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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2주간 떠들쳐 본 책들

김훈,『라면을 끓이며』 - 우리 아버지였으면 하는 기분

by 북드라망 2017. 5. 15.

김훈,『라면을 끓이며』 - 우리 아버지였으면 하는 기분



얼마 전에, 2주쯤 되었나…… , 여하튼 한 달이 조금 되지 않은 때에  『라면을 끓이며』를 읽었다. 지금도 읽고 있다. 좋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 아버지가 써놓은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김훈 선생이 우리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8년생이시니 딱 아버지뻘이다. 진짜 우리 아버지는 51년생이셨으니까 고작 세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살아온 내력은 참으로 다르다. 진짜 우리 아버지는 『라면을 끓이며』를 쓰고 있는 화자가 아니라, 차라리 화자에 의해 대필되고 있는 어느 사람의 모습에 더욱 가깝다. 발바닥에 박힌 굳은 살로 땅을 밟으며 애써 살아가는, 김훈 선생의 표현에 따르자면 땅에 제 몸을 비비고 갈아가며 사는 사람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정말로 그렇게 땅을 비벼가며 살다가 아무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고 말았다. 무슨 말이라도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로 '훌쩍' 떠나버렸기 때문에 이맘때가 되면 나는 어쩐지 가슴 한쪽이 허전하다. 



그런 때에 읽은 글이어서 그런지 아까 말한 '기분'이 더욱 그랬나 보다. 우리 아버지는 몸을 부려서 먹고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내 책을 읽고 싶어했고,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했고, 글도 쓰고 싶어했다.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한 바가 없었지만, 나를 그런 사람으로 키우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어떻게 애를 썼느냐 하면, 클래식을 들려줬고, 책을 사줬고,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내가 대학 안 간다고 할 때도 아버지는 그저 '그래도 가는 게 좋을 텐데 말이다…'할 뿐, '너 이 새끼'로 시작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그저 아쉬운 채로 나를 내버려 두었다. 덕분에 나는 늦게 정신차려 수험준비를 하였고, 삼류대학이나마 대학물을 먹을 수 있었다. 아마 그때 아버지가 '너 이 새끼 내가 너한테 얼마나 기대를 했는데' 하는 식으로 말했다면, 나는 아마 대학 근처에도 안 갔을지 모른다. 대학에 가서는 좋아하는 책도 마음껏 읽을 수 있었고, 책에서 본 대로 행동하는 바보짓도 많이 했다. 행복했다. 그러니까 '행복'이라는 게 뭐였는가 하면,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라고 해야 할까. 여하간 결국 나는 아버지가 내내 내버려둔 덕분에 내내 책을 읽고, 좋은 음악을 듣고, 글도 쓰고 그러면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그 일들을 하며 산다. 이건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기어이 만들어서 전해준 터전 같은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그에 딸린 금융권 부채도 듬뿍 물려주셨지만, 그조차도 유산은 유산이다. 복에 겨워 방종放縱하지 말라는 그런 뜻 아닐까?


『라면을 끓이며』에는 김훈 선생의 진짜 자식들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온다. 딸이 첫월급을 타가지고 핸드폰을 사준 이야기, 입대를 앞둔 아들이 평발을 내밀며 재검 운운할 때 가슴에 통분이 끓는 아버지의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러고 보니 첫월급을 타가지고 부모님께 뭘 사드렸는지가 기억나질 않는다. 무언가 분명 사드렸던 것도 같은데……. 군대갈 때는 어땠는가. 나는 애써서 부모님들을 집에 떼어놓고 나오려고 했다. 그냥 다녀오는 군대인데, 울고불고 하는 것이 영 창피스러웠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친구는 예외였지만 말이다. 결국 부모님들은 훈련소까지 따라왔고, 생각한 그대로 엄마는 울고불고, 아, 나도 울었다. 아버지는 잘 다녀오라며 전자시계를 내밀 뿐이었다. 여자친구가 사준 게 이미 있다고 했건만, 아버지는 기어이 시계 하나를 내 손목에 더 채워주셨다. '시간 금방 간다.' 결국 아버지가 주신 시계는 훈련소에서 시계가 고장난 어느 전우에게 주었다.


군대에 있을 때 아버지는 딱 한번, 내가 병장일 때 면회를 왔다. 워낙 멀리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느 집은 달마다 오는데……. 그런 불만이 있었다. 그런데 그 한 번의 면회가 결정적이었다. 군대 간다고 전자시계를 사준 여친이 전역을 한달 보름 앞둔 나를 버리고 일주일 뒤, 아버지는 새벽부터 고속도로를 달려 면회를 왔다. '아들아 원래 그렇게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가고 그러는 거란다.' 외출을 나와 불고기를 먹으며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고, 아, 나는 불고기 앞에서 울 수 없어서 뛰쳐나와 울었다. 


그 시절 아버지가 했던, 그런 몇마디 말들이 기억 속에 콱콱 박혀 있는 걸 보면 잘 새겨들은 것 같기는 한데, 막상 그때를 떠올려보면 다 허투루 들었던 것 같다. 귀찮고, 성가시고, 잘 모르면서 참견하고 하는 그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자식이라는 놈들이 다 그런 식이다. 부모가 죽고 나서야 다시 돌려보고 '아 그게 그랬던 건데'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다시 돌려보니, 김훈 선생이 우리 아버지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가 선생이 아니라 생전의 우리 아버지에서 비롯된 것인 듯하다. 그나저나 이 글은 『라면을 끓이며』를 잘 읽었다는 그런 내용의 글인데 우리 아버지 이야기만 잔뜩해 놓았으니 이를 어쩐다……. 연로하신 나이에 글이 짐이 된다는 걸 '작가의 말'에 늘 적으시면서도 이렇게 자꾸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이 글들을 저희 아버지가 읽으셨으면 참 좋아하셨을 텐데, 그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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