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주역시즌3] 택수곤(澤水困),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는 곤궁함!

택수곤(澤水困),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는 곤궁함!

 

 

䷮ 澤水困(택수곤)

困, 亨, 貞, 大人吉, 无咎. 有言不信. 곤, 형, 정, 대인길, 무구. 유언불신.
곤괘는 형통하고 올바를 수 있으니 대인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初六, 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초육, 둔곤우주목. 입우유곡, 삼세부적.
초육효, 밑둥만 있는 나무에 앉아 있으니 곤란하다.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서 3년이 지나도 볼 수 없다.

九二, 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享祀, 征凶, 无咎. 구이, 곤우주식, 주불방래. 리용향사, 정흉, 무구.
구이효, 술과 밥에 곤궁하지만 붉은 무릎가리개를 한 구오의 군주가 올 것이다.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로우니 나아가면 흉하여서 탓할 곳이 없다.

六三,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육삼, 곤우석, 거우질려. 입우기궁. 불견기처, 흉.
육삼효, 돌에 눌려서 곤란하고 가시풀에 찔리며 앉아 있다.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볼 수 없으니 흉하다.

九四, 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구사, 래서서, 곤우금거, 린, 유종.
구사효, 천천히 내려감은 쇠수레에 막혀 곤란하기 때문이니, 부끄럽지만 끝맺음은 있을 것이다.

九五, 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구오, 의월, 곤우적불, 내서유열, 리용제사.
구오효, 코를 베이고 발뒤꿈치를 잘리니 자주색 무릎가리개를 한 신하가 막혀 있지만, 서서히 기쁨이 있으리니 하늘과 땅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다.

上六, 困于葛藟, 于臲卼, 曰 動悔, 有悔, 征吉. 상육, 곤우갈류, 우얼올, 왈 동회, 유회, 정길.
상육효, 칡덩굴과 높고 위태로운 자리에서 곤란을 겪으니, 움직일 때마다 후회하며 뉘우치면, 어떤 일을 하든 길하게 된다.

 

 

2019년, 내가 근무하는 회사 팀 내에서 ‘아파트 청약’ 바람이 불었다. 나는 이미 집이 있었기 때문에 그 대열에 합류할 수는 없었지만, 다른 팀원들은 ‘내 집 마련’을 꿈꾸며 아파트 청약에 혼을 실었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참여했던 팀원들 전원 청약에 당첨이 되었고, 그 무렵 갑자기 아파트 값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영끌) 대출을 받아야 할 테지만, 순식간에 몇 억씩 오른 아파트값에 팀원들은 로또라도 당첨된 것 마냥 기뻐했다.

그 중 특히 J군은 부동산으로 차액을 남기는 원리를 아주 잘 이용했다. 일종의 ‘투기’인 셈인데, 아파트를 사고 팔고를 반복하더니 몇 달 새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목표했던 자산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 이 때다 싶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인수인계 후 당당히(!)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J군을 보며 나를 포함한 팀원들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2021년, J군은 다시 회사에 복귀했다.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그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그의 안색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그동안 J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주역』에는 네 가지의 흉(凶)한 괘[사흉괘(四凶卦)]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택수곤괘(澤水困卦)다. 위에는 연못을 상징하는 택(澤)괘가, 아래는 물을 상징하는 감(坎)괘가 자리하고 있는 곤(困卦)괘는 ‘고달프고, 힘들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괘상(卦象)에서도 힘듦과 고달픔을 느낄 수 있다. 마땅히 물이 차 있어야 할 연못에 물이 전부 아래로 빠져 연못이 말라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구이효(九二爻)는 위와 아래로 음효(陰爻)들에게 갇혀 있는 상황이고, 구사효(九四爻)와 구오효(九五爻) 위로는 음효(陰爻)가 올라타고 있어 『주역』에서 양(陽)과 음(陰)이 자리하는 이치에 어긋나고 있다. 이러한 곤괘의 모습을 보고 정이천 선생님은 「서괘전」을 통해 “올라가기만 하고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곤란해지므로 그래서 곤경을 상징하는 곤괘로 받았다.” (정이천, 『주역』, 글 항아리, 933쪽) 라고 말한다. 

회사를 그만 둔 J군은 부동산 투기로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투자 일선에 뛰어 들었다.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주식과 비트코인도 잘~만 하면 힘들게 일하지 않고도 큰돈을 벌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투자가 올라가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내려 올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상황은 J군이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투자 시장이 침체되면서 가상화폐가 폭락하고야 말았다. 그칠 줄 모르는 욕심 때문에 그는 2년 만에 부동산 투기로 모은 2억 원 전부를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날리고 말았다.

 

J군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게 바뀌었다. 아내와 자식도 있었던 그는 공장 일과 아르바이트를 떠돌며 생계를 이어 갔지만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몸도 성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마침 팀 내에 공석이 생겼고, 우여곡절 끝에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었다. 의기양양하게 사무실을 걸어 나갔던 2년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J군의 모습. 그런 그를 나와 팀원들은 환영해 주었고, 이전처럼 돈독하게 지내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팀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무래도 J군이 이 분위기의 장본인인 것 같다. 그는 팀원 한명 한명을 식당으로 불러내 한참을 이야기하고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마다 그의 얼굴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며칠 후, 나에게도 J군의 호출이 있었다. 순간 ‘아, 드디어 내 차례구나.’ 그렇게 나는 식당 한켠에서 J군과 마주했다. 그의 손에는 작년에 분양받은 아파트 계약서가 있었고,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얼마 전부터 팀원들에게 돈을 빌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는 주식과 비트코인으로 날린 2억이 전부가 아니었다.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또 다시 주식과 비트코인에 덤벼들었던 모양이다. ‘빚투’의 시작! 이 일로 그가 겪었던, 그리고 앞으로 겪어야 할 상황들은 택수곤괘(澤水困卦)의 육삼효(六三爻)와 매우 비슷하다. 

대체로 곤괘(困卦)의 음효(陰爻)들은 곤궁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없는데도, 자신의 궁핍한 모습을 가리고, 모면하기 위해 자꾸만 나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유약한[陰] 자질의 육삼효(六三爻)는 강한 자리[陽]를 차지하고 있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만 조급해 한다. 그래서일까. 육삼효에서는 곤괘의 여섯 효사들 중 가장 힘들고 곤궁한 상황들이 연출된다. 첫 장면은 돌덩이에 깔린 곤궁함[곤우석(困于石)]으로 시작된다. 자신을 누르고 있는 구사(九四)와 구오(九五), 단단한 두 양효(陽爻)를 어떻게든 뚫어보려 애를 쓰고 있다. 이 모습은 마치 잃은 돈을 복구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빚투를 시작하는 J군의 모습과도 같다. 그는 심지어 아내의 명의까지 빌려 대출을 받아 주식과 비트코인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조급하게 벌인 일이 결과가 좋을 리 만무했다. 결국 빚이 빚을 낳는 최악의 상황까지 오고야 말았고, J군에게 남겨진 채무액은 무려 3억 원… 주식과 비트코인이라는 돌덩이는 이제 3억 빚이라는 돌덩이로 변해 그를 누르고 있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돌에 깔린 곤궁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가운 가시나무에 찔리고, 다치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거우질려(據于蒺蔾)]으로 이어진다. 그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이미 파산 신청을 한 상태였다. 조금만 잘못되면 월급 계좌까지 압류를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기본적인 경제 활동마저 위태로웠다. 그는 어마어마한 채무액을 갚아야 하는 현실과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릴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막막하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쉽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아서였는지, 내 앞에 내민 아파트 계약서는 그의 담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J군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팀원들, 그 누구도 그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육삼효는 중정을 이루지 못한 음유한 자질로 위험의 극한에 처했으면서도 강함을 쓴다. 양의 위치에 자리하는 것은 강함을 쓰는 것이니, 이는 곤경의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함이 심한 자다.”(같은 책, 942쪽) 

돌에 깔리고, 가시밭길을 걷는 상황 속에서 육삼효는 겨우 겨우 집에 들어 [입우기궁(入于其宮)] 가게 된다. 여기서 ‘집[宮]’이란 편안함을 상징하며, 육삼효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인 셈이다. 그러나 아내를 볼 수 없는 흉(凶)함으로 막을 내린다. J군도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돈을 빌릴 때, 나는 그가 생계가 어려워 돈을 빌리는 줄만 알았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돈은 약 이천만 원. 채무액에 비해 적은 금액을 빌리는 그에게 나는 빌리고자 하는 돈의 배경을 물어 보았다. 그는 자신의 장모님에게 이천 만 원을 빌렸다고 한다.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벌었으니 아내와 장모는 그런 남편을, 그런 사위를 믿었던 것이다. 그 믿음에 금이 가게 할 수 없었던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의 상황을 아내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이천만 원을 빌려 일단 자신의 궁핍함을 가려보겠다는 속셈인 것이었다.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다. 이 방법으로 자신의 궁핍하고 곤궁한 상황을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누구보다 가족에게 먼저 자신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돈’을 증식시키는 욕심으로 벌어진 곤궁함을 ‘돈’으로 감추고, 가리고 있으니 매일 집에 들어가 아내를 보더라도 진정으로 아내를 볼 수 없는 격이다.[불견기처(不見其妻)] 어쩌면 J군에게 가장 곤(困)한 상황은 투기와 빚투보다도, 삶의 안식처를 잃어버린 흉(凶)함이 아닐까. 그는 자신을 진솔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자리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아내마저 볼 수 없는 흉함이라… 가히 사흉괘(四凶卦)라 할만 하다. 그러나 곤(困)의 때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괘사(卦辭)에서는 이에 대해 대인의 마음[大人吉]을 품는다면 형통하고 올바를 수 있다고 말한다. 『주역』에서 대인(大人)과 소인(小人)의 차이는 ‘받아들이고’ ‘감추는’ 데에 있다. 소인은 말라 있는 물, 즉 곤궁한 상황을 계속해서 감추려고만 한다. 물은 말라 있는데, 마치 차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대인은 자신의 고달프고 힘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자신의 곤궁함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와 소통할 수 있는 문[亨]이 열리고, 자신을 잃지 않는 길[貞]과 마주할 수 있다. 곤(困)의 때는 결코 부자연스럽거나 특정한 누군가만 겪는 것이 아니다. 『주역』을 이루고 있는 육십 네 개의 자연의 이치 중 하나며, 우주의 스텝이다. 

하지만 J군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조급해졌고, 더 감추려고 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더 곤궁해질 수밖에 없다. 곤궁함을 극복하기 위한 조급함보다는 곤궁함 그 자체와 마주할 수 있는 길에 서고자 하는 힘! 여기가 곤(困)의 때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는 올바른[貞] 출발선이고, 대인(大人)의 한 걸음이다.  

 

 

글_고영주(글공방 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