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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와 함께 하는 신화 탐구

[레비스트로스와함께하는신화탐구] 며느리의 道

by 북드라망 2022. 9. 19.

며느리의 道

 


가장 둥근 달
올해도 추석은 왔습니다. 저에게 두 가지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먼저 달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둥근 얼굴 덕분에 곧잘 ‘달덩이’로 불렸습니다. 듣기에 나쁘지 않았어요. 거울 속 제 모습은 전혀 둥글지 않으니까요. 비대칭인 얼굴인데 말할 때마다 턱이 올라가서 저는 볼 때마다 뭔가 각진 느낌이 있다! 고 생각해왔습니다. 얼굴은 모나 있으나 모두들 둥글다고 하시니 은밀히 제 본성을 감춘 듯 신비주의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ㅋㅋ

 

이번에 100년 만에 가장 둥근달이 떴지요. 놀랐습니다. 그동안 달은 충분히 둥글지 않았던 거예요. 그런데 ‘가장’ 둥글다고요? 어쩌면 달은 둥글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맞습니다. 우주 자연 안에는 삼각형이 없지요. 삼각형이란 우리 정신 안에서 활약하는 관념이지 만질 수 있는 그런 무엇이 아닙니다. 탁구공이나 바퀴 등 많은 것이 원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최초의 원으로 보였을 달은 사실 둥글지 않습니다. 수많은 분화구가 있지 않습니까. 달에도 산맥과 바다가 있다지요. 별은 제 나름의 이유로 울퉁불퉁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달을 보며 둥글다 기뻐할 때, 달은 갸우뚱 했겠지요. 날 뭘로 보는 거야? 

 

그런데 달이 자신을 뭐라고 보는지가 꼭 중요할까요? 인류는 주기적으로 모습을 변화시키면서 완전하고자 하는 노력의 상징으로 달의 둥금을 찬미했고, 달은 인간에게 그렇게 의미화됨으로써 달일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화성에게 달은 또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게 별 하나가 우주의 수많은 존재들과 다른 관계에 놓이고, 다른 이유로 사랑받습니다. 제 얼굴이 실로 모난 것이 무엇 중요하겠습니까? 친구들 보기에 둥글다면 둥근 것이지요. 이처럼 추석의 둥근 달은 둥금에 대한 명상을 하기에 좋았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제사입니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해서 저희는 이제 명절 제사를 모시지 않습니다. 이번 추석 아침에는 더욱 늦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아침밥을 먹고 난 뒤에 뭔가 허전했습니다. 보름달처럼 얼굴이 복되다며 저를 사랑하시는 시아버지의 한 말씀이 없었어요. “수고했다!”는 아버님의 격려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집안일 안 한다고 며느리 아끼지 않으실 리 없지요. ‘수고하세요’는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격려의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둥근 며느리에게는 근엄한 시아버지가 주시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어요. 문득 저는 제 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자들 허리 부러지도록 부엌에서 전 부칠 때 남자들은 늘어지게 마루에서 논다며, 그 갈등을 명철 휴유증으로 보도하던 추석 저녁 뉴스도 거의 없었습니다. 제사 준비의 노고가 줄어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좋은 일입니다. 몸이 편해졌고, 생긴 시간의 여유로 뭔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아쉬운 일입니다. 나물 무치고 생선 익히고 제기(祭器) 닦으면서 듣던, 저처럼 며느리로 들어와 한 집 이룬 어머니들의 애환을 들을 기회가 없어졌으니까요. 

 

시몬느 보부아르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냐, 만들어지는 것이냐?’ 질문하며 현대 여성의 성평등을 외쳤습니다. 보부아르의 논의는 잘 모릅니다만, 그 누구도 자격을 갖고 태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공동체에는 제 각각 입사의례가 있으니까요. 인간이 인간이 되는 것, 내가 속한 공동체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반드시 시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입사의례에서는 특별한 종류의 신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입사자는 부족의 공통 신화에 자신을 밀어넣어, 이야기를 깊이 체화해야만 합니다.(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한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그동안 제가 치뤘던 시험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전을 맛있게 부치는 것이 아니라, 명절날 부엌에서의 ‘집안 이야기’ 듣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고했다!’는 인정으로 매 추석마다 그 시험을 통과했음을 알겠습니다. 이제 제사가 없어졌으니 둥근 며느리는 어찌해야 할지요? 


               
달의 흑점이 된 개구리-여인
19세기 이후의 이야기 즉 저자가 있고 상품으로서 제작되는 소설에는 남자 고아가 주로 주인공입니다. 반면 근대 이전 옛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주로 소녀들이죠. 19세기 이후에도 가끔 대중을 놀라게 하는 주인공으로 여자가 있기는 합니다. 보바리 부인, 안나 카레니나, 채털리 부인 등. 그런데 모두 불륜으로 유명하시죠. 민담이나 전설의 뿌리가 되는 신화 속 주인공도 다수는 소녀들입니다. 아줌마나 할머니도 출연하지만 주인공은 역시 소녀이죠. 때문에 ‘불륜’ 코드와는 거리가 멉니다. 소녀들은 윤리란 무엇인지를 탐색하기에 바쁘지, 그것을 어길 필요는 느끼지 못해요. 

 

신화는 왜 소녀를 좋아하는 걸까요? 그림 형제가 수집한 민담을 보면 그 이유를 ‘왕국과의 거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백설공주라든가 엄지공주처럼 힘없는 아버지가 지켜주기에 무력한 존재로서의 소녀, 장자가 아닌 탓에 왕국을 계승할 수도 없는 소녀들이야말로 왕국의 법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지요. 동화는 만물이 깊이 상호의존한다는 것을 ‘숲’을 배경으로 가르치려고 하니까, 사람과 사물을 왕의 신민으로 만드는 왕국에서 가장 쓸모없는 존재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림 형제가 민담을 수집한 시대를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 그림(Jacob Grimm; 1785~1863)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1786~1859) 형제는 동화집을 만들기 위해 민담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독일어 사전을 편찬하려고 했어요. 독일이라고 하는 땅에 마땅한 정신을 평민의 목소리에서 발견하려고 했던 것이죠. 형제에게는 ‘독일’이라는 개념을 구성해 줄 내용이 필요했습니다. 그림 형제가 수집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왕국이 유독 강조되는 것은 당연했지요. 숲을 돌아다니던 소녀는 반드시 왕국으로 귀환해야 했습니다. 독일이라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싶었을 테니까요. 

 

레비 스트로스가 소개하는 신화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농경의 정주 문화에 기반한 이야기들은 왕국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원류인 신화는 왕국을 강조하지 않고 소녀의 시련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주목합니다. 여기에는 하나 재미있는 역설이 있습니다. 그림 형제 동화집 소녀들이 자유롭게 숲에서 난쟁이도 만나고 늑대도 만나면서 왕국에서는 불가능한 모험을 즐긴다면, 신화의 소녀들은 가사노동을 잘 해내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받습니다. 물론 숲에서는 백설공주도 헨젤과 그레텔도 아궁이 옆에서 밥하고, 낮에는 물가에서 빨래하는 등 공주는 하지 않을 법한 집안일을 해야 하지만요. 그것은 ‘단순한 시련’일 뿐입니다. 왕자와 결혼하게 되면 공주는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는 팔자로 돌아갈 테지요. 그래서 야생의 신화가 완전히 조선시대 양반가의 내훈서(內訓書) 저리가라인 점은 너무 놀랍습니다. 

 

19세기 이후, 자본주의의 이야기에서 개인은 열심히 스펙을 쌓아 자기를 사회에 적합한 인간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소설은 사람들이 그런 운명을 수긍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그 상황을 계몽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  이광수의 『무정』에 나오는 형식 군이 대표적인 예가 되겠지요. 형식이는 시대의 비정과 재해의 무정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유학길에 오릅니다. 형식은 출세하기 위해 유년시절의 은사와 연인도 버립니다. 그런데 신화속 소녀들의 시험이 거의 이 수준입니다. 소녀들은 형식이 이상으로 가혹하게 시련에 내몰리면서 훌륭한 주부 되기를 강요받거든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태곳적부터, 남성은 입신양명에 힘쓰고 여성은 그림자노동에 매달려야 한다고 했다는 걸까요? 여성에게는 영원히 가족 뒷바라지만 할 천명이 내려졌단 말인가요? 이제 신화 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〇 M425. 아라파호족의 신화: 별들의 배우자들1

① 땅 위의 인디언 처녀들은 각각 별과 결혼하기를 꿈꾸었다. 형제인 해와 달은 지상 여인들의 덕목을 비교했다. 그들은 면밀히 조사했다. 달이 말했다. “인간 여자들보다 더 예쁜 것이 있을까. 나를 향해 눈을 들어 바라볼 때 그녀들은 매혹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해가 여기에 항의했다. “뭐? 인간 여자는 너무 혐오스럽다. 그녀들은 주름이 많고, 아주 작은 눈을 가진 끔찍한 존재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물의 창조물이지!” 그래서 해는 개구리를 아내 삼고자 했다. 왜냐하면 물속 동물들은 커다란 눈을 갖고 있고, 습한 요소로 해의 강한 열기를 보호하기 때문에 해를 보고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기 때문이다.

 

도입부터가 흥미롭습니다. 두 쌍의 커플이 혼사 준비를 하는군요. 해와 달이 형제로 나오는데요(이 부분은 다른 기회에 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전래동화에 오누이로 나오는 해와 달이 남북 아메리카 신화에서는 형제로 나옵니다). 달은 인간 여인이, 해는 개구리가 좋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성이 ‘선택받는 대상’으로 그려진다는 점에 대해 너무 분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보시면 여성이라는 기호의 놀라운 주체성에 깜짝 놀라게 되실 겁니다. 해와 달이 남자라고 해서,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하게 보는 것도 아닙니다. 달에게는 자신을 보고 웃는 자가 인간이지만, 해에게는 자신을 보고 웃는 자가 개구리라는 설정이 핵심입니다. 즉 최선의 배우자는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달려 있는 문제이지 선험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② 맑게 갠 어느 날 아침, 네 명의 인디언 처녀들이 나무를 하러 갔다. 그들 중 하나가 죽은 나무 가까이 갔는데, 달이 고슴도치로 변해 그 위에 올라앉았다. 처녀는 고슴도치의 털이 갖고 싶어 그 위로 올라갔는데, 고슴도치를 소녀가 막대기로 때릴 때마다 나무가 자라 소녀는 결국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친구들이 내려오라고 소리쳤지만 소녀는 말했다. “야! 이 짐승은 찬란한 침으로 된 털을 갖고 있어. 우리 엄마가 그것을 보면 행복해할 거야. 왜냐하면 엄마는 그것이 없거든!”


달이 고슴도치로 변하는군요. 그러자 죽은 나무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달이 변신 능력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요. 달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모습을 바꾸니까요. 이 변신은 주기를 이룬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바로 그것을 죽은 나무의 살아남이 말해줍니다. 신화를 향유한 사람들은 주기를 ‘죽음에서 삶으로’라는 형식 속에서 이해했습니다. 여기서도 출발은 죽음입니다. 태어나서 죽는다라고 하는 단선적 생애 모델이 아니라, ‘죽음에서 시작된 것이 다시 죽음으로 돌아간다’가 주기의 순환성을 가동시킵니다.  

 

달은 왜 고슴도치로 변할까요? 저도 잘 몰랐는데요, 고슴도치는 추운 계절에 자신의 거처인 나무둥치에 살지만 겨울잠은 자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고슴도치는 계절에 따라 가시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고슴도치의 몸이 일년을 주기로 털의 양과 질에 따라 마치 달처럼 줄어들었다가 늘어났다가 하는 겁니다. 대평원 부족들에게 이런 특징은 두 가지 이유에서 엄청난 중요성을 갖습니다. 고슴도치의 기하학적 문양은 외형상 순수한 장식적 영감을 줍니다. 고슴도치 털로 수(繡)를 놓는다는 것은 수예자가 오랫동안 무늬의 형식과 내용을 계획했다는 것을 암시하고요. 수예는 수예자의 철학적 깊이와 장인적 능력을 즉각 보여주겠지요. 때문에 제작에 앞서 여자는 금식, 기도, 의례를 합니다. 위에서 소녀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를 위해 고슴도치 털을 탐내지요. 결혼이란 일차적으로 자기 욕망의 해소를 위해서가 아니라 친족의 명예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고요. 또 수예란 자기처럼 시집 안간 처녀는 할 수가 없고, 시집을 갔다 해도 장성한 딸을 둘 정도로 오랜 세월 수예로 수련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수예 의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의식은 수예를 시작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합니다. 형식은 이렇습니다. “들소를 닮게 하기 위해 사람들은 옷을 배열하고, 옷에 향을 피우며, 동물이 일어서게 하려는 것처럼 옷을 펼친다. 그리고 옷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다섯 개의 깃털을 놓는데, 각 구석에 하나씩 그리고 가운데에 하나를 놓는다. 여자들은 각각 놓인 깃털들을 꿰맨다. 그리고 ‘노란-부인’은 그를 위해 옷에 수를 놓고, 그것을 찾으로 올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그는 ‘나무-속에-새’이다. 그가 도착하여 문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앉는다. ‘노란-부인’은 네 번 옷 위에 침을 뱉는다. 그리고 옷을 여러 번 남자에게 내밀고, 마침내 그에게 옷을 준다. 사람들은 옷과 그 소유자에게 향을 피우고, 소유자는 그의 가장 좋은 말(馬)을 수예자에게 선물한다. 여자는 감사를 위해 그를 안고 키스하며, 남자는 새옷을 가지고 나간다.”(레비 스트로스,『신화학3』, 380쪽 참고) 

 

수예자 ‘노란-부인’이 수예한 옷은 옷장에 우루루 걸린 옷이 아니라 생명력 품은 들소가 됩니다. 이 들소는 ‘나무-속에 새’에게 주려고 만들어졌죠. 내 식구 중 누가 입기 위해서 지어진 옷이 아닌 겁니다. 의례이니 부족의 누군가가 ‘나무-속에-새’를 흉내냈을 텐데요, 흉내자는 옷을 받는 순간 ‘나무-속에-새’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 ‘나무-속에-새’는 들소가 됩니다. 이런 옷을 입게 되니, ‘나무-속에-새’는 날짐승이면서도 들짐승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순식간에 초원을 가를 수 있는 말을 선물할 수 있지요. 앞으로 말을 타고 그가 잡아 올 모든 사냥감이 ‘나무-여인’의 집에 이르게 될 겁니다. 

 

수예란 부족의 상징 수준과 물질문화의 수준을 상징합니다. 한 벌의 옷에는 자연에 존재하는 힘 있는 자들의 성질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응축하는 힘이 있습니다. 수예자, 노란-여인은 자신의 솜씨로 우주 질서에 개입하여 풍요로운 한 삶을 도모합니다. 신화는 이 작업이 전적으로 여성에게만 할애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능숙해야 하고 솜씨가 있어야 합니다. 고슴도치에게는 네 종류의 가시(털)가 있는데요. 우수한 순서로 보면 크고(길고) 거친 꼬리의 털, 등의 가시, 목의 가시, 그리고 배에서 나는 가시가 있습니다. 이 가시를 납작하고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염색을 해야 하는데요, 뿐만 아니라 색입힌 가시를 접고, 잇고, 배열하고, 바느질하고, 짜고, 엮기 위해서는 손가락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가지런히 자르려면 갑자기 가시가 튀어나와 눈을 찌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장님이 되지 않기 위해 주술 그림을 얼굴에 붙이고 작업한다고 합니다.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겠네요. 구하기도 어려운 것이 실이며, 완성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 수놓기입니다. 여인들은 이 임무에 일생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은 자신이 놓은 수놓은 옷의 수만큼 눈금을 새긴 막대기를 자랑스럽게 보존한다고 해요. 할머니가 되어 더욱 원숙해지면 그녀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독특한 상징을 읊으며 후배 여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겠지요. 아라파호족 여성에게 바랄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재능이 자수였습니다. 이것은 풍요를 실제적으로 가져오는 주술적 의미가 있었고, 자연 안에서 자기 지위를 높일 수 있는, 오직 여성만이 걸을 수 있는 고유한 길이었습니다.  

 

아라파족의 여인들 중 좋은 집안의 처녀들은 결혼 적령기에 이르면 아예 다른 집안일은 하지 않고 수예에만 매달린다고 합니다. 부정을 탈까 순결을 지키고, 잘 보호된 처녀일수록 언젠가는 최고의 수예자가 될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외모 꾸미기에 열을 올린다고요. 다양한 미용 재료를 갖추고 어디서나 머리칼과 얼굴을 장식하면서 몇 시간씩 보내고, 자기뿐만 아니라 말(馬)과 주변 전부를 향기롭고 우아하게 표현하는데 온 정성을 다 쏟는다고 합니다. 그녀들이 외모를 가꾸고 자신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이유는 수예를 잘하는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였지요. 그래야 나무와 새, 들소와 인간이 함께 먹고 사는 길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신화로 돌아가겠습니다.     

 

③ 갑자기 고슴도치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변해 소녀가 혼인하기를 바랐던 고슴도치가 실은 달이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를 따르기로 했다. 그들이 하늘에 도착했을 때 별의 부모는 소녀를 환대했다. 달이 형수는 어디있냐고 묻자, 해는 “밖에!”라고 대답했다. 해의 아내는 팔딱팔딱 뛰는 개구리였는데, 그녀는 뛸 때마다 오줌을 지렸다. 달은 그녀가 혐오스러웠다. 달은 어떤 여인이 잘 씹는지를 보려고 아내와 형수에게 창자 한 조각씩을 주었다. 이가 튼튼했던 인간 아내는 잘 씹어 좋은 소리를 냈으나, 개구리는 잇몸 사이로 검은 침을 흘렸고 달은 그녀를 비웃었다. 창자 조각을 씹어 삼킨 인디언 여인은 곧 손잡이 달린 항아리를 들고 물가로 갔다. 씹을 수가 없었던 개구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나는 이제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달의 가슴 위로 뛰어올랐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늘 달의 가슴에 검은 점처럼 붙어 있는 개구리를 볼 수 있었다. 개구리 옆에는 더욱 작은 점으로 항아리를 쥔 인간 여인을 볼 수 있었다.


놀라셨죠? 먼저, 우리는 갑자기 해가 이야기 밖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화는 달이 두 부인을 얻는 이야기예요. 이것도 불륜이라면 불륜입니다. 형수와 결혼하는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이 결혼을 선택한 것은 달이 아니라 개구리님이죠. 개구리는 달이 좋아서가 아니라, 달에게 받은 모욕을 되갚아주기 위해 그를 떠날 수 없다고 합니다. 덕분에 달은 자수(고슴도치)-요리(씹기와 씻기(항아리 물))만이 옳다고 생각한 자기 편견을 깨고 개구리 같은 존재, 자신이 추구하는 덕과는 다른 덕을 지닌 존재와 하나가 됩니다. 일부다처제 모습을 한 신화이기는 하지만, 一夫인 달은 자기 본성과 맞지 않는 개구리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화는 결혼이란 남녀가 사랑하거나 취향이 같거나 해서 하는 일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확장해서 해석해보면 개구리가 낸 화 덕에, 남성이기만 했던 달이 여성적 본성도 갖추게 된다고 할 수 있고요. 이처럼 신화는 결혼을 다른 덕들의 종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레비 스트로스는 신화가 혼사장애를 다룰 때는 대개 이와 같은 패턴을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여성의 두 남편’도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이 늘 두 부인을 얻게 되는 이야기가 훨씬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화의 관심은 한 남편의 애정을 다투는 처첩 갈등은 아닙니다. 두 여인은 본성이 다르고, 둘 사이의 직접적 대립은 없습니다. 두 번째 부인인 개구리가 대립하는 것은 남편이지 인간 여인이 아닙니다.
 


결혼은 시아버지 나름 
우리는 지금 신화가 왜 소녀 주인공을 선호하는가에 대해 살펴보는 중입니다. 고슴도치 털을 찾으려고 달과 결혼하는 아가씨들 이야기는 남아메리카 아라파호족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데요, 이 중에서 가장 확장된 이야기는 M428. ‘별들의 배우자들 5’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소녀 주인공의 의미를 더 알아보겠습니다. 전체 틀은 M425를 따릅니다만 이제 핵심 인물은 시아버지가 됩니다.  

 

〇 M.428. 아라파호족의 신화: 별들의 배우자들 5

ⓐ 먼 옛날 하늘에 한 남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이 있는 넓은 원형 야영장이 있었다. 그들의 천막은 빛으로 되어 있었고, 보이는 해가 출구였다. 독수리 깃털은 천막 지지대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사색적인 사람들이었고, 부모와 아들들은 후손과 그들의 일에 대한 생각에 심취해 있었다.


빛으로 된 천막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사색적이었다고 합니다. 아라파호족에게 ‘사색’이란 어떤 행위인지도 궁금한데요, 뒤를 더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신화 속에서 사색한다는 것은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골몰하는 일이고 그 핵심에는 ‘며느리 교육’이 있습니다. 사색은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관조하거나, 과거의 애환이나 지금의 정념을 붙들고 혼자 침잠하는 일은 아닙니다. 

 

ⓑ 형제는 어느 밤 혼인에 대해 의논했고 둘 다 배우자를 찾아 여행을 떠날 것을 결의했다. 형인 해는 공손히 아버지에게 말했다. 늙은 부모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동생과 결혼을 하려고 하며, 결혼 후에 더욱 자주 집에 머무를 것이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에 근심을 덜하게 될 것이라고. 부모의 허락이 떨어지자 형제는 배우자를 발견했는데 형은 자신을 볼 때 비열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는 인간-여자를 경멸하며 개구리 배우자를 찾았다. 달은 인간 여인들의 우아한 태도를 칭찬하며 그들이 관습을 존중하기에 신부 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가풍 탓인지 형제도 우애가 깊습니다. 아버지에게 자신들의 결정을 신중히 말하는 것은 형입니다. 형은 자신들의 결혼이 아버지의 근심을 덜어 들이기 위함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패턴은 앞의 신화와 동일합니다. 달과 해는 다른 방향으로 배우자를 찾으러 떠났고요, 각각 인간과 개구리를 신부로 데려옵니다. 달이 인간에게 반한 것은 그녀의 우아함 때문인데 뒷 대목에도 나오지만, 우아함이란 결국 튼튼한 이빨로 고기를 질겅질겅 거침없이 씹어대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빨의 생김이 우아함을 결정하다니, 과연 미의 기준은 문화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 형은 하류로 동생은 상류로 떠나 6일 동안 계속된 여행과 하루 간의 휴식을 취한 끝에 각자 신부를 얻었는데, 달은 고슴도치로 변해 아름다운 여인을 얻었다.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슴도치를 본 적이 있을까? 젊은 처녀는 소리쳤다. 고슴도치의 털은 길고 희고 찬란했다. 나는 저것이 필요해. 바로 우리 엄마가 필요로 하는 거야…….” 이하, 나무둥지로 여자를 유인한 고슴도치는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 젊은 아내는 시부모의 사랑을 가득 받았고, 뒤늦게 도착했지만 해의 아내 개구리도 가족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이때부터 이 가족의 일상에 도구들이 생겼고 이름이 붙었다. 행위와 규율이 생기는 가운데 시부모는 며느리들에게 가정용 도구를 주고 살림을 가르쳤다. 하지만 개구리는 늘 무기력하기만 했고, 인간 여인은 엄청난 식욕을 듣기 좋은 소리를 내며 창자 한 사발씩을 힘차게 먹었다. 늘 입에서 검은 침을 흘리며 창자를 먹는 개구리를 달은 혐오하며 조롱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려고 했으나 개구리 며느리는 수동적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농경을 배우는 것은 인간 며느리뿐이었다. 


달과 해가 배우자를 구하는 과정은 M425와 같습니다. M428의 특징은 ⓓ부터입니다. 이 지점부터 이야기는 달의 혼사가 아니라 인간-여인의 며느리되기에 집중합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받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고슴도치 털을 줄 수 있게 된 인간-여인은 어머니 밑에서 배우지 않고 시아버지 밑에서 농사짓기를  배웁니다. 

 

신화는 가족의 일상에 도구가 생긴 시점을 며느리가 들어와서부터라고 합니다. 며느리라는 역할값이 주어짐과 동시에 도구의 발달이 시작된 셈입니다. 보통 도구와 기술의 발달의 원인을 농경에 따른 잉여 생산에서 찾지요.(재러드 다이아몬드,『총·균·쇠』) 이 신화도 똑같이 말합니다. 잉여 즉 며느리가 들어왔기 때문에 도구가 자리를 잡았다고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하면 며느리는 ‘잉여’가 아닙니다. 남아 도는 누군가가 아니지요. 게다가 하늘 부족인 달-사나이와 지상 부족인 인간-여인은 이종교배라고 할 수 있고, 결혼은 이런 이족(異族)의 며느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개구리는 왜 무기력했을까요? 물속에 있어야 할 개구리는 해와 결혼한 탓에 활력을 잃었습니다. 앞에서 신화의 일부이처 결혼은 여성들을 남성에게 종속시키는 장치가 아님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을 욕망한 탓에 자신의 습한 기운을 잃고만 개구리-여인을 통해, 결혼이란 자기 욕망에 붙들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구리가 살 길은 개구리답지 않아지는 것! 개구리가 해가 아니라 달에 붙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 때문입니다.  

 

 

개구리의 무기력은 가족을 구성함에 있어서 ‘역할’이 갖는 중요함도 설명해줍니다. 적도의 사헬 지역에서나 극지의 툰드라에서는 남편이 사고로 죽거나 하면 시동생에게 다시 시집가는 형수들이 있었습니다. 또 원시 부족들 중에는 종종 자매가 한 사람에게 시집가기도 했고요. 추장은 복수의 아내를 데리고 살 수 있는 권리를 갖기도 했습니다. 아마존까지 갈 것도 없이 조선 시대의 왕들에게는 많은 후궁이 있었습니다. 물론 인류사에서는 일처다부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결혼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형태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다는 점도요. ⓓ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여인과 개구리-여인 모두 남편의 사랑이나 충절에 큰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인간과 개구리는 사랑을 두고 다투지 않습니다. 인간-아내는 농경에 힘쓰고, 개구리-아내는 신경질 부리며 달-남편 버르장머리 고치기에 바쁩니다. 아라파호족은 이런 조합을 통해 이루게 되는 가족을 칭송했습니다. 근대에 들어 핵가족이 공동체의 기본 모델이 되고, 사랑이라는 정념으로 ‘자기’를 확인하기에 바쁘다보니 결혼에서도 ‘사랑’이 최고 변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옛이야기는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함께 사는 것은 꼭 사랑 때문은 아니라고. 한 남편을 두고 아내들끼리 뭐 그리 다툴 일이 있겠느냐고 말이지요.      

 

ⓔ 어느 날 갑자기 인간 아내는 두 다리 밑에서 완전하게 성장한 아이를 낳았다. 모든 사람들이 신생아의 미모에 넋을 잃었다. 그러자 자신을 멸시하던 시동생에게 화가 난 개구리는 달에게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 시아버지는 며느리 교육이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여자가 예고없이 아이를 분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시부모는 날짜를 계산하여 아이가 손자임은 확인했지만, 자신은 갑작스런 출산은 좋아하지 않는다며 분명히 경고를 했다. 그것은 문명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아버지는 임신과 출산 사이의 열달, 그리고 야생짐승에 의한 임신이 아닐 수 있도록 반드시 몸가짐과 월경 간격을 주의해서 주시할 것을 며느리에게 요구했다. 


달-사나이와 인간-여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모두를 감탄시킵니다. 완전하게 성장했을 뿐 아니라 미모가 뛰어나다는 것은 이 아이가 엄청난 수준의 생산력과 문화력을 품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도 시아버지는 준엄하게 경고합니다. 갑작스런 출산은 안 되기 때문이지요. 경우에 맞을 것(하늘 부족의 며느리로서 아이를 낳아라), 때에 맞을 것(열 달을 채우라)! 신화에서 양의적 존재들은 모두 풍요를 불러왔습니다. 낳자마자 성장한 아이란 이종교배를 통했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힘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것을 낳을 수 있다 해도 경우와 때를 모른다면 옳지 않습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월경을 관리하고, 아들 내외의 잠자리까지 간섭하다니, 그 엄중함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로 중요했던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낳는다는 것은. 
   


수고했다! 
M.428에는 두 주인공이 있습니다. 둘 모두 변신합니다. 달-사나이는 개구리-여인이 들러붙어 흑점이 붙은 여성적 존재가 됩니다. 인간-여인은 친정식구의 명예만 쫓다가 뛰어난 농부가 됩니다. 그녀의 이빨은 점점 더 강해지는데요 이빨로 뭔가 씹어대는 그 모습은 쟁기질하듯 땅을 씹어먹는 모습과도 오버랩됩니다. 그런데 신화 속 시아버지는 왜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에게 집착할까요? 아들은 시키지 않아도 잘 하고, 며느리는 어리석어서 잘 지도해야 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아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은 며느리를 찾아오는 데 있고, 농경은 며느리밖에 할 수 없다는 법도가 엄연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나도 아들에게 농경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며느리 없이는 이 집안이 굴러갈 수 없지요. 시아버지가 며느리 교육에 안절부절 못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국 시아버지가 만들어내려는 가정의 법도, 농경의 법칙은 소녀의 신체를 월경과 임신이라는 주기성 속에 길들이는 것입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몸을 자손에 의한 가문의 번영에 맞게 조작하려고 합니다. 신화가 이 문제를 이토록 적극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만큼 이 과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로써 신화가 소녀 주인공을 선호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소녀는 월경을 하는 몸이 되고, 사람을 낳고 수예자가 됩니다. 그 신체가 남자와는 달리 자연의 주기성을 따릅니다. 시아버지는 이 주기성을 자기 가문의 풍요에 맞추려고 애썼지요. 소녀는 자연의 주기성을 문화적 주기로 바꾸어내는 기호인 것입니다. 따라서 위험도 그만큼 큽니다. 며느리 교육에 실패하면 이 집안에는 괴물이 태어나고(과잉된 능력으로 경우없이 제 욕심만 채우는), 자연의 주기를 거스르는 탓에 농사도 망쳐질 테지요. 

 

신화는 소녀의 며느리되기를 중시하며, 자연에 합치되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인간적 삶을 찬미했습니다. 글을 한참 쓰고 보니, 시아버님 얼굴이 둥근 달처럼 제 마음에 떠오릅니다. 내년 추석에는 어떻게든 ‘수고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며느리이고 싶습니다.  

 

글_오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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