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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편집자 k의 드라마 극장

[편집자 k의 드라마극장] 넘치는 사랑, 아니 식상의 주인공들!

by 북드라망 2013. 11. 20.

결혼보다 무서운 건 식상, 드라마 <결혼의 여신>



<결혼의 여신>은 첫회부터 낯뜨거운 장면으로 논란은 있었으나 덕분에 기본적인 시청률을 깔고 순조로운 출발을 했습니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라는 꼬리표를 달긴 하였는데…, 글쎄요, 제가 보기엔 요즘 하도 심한 드라마들이 많아서인지 눈살 찌푸려지고, 답답하고, 손발 오그라드는 장면들이 가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요즘 세상에 뭐……. 좌우간 저는 <결혼의 여신>을 ‘남상미-이상우 파격 베드신’, ‘클라라 노출’ 등과 같은 검색어 때문에 본 것은 절대(!) 아니옵고, 극중 ‘장우’로 출연했던 양한열 어린이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조카와도 좀 닮은 데다가, 극중 엄마인 장영남이 남편의 이혼 요구에 응하지 않기 위해 집을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큰집 가서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1년 만에 다시 만난 엄마를 원망도 않고 “엄마 집 나가서 정말 열심히 사셨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 기특한 아이가 저를 <결혼의 여신>으로 인도했답니다. 하지만 제 역할을 다하고 후반부엔 분량이 싹 사라졌지요, 흑.


편집자 k의 마음을 흔들었던(?) 양한열 어린이~


제가 재벌집 며느리(이태란·남상미)가 아니라 그런지, 남편이라면 꾸뻑 죽는 마누라(장영남)가 아니라서 그런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며 온 집안을 평정하는 슈퍼우먼(조민수)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사실 어느 한 군데 공감 가는 장면은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본방사수는 아니었으나) 이 드라마를 첫회부터 주욱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저의 학구열 때문이었지요(응?). 넘치는 식상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을 보는 것이 참으로 불편하였지만, 이게 다 공부다, 하면서 보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식상과다_재벌 사모 시어머니 VS 일반 서민 시어머니


윤소정(앞에 다른 분들도 그렇고 존칭 생략합니다. 죄송합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대한민국 며느리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분입니다. 영화 <올가미>로 막장 시어머니의 지존으로 등극하신 분이지요. 다행히(?) <결혼의 여신>(이하 ‘결신’)에선 그 정도까진 되지 않으셨는데, 아마도 <올가미>에선 아들이 하나라 그렇고 <결신>에선 셋이라 집중도가 분산되어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흠흠. <결신>에서의 역할은 신영그룹의 사모이자 이태란·남상미의 시어머니입니다. 첫째 아들은 재벌 딸과 결혼시켰으나 이혼했고, 둘째 아들은 아나운서 출신 이태란, 셋째 아들은 방송작가 출신의 남상미, 그러니까 둘 다 눈에 차지 않는 결혼을 어쩔 수 없이 시켜 불평지기가 하늘에 달한 인물입니다. 며느리에게 함부로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식탐이었습니다. 아침으로 회가 드시고 싶으시다는 말씀은 강호동이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지요. 거기에 며느리 이태란의 증언도 이어지는데요. “저희 시어머님은 식탐이 많으셔서 밤이든 아침이든 사다 대령해야 해요. 과일은 캘리포니아, 고기는 횡성, 회는 동해 자연산”으로 드신답니다. 재벌집 사모님이라 그러신지 식상이 참 고급스러우신가 봅니다(식상이 세 개나 되지만 비싸고 몸에 좋은 것을 먹지 못하는 저의 팔자와는 참말로 다르네요, 흑).
 

제가 보기에 식상과다를 넘어 식상폭발이신 이 아주머니는 자기로부터 나오는 말도 주체를 하시지 못합니다. 배배 꼬는 것 정도가 평상시 어법이고, 열이 치솟아 오를 때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입니다. 며느리에게 “너 들어오고 집안에 되는 일이 없다” 이 정도는 약과죠. 둘째며느리에겐 “미천한 출신 며느리 데리고 다니기 창피하다”, 스트레스로 하혈해서 병원에 입원한 셋째 며느리에게 찾아와선 다짜고짜 “너 애 흘렸니?” 하며 흥분하고, “알아서 기라”고 하였는데도 남상미가 집안 몰래 방송일을 하는 것을 알고는, 만삭의 몸으로 놀러 와 있던 며느리 친구 앞에서 노트북을 집어던지며 또 폭언을 퍼붓습니다. 아들의 비자금 조성을 도와줬다가 곤란에 빠진 심이영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자 “자빠져” 있으라고 하는데, 이 드라마에선 신영그룹 회장인 남편을 제외하곤 이 막말의 폭격을 피한 자가 없습니다.

말은 너무나 거칠지만 ‘아트’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고우신 점 역시 이분이 식상폭발이로구나 하는 심증을 굳히게 해주었는데요, 미술선생인 남 선생, 심이영을 큰며느리 이태란의 염장을 지르기 위해 집으로 끌어들이고 결국에는 아들과 엮이게 하고, 심이영을 끌어들여 그림을 이렇게 저렇게 사고팔면서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렇게 사들인 것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아무튼 저택 지하에는 사모님의 갤러리가 있사온데, 자식들이 속썩이고 며느리들이 제멋대로 굴 때 그 갤러리 안에서 와인을 마시며 “이 사랑스러운 것들, 너희들만이 나의 희망”이라며 흐느적거립니다. 자기표현의 육친인 식상이 흘러넘쳐 버려서인지 제대로 예술을 꽃피우지는 못하고 그저 ‘사랑’하기만 하였는데, 요래서 나중에 둘째 며느리 이태란에게 “갤러리도 취미로만 했어야지 어머니 주제에 갤러리를 하겠다고 다니다가 집안을 다 망해 먹게 생겼다”며 막말 부메랑을 맞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갤러리는 취미로 하는 걸로! 평상시엔 이렇게 팩만!



넘치는 식탐, 넘치는 막말, 넘치는 예술 사랑 여기에 더해 식상폭발로 태어난 여자 사주라면 또 빠질 수 없는 것이 넘치는 자식 사랑이지요. 못난 자식에 더 마음이 쓰여서일까요? 검사인 셋째 아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둘째 아들에 대한 사랑(네… 물론 그것은 사랑이 아니므니다만은)은 자식 사랑이 범죄로 이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보여 줍니다. 바람 피우고 외박한 것이 분명한 아들에게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주라는 심부름을 며느리에게 시키고, 정치인이 되겠다는 아들을 비자금 조성으로 적극 밀어주다 결국 감옥살이를 하시는데 그것도 3년 받았다가 1년 만에 병 보석으로 풀려나온다고 합니다. 넘치는 게 또 현금(식상)인데 어련하시려구요.
 
하지만 현금이 넘치지 않는 일반 서민 시어머니 성병숙은 아들 때문에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쫓겨나도 며느리를 욕하며 “불쌍한 우리 아들”을 찾고(성병숙의 둘째 며느리가 앞서 말한 장우엄마, 장영남입니다. 가출하면서 시부모님이 살고 있던 자기 명의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놓거든요), 무작정 아들만 싸고도는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큰며느리에게는 “싸가지 없다”, “보고 배운 것 없는 것들이 쌍으로 들어와 위아래도 없이 휘젓고 다닌다”며 천하의 슈퍼우먼 조민수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합니다. 이 시어머니의 막말 중에는 어렵게 상무가 된 조민수에게 축하는커녕 비아냥거리며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내 아들 빵쪼가리를 먹이냐”도 있었지요.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성병숙) 역시 울 엄마!*^^*(장현성)



재벌집 사모 시어머니나 서민 시어머니나 넘치는 식상의 기운이 뿜어내는 막말의 정도는 크게 다르지 않네요. 이것이 과다한 식상의 무서움인 것 같습니다. ‘나’는 넘치게 하고 남을 다치게 하니까 말입니다. <결신>은 식상과다인 저에게 언제나 말에 대한 경각심을 잃지 말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결신> 관계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드라마 잘 봤습니다! 양한열 어린이~ 장우처럼 자라줘요^^! 


과다는 통제불능의 상태를 의미한다. 자기도 모르는 말과 기를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것이 식상과다다. 말은 말을 낳고 또다른 말들의 씨가 되어 세상에 뿌려진다. 그 씨들은 순식간에 괴물이 되어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또 궁극적으로 나를 덮치기도 한다. 중구삭금(衆口鑠金; 뭇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인다)의 원리다. …… 집단적 팔자건 개별 팔자건 식상은 소중하게 쓰여져야 한다. 말과 밥과 끼, 그리고 자식, 다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자 능력인가. 이 자산을 바탕으로 재성을 일구고 관성을 기른다. 자식을 살림밑천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치다. 자식을 잘 키우면 그 자체로 재산일 뿐 아니라, 자식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 접하게 된다.


─고미숙,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202~203쪽


자식은 이런 존재였군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해주는 존재! 저도 제 자식들을 통해 ‘얼토당토’라는 새로운 세계와 만났었지요. 하하!



편집자 k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10점
고미숙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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