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사기와 가족, 고대 중국의 낯선 가족 이야기』 지은이 인터뷰

『사기와 가족, 고대 중국의 낯선 가족 이야기』

지은이 인터뷰




1. 책을 보면, 『사기』가 쓰여지던 시대의 가족은 오늘날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늘날과 비교해 사마천이 <사기>를 쓰던 한나라 시대에는 최소한 구성원들의 독립성 측면에서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좀 거칠기는 한데, 한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구축되는 국가 공동체적 의례로서의 유학(儒學)이 가족에 부여한 위상이 최소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이천 년 넘게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는요. 그런데 또한 오늘날은 대략 100년 남짓의 시간 동안 급격하게 탈구축된 서구적 근대의 세례와 영향력 속에 가족 관계가 작동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가족과 『사기』가 쓰여지던 시대의 가족 사이의 차이는 어떤 것이 보편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 대 특수의 양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지금 여기, 그러니까 한국이라는 공동체 국가에서 이 양편의 가족 감각이 어떻게 현존하느냐의 문제인데, 지금은 상당히 압도적으로 서구 근대 가족주의적 모델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기』를 보는 것이 꼭 어떤 정답이나 해답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감각들을 내려놓을 길을 모색할 수는 있게 되죠. 

    

그런데 『사기』와 같은 책에서 보이는 가족은 많은 경우 그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는 정도입니다. 부모와 형제 등이 별 것 아니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별 것이어서 사실은 내 욕망의 일차적 경쟁자들이기도 한 거죠. 스스로 자기 존재를 개척해 내는, 삶에 대한 적극성이 지금보다 아주 원초적입니다. 지금 감각으로 보면 '가족끼리 어떻게 그래?'라고 말할 텐데, 사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지금도 신문 사회면을 조금만 들춰보아도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숱한 가족 간 사건들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걸 스위트 홈 혹은 가족 삼각형이라는 중산층 부르주아 가족 모델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가족 내 구성원의 독립성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가족이기 때문에 어찌어찌 해야하는 이 구조가 결국 가족 안으로 퇴행하는 관계들을 품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 『사기』에서 보이는 가족들은 형제끼리도, 부모자식 간에도 살벌하게 경쟁합니다. 그게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도덕적 판단 이전에, 우리 사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지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무엇보다 『사기』 속 가족 구성원들은 일단 집 밖으로 그러니까 가족 밖으로 나섭니다.  



2. 책에서 소개해 주신 내용들 말고도 『사기』에는 많은 ‘막장 드라마’가 있을 텐데요. ‘가족’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더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강의를 구상할 때, 처음의 목표(!)는 『사기』 속의 수많은 근친상간적 가족 막장 드라마를 소개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습니다. 아니 조금 과장하면 『사기』에서는 거의 전편을 통해 막장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예를 들면 아들의 신붓감으로 선택된 그러니까 며느리 후보였던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경우만 해도 몇 차례 등장합니다. 노나라 혜공이 본래 본부인에게 자식이 없었는데 신분이 낮았던 첩에게서 아들 식(息)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 식의 아내를 송나라에서 맞이하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예뻐서 혜공이 빼앗아 아내로 삼습니다. 그리고 아들 윤(允)을 낳아요. 이 아들이 태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벌써 꼬여 버렸습니다. 식과 윤은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인데, 식은 원래 윤의 어머니와 부부가 될 인연이었으니까요. 이 식과 윤을 둘러싼 세습 갈등은 결국 이후 노나라의 큰 재앙이 됩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위(衛)나라 선공, 초나라 평왕 때에도 나옵니다. 조금 다른 변주(?)로는 채(蔡)나라 경후(景侯)의 사례인데, 경후는 태자의 아내로 초나라 여인을 얻어 장가를 보냈는데, 이후 태자비와 간통을 합니다. 그러자 태자는 경후를 시해하고…. 뭐 이렇게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막상 강의를 하고 보니, 가족 막장 드라마라고 하는 말 또한 특정한 가족 관념의 투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기』 속 사례들이 막장드라마가 아니라는 게 아니고 그 이야기들을 자칫 가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보려는 시선에 고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라고 할까요. 『사기』의 이야기들은 단지 막장 드라마로만 읽힐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른' 가족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재료들입니다. 수도 없는 형제간의 분쟁, 부자간의 암투, 친족 간의 살육 등등…. 근친상간적 소재는 이런 여러 가족 이야기의 한 지류일 뿐입니다. 강의 때도 말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사기』는 전체가 가족 이야기 백과사전입니다. '세가'(世家)는 말 그대로 가족들의 분화도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고, 제왕들의 세계인 ‘본기’(本紀) 역시 하나의 가족 드라마인 것입니다. 「진시황본기」, 「항우본기」, 「한고조본기」 이렇게 제목이 붙어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진시황은 여불위와 조희 등이 얽힌 출생의 비밀이 있는 제왕이었고, 항우는 최후의 순간까지 우미인과 지순한 사랑을 나누는 영웅이었으며, 한고조 유방은 위기가 닥치면 자연스럽게(!^^) 부인과 자식들을 먼저 버리고 혼자 목숨을 구해 달아나던 인물이었습니다. 『사기』 자체가 '또 하나의' 가족 드라마입니다. 막장 여부를 떠나 지금의 가족 관념을 낯설게 살펴볼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어떤 가족들 이야기가 장강 물줄기만큼이나 굼실굼실 흘러넘치는 텍스트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3. 고대의 ‘가족’이라는 주제를 통해,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함을 보여 주고 있으신데요. 가족에 대한 어떤 다른 상상이 가능할까요?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는…, 막상 저희(<남산강학원>)가 기획한 이 강좌가 시작되었을 때, 저는 '가족'이라는 다소 포괄적인 주제의 강의에서 '가족'에 대한 어떤 전제, 이를테면 무슨 일을 해도 '결국 가족밖에 없어'라는 식의 어떤 의식/무의식적 전제에 관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은 '역사적'인 것이다라는 식의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적어도 우리 의식/무의식 위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듯한 지반으로서의 '가족'에 대한 궁금증 같은 거랄까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제 주변도 그렇고, 저희 세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국사회가 상당히 가족적이거든요. 혈연, 지연, 학연 같은 게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핏줄로 연결되겠다는 의지의 연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핏줄이 가장 원형적이고 확실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말은 한편으론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론 거의 정반대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요컨대 "가족이어서…"라는 말이 어떤 원점이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유비적 확장이 거의 모든 것을 가족주의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건, 사실 가족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그냥 이데올로기 같은 거죠. 그러니까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라거나 가족에 관한 어떤 다른 상상력이란 이 전제에 대한 의심과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보는 가족 이야기들(그것이 역사든, 문학이든, 혹은 기타 다른 무엇이든)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게 있다면 그런 게 아닐까요. 내가 가진 어떤 가족 관념의 확인이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가족 이야기로의 확장 같은 것으로요.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