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 손님
이번주 월, 수, 금 ‘고물섬’이 열렸다. 고물섬은 연구실 학인들에게 안 쓰는 물건들을 받아서 이 물건들이 새로운 주인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장터이다. 자잘한 악세사리부터 거대한 곰인형까지 각종 물건들이 많이 들어오는데, 그 중 옷이 제일 많다. 그래서 고물섬을 털갈이 시즌이라 할 정도로 고물섬을 하고 나면 사람들의 옷차림이 달라져있다. 워낙에 다양한 곳에서 옷이 오다보니, 새로운 시도도 하게 되고 친구들끼리 서로 잘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고물섬에서 스스로도 뭐하자는 건지 모를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이미 내 옷장에 올해 들어 한 번도 입지 않은 코트가 3개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물섬에서 하나라도 건지지 않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괜찮아 보이는 코트 하나를 샀다. 그리고는 꽉 찬 옷장을 보고는 ‘역시 안 입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내놓았다. 그리고 다음날엔 다른 코트를 보고 샀다가 또 그 다음날 그대로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두 번이나 고물섬에 돈만 내는 나를 보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 없으면 안 사면 그만이지, 왜 물건 하나 더 건지지 못하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심지어 나는 고물섬이 열리기 얼마 전에 겨울옷 정리하면서, 스스로 옷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나. 이 쟁여놓으려는 마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책이란 일정한 주인이 없으니, 선행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가 갖게 마련인 거요. 만약 뒷 세대가 어질어서 선행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면 벽간에 소장된 책과 총중에 비장된 책과 한문으로 번역된 먼 나라의 책들도 장차 남양의 시대로 전해질 것이오. 만약 뒷 세대가 어질지 못하여 안일하고 게으르다면 천하도 지키지 못하거늘 하물며 서적이겠소? 남에게 말을 타도록 빌려주지 않는 것도 공자는 오히려 슬퍼했거늘, 책을 가진 자가 남에게 읽도록 빌려주지 않는다면 장차 어찌하잔 셈이요?
박지원 지음, 『연암집(중)』, 「어떤 이에게 보냄」, 돌베개, 394~395쪽
연암의 친구 중에도 쟁여놓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이름은 모른다. 사실 친구였을지도 의문이다.) 이 사람은 1000상자나 되는 서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책을 아무에게 안 빌려주고 다락방에 방치했다. 자손 대대로 물려줄 생각에 본인은 애지중지한답시고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에게 연암은 ‘책에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냐’고 묻는다. 연암이 보기에 책을 포함해 천하조차도 ‘누가 가지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영원토록 어떤 물건을 가지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고, 자손에게 넘겨 보존하는 일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덕이 있고 훌륭한 황제의 핏줄이라도 지금까지 대대손손 나라를 계승한 경우가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이치였다.
대신 연암은 그저 물건과 ‘즐거운 만남’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움직일 수 없는 책조차 선행을 즐기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어떻게 보면, 물건조차도 자신을 가장 충실히 보낼 수 있는 이에게 머물다 가는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내꺼’이고 ‘더 많이 가져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인 게 아닐까싶다. 그러면 나는 이 손님들 덕분에 잘 살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쓰고 또 더 잘 쓸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길을 터주게 하는 게 물건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방 한구석에 처박아 두는 대신에.
글_남다영 (남산강학원 청년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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