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역사를 배반하는 역사』 지은이 길진숙 인터뷰
1. 『삼국사기』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다룬 ‘역사책’입니다. 문학을 전공하신 선생님께서 ‘역사책’인 『삼국사기』에 관심을 갖고, 읽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왜, 『삼국사기』였나요?
『삼국사기』를 읽은 계기는 아주 단순합니다. 천지귀신을 움직인 이야기를 기술한 야사(野史) 『삼국유사』를 읽고 난 뒤, 삼국역사 기술의 라이벌인 정사(正史) 『삼국사기』도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읽었습니다. 『삼국사기』라는 고전의 가치나 사료적 가치에 크게 의미를 두었다기보다는 우리의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고, 『삼국유사』만 읽으면 불교의 역사, 신이한 기적의 역사만 알게 되는 것 같아 또 다른 시선의 역사를 알고 싶었습니다. 뭔가를 의도한 것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역사에 관한 균형감각을 갖고 싶어서 읽었다고 할까요.
사실, 『삼국사기』라는 역사책 자체에 관심을 갖기란 쉽지 않습니다. 『삼국사기』의 「열전」은 야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나머지 부분은 자료처럼 취급되어 역사학자이거나 역사학도이거나 우리 역사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읽을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마 역사학을 전공해도 『삼국사기』를 다 읽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요? 저도 『삼국사기』는 일종의 연구용 사적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독서물로 만날 상대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고전문학 전공자로 삼국시대의 문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삼국사기』를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삼국유사』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이 저를 『삼국사기』라는 책으로 이끌었습니다. 역사적 사실 확인 차원의 정확성·합리성 여부를 전제로 『삼국사기』를 분석하기 위해 읽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김부식이 어떤 역사적 사건을 어떤 시선으로 기술했는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아마도 이런 단순함으로 인해 『삼국사기』란 역사책을 편하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흔히 김부식은 일연과 역사적 라이벌로 비교를 당하는(?)데요, 저는 김부식과 대비해서 오히려 전작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의 백수 지식인들이 떠올랐습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마이너임에도 불구하고 빛났던 조선의 백수 지성들에 비해 이미 메이저 그 자체였던 김부식의 이력은 별 매력이 없어 보이는데요. 『삼국사기』를 읽으시면서 김부식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신 점이나 독자들에게 꼭 소개해 주고 싶은 사실이 있을까요?
김부식은 보통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문장가를 상상할 때 문장 짓는 일을 주업으로 했을 것 같지만, 김부식은 무장이자 문신으로 인종 연간 권력의 중심에서 활약한 정치가입니다. 고려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문장에 뛰어나야 합니다. 문장을 잘 짓는 것은 관리의 능력이자 자존심입니다.
김부식은 주지하다시피 메이저 그 자체의 삶을 살았습니다. 고려의 수도 개경의 권문세족으로 왕의 권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파워풀한 정치가였으며, 송나라의 서긍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고려도경』에 기록될 정도로 출중한 외교관이었고, 서경(평양)으로 권력을 이동시키기 위해 난을 일으켰던 묘청과 대결했던 장수였으며, 훌륭한 문장가이자 시인으로도 최고이기를 원해 자신보다 뛰어난 이를 용납하지 못했던 일등주의자였습니다. 대단한 정치가이자 최고의 문장가였기에 왕이 『삼국사기』 편찬을 명령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등주의자가 매력적이지는 않지요.ㅎㅎ 고려 당대에도 그렇게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시인으로서 김부식보다 칭송받았던 정지상을 라이벌로 그려서 현실에서는 김부식이 정지상을 처형했지만, 설화에서는 김부식이 정지상과 대결하다 죽임을 당하거든요. 그런데 김부식이 이처럼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농담입니다만 약간 재수 없는(?) 존재란 사실도 『삼국사기』를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이런 사람이니 『삼국사기』 같은 역사책을 쓸 수 있었구나 이해가 되었다고 할까요.
김부식이 정치가로서, 문장가로서, 역사가로서 기준을 삼았던 것은 중국입니다. 제게는 이점이 새삼스럽고도 남다르게 다가오더군요.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로 취급하는 건, 국제관계와 문명수수의 상황에서 볼 때 굉장히 치우친 비판이 아닌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중국의 송나라 때인데, 고려가 송나라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사대외교를 펼치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이래 중세의 중국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게 문명의 기준으로 세계보편문명이었습니다. 김부식은 고려가 제국임을 자부했고, 제국 고려의 위상을 중국에 비견했습니다. 그리하여 중국 문명에 뒤지지 않는 문명제국으로서의 고려를 드러내고자 애썼습니다. 김부식은 중국의 정치제도, 유학적 역사의식, 당송의 문장스타일 등에 견주어 고려가 손색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삼국사기』를 읽으면서 일등주의자 김부식의 자존심이 보이더군요. 고려가 세계보편문명에 준한다는 확신, 그리고 그것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의식, 그것이 『삼국사기』를 편찬한 추동력이었던 것이지요.
3. 이 책 『삼국사기, 역사를 배반하는 역사』에는 『삼국사기』가 선생님께서 알고 계셨던 것, 또는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그런 점이 이 책을 쓰신 이유이기도 할 텐데요. 선생님께서 『삼국사기』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신 사실 중 가장 인상 깊으셨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음. 예상했던 『삼국사기』와 달랐다는 건, 제가 역사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고백이기도 하겠지요. 평소 『삼국사기』를 박물관의 유물처럼 인식했기 때문에 책의 의외성에 놀랐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삼국사기』는 서사가 다채롭고 풍부하거나, 묘사가 생동하거나, 설명이 디테일하거나, 비평적 논리가 충격적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 시작하자마자 저의 역사의식을 자극했습니다.
저는 역사는 과거 사실의 기술이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서술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 역사개념이 뭘 의미하는지 한 번도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삼국사기』를 보면서 알아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 본기」를 읽으면서 제가 규정하는 사실, 객관, 합리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신라 본기」에는 자연재해 기사가 빈번하게 출몰합니다. 아니 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이처럼 많은 ‘자연재해’ 기사를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신라시대의 기록이 심하게 부족해서 적을 게 없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계속 읽으면서 기록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어떤 의도 아래 기술된 것이라는 판단이 서더군요. 왜냐하면 기상이변이나 기이한 생태가 역사 서술의 중심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연재해 뒤에는 반드시 국난이나 왕의 죽음이나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와 인간사는 우연이 아니고 필연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렇다면 김부식이 추구한 바, 유가적 합리주의나 고증 가능한 역사적 사실은 무엇이란 말인가 질문이 생기더군요. 우리 눈엔 황당하게 보이는 것이 김부식에겐 합리적인 것이라면, 사실도 합리도 객관도 해석의 문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자연재해도 있었던 사실, 인간적 사건도 있었던 사실임에 틀림없고, 그것을 연관 지음으로써 이치에 부합한다고 여긴 것은 김부식의 역사 해석의 영역이었던 것이지요.
이렇듯 『삼국사기』는 제 생각과 어긋나는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점에 맞닥뜨리자 역사기술의 진실을 다시 묻게 되더군요. 『삼국사기』를 읽어 가는 과정은 역사적 진실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 진실은 진실이 변한다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여정이었다고 할까요. 제가 알고 믿고 있었던 바, 역사에 대한 상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는 게 적절한 것 같습니다. 민족은 본질적인 구성물인가? 국가가 발전한다는 게 뭘까? 훌륭한 왕의 자질은 무엇일까? 등등. 『삼국사기』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다고 확신했던 바들이 뒤흔들리고 근본적으로 다시 질문하게 되더군요. 신라·고구려·백제는 우리가 확신하는 것처럼 하나의 민족이기보다는 서로 다른 천하국가였음을, 우리의 민족의식 또한 만들어진 것임을 『삼국사기』를 보지 않았다면 결단코 실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4. 이 책에서 선생님 스스로 ‘역사 문외한’이라고 고백하시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보면 선생님께서 『삼국사기』를 참 재밌게 읽으셨구나 하는 걸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삼국사기』를 비롯해서 고전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선생님만의 노하우를 알려 주세요.
저는 『삼국사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발설하기 그렇지만, 처음에는 무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고 뻔하리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가 ‘의외로’ 재미를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 대해 가졌던 제 나름의 정보가 완전히 빗나갔기 때문에 재미있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몰랐던 사실이 많아서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설픈 식견과 정의가 산산이 부서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책에 더 빠져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삼국사기』는 기대했던 대로 좋은 책이 아니라, 의외라서 좋은 책이었습니다.
『삼국사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면 어떤 고전도 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잘난 척을 살짝 해보면서 저의 고전 읽는 법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생각해 보면, 고전이 처음부터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고전은 지금 이 시대와 거리가 먼 시대의 언어와 사유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이 속된 시대를, 이 비루한 일상을 넘어설 수 있는 영감을 던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고전을 의무감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전의 지혜를 발견하거나 그 무궁무진한 사유의 바다를 횡단하기보다는 매우 교훈적이고 계몽적인 시선으로 고전의 말을 꾸역꾸역 따라갑니다. 매우 엄숙하고 진지하게 고전을 상대하면 할수록 고전은 더욱 내게서 멀어지고 재미는 반감하는 것 같습니다.
고전에 권위를 부여하여 무겁게 바라보지 말고, 호기심 많은 아이의 시선으로 고전의 신기하고 다른 점에 주목하면, 고전의 말과 내용이 내 사유와 다른 이유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고전이 쓰인 시대의 삶과 사유를 유추하게 되면서, 고전의 내용이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옵니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그 고전 자체의 특이성을 포착하게 하고, 그 특이성이 나의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그런 부딪침 속에서 나만의 고전 읽기와 해석이 빚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의 지식과 정보에 의해 고전을 읽는 게 아니라 고전과 자연스럽게 마주쳤을 때 생기는 공명에 의해 고전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납니다. 식어 있는 고전에 온기를 불어넣는 건, 미지의 세계를 발견했을 때 편견 없이 기뻐하고 접속하는 탐험가의 순수한 호기심입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고전도 재미있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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