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배달부 키키》 ②사건편
잃어버린 마법을 찾아서
마녀 배달부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마법을 잃었다가 되찾는 일이다. 키키의 마녀 수련기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타고난 조건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키키가 마법을 잃는 계기, 그 능력을 회복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마지막으로 힘을 되찾기까지를 차례로 살펴보자.
날지 못하는 마녀
키키는 스스로 솔직하고 씩씩한 아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따로 의논도 없이 단호하게 수련의 출발일을 정할 정도이니 말이다. 낮에 결심하고, 저녁에 짐을 챙겨, 밤에 바로 날아오를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과 독립심이 있다. 그림 동화 속 아이들처럼 조실부모해서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서, 그 당참이 낯설지만 후련하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키키가 명랑할 수 있는 이유는 가족, 친구, 이웃이 있어서다. 어린 마녀의 갑작스런 출발에 급히 송별 인사하러 온 동네 사람들을 보자. 이들은 키키의 결단을 전적으로 응원한다. 키키가 어디서든 마력을 발휘하며 잘 살 것이라 믿지도 않고, 어린이니까 어쩌나저쩌나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 친구들은 자기들과는 다른 키키의 수련을 부러워하지도 걱정하지 않는다. 이 마을은 어른과 아이가, 보통 사람과 마녀가 자기 자리에서 제 할 일을 하며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품어주는 곳이다. 아마 어른들은 키키만이 아니라 어떤 아이라도 믿고 격려할 것이다. 키키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충만한 곳에서 출발하기에 씩씩할 수 있었다.
이런 키키는 시계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위축이 된다. 거리와 골목 어디에도 자신을 응원해주는 이가 없다. 그러다 키키는 마법을 잃고 우울한 사춘기 소녀로 전락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키키가 마법을 잃는 계기를 네 가지 정도로 꼽을 수 있다. 첫째, 키키는 도착하자마자 교통 법규를 어기게 된다. 결국 화가 잔뜩 난 경찰에게 혼이 난다. 너는 미성년자다, 이름이 뭐냐? 부모가 누구냐? 이런 식으로 취조까지 당한다. 이때 톰보가 경찰을 유인해, 키키가 곤란한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키키는 오히려 톰보에게 불쾌하다고 화를 낸다. 키키는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일까? 톰보가 자기 소개도 없이,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함부로 자신의 일에 간섭했기 때문이다. 선의로 가득한 톰보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못 보던 마녀가 나타났다며 호기심에 서투른 호의를 제공하면 경솔한 처사가 된다. 그러고보니 경찰의 태도도 비슷했다. 그 자신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이 고장이 처음인 이에게 무조건 틀렸다고 질책하는 것은 무례하다. 즉 이 마을에는 가족, 친구, 이웃이 없고 경찰과 같은 무뢰한만 있기에 마법이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둘째, 키키가 톰보와 헤어져 찾아간 호텔은 소녀를 받아주지 않는다. 마녀라서가 아니라 미성년자에 신분증도 없어서다. 호텔 지배인은 경찰과 달리 너무나 정중하지만, 키키에게는 그 상냥함이 상투적인 매너에 불과했다. 호텔을 나온 키키는 공원 분수대의 오른쪽 그늘에서 도시락을 펴지만 먹을 기력이 없다. 키키의 왼편으로는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할머니, 계단에 앉아서 신문 읽는 아저씨, 함께 책 보는 연인들, 분수대에서 아이와 물놀이하는 엄마, 그저 풍경을 느긋이 관찰하는 빵모자 쓴 청년이 있다. 평화로운 도심의 오후지만, 서로에게 무심한 이 사람들의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호의가 아니다. 마녀계에서 13살이면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이고 갈 곳과 살 곳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마녀건 고양이건 보호자가 없으면 어디에도 머물 수가 없다. 이때 보호자란 어른이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돈을 벌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이들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도심은 규칙과 신분증, 돈으로 지탱된다. 키키는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없어서, 갑자기 나타난 경찰차를 피해 샌드위치를 다시 싸서 슬그머니 일어난다.
셋째는 청어파이 사건이다. 배달일을 하게 된 키키는 손녀 생일에 청어파이를 구워 보내고 싶은 할머니에게 일을 부탁받는다. 하지만 오븐이 고장 나서 배달할 케이크를 굽지 못하게 되자, 할머니를 도와 낡은 오븐으로 파이를 만들어 배달에도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고생 끝 배달이어도 정작 손녀는 파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파티를 화려하게 즐기다가 나온 소녀는 마뜩찮은 눈으로 키키를 아래에서 위로 훑어보기까지 한다. 손녀를 사랑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키키, 받은 돈만큼 뭔가를 해내고 싶었던 키키였다. 시간에 맞추어야 하기에 전속력으로 날았고, 파이가 비에 젖을까 치마로 감싸면서 도착했다. 이 모든 노력이 상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인가? 돈을 받았으니 배달부에게는 다 해결된 일인가? 키키는 뜻하지 않은 이 비로 모든 일이 틀어져 결국 톰보가 초대한 파티에도 가지 못한다. 또래는 멋지게 차려입고 생일을 축하받는데, 배달일로 바빴던 자기가 갖고 온 케이크는 천대를 받다니! 키키는 어쩐지 처지가 비교되기도 하고, 인정받지 못한 노력 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다. 돈의 세계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마음을 연결하고픈 마녀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넷째, 결정적인 일이 바닷가에서 톰보와 놀다 일어난다. 거리에서 자신의 옷차림을 낮추어보았던 소녀들이 누군가가 모는 자동차를 타고 추락한 비행선 구경을 가고 있다. 톰보에게 함께 보러 가자고 하면서, 소녀들은 ‘벌써 돈을 벌고 있다’며 놀란 눈으로 키키를 바라본다. 키키는 그쪽으로 뛰어가는 톰보를 보며 마음이 좋지 않다. 왜일까? 어렵게 돈을 벌어야 하는 자신과는 달리 예쁘게 차려입고 여기저기 놀러나 다니는 소녀들을 질투해서일까? 아니면 톰보가 자기 대신에 철없이 발랄한 아이들 곁으로 뛰어가서일까? 청어파이를 싫어한 소녀도 키키를 스캔했었다. 자기 또래인데 배달일을 한다는 것, 자기는 예쁘게 차려입고 모두가 사랑해주는 가운데 파티를 즐기는데 키키는 검은 옷을 입고 일을 한다는 것을 그냥 별스럽다고 생각한다. 키키 또래의 모든 소녀들은 돈을 벌어야 하는 키키의 처지에 대해 나이브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들은 돈을 벌어야 할 걱정도, 독립해야 할 걱정도 모두 다 해결된 듯이 군다.
문제는 키키다. 키키가 우울한 이유는 이런 또래들을 유치하다며 멀리할 수가 없어서다. 남들처럼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고, 무리의 인정을 받고 싶지만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개성을 인정받고 싶기도 한 소녀의 복잡한 마음을 한 마디로 딱 잘라 설명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키키는 톰보에게 화내며 긴 길을 돌아 빵집으로 올라오는 과정에서 마법을 잃어버린다. 이때 키키는 아마 화가 났을 것이다. 검은 옷을 입고 빗자루를 든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가 먼저 부끄러워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남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자마자, 자기 능력을 비교하며 초라하다 느끼는 바로 순간, 키키는 날지 못하게 된다. 열심히 두 발을 돌려야 하는 페달 비행기의 톰보가 그토록 부러워한 능력이었지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자마자 그런 교만에 응답하듯 마력이 사라진다.
풍요의 그림자
《마녀 배달부 키키》는 도심에 막 상경한 소년소녀들을 타겟으로 했다고 한다. 실제로 개봉 직후, 지브리식 블록버스터가 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키키의 우울함에 아주 많은 씨티 키즈가 공감했던 모양이다. 바닷가에서 돌아와 키키는 펑펑 울 수도 질질 짤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그냥 침대에 퍽 쓰러진다. 미야자키는 작품마다 정말 탁월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람의 심리를 잘 표현하는데, 키키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녹초가 되어 버리는 이 장면이야말로 참 잘 포착했다. 비슷한 것으로 사츠키와 메이가 엄마의 퇴원이 미뤄지자 놀 수도 잘 수도 없어 각자 어질러진 방 안에 픽 쓰러져 있는 장면이 있다. 최근에 개봉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주인공 마히토도 엄마를 잃은 상실감, 아버지의 재혼이 주는 불편함으로 어쩔 줄을 몰라 침대에 퍽 쓰러진다. 미야자키는 마음을 어디 붙일 데가 없는 상태, 가슴이 상쾌하지가 않고 불안과 초조와 공포가 다 뒤섞인 상태, 그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자기 소외를 참으로 잘 표현했다.
그런데 키키의 우울은 사실 키키만의 것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자기는 절대로 돈 걱정할 일은 없을 것처럼 뛰어 노는 소년소녀도 언젠가는 키키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미야자키는 키키를 통해 이 아이들의 나이브함을 꼬집는다. 키키는 세상이,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빵집 전화기 앞에서 배달 고객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진다. 그래서 일단 들어온 주문에 성실하게 임한다. 자신이 돈을 받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이 배달하는 물건은 상대에게는 가치가 없고, 그 상대는 키키를 낮추어본다. 이 세계 전체가 키키를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누가 돈을 주지 않으면 따로 살 길이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물질이 도처에 널려 있고, 일할 사람이 곳곳에 있기 때문에 마녀라도 타인의 인정과 승낙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미야자키는 시계 마을을 전쟁 없는 유럽을 상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전쟁이 없다는 것은 큰 걱정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모가 돼지로 변하고 친구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는 결연히 주먹을 쥐고 나아가야 하기에, 일이 잘 안되면 바깥 상황도 탓할 수 있고, 자기 무능력도 안타깝게 생각하게 된다. 하울의 소피는 자기는 예뻤던 적이 없었다며 엉엉 울었다. 똑같이 안예쁜데, 키키는 왜 큰소리로 울 수가 없나? 소피가 자기 미모에 한탄하는 이유는 누구나 살기 힘든 전쟁통에 자기 처지만 좀 생각하고 싶어서다. 그렇게 잠깐 울고, 소피는 툭툭 털고 또 황야의 마녀와 마르클을 돌보며 성을 청소했다. 겨우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할 뿐이지만 그 일의 무게를 알고 있고 또 감당한다. 키키는 누구나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에서, 그 누구에게도 의미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해 우울한 것이다.
도입부에서 키키는 자기 수련의 날짜를 정할 정도로 똘똘하고 당돌했다. 다음 보름에는 비가 올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갑자기 남자 친구라도 생기면 떠날 수 없다며, 당장 오늘 수련을 결정할 정도로 자립적이었다. 미리 빗자루를 깎아 두었을 정도다. 하지만 캠핑 준비를 해온 아버지를 생각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출발 날짜를 정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기도 하다. 자신이 받은 마법에 대해 감사해본 적은 아예 없고, 수련도 전통의 일부라며 가볍게 여기기만 했다. 온천장에 가기 전 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 친구, 이웃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엄청나게 낙관한다.
키키는 엄마의 빗자루를 타고 수련을 시작하고, 기차도 무임으로 승차하고, 오소노의 호의로 덜컥 빵집에서 살게 된다. 시계 마을도 키키에게 어느 정도의 호의는 갖고 있다. 시계 마을 아이들은 더 풍족하다. 그들은 재능도 덕도 없는데 윤택하다. 마녀의 배달을 이용하는 많은 이들이 조카나 손녀에게 선물을 보내고 있었다. 톰보도 추락한 비행선 선장의 호의를 받아, 하늘도 날아보게 된다. 그런데 이모로부터 까만 고양이를 선물 받는 소년은 인형을 개에게 줘 버리고, 청어파이를 받은 손녀는 할머니에게 감사 전화나 할까 싶다. 톰보는 빗자루를 탈 줄 아는 키키에게 호기심을 갖지만 정작 키키가 얼마나 어렵게 일하는지, 부모 없이 빵집 2층에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키키는 힘들다. 이토록 풍요로운 세계에서, 소피와는 달리 매일 같이 거울을 보며 미모를 닦을 수 있는데도 불행하다. 아마 들여다볼수록 키키는 자신이 초라해 보일 것이다. 미야자키는 ‘전쟁 없음’이라는 키워드로 풍요의 이면을 꼬집는다. 물질적 풍요는 우리를 자기애로 몰아넣는다. 키키의 방에는 거울이 없었지만 키키는 계속 쇼윈도우를 바라보았다. 영화적으로 보면 대단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유리 너머로 근사한 옷과 구두를 바라보는 키키가 다시 유리에 비치기도 한다. 키키는 그런 옷을 입은 자기를 자기로 그리는 것이다. 그러니 빗자루로 하늘을 날아 오를 수도 있는데 자기가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 밖에. 전쟁이 없어 물질적 풍요에 빠지게만 되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쇼윈도우로 자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되고, 그 끝은 우울인 것이다.
미야자키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성장하기가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나이브해지기 때문이다. 풍요를 물질적으로 재단하게 되는 한, 자기가 가진 것이나 함께 누리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시계 마을, 청어파이 소녀는 평생 물질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딱 물질적으로다.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일을 겪는다. 우정과 사랑, 성취와 실패에는 다양한 문턱이 있다. 그때마다 어찌해볼 수 없는 고통이 일상의 틈을 비집고 올라오기도 한다. 이미 미야자키는 《토토로》에서 일상의 불안정함, 틈의 악마성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예전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는 간난신고 끝에 획득하는 경제적 자립이 정신적 자립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날 프리 아르바이터, 모라토리엄, 트라바유 등의 유행어가 나타내듯이 경제적 자립은 반드시 정신의 자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빈곤이 물질적 가난함보다 마음에 대해 더 많이 오르내리는 시대입니다.
부모 곁을 떠나는 것도 통과의례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볍고, 타인들 속에서 생활하는 것도 편의점 한 곳으로 충분한 시대에, 소녀들이 직면하는 자립이란 어떻게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발로하며 자기실현을 하느냐 하는,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곤란한 과제입니다. [중략] 어머니가 사용하던 빗자루가 지켜주고, 아버지가 사주신 라디오로 기분전환을 하며, 분신인 검은 고양이가 따라다니고 있는데, 키키의 마음은 고독과 인연에 흔들립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그 경제적 원조까지 받으며 도시의 화려함을 동경해 도시에서 자립하려 하는 많은 소녀들의 모습이 키키와 겹쳐집니다. 키키의 무른 각오도, 얕은 인식도 오늘날 세간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원작 속에서 키키는 타고난 천성으로 난관을 해결해나갑니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 자기 편을 많이 넓혀가기도 합니다. 영화화에 앞서 저희는 약간의 수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녀의 재능이 훌륭히 펼쳐지는 모습은 확실히 기분 좋지만, 지금 이 도시에서 사는 소녀들의 마음은 좀 더 굴절되어 있습니다. 자립이란 벽을 돌파하는 싸움은 많은 소녀들에게 곤란 그 자체로, 한번의 축복조차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영화에서 자립의 문제를 보다 깊이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좋든 싫든 현실감을 갖기 때문인데, 키키는 영화 속에서 원작보다 훨씬 강한 고독과 좌절을 맛보게 되겠지요. (『지브리 아트북, 마녀 배달부 키키』, 7쪽)
능력이 아니라 비전이다
키키는 어떻게 마법을 회복하는가? 두 가지 계기가 마련된다. 첫 번째는 숲속에서 우르술라 언니에게 꿀팁을 받아서다. 마법을 잃고 풀 죽어 있는 키키에게 숲의 화가가 찾아온다. 우르술라는 시내에서 식료품 등을 사서 오두막으로 돌아가려다 잠시 키키에게 들른다. 화가로서 키키와 같은 일을 경험했던 우르술라는, 키키에게 숲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해준다. 우르술라는 13살 때 키키처럼 화가가 되려고 결심했다. 그리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어떤 의심도 없이 화가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갑자기 어떻게 해도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그려도 그려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떤 작품도 완성할 수 없었다. 이유는 어디에 있었나? 지금까지 누군가의 그림을 따라 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우르술라도 색을 만들고 표현하는 재능을 타고났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가 되려면 그런 재주만으로는 부족하다. 마녀가 단지 주문 외우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듯 말이다.
전쟁통에서든 풍요로운 세계에서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수련기에 할 일은 자기 능력을 점검하기이다. 키키의 능력은 톰보가 보기에는 부러운 것이지만, 고향 마을에서나 시계 도시에서나 그리 특별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미야자키는 키키가 지닌 마력이란 누구나 조금씩 갖고 있는 어떤 재능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재능, ‘얼마나의’ 재능이 아니라, 각자가 지닌 작은 능력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또 어떻게 쓰고 싶은지를 물어야 한다. 도처에 깔린 것이 쇼윈도우뿐이라 해도, 그보다 먼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너는 어떤 방식으로 이 능력을 가져가고 싶은가?’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에서 귀화한 전지희 선수가 탁구 여자 복식으로 금메달을 땄다. 우승한 선수의 표정이 너무 환하고 멋져서 과거 영상 몇 개를 찾아보다가 어린 후배들에게 선배가 들려주는 조언편을 시청하게 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선수인데도 매일 기본기를 훈련하는 성실함은 놀라웠다. 하지만 그보다도 전지희 선수가 자기 스타일을 고민하는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선수는 탁구 역사에 어떤 기술을 선물할 것인지, 전지희라는 이름으로 어떤 공격과 방어의 능력을 선보일 것인지 탐구하면서 라켓을 잡는다고 했다. 탁구를 쳐본 적은 없지만, 자기만의 기술을 만든다는 것이 단지 계발되는 탁구계의 시류를 따라잡는 일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탁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자기 철학과, 동료 선수와 상대 선수와의 멋진 관계를 연출하기 위한 기법을 가다듬기일 것이다. 이것이 자기 개인의 타고난 바를 자랑하는 일일 리는 없다. 전지희 선수는 탁구에 대한 자기만의 철학을 갖지 않으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때의 ‘세계적인 선수’란 단지 명성을 크게 얻겠다는 목표를 뜻하지는 않으리라.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마찬가지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물론 그림 실력이야 젊어서부터 유명했지만, 어느 순간 그도 아무것도 그릴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고 한다. 특히 《철인 아톰》을 그린 데쓰카 오사무와 그림체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고 슬럼프가 심해졌다고 한다. 그렸던 그림을 다 없애버리기도 하고, 데생이나 붓질부터 하나하나 다시 닦아보려고도 했단다. 하지만 미야자키는 최종적으로 자기만의 철학을 가져야 함을 깨달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주고 싶은 즐거움에 대한 생각을 깊고 넓게 하기 시작하자 그림체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의 능력은 우리가 이 세계에 온 이유와 관계된다. 인류학의 많은 보고서들은 원시 부족의 통과의례를 다루는데, 야생의 청소년들이 키키처럼 고향을 떠나 홀홀 단신 숲이나 토굴로 들어간다. 미션은 간단하다. 네 운명을 발견하라! 키키의 경우를 놓고 이런 통과의례의 의미를 이해해볼 수도 있겠다. 수련이란 재능과 꿈을 발견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물려받은 전통이나 타고난 재주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라는 뜻이 아닐까? 능력이야 거기서 거기다. 천재라지만 역사 속에서 그런 천재 또한 많고 많았다. 문제는 소박한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과 그 쓰일 바에 대한 철학에 달려 있다. 키키는 자기답게 날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마법을 잃어버린 공포로부터 조금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계기는 비행선에 끌려간 톰보 구하기다. 키키는 친구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티비에서 보고 무작정 달려간다. 시계 마을이 높은 언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앞서 말했다. 키키는 계속 달리면서 언덕을 올랐다. 날기 위해서는 뛰어야 하는 것이다. 키키는 군중 속을 헤치면서 오르다가 갑자기 청소용 솔을 발견한다.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자기 안의 비행 능력을 과감하게 확신한다. 그리고 모두가 보는 자리에서 힘을 내고, 마침내 날아오른다. 미야자키는 이 장면에서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하듯, 무음으로 클로즈업된 키키의 씩씩한 얼굴을 보여준다. 키키의 마력에 힘 받은 솔이 결국 팡! 하고 불어 터진다. 키키는 잘 날아오르지 못하면 태워버리겠다고 솔을 협박까지 한다. 친구를 구하고 싶은 마음, 구할 수 있다는 확신, 이 두 가지가 합쳐져 키키는 마법을 되찾고 톰보를 구한다.
어떻게 해야 자기답게 살 수 있을까? 우리 각자에게는 누구와도 다르고 싶기도 하고, 모두에게 인정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미야자키는 이 두 가지 모순된 욕망 때문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자신이 함께 살고 싶은 이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기 능력을 그들을 돕는 데 쓰면 된다. 그런 관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찰하게 되면 가장 자기다운 비행의 길이 보이리라.
키키는 어떻게 자신이 마력을 되찾을 줄 알았을까? 키키는 자신을 믿었다. 자신을 믿었기에 톰보 역시 쉽게 매달린 줄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 톰보 또한 잘 살 수 있을 것임을 알았다. 자기를 믿는 이가 타인도 믿는다. 그렇게 톰보를 구한 키키는 결국 도시 사람들 전부의 칭찬을 받으며 하늘에서 내려오게 된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은 스스로에게 거는 신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엔딩씬을 보면 키키가 배달일을 계속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톰보와 바다 위를 날기도 하고 빵집 아르바이트도 계속한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키키에게 많은 친구가 생긴 것이다. 키키는 오소노의 빵집에서 단발머리에 생기발랄한 여자 아이와 제법 친해진 듯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시계 탑 할아버지와 높은 창에 앉아 농담도 한다. 자신의 우울함과 기쁨을 나눌 사람이 조금씩 늘어난 모양이다. 키키는 솔빗자루를 타고 점점 더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된다.
아! 그런데 놓치지 않아야 할 점이 하나 있다. 키키는 지지와 더는 대화할 수 없게 된다. 마법이 돌아왔으니까, 지지도 다시 인간의 말을 하게 되어야 할 터인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어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다. 자기만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자, 자기 관계를 확장하는 자는 거듭 달라지는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친구가 늘어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귀었던 사람이 사라지는 일도 따라 온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날게 된 키키는 서서히 자기만의 지도를 그려가게 되리라. 마법이 소녀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만의 비행 경로로 날마다 모험중일 키키를 상상해보자. 누구와 어떻게 하늘과 바다를 바라볼 것인가를 생각하는 마녀 배달부의 하루하루는 가끔 우울해도 슬프지는 않으리라.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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