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최종 보스 엄마를 이기는 방법!


손오공은 어째서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요즘 저의 고민은 ‘어머니’입니다. 요즘 어머니와 나누는 모든 대화는 기승전‘결혼’이거든요. 20대 후반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요 몇 달은 너무 심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점을 보고 왔는데 네 곁에 몇 년생의 남자가 운이 닿는다더라, 누군지 잘 생각해봐라"와 같은 이상하게 구체적인 이야기나 "이모가 좋은 남자를 소개해준다는데 선을 한번 보지 않겠느냐"라든가 하는 이야기는 그래도 맥락이라도 있지요. 반찬을 싸주시면서도 "신랑이 있으면 이런 거 들어주고 그러지 않겠느냐", 가구를 새로 들였다니까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좀 수월했겠다", 베란다 전등이 나가서 갈아야 하는데 너무 높아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갈아주지 않았겠느냐", 친구들을 만났다고 이야기했더니 "거기에 싱글인 남자는 없었느냐" .... "왜 모든 이야기가 그렇게 흐르느냐, 다른 이야기 좀 하면 안 되느냐"고 해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결국은! 어떻게든! 대화는 결혼 이야기로 흐르지요.




저 나름대로는 이성적으로 설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지금 당장은 하고 싶지 않다" 라는 말은 애초에 먹히지도 않았습니다. "할 거면 하루라도 빨리!"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빌기도 하고 불같이 화도 내보고 협박도 해봤습니다. 잠잠한 건 몇 달뿐이었지요. 어머니가 준비하신 맞선 자리에도 두어번 나가 보았습니다. 그러면 좀 잔소리가 잠잠해질까 했거든요. 아니요,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른 종류(?)의 남자를 준비해주시더군요. "그 남자는 내가 잘못 골랐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남자를 골라보았다."


저는 제 어머니께 '나를 존중'해 달라고 합니다. 저에게 예의를 지켜달라고 하지요. 결혼을 안 했다고(제 생각입니다) 혹은 못 했다고(어머니 생각이시죠) 나를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대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너는 그냥 내 딸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네가 나이 칠십을 먹어도 나에게는 어린애일 뿐’이라고요. 제가 요구하는 존중이니 예의니 인정이니 사랑이니 그런 이야기는 어머니께 조금의 영향력도 없습니다. 점점 표현은 거칠어지고 싸움도 커집니다. '그래봤자'예요. 집에 돌아와 저는 제가 뱉은 모진 말들을 후회하고 때때로 어머니께 사과도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거짓말과 연을 끊는 것을 제외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을 써보았습니다. 하지만 안돼요. 저는 어머니 앞에서 너무 무력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런 기분...


손오공은 어째서 석가여래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간단히 말하면 이 대결은 유위법과 무위법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손오공은 철저히 물질과 문명, 곧 유위법의 화신이다. 변신을 하고 불멸을 쟁취하고 하늘을 지배하고 … 반면 석가여래는 이 세계의 근원적 무상성을 터득한 존재다. … 유위법은 결코 무위법을 이길 수 없다.
무위법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지배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욕망 그 자체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 고미숙 지음, 『고미숙의 로드클래식, 길 위에서 길 찾기』 북드라망, 2015. 84쪽


 

다른 의미로 손오공의 무력감을 지나치게 느낀 어느 날, 고민을 토로하는 저에게 영특한 동생은 이야기했지요. "엄마가 변할 거라는 기대 같은 걸 하지마. 엄마는 절대 안 변해."(아아ㅜㅠ) 그리고 덧붙였지요. "내 컨디션이 별로라서 저 이야기를 들으면 분명 기분 상하고 싸울 것 같다 싶으면, 차라리 전화도 받지 말고 간다고 약속했어도 가지 마"라고요.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욕먹을 바에야 차라리 나라도 살아야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효도도 건강할 때나 하는 거야."


네, 어머니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없더라구요. 어차피 어머니도 당신 뜻대로 제가 움직여주길 바라고, 저는 어머니가 저를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기려고 하는 한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당신의 뜻을 저에게 관철시키려고 하시는 이상, 제 말이 얼마나 이성적인지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요. 이 싸움은 승리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애초부터 어머니에게 이건 ‘싸움’도 아닌 걸요.) 어머니와의 연을 끊지 않는 이상,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네. 석가여래랑 싸우는데 손오공의 화려한 기교나 기술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지요. 이기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어머니가 내 뜻대로 움직이시길 바라지 말고, 어머니의 말에 휘둘려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어머니에게, 그 말에 휘둘리지 않도록 강인한 멘탈과 체력을 갖추는 것. 내가 옳다는 마음도 버리고, 그저 어머니의 '공격'을 흘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


나에게 남은 것은 수행!


오늘 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어머니에게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탄생할 것이고 똑같은 행로를 밟아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다시 이 씨앗문장을 찾아 읽고, 마치 처음처럼 마음을 고쳐먹어야겠지요. 그러니 또 남은 건 파이팅뿐! 그리고 저와 같은 상황에 놓은 많은 분들도 부디 파이팅!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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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희정 2015.06.30 17:19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아 큰 깨달음을 얻고 가네요!!!!

  • 조아하자 2015.06.30 22:06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우리집은 엄마는 안그러는데 오히려 제 동생이 먼저 결혼 결혼 노래부르고 다녀요 심지어는 벌써 애기 얘기까지 함 ㅋㅋㅋ

  • 만슈 2015.07.02 14:35 답글 | 수정/삭제 | ADDR

    저도 어머니가 그런 말씀을 하실 때마다 버럭하거나 흘려듣거나 했는데, 요즘은 어머니가 왜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는지 조금, 아주 조금 알겠더라구요. ^^;; 암튼 화...화이팅입니다요! ㅎㅎ

    • 북드라망 2015.07.03 09:52 신고 수정/삭제

      아시겠다구요?! 흐음.. 그것도 '내 마음'은 편하고 좋은 일이겠지요? 암튼, 그래도 저도 화이팅입니다!!

  • tasia07 2015.07.02 22:29 답글 | 수정/삭제 | ADDR

    역시 어려워요... 우리 집의 보스님은... 날이 가면 갈수록 비굴모드가 되지 뭡니까.

    • 북드라망 2015.07.03 09:54 신고 수정/삭제

      비굴모드.. 아.. 차라리 버럭이라면 나도 버럭할텐데 ㅠㅜ 마음을 다잡으셔요! 휩쓸리지 않도록! 그저 화,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