종교적 삶을 살려는 톨스토이가 아나키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그는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 왔는지를 간파하고,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애국주의라고 폭로한다. 

현실의 애국주의는 여타의 모든 민족이나 국가에 비해 자민족이나 자국을 선호하는 분명한 감정이며, 따라서 자민족 또는 자국이 최대 융성과 위력을 갖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여기서 최대 융성과 위력은 항상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의 융성과 위력에 위해를 끼쳐야만 획득될 수 있으며 그렇게 획득되곤 했다.(『거대한 죄』, 「애국주의와 정부」, 레프 톨스토이, 바다출판사, 10쪽)


애국주의는 합리적 이성의 산물이 아닌 감정이다. 나라의 부강함, 민족의 고귀함 등등은 모두 다른 나라와의 비교우위에서 획득되는 우월감이다. 이 감정은 자기들의 민족적 속성을 사랑하고 자기나라 사람들이 평안하게 잘 살길 바라는 마음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두 마음을 혼동한다. 

 

톨스토이는 <애국주의와 정부>에서 한 영국인과의 대화를 소개한다. 그 영국인은 ‘참되고 좋은 애국주의는 자민족이나 자국의 진짜 행복을 바라면서도 타민족의 행복을 침해하진 않는 것’ (거대한 죄, 애국주의와 정부, 8쪽) 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남아프리카에서 한창이던 보어전쟁을 반대하는 이 영국인은 좋은 애국심도 있다고 주장한다. 타국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나쁜 애국심이고, 영국이 타민족을 괴롭히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길 바라는 자기의 마음은 좋은 애국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자민족에 대한 사랑에 타민족과의 비교우위가 없는데 굳이 ‘애국’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긴다. 그는 그 영국인에게 그런 마음이 단지 영국인만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냐고 반문했고, 영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러길 바란다고 했다. 이것은 바로 톨스토이가 주창하는 형제애와 같은 마음이다. 국가와 민족의 분별없이 모든 사람의 복지가 증진되기를 원하는 마음.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졌다. 이것은 감정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고, 자신의 우월감과 폭력적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공동체적인 마인드다. 애국주의와는 정 반대인 것이다.

 


톨스토이가 정부의 해악으로 꼽는것은 전쟁만은 아니다. 전쟁은 오히려 정부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자극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왕권이 흔들릴 때 외환을 통해 해결하려는 수법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다. 그럼 정부는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고 나라를 존속시키려 하는가? 톨스토이가 파악한 정부의 목적은 그저 권력의 유지라는 궁극의 목적이 있을 뿐이다. 전체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한 왕실과 귀족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그들은 권력이 필요하다. 군인은 지배받는 인민들의 불만으로부터 귀족의 기득권을 지켜주기 위해 전쟁보다 훨씬 더 자주 동원된다. 군인은 굶주림에 지친 인민, 지주의 불합리한 처분에 반대하는 농민들을 고문해야 한다. 그래서 자국민을 괴롭힐 때도 애국주의의 망상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명예를 존중하고 정직한 젊은이일지라도 군복을 입고 명령을 따를 때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에게 잔인한 채찍 형벌을 가한다. 사적으로는 결코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지만 공무로 하는 살인행위에 죄의식이 없다. 출동하는 그들의 모습은 쾌활하기까지 하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들녘, 403쪽) 양심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 가책의 범위에서 국가의 ‘공무’는 예외인 것이다. 

권력과 굴종에 대한 이러한 도취의 영향 아래, 인간은 자신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해서든, 스스로를 더 이상 현실적인 존재로서의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귀족이나 상인, 지사나 재판관, 장교나 황제, 혹은 장관이나 병사라고 하는 특별한 존재, 제약된 어떤 존재로 간주한다. 따라서 보통의 인간 종(種)으로서 가지는 의무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에게 할당된 의무-귀족, 상인, 지사, 재판관, 장교, 황제, 장관, 병사 등-에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438쪽)


공무를 하는 자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과 명령을 따르는 제복 속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무엇이 옳은지 또는 이익인지 계속 생각을 해야 하지만, 권위에 따라 움직이는 ‘공무’의 수행자는 그저 권력의 노예일 뿐이다. 살인과 폭력으로 지탱되는 ‘국가’의 그 누구도 자신의 악행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다시, 불복종과 무저항의 영성으로
말년의 톨스토이는 선동가였다. 그는 민족주의와 제국들의 영토분쟁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유럽의 상황을 감지했고, 절박한 마음으로 이 폭력을 멈추려고 노력했다. 그가 채택한 방법은 불복종과 무저항 운동으로 일컬어진다. 불복종은 국가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정교회가 국교인 러시아가 군인을 모집하고 신부가 그들에게 성서에 대고 충성서약을 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 그래서 톨스토이가 촉구하는 불복종 운동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양심에 따라 징집을 거부하고 살상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반면 무저항은 어느 한 쪽이 먼저 침략해 들어와서 살상이 벌어져도, 애국주의로 포장된 복수심에 휩쓸리지 말라는 것이다. 똑같이 폭력을 쓰지 말라는 것, 소위 ‘악에 대한 무저항’이다. 폭력은 주고받으며 증오를 키워가는 것이기에 어느 한 쪽이라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전쟁 뿐 아니라 평소에 정부의 군대가 인민에게 폭거를 저지를 때조차 폭력적 저항 없는 불복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죽음도 불사해야 하기에 종교적 영성과 같은 내적인 힘과 원칙이 필요하다.    


그의 무저항 운동은 그 실현 불가능성에 대해 수많은 반론이 제기되었음(『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의 제2장의 제목은 “‘권력의 악행에 대한 무저항’에 관한 비판”으로 무저항이 불가능하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지식인들의 주장을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에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상에 호응했고, 이미 종교적 이유로 징집과 세금납부를 거부하는 종교 공동체들도 있었다. 톨스토이는 세계 곳곳의 무저항의 사례들을 글로 써서 그들의 투쟁이 서로 연결되고 전파될 수 있도록 했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에서는 그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과, 그들의 사상과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을 이끈 인도의 간디가 비폭력 투쟁을 이끌때 가장 영향을 받았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사망한지 4년 뒤인 1914년, 발칸반도의 보스니아(세르비아 청년)에서의 한 발의 총성으로 유럽 전체는 전쟁터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고작 4년 만에 2~3천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러시아는 3년만 참전했는데도 사상자는 최대였다. 군인만 165만 명이 죽고 385만 명이 다쳤다.(『러시아의 역사』 하, (제8판) 니콜라스V.랴자놉스키, 까치, 688쪽) 이 시대의 역사는 기원전 역사나 중세때 보다도 끔찍하고 잔인하다. 모든 전쟁은 인간성을 말살하기 마련이지만, 전 세계가 모두 한꺼번에 같은 경험을 했다. 톨스토이가 경고했던 폭력과 증오의 경쟁은 결국 2천만명을 죽이고도, 또 다시 2차대전으로까지 치달았고, 인류는 혹독한 댓가를 치뤘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폭력은 멈춰지지 않았고 결국 재앙을 맞이했다는 그 사실 그 때문에 톨스토이의 불복종 무저항 사상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힘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솔직히는 무력하게 다가왔다. 어차피 인간들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고, 인류는 이렇게 값비싼 댓가를 치루고 얻은 교훈을 잊지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엔도 있고, 세계 조약도 있고, 핵이 있어도 무서워서 못 쓴다고, 모든 나라가 함께 겪고 넘어간 20세기의 폭력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한 세기를 지나며, 이제는 ‘국가’의 역할과 체제가 많이 달라지기도 했다. 짜르가 지배하는 제정 러시아나 유럽의 파시즘 시대와, 민주적인 절차로 대통령을 뽑는 21세기의 ‘국가’개념은 당연히 다르니까 말이다. 톨스토이는 인류의 의식이 진보함에 따라 국가 공동체의 형태도 진보할 거라고 예견했는데, 그 조건은 두 가지다.   

첫째, 일반적인 모든 인민이 기독교적 인생관을 점점 더 의식적으로 흡수하려고 꾸준히 그리고 이탈하지 않고 전진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둘째, 의식적인 정신적 생활과 별개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가 다시 다른 인민에 의해서 교체되는 과정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더욱더 기독교적인 태도를 취할 때 가능하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들녘, 352쪽)


이제 대부분의 국가는 세습권력이 아니라 선출된 권력이 정해진 기간 정권을 잡는다.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으니 톨스토이가 말한 진보의 방향으로 한 걸음 전진한 것 같았다. 위의 인용문에다가 내 맘대로 기독교적 인생관 대신 ‘민주주의’를 넣어서 지금의 글로벌 세계가 그런대로 살 만 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24년, 불법계엄이 터지고 나서 그 뒤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마치 내 뒤통수를 치는 것만 같았다. 세상은 다시 120년 전 톨스토이가 살던 시대로 돌아가 있었다. ‘애국’이 다시 등장했다. 유럽에선 극우 파시즘 정당이 힘을 얻는다. 강대국의 제국주의적 침탈도 버젓이 행해지는데, 그들 역시 자국 중심주의를 외치고 국가주의를 내세운다. 다른 나라를 혐오하는 정서가 퍼져나가고, 전쟁을 조장하는 도발들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내란 이후에 이런 현실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실은 이런 분위기의 결과가 바로 내란이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를 지키는 경찰국가를 자처하던 나라가 가장 깡패처럼 다른나라를 위협하는 현실에서, 내가 안일하게 믿고 있던 ‘값비싼 댓가’는 이미 유효기간이 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의 법칙은 오직 비폭력으로
19세기의 톨스토이는 애국주의의 프로파간다에 속지 말고, 그들의 권력에 불복종과 무저항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여론을 만들어내는가? 누가 프로파간다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가? ‘애국’이라는 푯말과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인가?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 정권을 잡은 정부에 불복종 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정부에 불복종하는 사례도 많다. 모두가 자기의 이익에 따른 의견이 있는 시대다. 오늘은 이 의견이 힘을 얻고, 내일은 저 의견이 힘을 얻는다. 어제는 저 정치인이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우리의 적이 된다. 세상의 긴장과 분노는 점점 높아지는 것 같은데, 대체 이 분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디로 터져나올지 종잡을 수가 없다. 


톨스토이는 모든 사람이 자기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항해 싸운다고 한다. 국가의 경우에, 로마와 비잔틴은 기독교를 표방했음에도 ‘기독교를 명목상 수용한 뒤에도 그들이 악이라 여기는 것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하는 원리를 자신들을 위해 견지’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275쪽)했다. 개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당국이 악하다고 여기는 것을 선하다 생각하고, 그들에게 사용된 것과 똑같은 폭력으로 당국에 맞서서 투쟁한 인민’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275쪽)이 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소중하다고 판단되는 ‘선’을 지키기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 그러니 이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모두가 상대를 악이라고 할테니 말이다. 톨스토이는 그런 세상은 끊임없는 폭력만이 이어질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니스가 프랑스에, 로트링겐이 독일에, 보헤미아가 오스트리아에 합병되었고, 폴란드는 분할되었으며, 아일랜드와 인도는 영국에 의해서 통치되었고, 중국은 공격을 받았으며, 아프리카인은 도살되었고, 미국인은 중국인들을 미국으로 이주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유태인은 러시아인에게 학대를 받은 것이다.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 276쪽)
하나의 국가 안에서 어떤 한 개인으로부터 다른 개인으로 권력이 전환 될 때도 마찬가지다.(...)루이 14세가 제거되고 로베스피에르가, 그리고 그 뒤 나폴레옹이 권력에 올랐을 때 과연 어떤 자가 통치했는가? 더 선량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더 나쁜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과연 언제 선량한 자가 권력을 쥐고 있었던가? 베르사이유 당인가 아니면 파리코뮌이 권력을 차지했을 때인가?.... (같은 책, 343쪽)


톨스토이는 누구나 다 자기가 선하다고 주장하는 세계에서 누가 선하냐를 가리는 것은 폭력과 살상만 늘어날 뿐이라고 한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모든 시도는 악행이다. 이것은 사실 그의 말이 아니다. 그의 무저항은 반드시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비전을 향해야 한다. 예수가 이 세상에 와서 만백성에게 가르친 새로운 질서, 옷을 달라면 옷을 내어주고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도 내어주라는 무한한 비폭력의 가르침을 모든 개인이 실천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누가 지배해야 하는지, 옳은지 그른지 다투지 말라.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라. 그리고 어떤 나쁜 감정도 느끼지 않도록 자신을 절제하라. 톨스토이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느냐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어떤 사상의 계파에도 속하지 않았고, 정치투쟁 단체에 몸을 담지도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생명의 법칙에 순종하고 사랑으로 충만하면, 세상의 폭력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톨스토이의 무정부주의 사상과 애국주의 배격은 치밀하지는 못하다. 그의 이론에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어 그리스도의 비폭력을 실천해야 국가의 폭력 없이 사는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고도화된 국가 시스템 가운데서 살고 있는 나는 도통 그가 말하는 정부가 없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내란 후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좋은 정부’를 세우기 위해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무정부주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내란을 극복하는 과정에 경험한 비폭력의 힘이 떠올랐다. 오프라인 광장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은 폭력적인 정부를 거부하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사력을 다해 비폭력의 태도를 견지했던 것이다. ‘우리는 포지티브(positive)하게’라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욕설과 도발에도 반응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했다. 혹시 우리 쪽에서 폭력적인 대응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뜯어 말리고, 폭력사태를 조장하려는 술책에 넘어가지 않도록 마음 속에서 공격성을 소멸시켰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 밖에는 어찌하지 못하지만, 그 힘은 순식간에 퍼져나가 전체의 분위기가 되었다. 폭력을 자산으로 삼는 자들에겐 비폭력만이 유일한 싸움의 방식이었다. 이것은 가능한 것이었고,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  

 

 


너는 지배하라, 나는 고귀하리라
러시아 역사에서 굉장히 이상하다고 여겼던 대목이 있다. 바로 러시아라는 나라의 기원에 관한 부분이다. 어느 나라나 건국 신화가 있기 마련, 러시아에는 <원초 연대기>라는 건국신화 책이 있는데, 거기엔 ‘노르만 족의 일파인 바랴기가 슬라브인들의 요청에 의해 러시아 땅에 내려와 키예프 루시를 건설했고, 그로부터 러시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러시아 역사 다이제스트100』, 이무열, 가람기획, 27쪽)는 내용이 있다. 다른 민족을 왕으로 모시고 자신들은 지배받는 민족이 된 것이다. “우리 땅 전체는 광대하고 풍성하지만 여기에는 질서가 전혀 없습니다. 와서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해주십시오!” (『러시아의 역사』상,(8판) 니콜라스V. 랴자놉스키 외, 까치, 48쪽) 근래의 러시아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전설에는 뭔가 정치적인 왜곡이 있었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뒤집을 다른 사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이것을 그냥 어정쩡하게 그저 “전설”로서만 인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안나 카레니나』에서 레빈이(톨스토이가) 이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나온다. 

그는 ‘바랴그인의 초대’에 관한 전설 속에서 자기의 사상을 표명하고 있는 미하일리치며 러시아 민중과 함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왕이 되어 우리는 지배하라. 우리는 기꺼이 절대적인 복종을 약속하리라. 온갖 노고, 온갖 굴종, 온갖 희생을 우리는 스스로 떠맡으리라. 그러나 심판하고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민중이, 세르게이 이바노비치의 말에 의하면 그처럼 비싼 값을 치르고 사들인 권리를 포기해버렸던 것이다.(『안나 카레니나』, 3, 문학동네, 509쪽) 


톨스토이는 이 설화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슬라브인은 심판하고, 벌주고, 지배하는 악한 일을 바랴기인들에게 대신 해달라고 하고, 자신들은 그 밑에서 고통으로 신음할지라도 자신들의 영혼이 손상되는 일, 즉 심판하고, 벌주고, 지배하는 일을 하지 않을 권리를 얻은 것이라고 말이다. 세상 어떤 처지에 처하더라도, 타인을 해하는 행위로부터만 벗어난다면 자신의 영혼만은 고귀하게 지킬 수 있다. 지배하는 것보다는 지배받는 것이 낫다. 이것이 톨스토이의 불복종, 무저항의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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