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와 연결』 지은이 김고은 선생님 인터뷰
1. 다섯 청년의 인터뷰에 『불화와 연결』이라는 제목을 붙이셨는데요, 제목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질적인 존재들과 함께 살 수 있을까?” 저는 정말 궁금했습니다. 지난 인터뷰집 『함께 살 수 있을까』에서 인터뷰이들은 하나 같이 그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함께 살 수밖에 없지 않냐고요.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수정해야 했죠. 이렇게요.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
방법을 찾는 일은 가능성을 타진하는 일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당장에 제 삶에서부터 그랬습니다. 함께 사는 방법을 찾기는커녕 매번 실패만 해온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번 책의 다섯 인터뷰이들을 만나고 나서 제가 너무 쉽게 불화를 실패로, 실패를 회복할 수 없는 단절로 치부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불화와 연결』의 다섯 인터뷰이들은 존재 자체로 불화하는 사람들입니다.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 진우 님은 '비非시민'으로 호명됩니다. 지역에서 거주하는 여성청년 총총 님은 도시에 진입하지 못한 '실패자'가 아니냔 눈초리를 받고요. 기후운동가 은빈 님은 법 테두리를 벗어난 액션을 했다며 '게으른 범법자' 명목의 벌금을 받았습니다. 인문학공동체의 멤버 윤하 님은 살림을 공부이자 활동으로 삼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루저'의 위치에 놓이기 쉽고, 대체복무요원 길완 님은 '이방인'이라고 불립니다.
인터뷰이들은 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질적이라며 배제당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양한 존재들과 어울렸습니다. 자꾸 부딪히며 불화했습니다. 그렇게 불화하는 날들이 쌓이니 연결되더군요. 이들이 대단히 용감하거나 특출난 성품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함께 살기’와 ‘살기’가 다른 말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책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연결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불화가 실패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단절을 뜻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만일 불화와 실패를 단절이라고 생각한다면 두려움만 남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찢기고 실패한 뒤에 더 큰 힘을 갖고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요.
2. 부제가 ‘서로에게 기대는 법을 고민하는 청년 인터뷰집’인데요, 잘 기대는 법이 따로 있는 듯합니다. 어떻게 기대야 할까요? 기댈 수밖에 없을까요?
진우 님과 윤하 님은 각각 장애운동판, 인문학 공동체에서 선배에게 기대고 있습니다. 선배들은 기꺼이 마음과 시공간을 내어주었지요. 은빈 님은 기후운동하는 동료들과 서로에게 근거가 되어주었습니다. 한국 법체계가 그들을 불법으로 규정했을 때도 망설임 없이 기후문제에 관해 말할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지요. 총총 님과 길완 님은 모두 주변 사람들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해요. 총총 님은 이웃과 동료들만 보고 지방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길완 님은 누가 의심할지라도, 그의 관계망 안에서만은 확실히 평화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인터뷰이들에게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만 있는 건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이들에게 적대적이고 상처를 주는 관계도 있지요. 그러한 관계를 만날 때도 인터뷰이들은 어딘가에 기대어 갑니다. 진우 님이 경찰에게 위압적으로 포위되었을 때 사용하는 방법은 꼬집기와 깨물기입니다. 총총 님은 밥을 먹고 가라는 말들에 기대어 그냥 버텼습니다. 은빈 님은 대기업 앞에서 만화 ’원피스‘의 주제가를 부르고, 윤하 님은 발끈하다가도 책을 읽으며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길완 님은 관물대에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를 부쳐 놓고요.
구체적인 삶은 정돈되어 있기보단 얼렁뚱땅에 더 가깝지 않습니까? 인터뷰이들이 불화해 내는 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웃기거나 슬픕니다. 웃기고 슬프기도 하고요. 온갖 서사가 범람하고 있음에도 인터뷰를 다시 한 건 이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배운 철학을 하고 싶었어요. 갑자기 철학이라니, 거창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저는 철학이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배운 동양철학은 거대하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관계 이야기였거든요. 우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면 좋을지, 철학이 그 길을 보여줄 것입니다.
3. 장애운동판의 활동가인 진우 님을 비롯해 이 책에 실린 인터뷰들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드러난 ‘장벽’만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 자신은 어떤 장벽을 느끼시는지요? 그리고 이런 사회의 장벽들을 어떻게 해체해 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일상적으로는 비건이라서 겪게 되는 일이 있을 것 같네요. 밥은 매일 먹어야 하고, 사람과 만나려면 뭐든 마시게 되니까요. 인터뷰를 하러 현장을 다니다 보면 길거리에서 식사를 혼자 해결해야 할 때가 많아요. 먹을 수 있는 게 없어서 굶을 때도 있고, 고구마말랭이 같은 주전부리로 식사를 대체할 때도 있답니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세미나를 하거나 친구,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때도 불편한 일이 많습니다.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고 먹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모임에 걸림돌이 되는 기분도 듭니다.
그래도 가능한 비건임을 숨기지 않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이야기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도 비건이 아니었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논비건 역시 비건의 눈치를 본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비건에 대해 알려준다면, 한 번이라도 같이 밥을 먹어본다면 논비건도 비건도 서로에게 익숙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진우 님이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동권 시위를 하는 것처럼, 저도 일상에서 저만의 작은 시위를 하는 중이랍니다.
그러나 종종 저의 작은 시위가 누군가를 배제하고 비건과 논비건의 선을 가르는 일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은빈 님의 말마따나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될 테니까요. 그래서 총총 님의 말마따나 조금 다른 존재들을 환대하고 초대하는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됩니다. 서로 익숙해지기까지 사람에 따라, 사회에 따라 더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요.
4. 이 책의 다섯 인터뷰이 분들로부터 배운 점이랄지, 크게 느끼신 점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장애동료상담가 진우 님에게는 경청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인터뷰어인 제게 ‘듣기’의 선배님이시기도 하지요. 듣는 일을 연애하듯이, 데이트하듯이 하라고 하시더군요. 최선을 다해서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 경청의 정도라는 것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지역의이웃청년 총총 님은 사람들에게 기대어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지치고 상처 입으면 가장 먼저 관계를 끊게 되기도 하는데요. 총총 님은 몇 년 동안 주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들어주는 마음을 온전히 받아냈습니다. 대단하지요. 그 덕에 큰 난관 속에서도 혼자 무너지지 않고, 지역을 떠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되셨어요.
기후운동가 은빈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정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당정치에 회의적인 편이에요. 많은 이슈가 소거되거나 빠르게 소모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은빈 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정치운동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들의 불온함에 기반한,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정치운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문학공동체살림꾼 윤하 님에게서는 어떻게 관계가 한 인간의 근간이 되는지 알 수 있었어요. 그럴싸한 졸업장이나 자격증, 시험 점수가 없이도 윤하 님은 특유의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요. 서로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관계를 오랜 시간 가꿔왔다는 사실 자체가 사람을 이토록 풍요롭게 만드는구나, 놀라웠습니다.
대체복무대원 길완 님은 심사 과정에서 평화주의 신념을 계속 의심당하셨는데요. 그랬음에도 끈질기게 할 말은 다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계세요. 스스로는 게으르고 방탕하다고 말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너무 성실하거든요. 성실한 신념이 결국 어떤 일들은 해내고 마는구나, 하는 감명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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