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 가까운 데서 먼 데로
유학(儒學)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먼저예요. 일단 나로부터 출발하는 학문이에요. 이기적인 게 아니라 방향과 순서를 말하는 겁니다. 이것을 유학에서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 얘기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학문이라는 뜻이에요. 유학에서 비판하는 학문은 어떤 학문이냐? 위인지학(爲人之學)이에요.
- 문성환,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320쪽
위인지학은 다른 게 아니라 ‘남을 위하는 학문’이다. 이상하다. 유학의 이미지는 보통 남을 위해 살신(殺身)하는 것 아니었던가? 사정이 그렇지가 않다.
위인지학은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맞추기 위해서. 이거는 자기를 잃는 행위라고 유학은 생각해요. 유학은 기본적으로 가까운 데서 먼 곳으로, 나에게서 타인으로 나아가는 학문입니다.
- 같은 책, 320~321쪽
그렇다. 그러니까 남을 위해 살신하는 것은 나중 문제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나’에게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조금 성급한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어쩐지 인간은 근본적으로 남의 문제를 더 잘 보게끔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아주 자주.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하루에도 여러 번 분노하고, 허무에 빠지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싶은데 대개는 남의 허물을 보고 나서 그렇게 된다. 그러고 나서 그런 감정적인 잔여들이 가라앉은 후에 생각해 보면, 그와 똑같은 일은 내가 하고 있다. 그래서 가끔 혼자 웃기도 한다. 민망해서 그렇다. 이른바 이불킥도 한다. ‘나’는 대체 뭔가 싶다. 포털 뉴스의 댓글들을 봐도 그렇다. 거기에는 그야말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책가부터, 혁명가, 의식있는 시민, 기타 등등이 다 모여 있다. 그리고 사회를 향해 함께 손가락질을 나눈다. 참…, 좀 그렇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말면, 그럼 내가 완전히 무결하지 않으면 어떤 비판도 하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건 ‘비판’보다는 ‘수신’(修身)에 방점이 찍혀있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더불어서, 나는 천하의 도를 깨우칠 가능성도 충분히,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말인즉, 유학은 인간 개개인이 가진 남루함을 자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남루함으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학문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들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부족함을 자주 깨닫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학은 생활 곳곳에 아주 소소한 부분들에까지 간섭한다. 다시 말해 유학은 무엇보다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전부다. 그걸 일신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도 세계는 바뀌질 않는다.
나로부터 출발하고, 내 주위를 보듬고, 나로부터 출발해서 내 주위를 보듬는 이 일을 멈추지 않는 것. 유학의 모든 학문은 이렇게 가까운 데서 먼 데로 나아갑니다.
- 같은 책,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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