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커니 살다가 제때 죽을 수 있을까?
나는 죽어 솔개의 밥이 되리라
자기 죽음엔, 어쩌면, 수련을 좀 한다면, 초연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자기보다 앞서간 자식, 오랫동안 정을 나눈 연인 혹은 평생 불효만 저지른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슬픔이 가슴을 저미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은 사랑했던 대상의 상실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이다. 프로이트처럼 말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깊이, 슬퍼하는 이 ‘애도mourning’ 작업을 통해야만 대상에게 투여된 리비도를 ‘잘’^^ 회수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 애도에 대한 동서고금의 보편적 문화적 형식이 장례이다. 그리고 맹자는 그 기원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드라마틱하게 기술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부모가 죽으면 그냥 골짜기에 내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연히 그 장소를 다시 지나가다 부모의 시체를 여우와 삵이 뜯어 먹고, 모기와 파리떼가 빨아먹는 것을 보고 ‘식겁’하게 된다.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고("其顙有泚")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되자(“睨而不視”), 서둘러 집에 와서 삼태기를 가져가 부모의 시신을 덮고 흙으로 매장했다. 장례가 출현하는 순간인 셈이다. (맹자, <등문공>)
이후 우리,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죽은 사람을 ‘잘 보내드리는’ 장례의 형식이 매우 중요해진다. 남은 가족들은 충분히 애달파해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고인을 추모해야 하고, 상주는 문상객을 정성을 다해 대접해야 한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는데 우리 사회 노인들은 죽음 준비와 관련하여 미리 수의를 마련해놓는다거나(37.8%) 묘지를 알아본다거나(24,8%) 상조회에 가입하는(17.0%) 등의 장례 준비를 가장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도 얼마 전 나에게 자신이 장만해놓은 ‘수의’를 며느리와 딸 중 누가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들한테는 자기가 죽으면 꼭 화장(火葬)하라는 당부, 그 김에 돌아가신 아버지 묘도 파서 다시 화장하라는 당부를 건넨다.
그런데 죽어도 소중하게 다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 혹은 죽은 자를 잘 보내야 한다는 인정(人情)을 무지르듯 잘라버린 사람이 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장자이다. 2500년 전 사람이고 그때의 지명으로는 몽(蒙), 지금 지명으로는 중국 안휘성에 살았던 사람이다. 장례와 관련된 장자의 너무나 유명한 두 개의 이야기. 하나는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에피소드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장례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먼저 아내 장례식을 살펴보자.
장자의 아내가 죽었다. 친구 혜시(惠施)가 문상을 가보니 장자가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깜짝 놀란 혜시, 친구를 나무란다. 울지 않는 것도 무정한 노릇인데 노래까지 부르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이하는 장자의 대답이다.
“이 사람이 막 죽었을 때 나라고 어찌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삶의 시작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본디 생명은 없었어. 단지 생명이 없었을 뿐 아니라 본디 형체도 없었어. 단지 형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본디 기(氣)조차 없었어.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이 저절로 혼합되어 기로 변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고, 형체가 변하여 생명이 되었다가, 지금 다시 변해 죽음으로 돌아간 것이야. 이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와 같은 것이지. 이 사람은 이제 천지라는 큰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을 뿐이네. 그런데도 내가 ‘아이고, 아이고’ 하며 울부짖는다면 운명(命)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쳤다네.” (장자 <지락>)
자기 장례와 관련해서는 한술 더 뜬다. 장자는 스승의 장례를 ‘제대로’ 치르겠다(厚葬)고 다짐하는 제자들을 나무란다. 그렇다고 묵자(墨子)처럼 스몰장례(薄葬)를 요청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하늘과 땅을 널로 삼고, 해와 달을 행렬의 장식 옥으로 삼고, 별들을 죽은 자의 입에 물리는 구슬로 삼고, 이 세상 만물을 저승길의 선물로 삼겠다”라고 말한다. 그냥 들판에 버려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까마귀나 솔개가 쪼아먹지 않을까? 장자의 대답이 걸작이다. 땅속에 매장하면 어차피 개미 같은 땅속 짐승이 파먹을 텐데, 그렇게 되는 것이나 땅 위 짐승들이 파먹게 두는 것이나 ‘도찐개찐’ 아니냐는 것이다. 어차피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것, 까마귀나 솔개가 쪼아먹어도 개의치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시신을 들판에 놓아두고 까마귀나 독수리가 쪼아 먹게 두는 조장(鳥葬)은 원래 티베트지역처럼 건조한 고산지대 유목민의 장례 풍습이다. 그런데 기후가 전혀 다른, 덥고 습한 양쯔강 하류의 안휘성에서 자신의 시신을 들판에 버리라고 한 장자의 이런 쿨한 태도는, 그래서 죽음에 관한 가장 ‘쎈’ 이야기로 나에게는 들린다.
장자, ‘부득이’의 철학
흔히 장자를 동아시아에서 죽음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한 최초의 사상가라고 말한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고대사상의 비조(鼻祖)인 공자는 죽음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자 자로가 죽음에 관해서 묻자 공자는 “아직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 논어 <선진>)고 대답했다. 공자에게 언제나 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 다시 말해 인간답게 사는 방법(道)을 아는 문제였다. 그리고 공자에 이르러 인간의 삶이란, 태어난 신분대로 사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목숨만을 부지하는 것도 아닌, 인·의·예·지로 표현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영위하는 문제가 된다. 죽음은 기꺼이 이런 명징한 삶에 복무해야 한다. 따라서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상관없다”(“朝聞道, 夕死可矣”/<리인>)라는 날 선 결의가 있게 되고, 명분과 의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 <술이>)의 다짐이 출현한다. 그리고 우리는 도덕적 삶을 향해 끝없이 분투했던, “안되는 줄 알면서도 행한” 공자 이래, 의로운 삶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여긴 역사적 인물들을 기억한다. 계백이 그랬고, 안중근이 그랬고, 전태일이 또한 그랬다.
그런데 장자는 공자와 달리 삶을 전혀 특권화하지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인간의 마음은(“好生惡死 人心所同” /주자, <양혜왕 집주>) 삶과 죽음의 이치를 몰라서 생긴 일이다. 장자에게 삶과 죽음은 사계절의 순환처럼 기(氣)의 연속적 흐름의 특이점들일 따름이다. 사생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삶과 죽음은 다르지 않다. (“死生爲一條”/ <덕충부>)
“삶을 기뻐하는 것은 미혹 아닐까요?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어릴 때 고향을 떠나 고향으로 가는 길을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여희(麗姬)는 애(艾)라는 땅의 국경 지기 딸이었소. 진나라에 처음 잡혀 왔을 때 너무 울어 옷깃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오. 그러나 왕의 첩이 되고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 오히려 울었던 것을 후회하였다오. 이처럼 죽은 사람들도 이전에 자기가 살려고 했던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꿈속에서 즐겁게 술 마시던 자가 아침에 일어나면 목 놓아 울고, 꿈속에서 통곡한 자가 아침에 일어나면 즐겁게 사냥을 나가기도 하지요. 꿈을 꿀 땐 그것이 꿈인지 모르지요. 꿈속에서 꿈을 꾸고 해몽하기도 합니다. 깨어난 후에야 비로소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압니다. 크게 깨어나면 우리네 삶도 한바탕 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장자, <제물론>)
그런데 삶도 죽음도 한바탕 꿈.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된 건지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 삶은 근본적으로 무의미한 것이 아닐까? 순자(荀子)는 장자를 그렇게 이해한 것 같다. 그는 장자를, 삶을 어떻게 개척해나갈 것인가를 문제 삼지 않는(“莊子蔽於天而不知人”/ <해폐>) 순응의 철학자라고 비판한다. 이런 태도는 근대 초기 후쓰(胡適)에게도 나타나는데 그 역시 장자를 “현상을 모두 긍정하는 극단적인 수구주의자”라고 평가한다. 현대 중국의 대표적 철학자 리쩌허우(李澤厚)조차 “장자는...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그럭저럭 되는 대로 살아나가는 노예적 성격에 더욱 나쁜 작용을 불러일으켰다”(<중국고대사상사론>, p383)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장자는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평생”(<사의 찬미>), 삶도 죽음도 허망하니 되는 대로 살아가자고 말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모든 개체의 탄생과 죽음은 각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벌어지는 사태이고 그런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속은 공자나 맹자가 생각한 것처럼 시비를 분명을 가릴 수 있는 선명하고 뚜렷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도저하게 인식한 사상가였다.
우리는 모두 ‘부득이’한 세상에서 ‘부득이’하게 살아간다. 섭공자고(葉公子高)는 한 나라의 공무원으로서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라는 명을 받는다. 그러나 그 나라 제후는 만만치 않은 사람이다. 겉으로는 사신을 정중하게 대접하겠지만 이쪽에서 원하는 것을 결코 손쉽게 들어줄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爲人臣子者,固有所不得已”/ <인간세>) 가지 않는다면 자기 나라 제후에게 시달림을 받을 것이고 간다면 저쪽 나라의 제후에게 시달림을 받을 것이다. 진퇴양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는 피할 수 없을뿐더러 이런 일이 왜 나에게 닥치는지 알 수도 없다. (“知不能規乎其始者也”/ <덕충부>)
그렇다. 세속은 정원을 망쳐놓는 두더지를 어쩔 수 없이 잡아 죽여야 하는 곳이며 (<두더지 잡기>),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곳이며(<아마존의 수호자>),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하면 그곳에서 십 년 넘게 일해온 노동자의 생존권도 잃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태안화력 금화PSC 지부 박종현 사무국장). 결과는 늘 의도를 배반하고, 호의는 늘 타자 앞에서 자빠진다. 그러나 그런 어긋남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결코 버리거나 외면할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한다.
장자는 그것을 ‘세속 속에서 세속 넘기’라고 말한다. 걸으면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 날개 없이 날기. 앎 없이 알기! (“絶迹易,无行地難. 爲人使易以僞,爲天使難以僞. 聞以有翼飛者矣.未聞以无翼飛者也.,聞以有知知者矣,未聞以无知知者也”/ <인간세>)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 <두더지 잡기>의 저자는 부득이하게 두더지를 죽일 수밖에 없더라도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일은 값싸서도 안 되고 느려서도 안 된다”라고 말한다. 며칠 전 읽은 칼럼에서 조형근은 그것을 “밥벌이의 준엄함과 삶의 엄연함 사이의 균형”이라고 말했다. 루쉰이라면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이 허망한 것과 같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부득이(不得已)의 철학자 장자는, 이렇게 어려운 과제, 두 길을 동시에 걷는 것(“兩行” /<제물론>)을 우리에게 해보라고 말하고 있다.
팔이 변해 닭이 되면 새벽을 알리리라
어머니와 살기 시작한 후, 어머니를 통해 늙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목격하고 실감하게 되면서, 나는 매일 칠판에 무엇인가를 휘갈겨놓곤 했다. “절대 엄마처럼 늙지 말아야지!”, “몸은 늙는데 마음은 늙지 않는구나!”, “곱게 늙는다는 것은 환상 아닐까?”, “늙는다는 것은 세상이 축소되는 일. 그럴 때는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 “잘 늙으려면 반드시 수양이 필요하다.” 등.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칠판에 이런 질문을 적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맡길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는 치매에 걸릴 준비가 되어 있을까?”
늙음에 관한 삼인칭 관찰자 시점이 이렇게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뀌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어머니의 낙상과 장기 입원, 그리고 ‘기저귀’ 사태였다. 물론 어머니는 낙상 전에도 요실금 때문에 외출 때는 요실금 팬티를 입으셨다. 그때도 그런 자신에게 신세 한탄이 심하셨기 때문에 나는 폭풍 검색을 통해 보통 팬티와 아주 유사한, 그러니까 기저귀 느낌이 거의 없는 요실금 팬티를 사서 어머니께 드리곤 했었다.
그러나 낙상과 골절, 입원으로 인한 기저귀 착용 문제는 요실금 팬티를 입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일단 아기처럼 거대한 팬티형 기저귀를 착용해야 하고, 그것을 매번 갈 수 없으니까 그 안에 일자형 기저귀를 또 차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저귀를 입고 벗는 일에 남의 손을 빌려야 했다. 어머니는 기저귀 차기를 완강히 거부하셨다. 자꾸 움직이면 뼈가 빨리 붙지 않으니 당분간이라도 기저귀를 차보라고 권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때론 엉엉 우셨다. 난 이런 사태에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어머니를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나라도, 기저귀는, 정말 싫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기저귀를 차게 되었다. 와상환자로 오래 누워계시면서 배변 기능이 현저히 약해졌고 결국 심한 변비와 설사를 오가는, 그리고 용변을 본인이 전혀 통제하기 어려운, 한마디로 ‘똥싸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을 ‘똥싸개’라고 부르고, 어쩔 수 없이 기저귀를 차면서, 어머니는 심리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으셨다.
고령화사회라는 것은 다양한 손상을 입은 육체를 지닌 채로 오래 산다는 이야기이다. 2020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현재 83.5살, 그러나 건강수명은 73.1살이다. 노인이 되어 최소한 10년은 신장 투석 환자로, 파킨슨병이나 치매 환자, 뇌졸중 환자로, 혹은 디스크나 골절 혹은 신경통 환자로 엄청난 불편과 통증을 견디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자사(子祀), 자여(子輿), 자리(子犁), 자래(子來) 네 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없음을 머리로 삼고 삶을 등으로 삼고 죽음을 꼬리로 삼아 사생존망(死生存亡)이 모두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난 이런 사람과 벗하고 싶네."
네 사람이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서로 통하는 바가 있어 넷은 모두 벗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자여가 병에 걸렸습니다. 자사가 문병을 가서 자여를 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그대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그의 창자는 위쪽으로 올라붙었으며, 턱은 배꼽에 파묻혔고, 어깨는 정수리보다 높았으며, 상투만 달랑 하늘을 향해있었습니다. 음양의 기가 흐트러져 많이 아파 보였으나 마음은 평온해 보였습니다.
자여는 비틀거리며 우물로 가서 자신을 비춰보고 말했습니다. “위대하구나, 조물자! 나를 이렇게 곱사등이로 만들었구나!”
자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그 모습이 싫은가?”
자여가 말했습니다. “아니네, 그럴 리가 있는가? 내 왼팔이 점점 변해 닭이 된다면 나는 새벽을 알리겠네. 내 오른팔이 점점 변해 활이 된다면 나는 올빼미를 잡아 구워 먹겠네. 내 꼬리뼈가 점점 변해 수레바퀴가 되고 내 마음이 말이 된다면, 그것을 탈 테니 따로 수레가 필요하겠는가? 삶을 얻는 것도 때를 만났기 때문이고 그것을 잃는 것도 때를 따르는 것일 뿐일세. 생사를 편안히 때의 추이에 맡기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네.”"(장자, <대종사>)
장자에 나오는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자사, 자여, 자리, 자래, 모두 네 명이다. 그런데 사祀, 여輿, 리犁, 래來라는 이름의 발음이 ‘가고(徂)’, ‘온다(來)’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니(아카스카 키요시赤塚忠) 이 네 명 모두 “사생존망(死生存亡)이 모두 한 몸”이라는 것에 달통해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네 명의 친구 중 자여가 가장 먼저 늙고 병들었다. 뇌졸중일지 낙상일지 파킨슨일지 골다공증 때문일지 알 수는 없지만, 기혈이 뒤틀려 손발이 뒤틀리고 나아가 온몸이 뒤틀리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손으로 물건을 잡는다거나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만성 통증에 시달리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될까? 아니면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며 우울증에 빠지게 될까? 혹시 어떻게든 이 손상을 이겨내겠다는 의지에 불타오를까?
그런데 장자에는 자사, 자여, 자리, 자래 말고도 다양한 신체의 손상을 입은 사람들 다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절름발이 왕태(王駘), 신도가(申徒嘉), 숙산무지(叔山無趾), 그리고 꼽추 애태타(哀駘它)와 인기지리무신(闉跂支離無脤), 목에 혹이 나 있는 옹앙대영(甕㼜大癭) 등.(장자, <덕충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대부분 평민이며 장애인인 이들이 장자 안에서는 가장 덕이 높은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이들은 공자보다도 따르는 이가 많고(왕태), 자산(子産) 같은 당대 최고의 정치가에게 깨달음을 주거나(신도가) 공자를 반성하게 만들고(숙산무지), 주변의 모든 남자와 여자를 사로잡으며(애태타), 제후들에게 신임을 얻는다.(인기지리무신, 옹앙대영)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들은 우선, 자신의 장애를 결여나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육체적 손상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순하게 받아들인다. 두 번째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특별히 주장하는 바가 없이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따라간다. 한마디로 ‘안지약명(安之若命)’의 태도! 하지만 이것은 리쩌허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순응과 체념의 도덕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현실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잊고(外) 정신적으로 자유를 구사하자는 일종의 정신 승리법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안지약명이라는 수용적 태도를 손상을 결여로 여기는 정상 담론, 장애는 극복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극복 담론에 대한 하나의 급진적 안티테제로 읽는다.
“비장애인들이 휠체어와 배뇨관, 용변 보조, ‘감소된’ 지적 능력, 일반적인 ‘자립성 결핍’ 등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의 말은 상상에 기초한 것이지 직접 체험한 것이 아니다....엉덩이를 닦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본래 그렇게 끔찍한 일인가? 아이였을 때 이런 도움이 필요했고 어른이 된 지금 품위와 유머를 발휘하며 이런 일을 도와주는 수많은 친구를 둔 사람으로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경험에 입각해보면, 도움이 불편했던 건...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색해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을 느꼈을 때...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장애인이) 짐이 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낙인 자체가 돌봄을 제공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고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런 내밀한 돌봄은 삶의 질에 훨씬 다채로운 영향을 미칠 것이다.”(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p244)
다시 앞의 장자의 에피소드로 돌아가 보자. 자여에게 문병 온 친구 자사가 다정하게 말을 건다. 아프고 힘들지? 몸이 많이 변해서 속상하지? 자여가 대답한다. “내 팔이 변해 닭처럼 된다면 새벽을 알리면 되지 않을까?” 난 자여의 이 대답을 하나의 유용성에서 다른 유용성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어떤 것도 본질과 규범에 기초한 유용성이란 없다는 것을 환기하는 문제라고 해석한다. 상실과 절망감을 삭제하지 않으면서 또 그것에 압도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방법을 발명하는 문제로 읽는다.
우리 대부분은 기저귀를 차고, 보행기를 미는 노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불행할까?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취약한 몸, 의존적인 몸이 된다는 것은 젊고 건강할 때는 알 수 없었던 내 안의 억압, 비장애중심주의(ablism)를 탐색할 기회도 함께 주지 않을까? 그것이 다른 몸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그 몸으로 세계를 새롭게 경험해가는 다른 쾌락을 발명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자사, 자여, 자리, 자래들처럼 나도 친구들과 함께 노년의 다른 시간성을 상상하고 살아내길 희망한다.
돌아온 열자, 헤테로토피아의 시공간
정나라 사람, 열자(列子)는 이상이 고결하고 높았다. 명예나 재산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로지 우주 만물의 원리, 생사의 이치를 깨닫는 데 온 힘을 다 바쳤다. 어느덧 그는 바람을 몰고 다니면서 보름씩이나 우주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를 돌아다니는 경지에 이르렀다. (“夫列子御風而行,冷然善也,旬有五日而後反” /<소요유>)
그런 열자가 어느 날 계함(季咸)이라는 신통한 무당을 알게 된다. 그 무당이 얼마나 용한지 “죽고 사는 것, 얻고 잃는 것, 재앙과 행운, 오래 살지 일찍 죽을지를 모두 알고 있었다” 심지어 죽는 날의 연월일까지 맞추는 사람이었다. 열자는 그 계함한테 푹 빠지게 되었다. 그 사람이라면 자기에게 부족한 2% (열자는 아직 바람에 의존해야만 날아다닐 수 있었다.^^)를 채워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열자의 스승 호자는 생각이 달랐다. 깨달음의 본질은 어떤 특별한 능력을 장착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열자에게 계함을 데려오라고 말한다.
"열자는 계함을 데리고 호자를 뵈러 갔습니다. 계함은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당신 선생은 곧 죽을 걸세. 살아날 가망이 없어. 열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나는 괴이한 조짐을 보았어. 젖은 재를 봤지.”....
다음 날, 또 그를 데리고 호자를 뵈러 갔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말했습니다. “행운이야, 그대의 선생이 나를 만난 건! 병이 나았어. 완전히 생기가 돌더군. 막혔던 게 풀리는 것을 봤지.”....
다음 날, 또 그를 데리고 호자를 뵈러 갔습니다. 그는 밖으로 나와 열자에게 말했습니다.“당신 선생은 일정치가 않아. 나는 상을 볼 수 없어. 안정되면 다시 보아주겠네.”...
다음 날, 또 그를 데리고 호자를 뵈러 갔습니다. 그는 이번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아연실색하여 달아났습니다. 호자가 말했습니다. “뒤쫓아라!” 열자가 그를 뒤쫓았으나 잡지 못하고 돌아와 호자에게 말했습니다.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사라져 쫓아갈 수 없었습니다.”" (장자, <응제왕>)
그러니까 기를 자유자재로 변용시킬 수 있었던 호자가 계함에게 처음에는 땅의 기운(地文)을, 그다음에는 하늘의 기운(天壤)을, 그다음에는 천지가 균형을 이루는 모습(太沖莫勝)을, 마지막에는 아직 천지가 태어나기 전의 허(虛) 그 자체의 모습(未始出吾宗)을 차례로 보여줬던 것이고, 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이러한 변화무쌍함에 혼비백산한 계함이 줄행랑을 친 것으로 이 에피소드는 끝난다.
토마스 머튼은 “영적인 삶을 살기 전에, 삶을 살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미국의 영성 운동가 파커 파머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그때까지 파머는 영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을 지리멸렬한 일상을 벗어나서 신과 같은 명료함과 순수함으로 도약하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마스 머튼을 만난 후 파커 파머에게 영적인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삶에 관여하는 끝없는 과정”이고 “자기 자신,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운동”이 된다. (파커 파머,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 p83) 영적인 삶을 열망했던 우리의 열자도 이제 집으로 돌아온다.
"열자는 자기가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열자는 집으로 돌아가 삼 년 동안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위해 밥을 지을 뿐 아니라 돼지에게도 사람 대하듯 밥을 먹였습니다. 세상일에 좋고 싫음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갈고 닦았던 것을 본래의 소박함으로 되돌리고, 흙덩이처럼 우두커니 서서 세상 만물과 섞였습니다. 한결같게 이렇게 살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장자, <응제왕>)
나는 열자가 다시 돌아온 집에 대해 생각한다. 그곳은 일상적 공간이되 열자가 떠나기 전과 동일한 호모토피아(homotopia)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그곳이 열자가 한때 꿈꾸던 이상적인 유토피아(utopia)도 아닐 것이다. 깨닫겠다는 의지 자체도 사라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이 무욕의 공간, 나아가 시비분별에 대한 강박이 사라진 무차별의 공간, 즉 모든 쓸모와 분별의 세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소요유>), “모든 곳에 존재하나 어디에도 고정되지 않은 선박"(푸코)같은 곳,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일 것으로 생각한다.
장자 마지막 챕터, <응제왕>편에 나오는 이 열자의 이야기, 모든 자만심을 버리고 세상과 구별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타자와 함께 지극히 평범하게 존재하다가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이런 삶에는 무언가 깊은 장엄함이 있다. 이렇게 잉여 없이 살다가 여한 없이 죽을 수 있기를!
글_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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