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생생 동의보감

[생생동의보감] 어쩌다 신선(神仙)

by 북드라망 2020. 7. 29.

어쩌다 신선(神仙)

 


  • 음식은 산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인데, 이를 여러 날 먹지 못하면 목숨을 잃는다. 『본초(本草)』에는 배고프지 않게 한다는 글이 있는데 의방(醫方)에서 그 방법을 말하지 않는 것은 그 방법이 신선의 술법(術法)에 관계되고 보통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뜻밖의 일로 도망쳐 사람이 없는 곳에 피난을 가거나 골짜기나 물이 없는 곳이나 깊은 구덩이 속에 떨어져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먹을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경우를 당하였을 때는 물이나 공기를 마셔야 하는데, 그 방법은 아래와 같다.


  • 여섯 가지 천기를 마시는 법(服六天氣法) : 여섯 가지의 천기(天氣)를 마시면 배고프지 않게 해준다. 급하고 어려운 지경에 처하여 인적이 없는 곳에 있게 되었을 때 거북이나 뱀처럼 공기를 마시면 죽지 않는다. 『능양자명경(陵陽子明經)』에서는 “봄에는 조하(朝霞, 아침노을)를 마시는데, 해 뜰 무렵에 동쪽을 향해 기운을 마시는 것이다. 여름에는 정양(正陽)을 마시는데 해가 중천에 올 때 남쪽을 향해 기운을 마시는 것이다. 가을에는 비천(飛泉, 샘물)을 마시는데, 해 질 무렵에 서쪽을 향해 기운을 마시는 것이다. 겨울에는 항해(沆瀣)를 마시는데 밤중에 북쪽을 향하고 기운을 마시는 것이다. 여기에 천현(天玄)과 지황(地黃)의 기를 합하여 육기(六氣)라고 한다. 이것은 다 배고픈 줄 모르게 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병에 걸리지 않게 한다.”라고 하였다.


  •  옛날 어떤 사람이 굴속에 떨어졌는데 그 속에 뱀이 있었던 바, 그 뱀은 날마다 시간에 따라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도 뱀을 따라 시간에 맞추어 매일같이 공기를 마셨는데, 그와 같이 오랫동안 하니 점차 효험이 나타나 몸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하여 경칩(驚蟄)이 지난 후 그 사람은 뱀과 더불어 뛰쳐나왔다고 한다. (「잡병편」 ‘잡방’ 1623쪽)




요즘 우리 도시인들은 배고파서 힘든 경우는 거의 없다. 먹을 게 넘쳐나서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다. 냉장고에 남아도는 음식을 다 먹지 못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또 우리가 사는 환경은 편리하고 대개가 안전하다. 편리 위주로 설계된 집과 포장된 도로, 미끈하게 뻗은 버스나 전철 등이 우리가 오고가는 공간이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 까지만 해도 보릿고개를 겪었고 산이나 들에서 일을 하고 땔감을 구해 왔고 울퉁불퉁한 길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구덩이에 빠지고 산에서 길을 잃고 짐승을 만나고 등등 평상시에도 별별 일들을 다 겪었다. 허준이 살았던 조선시대에야 말해 무엇하랴. 그러다보니 이런 일들을 겪어낸 이야기들도 넘쳐난다. 『동의보감』엔 이런 뜻밖의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를 의학의 처방으로 다룬다.


굴이나 다름 없는 깊은 구덩이에 빠진 이 사람. 사방을 둘러보아도 먹을 것이라곤 없고 굴에서 나갈 길도 없이 꼼짝 없이 갇혔다. 게다가 떨어져보니 옆에 뱀이 있다. 으윽! 소름끼치는 상황이다. 생각만으로도 오싹하다. 하지만 이 사람 뱀에게서 살 방도를 배운다. 뱀을 관찰한 것이다. 그는 뱀에게서 숨 쉬는 것도 먹는 거라는 걸 알았다. 공기 즉 천기(天氣)를 먹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계절과 시간에 맞추어 먹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뱀을 따라 뱀처럼 마셨다. 봄엔 아침에 동쪽을 향해서(木), 여름엔 자정에 남쪽을 향해서(火), 가을엔 저녁에 서쪽을 향해서(金), 겨울엔 밤중에 북쪽(水)을 향해서 마셨다. 이러다 보니 어느 덧 뱀과 친구가 되었으리라.^^ 점차 몸이 가벼워졌으니 마음도 가벼워졌으리라. 얼마나 몸이 가벼워졌으면 뱀과 함께 튀어올랐을까! 그대로 믿기는 좀 어렵지만 상상만으로도 유쾌하다. 내 몸까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사실 이건 신선이 되기 위한 비방이다. 불로장생을 구가하는 도가에서는 일부러 곡기를 금하고 호흡만으로도 우주의 순행에 따라 5행의 방위와 시간을 지키면서 천천히 하면 장수한다고 본다. 이는 뱀이나 거북의 호흡법을 본뜬 것 같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보통 사람들이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인데 이처럼 뜻밖의 상황을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공개한다고 『동의보감』에선 말한다.


이 사람은 신선이 되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우연히 구덩이에 떨어지는 바람에 그냥 굶으며 뱀을 따라 숨만 쉬었는데 어쩌다 신선이 되었다. 『동의보감』이 말하는 비방을 저절로 지키게 된 것이다. 곡식을 먹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 걸로 알지만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살 수 있는 기회이니 죽음과 삶이 한 끝 차이인 거 같고 인생의 역설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다.


우리는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에 살고 있어 어쩌다 신선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굳이 신선이 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적게 먹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음식을 조금만 더 먹어도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우리는 금방 느끼지 않는가. 경칩에 튀어 오를 정도는 아니라도 몸이 가벼워지는 건 유쾌한 일이다. 몸이 가벼워지면 마음도 가벼워지고 병이 없어진다.


글_박정복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